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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적인(寂忍)선사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7.

산과바다

적인선사탑(谷城 泰安寺 寂忍禪師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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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인(寂忍)선사 (785~861) 오도송(悟道頌)

 

 

見性之了是了(견성지료시료) : 성품을 끝까지 보았으면 끝난 일이요

喩法之空是空(유법지공시공) : 법이 허공 같음을 깨우쳤으면 즉 허공이라

默默之心是心(묵묵지심시심) : 잠잠한 마음이 이 곧 마음이요

寂寂之慧是慧(적적지혜시혜) : 고요한 지혜가 이 곧 지혜로다

 

 

* 적인선사탑(谷城 泰安寺 寂忍禪師塔)

이 탑은 승려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惠哲)의 탑으로, 혜철(惠哲) 스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태안사(泰安寺)는 신라시대 선()을 가르치는 유명한 종파인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높으며, 적인선사 혜철(惠哲)은 대안사가 속한 동이산파를 연 스님이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구산선문 중 동리산파의 개조인 승려.

속성은 박씨(). 자는 체공(), 호는 혜철(). 혜철()은 법명이며, 동리화상()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 어려서 출가하여 영주 부석사에서 화엄학을 익히고 22세 때 비구계를 받았다.

선법이 전해지기 전인 814년(헌덕왕 6)에 당나라로 가서 남종선() 계통의 지장선사() 문하에서 수선하였다.

≪경덕전등록 ≫ 제9권의 기록에 의하면, 지장()의 법통을 전수받은 자 넷 가운데 셋이 신라인으로서 계림의 도의선사(), 신라국의 홍직선사()와 혜선사()라고 적고 있다.

기록의 ‘혜’자는 그의 법호인 혜철()의 기록으로 전한다. 그의 탑비에는 그가 지장을 만나서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외국인으로 중국땅을 멀다 않고 와서 법화(:진리로써 교화함)를 청하였다. 뒷날 설하는 바 없이 설하고(), 법이 없는 중에 있는 법()이 해동에 전해지면 더할 수 없는 다행이겠다.”

그는 뜻이 굳고 품성이 영명하여 지장을 만나는 즉시 심인()을 전수받았다. 지장이 입적하자 공공산()을 떠나 중국의 명산대찰()을 두루 순례하다가, 서주(西) 부사사()에 자리잡고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한 다음 839년(문성왕 1)에 귀국하였다.

그 때 만백성과 군왕이 그의 귀국을 반기는 상황을 태안사() 비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산중에 사람이 없더니 오늘에야 돌아오도다. 나라가 보물을 얻음이라. 불타의 지혜와 달마의 선법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귀국 후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인 무주() 동리산() 태안사(:지금의 )에 머무르면서 교화를 폈다. 이 때 문성왕은 때때로 사신을 보내어 설법과 정치의 정도를 청하여 물었다.

 

861년에 입적하자 왕이 적인(寂忍)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탑명은 조륜청정()으로서 872년에 세워졌으며,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의 태안사에 태안사 적인선사탑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도()로는 풍수도참설로 유명한 도선(), 여선사()와 광자대사() 등 수백 인이 있어 가풍을 크게 일으켜 선문 9산 중의 동리산문을 형성, 개창조가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혜철 [惠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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