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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서경) HOME

by 산산바다 2023. 11. 26.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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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經 구성 및 바로가기

第一篇 虞書(우서) : 5
第一 堯典(요전) 1~5 第二 舜典(순전) 1~10 第三 大禹謨(대우모) 1~7
第四 皐陶謨(고요모) 1~6 第五 益稷(익직)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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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篇 夏書(하서) : 4
第一 禹貢(우공) 1~13 第二 甘誓(감서) 第三 五子之歌(오자지가) 1~6
第四 胤征(윤정)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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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篇 商書(상서) : 17
第一 湯誓(탕서) 1~2 第二 仲虺之誥(중훼지고) 1~5 第三 湯誥(탕고) 1~3
第四 伊訓(이훈) 1~4 第五 太甲上(태갑상) 1~3 第六 太甲中(태갑중) 1~3
第七 太甲下(태갑하) 1~2 第八 咸有一德(함유일덕) 1~4 第九 盤庚上(반경상) 1~5
第十 盤庚中(반경중) 1~6 第十一 盤庚下(반경하) 1~2 第十二 說命上(열명상) 1~3
第十三 說命中(열명중) 1~3 第十四 說命下(열명하) 1~3 第十五 高宗肜日(고종융일)
第十六 西伯戡黎(서백감려) 第十七 微子(미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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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篇 周書(주서) : 32
第一 泰誓上(태서상) 1~3 第二 泰誓中(태서중) 1~3 第三 泰誓下(태서하) 1~3
第四 牧誓(목서) 1~3 第五 武成(무성) 1~5 第六 洪範(홍범) 1~13
第七 旅獒(여오) 1~2 第八 金縢(금등) 1~5 第九 大誥(대고) 1~6
第十 微子之命(미자지명) 1~3 第十一 康誥(강고) 1~13 第十二 酒誥(주고) 1~4
第十三 梓材(재재) 1~4 第十四 召誥(소고) 1~8 第十五 洛誥(낙고) 1~8
第十六 多士(다사) 1~5 第十七 無逸(무일) 1~6 第十八 君奭(군석) 1~7
第十九 蔡仲之命(채중지명) 1~3 第二十 多方(다방) 1~6 第二十一 立政(입정) 1~9
第二十二 周官(주관) 1~5 第二十三 君陳(군진) 1~4 第二十四 顧命(고명) 1~7
第二十五 康王之誥(강왕지고) 1~3 第二十六 畢命(필명) 1~4 第二十七 君牙(군아) 1~3
第二十八 冏命(경명) 1~3 第二十九 呂刑(여형) 1~10 第三十 文侯之命 1~3
第三一 費誓(비서) 1~3 第三十二 秦誓(진서) 1~3  

 

* 書經(尙書) 全文 

 

 

 

 

書經(서경)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 중국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정치를 기록한 책이다.

고대에는 제도상으로 사관(史官)이 있어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변동 문물제도 등을 낱낱이 문자로 기록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옛날에는 그저 서()라 일컬었으며 때로는 왕조(王朝)의 이름을 위에 얹어 우서(虞書하서(夏書) 등으로 일컫기도 하였다.

공자(孔子)는 이 서를 대단히 중히 여겨 번잡한 것을 정리해 다시 편찬했다는 설이 있으며, ()와 더불어 제자들의 교육에 핵심적인 교과 과정으로 삼았다.

한대(漢代) 이후 상서(尙書)라 일컬었는데, ()은 상()과 통하여 상대(上代)의 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송대에 와서는 다시 서경(書經)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은 경전(經典)이라는 말로 성인이 산정(刪定)한 책이라는 존중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는 상서·서경의 두 명칭이 통용되고 있으며, 고증이 어렵고 난해한 글로 알려져 있다.

 

 

書經의 구성

서경은 어느 시대에 관련된 문건인가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뉜다.

요순시절과 하나라에 관한 글

요전(堯典)- 위고문본 순전포함 - 고요모(皐陶謨)」 「우공(禹貢)」 「감서(甘誓)」 「오자지가(五子之歌). 우하서(虞夏書)라고 부른다. ''는 유우씨인 순임금을 가리키고 ''는 하나라를 가리킨다.

은나라에 관한 글

탕서(湯誓)」 「탕고(湯誥)」 「이훈(伊訓)」 「태갑(太甲)」 「고종융일(高宗肜日)」 「서백감려(西伯戡黎)」 「미자(微子). 상서(商書)라고 부른다. ()은 은나라의 본래 이름이다.

주나라에 관한 글

태서(泰誓)」 「목서(牧誓)」 「홍범(洪範)」 「금등(金滕)」 「대고(大誥)」 「강고(康誥)」 「주고(酒誥)」 「자재(籽材)」 「소고(召誥)」 「낙고(洛誥)」 「다사(多士)」 「무일(無逸)」 「군석(君奭)」 「다방(多方)」 「입정(立政)」 「고명(顧命)」 「군아(君牙)」 「여형(呂刑)」 「문후지명(文侯之命)」 「비서(費誓)」 「진서(秦誓). 주서(周書)라고 부른다.

 

요순시절과 하나라에 관한 글들을 모은 '우하서'는 하늘의 질서에 따라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관직을 두어 덕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하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합심하여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서경의 맨 처음에 실린 요전은 요임금이 정치를 행하고 순임금에게 선양(禪讓)한 사실을 차례대로 밝혔다. , 요임금이 고위 관리를 임명하고 농경력(農耕曆)을 만들게 한 사실을 밝히고,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곤()을 발탁한 사실을 말하였으며, ()을 등용하여 정치에 시험한 뒤 선양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순임금이 등극하여 각 지방을 시찰하고, 형법을 정하여 죄 있는 이를 벌한 사실과 요임금이 죽은 사실, 순임금이 고위 관리에게 자문하여 여러 관리들을 임명한 사실, 순 임금이 죽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한편 고요모에서는 덕 있는 사람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와 종교가 합일되어 있던 시대였으므로 군주의 자질로 덕을 강조하고 왕위 계승의 중요성을 거듭 말한 것이다.

 

은나라에 관한 글들을 모은 '상서(商書)'는 군주는 천명을 받아서 올바른 정치를 하여야 한다는 정치 원리를 밝혔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익과 편리를 주기 위하여 수도를 옮긴 사실을 적었다. 그리고 고종융일, 서백감려, 미자에서는 민심을 잃은 자는 천명을 상실하여 결국 나라를 잃게 된다는 것을 말하였다. 다시 말해 혁명(革命)이 있게 됨을 말하였다. '혁명'이란 '천명이 바뀐다'는 뜻이다.

 

주나라에 관한 글들을 모은 '주서(周書)'의 부분은 대개 일곱 가지 부류로 다시 나뉜다.

첫째, 정치원리를 제시하였다. 홍범은 오행설에 기초하여 정치질서를 바로잡고 복서(卜筮)의 신비적 수단을 이용해서 하늘의 뜻을 점쳐 상벌을 행할 것을 밝혔다. 금등, 대고는 군신 관계의 문란이나 내란 등을 경계하였다.

둘째, 지역의 여러 군주들과 관리들에게 경고하였다. 강고」 「주고」 「자재의 세 편은 지역의 여러 군주들과 관리들에게 천명과 왕명을 받들고 은나라의 선례와 문왕의 가르침에 따라 덕을 밝히고 일을 신중히 하며 백성을 보전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셋째,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는 이유를 밝혀 은나라 인사들을 다독였다. 소고」 「낙고는 새로운 도읍을 건설하여 천명에 답한다는 사실을 선포하였고, 다사는 천명이 주나라에 있음을 밝히고 은나라 인사들을 회유한 내용이다.

넷째, 군주의 도리와 제후 및 관료의 직분을 제시하였다. 무일은 임금이 백성의 뜻을 좇아서 덕을 닦는 일을, 군석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협력하여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일을, 다방은 제후와 관료들에게 군주의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입정은 유덕한 관리를 임용하여 형벌을 신중히 할 것을 밝혔다.

다섯째, 왕업 계승의 문제를 논하였다. 고명이 그 예이다.

여섯째, 형벌 제도를 다루었다. , 여형은 명덕(明德)신벌(愼罰)을 논하였다.

일곱째, 춘추시대에 들어와서도 왕도가 행해졌음을 말하였다. 비서」 「문후지명」 「진서의 세 편은 춘추시대에 왕도가 행해졌음을 밝혔다.

 

 

書經 내용

전통적으로 서경은 이른바 이제삼왕(二帝三王)의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도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유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제왕으로 추숭하는 요(() 이외에 우((문무(文武) 삼왕을 합해 이들이 몸을 닦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그 덕을 더욱 펼쳐서 나라를 다스리고 결국 온 천하에 평화를 이룩한 도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모든 경전 중에서 정치서로는 으뜸으로 꼽았으며 삼경 또는 오경에 넣어 존중해 왔다. 공자가 산정한 뒤 전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서경은 많이 散逸(산일)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난을 만나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대에 이르러 금서율(禁書律)이 해제되자 다시 햇볕을 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금문상서(今文尙書)·고문상서(古文尙書)·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등의 일컬음이 생기게 되었다. 금문상서는 진()나라의 박사(博士)였던 복승(伏勝, 伏生)이 은밀히 서경을 벽 속에 감추고, 난을 피해 사방으로 흘러 다니다가 평화를 되찾은 뒤 돌아와서 벽을 열어 보니 겨우 28(혹은 29)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당시 통용되는 문자인 금문(今文)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승이 벽 속에 감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외어 두고 있다가 구전(口傳)한 것이며, 다시 문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당시 쓰던 문자인 금문으로 정착을 시켰다는 설도 있다. 28(29)의 글이 금문상서이다.

후한 무제(武帝) 때 노()나라의 공왕(恭王)이 집을 넓히려고 공자의 구택(舊宅)을 부수었는데 벽 속에서 많은 고서가 나왔다. 이 고서들을 공자의 후손인 공안국(孔安國)이 정리하면서 그 중의 서경을 이미 알려져 있는 금문상서와 비교해 16편을 더 찾아냈는데, 이를 고문상서라 한다.

그 뒤 성제(成帝) 때 장패(張覇)라는 사람이 다시 고문 102편을 얻어 임금에게 바쳤는데, 이것은 위서(僞書)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위고문상서라고 한다. 그 뒤 동진(東晉) 원제(元帝) 때 매색(梅賾)이라는 사람이 고문상서를 헌상하였는데, 공안국의 전(: 注解)까지 곁들여 모두 58편이나 되었다. 그 내용은 금문상서와 일치하는 33편과, 달리 불어난 고문계(古文系) 25편으로 되어 있었다.

이 매색의 헌상본은 위고문(僞古文)이라는 설이 분분하였고, 공안국전은 위공전(僞孔傳)이라 하여 위서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에 이르러 공영달(孔穎達)상서정의(尙書正義)를 편정할 때 이것을 정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널리 세상에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읽혀지고 있는 서경집주(書經集註)도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서경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 이제삼왕(二帝三王) 시대의 기록으로 사관에 의해 작성된 것이며, 주로 정치 상황을 내용으로 담고 있지만, 당연히 천문·지리·윤리·민생 문제로 광범위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 상황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철학적·사상적 면모도 무시할 수 없으며, 전체를 일관하는 애민(愛民중민(重民)사상은 공자와 맹자(孟子)로 계승되어 민본주의(民本主義)로 정착이 되었다.

이상 정치의 실현을 위해 내세운 명덕신벌론(明德愼罰論)은 후세의 현실 정치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오전(五典오교(五敎)는 오륜(五倫)으로 발전하여 유교 도덕의 핵심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를 설정하는 데 기준이 되고 있다.

 

 

意義와 평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자제 교육의 교재로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경주에서 출토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두 젊은이가 3년 안에 시경·서경·예기·좌전을 익힐 것을 맹세한 것으로 보아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신년은 732(신라 성덕왕 31)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의 중요한 과목이었으며 정주학(程朱學)을 수용한 이후 서경집주가 통용되었는데, 주자(朱子)가 못 다한 주석을 제자 채침(蔡沈)이 완성하였다.

조선 초기의 학자 권근(權近)이 구결(口訣)도 붙이고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예기·주역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볼 수가 없다. 이언적(李彦迪조광조(趙光祖) 등 초기학자의 선도적 연구에 이어, 이황(李滉이이(李珥) 등 많은 학자들이 사상적으로 부연하는 글들을 문집에 남기고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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