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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悟道頌

보화(普化)선사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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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화(普化)선사 (?~861) 오도송(悟道頌)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 : 밝음에서 오면 밝음으로 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 : 어둠에서 오면 어둠으로 치고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 :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바람 일으켜 치고

虛空來連架打(허공래련가타) :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치네.

 

 

일제강점기 장암사 연담(蓮潭)을 은사로 득도하고 유점사 동선에게서 구족계를 받은 승려.

성은 설씨(薛氏), 속명은 태영(泰榮), 법호는 석우(石友). 경상남도 의령 출신. 어려서부터 장자방(張子房)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매우 좋아하였고,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의서(醫書)와 노장철학(老莊哲學) 등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30세를 전후하여 우연히 산천을 구경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7, 8년 동안 방황하다가 부산 범어사(梵魚寺)에 이르러 보조 지눌(普照知訥)수심결(修心訣)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대도(大道)가 불법문중(佛法門中)에 있음을 느끼고, 1912년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로 가서 연담(蓮潭)을 은사(恩師)로 출가하였다. 그 뒤 유점사(楡岾寺)의 동선(東宣)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30년 동안 정진하여 대오(大悟)하였다.

 

그 뒤 금강산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성품이 몹시 청렴하여 제자들이 신도들에게서 얻어오는 시물(施物)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으며, 제자들을 지도할 때는 위의(威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엄격히 다스렸다.

1938년 법제(法弟)인 상월(霜月)에게 금강산과 인연이 다하였으니 남쪽으로 내려갈 것을 제의하여, 함께 지리산의 칠불암(七佛庵)에서 7년 동안 안거(安居)하였는데, 이때 해방이 되었고 금강산은 이후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그후로 경상남도 사천(泗川)의 다솔사(多率寺)에 머물다가 다시 남해도(南海島)로 들어가 해관암(海觀庵)을 창건하였다.

해인사(海印寺)에 있다가 1954년 정화불사 때에는 조계종(曹溪宗)의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어 비구승과 대처승 사이에서 일어난 싸움을 종식시키고 통합종단(統合宗團) 구성을 위해 힘을 기울이다가 1958215일에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에서 입적하였다. 나이 84, 법랍 45세였다. 다비(茶毘) 후 정골(頂骨) 하나가 나와 동화사의 비로전(毘盧殿) 앞에 부도와 탑비를 세워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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