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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
BC 28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유가에 속하는 사상가 맹자의 언행을 기록하고 인의(仁義)의 도덕을 강조했다. 『맹자』는 「양혜왕편(梁惠王篇)」, 「공손추편(公孫丑篇)」, 「등문공편(滕文公篇)」, 「이루편(離婁篇)」, 「만장편(萬章篇)」, 「고자편(告子篇)」, 「진심편(盡心篇)」 등 모두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은 상하로 나뉘기 때문에 실제로는 14편인 셈이다. 7편 가운데 전반의 3편은 맹자가 천하를 돌며 유세하던 때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고, 후반의 4편은 은퇴 이후의 언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맹자는 BC 372년, 전국시대 중기에 추(鄒)나라[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추현(鄒縣)]의 사(士) 계급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가(軻), 자는 자여(子輿), 자거(子車), 또는 자거(子居)라고 하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공자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은 맹자는 42~43세경부터 송(宋)나라, 등(滕)나라, 양(梁)나라, 임(任)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 설(薛)나라를 유세하고, 제후에게 인의에 기반을 둔 왕도정치 를 설파했다. 제나라에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 8년 동안 중신의 대우를 받기도 했다. 다른 학파의 사상가와 문답을 통해 유가의 입장을 강력히 주장한 것도 그때였다. 약 20년의 유세를 마치고 62세에 고국 추나라로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다가 BC 289년, 84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맹자』 7편은 맹자가 고향 추나라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동안 제자 만장(萬章)과 함께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장의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맹자 자신의 저술일 가능성도 있다. 또는 맹자가 세상을 떠난 뒤 만장이나 공손축이 맹자의 말을 정리하여 저술했다는 설도 있다.
『맹자』는 진(秦)나라, 한(漢)나라, 당(唐)나라 시대에는 유교의 경전이 아니었다. 때문에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제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 뒤 송대에 이르러 유학이 성행하면서 유학자 주자(朱子)가 『맹자』를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와 더불어 ‘사서(四書)’로 삼고 『맹자집주(孟子集注)』를 저술했는데, 그 이후로 『맹자』는 유학 사상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
그러나 1974년경부터 중국에서 일어난 ‘공자 비판’ 속에서 맹자의 사상은 ‘노예 제도를 부활시킨 것’으로 취급되었다.
맹자에게는 인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패도(覇道)를 부정하고 왕도정치를 주장한 그의 정치론에는 휴머니즘 사상이 깔려 있다. 『맹자』 7편은 힘찬 문장과 적절하고 날카로운 비유, 뛰어난 논리로 맹자의 언행을 박력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문답체 문장은 그의 변론술을 잘 드러내고 있다.
孟子의 구성과 내용
처음으로 맹자에 주를 단 사람은 후한(後漢)의 조기(趙岐)라는 사람이다. 조기는 맹자7편을 각각 상하로 나누어 14권으로 만들었고 이것이 맹자의 체제로 정착되었다. 한서 「예문지」에는 맹자11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외서(外書)' 4편을 포함한 수치일 것이다. 조기는 당시에 통용되던 「성선(性善)」·「변문(辨文)」·「설효경(說孝經)」·「위정(爲政)」의 네 편을, 한대의 유자들이 지어서 맹자의 책이라고 가탁(假託)한 것으로 결론짓고, 『맹자』 안에 편입시키지 않았다. 이후 이 네 편은 일실되었다.
맹자보다 조금 뒤의 순자나 한비자의 저작에서는 각 편에서 다루는 주된 주제가 있고 편명 역시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맹자』는 『논어』처럼 각 편명을 각 편의 첫 구를 따서 편의적으로 붙였다. 즉 편명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뿐만 아니라 각 편 안의 장 사이에 논리적인 연관이 없이 나열되어 있다는 점도 『논어』와 같다.
다만, 앞의 「양혜왕」·「공손추」·「등문공」의 3편은 정치적 진퇴를 다루고 있으며 뒤의 「이루」·「만장」·「고자」·「진심」의 4편은 사제 사이의 문답과 잡사를 다루고 있다고 양분할 수 있다. 이는 그대로 정치적 편력 뒤에 고향에 정착에서 교육과 저작에 몰두했던 맹자의 행적을 반영한다. 『맹자』7편은 다음과 같다.
제1편 「양혜왕」상·하 : 이 편은 맹자가 편력한 지방을 보여주기 위해 편집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즉 양의 혜왕에서 제의 선왕으로, 제에서 추의 목공에게로 옮아가는 대화의 순서가 사실은 그대로 맹자가 여행한 순서였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제후들을 상대로 맹자가 주장한 것은, 첫 번째 얘기가 보여주듯이, 공리주의를 배격하고 인의를 기본으로 하는 도덕정치의 실시였다.
제2편 「공손추」상·하 : 이 편은 제자인 공손추의 질문과 이에 대한 맹자의 답변으로 시작하고, 마지막도 공손추의 질문과 답변으로 마무리 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갖가지 논의가 전개된다. 유명한 '호연지기'에 대한 것도 여기에 실려 있으며 '성선설'과 관련된 '사단의 마음' 역시 여기에서 논의된다.
제3편 「등문공」상·하 : 등문공 상편은 등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농지정리와 조세개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정전제에 관한 것이 실려 있으며, 농가학파와의 논쟁이나 묵가학파와의 논쟁도 실려 있다. 등문공 하편은 통일된 주제가 없이 잡박하다. 권력자를 상대하는 맹자의 자존심 등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과 싸우는 맹자의 고고한 모습이 보인다. "변론하기를 좋아한다."는 세상의 평가에 대한 맹자의 해명도 여기에 실려 있다.
제4편 「이루」상·하 : 이 편은 대화형식이 아니라, 주로 맹자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앞의 세 편과 형식이 다르다. 하편의 첫 부분은 제7편인 「진심」처럼 짧은 격언이 많다. 내용상으로는 『중용』이나 『대학』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의 철학적 사고가 많이 보인다. 그 점에서 후대 유가전통이 된 사상적 요소가 많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제5편 「만장」상·하 : 이 편은 제자인 만장과의 문답이 주가 되어 있다. 만장은 전해져 내려오는 성왕들의 사적에 관심이 많았던 듯, 만장과의 문답은 주로 옛 성현들에 관한 것이다. 이 편을 통해 맹자에게는 최초의 제왕(帝王)이자 최초의 성인인 요·순을 비롯한 전설상의 인물들이, 맹자에 의해 유가의 이상적인 인물로서 정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6편 「고자」상·하 : 이 편을 통해 성선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 맹자와 격론을 펼쳤던 고자와의 논쟁이 이 편에서 전개된다.
제7편 「진심」상·하 : 이 편은 단문이 많다는 것이 하나의 특색이다. 내용상으로는 인간의 마음과 본성, 천명에 관한 깊은 사유가 실려 있으며, 교육에 관한 것도 많은데, 이는 노년의 맹자의 말이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편의 마지막이자 『맹자』의 마지막에서 성인인 요·순에서부터 맹자 자신에 이르기까지의 도의 전통을 서술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맹자』는 덕에 의한 정치, 즉 왕도정치를 주장하는 정치철학서이다. 왕도정치는 민생의 보장을 출발로 하여 도덕적인 교화에서 완성된다. 유명한 성선설은 왕도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본성론적 근거로서 제시된다. 그런데 선한 본성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므로, 이상과 현실과의 거리를 메우기 위한 것으로서 수양론 역시 논의된다. 이 왕도정치를 맹자는 자신의 창견이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인 요(堯)·순(舜) 이래의 정치라고 주장하면서 공자에게까지 이어지는 성왕의 계보를 제시했다. 자신들이 진리를 전수해 온 정통의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이러한 도통(道統)의식은 이단(異端)에 대한 비판을 동반한다.
왕도정치는 통치자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정치이다. 특히 백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기반으로 백성을 자신의 피붙이처럼 여겨 그들에게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이다. 이 왕도정치는 몇 가지 골격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경제적 토대를 이루는 정전제이다. 정전제는 백성들에게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통치자 입장에서는 백성들의 농지이탈을 막을 수 있고 국가재정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왕도정치의 두 번째 골격은 교육이다. 왕도정치는 강제적인 법의 집행보다 교육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백성들에게 교육을 통해 부모에 대한 순종을 비롯한 인륜을 가르친다. 어려서부터 인륜을 가르치고 그 교육이 성공한다면, 그 사회는 강제적인 법률이 적용되기 이전에 인간 사이의 도리에 의해 움직인다. 즉 유덕한 인격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사회이다. 세 번째는 성선설이다. 맹자의 대표적인 학설로 유명한 성선설은 바로 그러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다. 통치자가 백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백성들도 교육을 통해 선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착한 마음을 타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타고 난 착한 마음은 현실에서 여러 가지 장애로 온전하게 발휘되지 않는다. 그 장애를 없애는 방법으로 학문 또는 교육, 수양 등에 대해 논의된다. 또한 현실적인 권력자가 아닌 맹자와 같은 유학자들이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현실에서 부딪혀야 할 일과 그 때의 자세, 특히 권력자와의 관계에서 처신하는 자세 등에 대해서도 논의된다. 『맹자』에서는 그다지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수양론(修養論)은 송명대의 성리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되며, 유학과 권력과의 관계는 한대이후 유학이 실제로 국가를 경영하는 이념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유학자들이 당면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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