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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佛 王維 詩

제주송조삼(齊州送祖三) -왕유(王維)-

by 산산바다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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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시(王維詩) HOME

 

 

 

          제주송조삼(齊州送祖三) -왕유(王維)-

          제주에서 조영을 보내며

          「河上送祖仙舟 또는 淇上別祖仙舟같은 제목으로도 전한다.

 

相逢方一笑 (상봉방일소) 만날 때는 서로가 큰 소리로 웃고

相送還成泣 (상송환성읍) 헤어질 때는 눈물 뚝뚝 흘리고 마네

祖帳已傷離 (조창홀상리) 끝나버린 술자리에는 슬픔만 남아 있고

荒城復愁入 (황성부수입) 제주성에는 또다시 시름 가득 들어찼네.

 

天寒遠山淨 (천한원산정) 날은 차고 먼 산은 저리 맑은데

日暮長河急 (일모장하급) 해질 무렵 강물은 어찌 저리 급한지

解纜君已遙 (해람군이요) 묶어둔 밧줄 풀자마자 배는 벌써 멀어지고

望君猶佇立 (망군유저립) 배 위에 선 그대 보며 꼼짝 않고 서 있었네.

 

 

齊州(제주): 지명(현재의 산동山東 역성歷城)

祖三(조삼): 조영祖咏을 가리킨다. ‘은 그의 배항排行이다.

祖帳(조장): 먼 길 떠나는 사람의 전별연을 위해 길 옆 등에 설치한 장막을 가리킨다. 나중에는 송별연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길을 떠나기 전에 노신路神에게 지내는 제사를 라고 한다. ‘으로 쓴 자료도 있다.

傷離(상리): 헤어질 때 느끼는 슬픈 감정을 가리킨다.

荒城(황성): 변성邊城, 여기서는 제주齊州를 가리킨다.

長河(장하): 제수濟水를 가리킨다. 제주齊州가 제수 남쪽에 있다.

(): 닻줄. 배를 정박시킬 때 쓰는 닻에 매달린 줄을 가리킨다.

佇立(저립):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으로 쓴 자료도 있다.

 

 

왕유는 이때 제주(濟州)로 좌천되어 있었는데

임지인 제주(齊州)로 가기 위해 제주(濟州)를 떠나는 조영(祖咏)과 헤어질 때 지은 작품이다.

왕유는 일찍이 조영에게 보내는 노래(贈祖三咏)란 시에서도

친교를 맺은 지 스무 해나 되지만(結交二十載),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히 지내지 못했네(不得一日展).

만난 게 진실로 몇 차례나 되는가(良會詎有幾),

끝내는 오랫동안 그리워만 했네(終自長相思)라고 했는데

조영의 일생이 워낙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이들의 삶과 거리가 멀어 그랬을 것이다.

 

 

왕유王維 [701~761]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인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조상 대대로 기(祈-지금의 산시성山西省 기현祁縣)에서 살았지만, 그는 포주(蒲州-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영제(永濟))로 옮겨 살았고, 만년에는 남전(藍田) 망천(輞川)의 별장에서 살았다. 개원(開元) 9(721)에 시행된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뒤, 태자중윤(太子中允), 중서사인(中書舍人),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을 지냈으며, 벼슬에 있는 동안에 세상을 떴다. 시와 그림에서 모두 높은 성취를 보였다. 소식(蘇軾)은 그에 대해 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마힐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림에서는 인물, 총죽(叢竹), 산수 등에 뛰어났고, 시에서는 당대(唐代) 산수전원파의 대표로 꼽힐 정도였는데, 특히 산수시(山水詩)에서 큰 성취를 보여 맹호연(孟浩然)과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렸다. 개원(開元 713~741), 천보(天寶 742~756) 연간의 최고 시인이었다. 만년에는 벼슬길에 무심해져 부처를 정성으로 모셨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런 그를 시불(詩佛)이라고 불렀다. 왕우승집王右丞集등을 통해 4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조영(祖咏 ?~?)

성당(盛唐)의 시인으로 낙양(洛陽) 사람이다. 생몰연대와 자와 호 등이 알려져 있지 않다. 어려서부터 문명을 날렸으며 시를 잘 지었다. 개원(開元) 12(724)에 진사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다가 장열(張說)의 천거로 짧은 동안 가부원외랑(駕部員外郞)을 지내기도 했으나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으로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여수(汝水) 북쪽 별장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살았다. 경물(景物)을 노래하고 은일(隱逸)을 찬미하는 시를 많이 지었는데 시 속에 마치 그림이 있는 것 같은 색채감이 뛰어났다. 왕유(王維)와 시를 주고받았던 그를 사람들이 物以類聚, 人以群分이라고 하거나 近朱者赤, 近墨者黑이라고 하였다. 終南望餘雪望薊門같은 명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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