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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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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 시(王維 詩) HOME

by 산산바다 2020. 9. 11.

산과바다

 

왕유시(王維詩) HOME

 



왕유(王維) 詩 바로가기(가나다 순)

1 곡맹호연(哭孟浩然) 85 수제공견과(酬諸公見過)
2 곡은요(哭殷遙) 86 숙정주(宿鄭州)
3 과감화사담흥상인산원(過感化寺曇興上人山院) 87 식부인(息夫人)
3 과이읍댁(過李揖宅) 88 신이오(辛夷塢)
5 과향적사(過香積寺) 89 신진군송수가(新秦郡松樹歌)
6 관렵(觀獵) 90 신청야망(新晴野望)
7 관별자(觀別者) 91 실제(失題)
8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 92 양주교외유망(涼州郊外游望)
9 구호우시배적(口號又示裴迪) 93 양주새신(涼州賽神)
10 궁괴백(宮槐陌) 94 여노원외상과최처사흥종임정(與盧員外象過崔處士興宗林亭)
11 귀망천작(歸輞川作) 95 영신곡(迎神曲)
12 귀숭산작(歸嵩山作) 96 영운지송종제(靈雲池送從弟)
13 근죽령(斤竹嶺) 97 우림기규인(羽林騎閨人)
14 금설천(金屑泉) 98 우언이수(寓言二首)
15 기상즉사(淇上卽事) 99 우연작(偶然作)
16 기형주장승상(寄荊州張丞相) 100 위성곡(渭城曲)
17 낙양녀아행(洛陽女兒行) 101 위천전가(渭川田家)
18 낙양녀아항(洛陽女兒行) 102 유낭(柳浪)
19 난가뢰(欒家瀨) 103 의호(欹湖)
20 남전산석문정사(藍田山石門精舍) 104 이문가(夷門歌)
21 남타(南垞) 105 이처사산거(李處士山居)
22 납양(納涼) 106 임고대(臨高臺)
23 노장항(老將行) 107 임고대송려습유(臨高臺送黎拾遺)
24 녹채(鹿柴) 108 임호정(臨湖亭)
25 농서행(隴西行) 109 입산기성중고인(入山寄城中故人)
26 () 110 작주배적(酌酒裵迪)
27 답장오제(答張五弟) 111 작주여배적(酌酒與裴迪)
28 대저광희부지(待儲光羲不至) 112 잡시3(雜詩三首)
29 도원행(桃源行) 113 잡영(雜詠)
30 도하도청하작(渡河到淸河作) 114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
31 동만대설억호거사가(冬晩對雪憶胡居士家) 115 전가(田家)
32 동야서회(冬夜書懷) 116 전원락(田園樂)
33 동일유람(冬日游覽) 117 정과주상과(鄭果州相過)
34 등변각사(登辨覺寺) 118 제상사현영삼수(濟上四賢詠三首)
35 만춘엄소윤여제공견과(晩春嚴少尹與諸公見過) 119 제주송조삼(齊州送祖三)
36 망천별업(輞川別業) 120 조입형양계(早入滎陽界)
37 망천한거(輞川閒居) 121 조조(早朝)
38 망천한거증배수재적(輞川閑居贈裴秀才迪) 122 조추산중작(早秋山中作)
39 맹성요(孟城坳) 123 종군항(從軍行)
40 목란채(木蘭砦) 124 종남별업(終南別業)
41 문행관(文杏館) 125 종남산(終南山)
42 반첩여삼수(班婕妤三首) 126 좌액이화(左掖梨花)
43 백석탄(白石灘) 127 죽리관(竹里館)
44 범전피(汎前陂) 128 증배십적(贈裴十迪)
45 별망천(別輞川) 129 증제목십팔(贈弟穆十八)
46 별망천별업(別輞川別業) 130 증조영(贈祖詠)
47 봉기위태수척(奉寄韋太守陟) 131 청계(靑溪)
48 봉화성제종봉래향흥경각도중류춘우중춘망지작응제(奉和聖制從蓬萊向興慶閣道中留春雨中春望之作應制) 132 청궁앵(聽宮鶯)
49 부남곡가사오수(扶南曲歌詞五首) 133 청백설조(聽百舌鳥)
50 북타(北垞) 134 청작가(靑雀歌)
51 사지새상(使至塞上) 135 초원(椒園)
51 산거즉사(山居卽事) 136 최구제욕왕남산(崔九弟欲往南山)
53 산거추명(山居秋暝) 137 최복양형계중전산흥(崔濮陽兄季重前山興)
54 산중(山中) 138 추야곡(秋夜曲)
55 산중기제제매(山中寄諸弟妹) 139 추야독좌(秋夜獨坐)
56 상란문외초처처(上蘭門外草萋萋) 140 추야독좌회내제최흥종(秋夜獨坐懷內弟崔興宗)
57 상사(相思) 141 춘계문답2(春桂問答2)
58 서사(書事) 142 춘과하수원외약원(春過賀遂員外藥園)
59 서시영(西施詠) 143 춘야죽정증전소주귀남전(春夜竹亭贈錢少府歸藍田)
60 소년행사수(少年行四首) 144 춘원즉사(春園卽事)
61 송구위왕당주(送邱爲往唐州) 145 춘일상방즉사(春日上方卽事)
62 송기모교서기관환강동(送綦母校書棄官還江東) 146 춘중전원작(春中田園作)
63 송기무잠낙제환향(送綦毋潛落第還鄕) 147 출색작(出塞作)
64 송류사직부안서(送劉司直赴安西) 148 칠수원(漆樹園)
65 송맹육귀양양(送孟六歸襄陽) 149 탄백발(歎白髮)
66 송별(送別) 1 150 투도일사란약숙(投道一師蘭若宿)
67 송별(送別) 2 151 평지(萍池)
68 송별(送別) 3 152 하일과청룡사알조선사(夏日過靑龍寺謁操禪師)
69 송비서조감환일본국(送秘書晁監還日本國) 153 한강림조(漢江臨眺)
70 송신곡(送神曲) 154 한식사상작(寒食汜上作)
71 송우문태수부선성(送宇文太守赴宣城) 155 한식성동즉사(寒食城東卽事)
72 송우인귀산가1(送友人歸山歌1) 156 헌시흥공(獻始興公)
73 송우인귀산가2(送友人歸山歌2) 157 홍모란(紅牡丹)
74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158 화가지사인조조대명궁지작(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之作)
75 송장오귀산(送張五歸山) 159 화사군오랑서누망원사귀(和使君五郎西樓望遠思歸)
76 송장판관부하서(送張判官赴河西) 160 화자강(華子岡)
77 송재주이사군(送梓州李使君) 161 황보악운계잡제오수(皇甫岳雲溪雜題五首)
78 송전소부환남전(送錢少府還藍田) 162 효항파협(曉行巴峽)
79 송최구흥종유촉(送崔九興宗游蜀) 163 희제망천별업(戲題輞川別業)
80 송춘사(送春詞) 164 희제반석(戱題磐石)
81 송평담연판관(送平淡然判官) 165 희조삼지류숙(喜祖三至留宿)
82 수곽급사(酬郭給事) / 증곽급사(贈郭給事) 166 희증장오제인삼수(戲贈張五弟諲三首)
83 수유반(茱萸沜) 167
84 수장소부(酬張少府) 168



 

왕유의 시 모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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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혹은 701 ~ 759)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당시(唐詩)는 중국 고전문학 최고의 정화로 후세 사람들에게 불후의 고전적 자양을 제공하고 있다. 시불(詩佛) 왕유(王維) 시선(詩仙) 이백(李白),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함께 당시의 3대 거장으로 꼽히면서도 이()()와는 또 다른 시풍으로 그 특유의 매력을 발한다.

* 현존 왕유 시는 고금을 통틀어 최선본(最善本)으로 평가되는 진철민(陳鐵民) 왕유집교주(王維集校注)에 의거해 총 308 376수로 산정(算定)할 수 있다.

* 초년의 왕유는 적극 진취적인 유가 사상의 소유자였으나 정치적인 실의에 빠지기 시작한 중년 이후에는 불가와 도가적인 경향을 아울러 보이다가 점차 오직 불교에만 극도로 심취하였는데, 이 같은 인생 사상이 그의 창작 정신의 원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李白杜甫가 각각 낭만시와 사회시 창작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면 王維가 당나라 시단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보적인 면모를 보인 것은 바로 자연시의 창작으로, 그는 동진(東晋)도연명(陶淵明) 이후 최고의 자연시인으로 평가된다. ()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시중유화(詩中有畫)’ㆍ‘화중유시(畫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로 산수수묵화의 대가이기도 했던 왕유 ()()의 예술적 경지를 압축 평가함으로써 후세의 절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왕유의 자연시는 역관역은(亦官亦隱 - 몸은 벼슬하고 있으나 마음은 늘 피세 은둔의 정취를 동경하고 추구하는 삶)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으며 대부분이 은거 생활과 불도(佛道) 사상이 결합된 산물로, 시인의 피세 은둔의 초탈 정신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세속적인 욕망은 일찌감치 떨쳐버리고 오직 한가롭고 편안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성정(性情)이 시작 속에서 여실히 표현되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전원 경물이나 산수 풍광의 묘사 가운데서 절로 풍겨나는 은둔적 정취이다. 이를테면 망천집(輞川集)중의 <죽리관(竹籬館)은 그윽한 대숲 속의 탈속적인 정취를 묘사하고 있으니, 세상과 동떨어져 고적(孤寂)함이 감도는 깊은 대숲 속에서 거문고도 타고 휘파람도 불며 살며시 다가와 비춰주는 밝은 달빛과 지음(知音)’의 벗인 양 하나 되어 탈속적인 정취를 즐기는 시인은 이미 해탈의 경지에 든 듯하다. 산장의 가을 저녁녘(山居秋暝)은 저녁녘에 한 차례 비가 온 뒤 그윽하고 고아한 산중의 경물을 묘사하였는데, 시정(詩情)과 화의(畫意)가 넘치는 가운데 시인의 고결한 품성과 초탈적 정서가 새롭다. 날씨 갠 후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新晴野望)역시 비가 막 갠 후 아득한 들판에 펼쳐진 초여름의 전원 경색(景色)과 농경 생활을 묘사하였는데, 전편에 걸쳐 강조되고 있는 소박하고 평화로우면서도 활력 넘치는 전원의 생활과 정취는 세속적인 번뇌에서 벗어난 자적(自適)한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정서가 그대로 배어 있다.

 

* 왕유의 시적 재능은 자연시 창작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를 능가할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다방면에 걸쳐 다수의 가작을 남기고 있다. 초년에는 유가적인 인생관에 입각해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경향을 보여 종군(從軍), 변새(邊塞), 호협(豪俠)을 노래하거나 입공보국(立功報國)의 기개를 떨쳐 보이는가 하면 객관성이 결여된 인재 등용이나 형평성을 잃은 논공행상을 비롯한 정치적 부패상을 풍자 폭로하였다. 또한 생애 전반을 통해 창작된 증별(贈別)이나 일상생활의 다양한 서정의 시편(詩篇)도 대개 은근하면서도 진솔한 정감의 묘사로 후세에 널리 애송되고 있다. 이를테면 안서로 출사하는 원이를 송별하며(送元二使安西)는 송별시의 절창(絶唱)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에 회자된 명작인바, 전편에 걸친 절묘한 정경(情景)의 융합과 강력한 전형성 그리고 애틋한 정감과 풍부한 함축미는 송별시의 전범(典範)으로 손색이 없다.

왕유의 시는 정치적인 실의와 실절(失節), 가정적인 불행을 딛고 한껏 유유자적하는가 하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종 따스한 인정을 베푼 시인의 생활 서정으로, 오늘날 현실 생활 속에서 삶의 고뇌와 갈등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해탈의 지혜를 일러주고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 왕유(王維)는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인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조상 대대로 기(-지금의 산시성(山西省) 기현(祁縣)에서 살았지만, 그는 포주(蒲州-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영제(永濟)로 옮겨 살았고, 만년에는 남전(藍田) 망천(輞川)의 별장에서 살았다. 개원(開元) 9(721)에 시행된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뒤, 태자중윤(太子中允), 중서사인(中書舍人),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을 지내다가 벼슬에 있는 동안 세상을 떴다. 소식(蘇軾)은 시와 그림에서 모두 높은 성취를 보인 그에 대해 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림에서는 인물, 총죽(叢竹), 산수 등에 뛰어났고, 시에서는 당대(唐代) 산수전원파의 대표로 꼽혔는데, 특히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리며 개원(開元 713~741)과 천보(天寶 742~756) 연간의 최고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만년에는 벼슬길에 무심해져 부처를 정성으로 모셨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런 그를 시불(詩佛)’이라 불렀다. 왕우승집王右丞集등을 통해 4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 왕유(王維, 701-761, 일설 699-761)는 한족(漢族)으로, 당조(唐朝) 때 하동(河東) 포주(蒲州)(지금의 산동 운성) 사람이다. …… 당조(唐朝) 때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로서 성당(盛唐) 시기 산수전원시파의 대표적 시인이다. ()는 마힐, 호는 마힐거사, 세칭 왕우승이었으며, 젊은 시절에 도를 믿었었는데, 나중에 사회의 타격을 받자 철저하게 선화(禪化)되었다. 현존하는 시는 400여 수이며, 대표작으로 상사(相思)》, 산거추명(山居秋暝) 등이 있다. 왕유는 참선(參禪)하여 이치를 깨달았으며, 배움에 엄숙하고 도를 믿었으며, , 글씨, 그림 등에 정통하여 맹호연과 함께 王盟으로 합칭(合稱) 되었다. 소식은 마힐의 시를 음미해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구나.” 하고 그를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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