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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향엄지한(香嚴智閑)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7.

산과바다

향엄지한(香嚴智閑)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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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엄지한(香嚴智閑)선사 (?898) 오도송(悟道頌)

 

 

一擊忘所知(일격망소지) : 한 번 부딪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었으니

更不假修冶(경불가수야) :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으리.

動容揚古路(동용양고로) : 안색을 바꾸고 옛길에서 떨쳐 일어나

不墮悄然機(불타초연기) : 근심스러운 처지에 떨어지지 않네.

 

處處無踪迹(처처무종적) : 곳곳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聲色外威儀(성색외위의) : 소리와 빛은 위의(엄숙함)의 밖이니

諸方達道者(제방달도자) : 모든 도를 아는 이들은

咸言上上機(함언상상기) : 모두 다 말하길 최상의 기회라 하네.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선사는 위산영우(山靈祐 771~853)선사의 제자로서 어렸을 때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에게 출가하였다. 키가 7척이나 되고 아는 것이 많아서 학문에 있어서는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산영우선사를 만난 후 교학공부의 한계를 깨닫고 선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 그 과정을 조당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에 위산이 향엄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지금껏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눈과 귀를 통해 타인의 견문과 경권이나 책자에서 얻은 것일 뿐이다. 나는 그것은 묻지 않겠다. 그대가 처음 부모의 태에서 나와서 동서(東西)를 아직 구분하지 못했을 때의 본분사를 일러보라. 내가 그대의 공부를 가늠하려 하노라.” 향엄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러나 위산은 내가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대 스스로가 일러야 그대의 안목이다고 답할 뿐이었다.

 

향엄은 방으로 돌아가 모든 서적을 두루 뒤졌으나 한마디도 대답에 알맞은 말이 없었다. 그러자 향엄은 마침내 그 책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 어떤 학인이 가까이 와서 한권 달라고 하니, 향엄이 답하기를 내가 평생 동안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이것을 가져서 무엇 하려는가?” 그리고는 하나도 주지 않고 몽땅 태워버렸다.

 

이후 선사는 위산을 하직하고 향엄사(香嚴寺)에 들어가 참선에 전념하였다. 향엄사는 하남성(河南省) 등주(鄧州)에 있는 절로서 당나라 때에 일행(一行)이 개창한 사찰이었다. 일행이 입적하여 다비를 행하자, 산에 향기로운 바람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으므로 향엄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향엄사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어느 날 선사는 돌이 기와에 부딪치는 소리에 깨치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한 번 부딪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었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으리.

안색을 바꾸고 옛길에서 떨쳐 일어나

근심스러운 처지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소리와 빛은 위의(엄숙함)의 밖이니

모든 도를 아는 이들은

모두 다 말하길 최상의 기회라 하네.

 

 

향엄지한과 관련해서 유명한 이야기는 여래선과 조사선의 문제이다. 즉 앙산혜적이 향엄지한에게 사형께서는 여래선은 알지만 조사선은 모르시는군요.’라고 평했던 데서 조사선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그 구체적 사정을 조당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향엄은 깨닫고 난 뒤 스승인 위산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고했다. 위산은 이를 인정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게 하였다. 대중들이 듣고 모두 향엄을 치하했는데, 위산의 수제자인 앙산 만은 밖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앙산이 돌아와서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위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향엄이 깨쳤다고는 하나 화상께서 직접 시험해보셨습니까?” 위산이 시험해 보지는 않았다.”고 하자 앙산은 바로 향엄에게 달려가 깨달은 바를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향엄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어 답하였다.

 

去年未是貧 : 작년의 가난함은 가난함이 아니요

今年始是貧 : 금년의 가난함이 참으로 가난함이라.

去年無卓錐之地 : 작년에는 송곳도 꽂을 자리가 없더니

今年錐亦無 :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도다.

 

앙산이 이 게송을 듣고는 말했다. “사형께서는 여래선은 알고 계시지만, 조사선은 아직 모르시는군요.”

여래선이란 석가모니께서 닦은 선을 말하고, 조사선이란 육조혜능을 비롯한 조사스님들이 닦은 선을 가리킨다. 여래선과 조사선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여래선과 조사선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앙산의 말을 보면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뛰어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려시대의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편찬한 선문염송(禪門拈頌)에는 조당집에 없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게송을 들은 앙산이 사형께서는 여래선은 알고 계시지만, 조사선은 아직 모르시는군요.”라고 말하자 향엄은 다시 게송을 읊었다.

 

나에게 일기가 있어서 눈을 깜박여 보이리라. 我有一機 瞬目示伊

만약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면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 若人不會 別喚沙彌

 

게송을 들은 앙산은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사형께서는 조사선을 알았습니다.”고 하였다. 출처 : (불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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