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寒山詩集 : 한산(寒山) 습득(拾得) 풍간(豊干) 詩
한산시(寒山詩) 132
《詩 三百三首 其一三二》
丈夫莫守困(장부막수곤) : 장부여! 곤궁함을 고집하지 말고
無錢須經紀(무전수경기) : 돈 없어도 반드시 큰 뜻을 갖게
養得一牸牛(양득일자우) : 암소 한 마리만 길러도
生得五犢子(생득오독자) : 새끼 다섯 마리는 얻을 것이고
犢子又生兒(독자우생아) : 새끼가 다시 새끼를 낳다 보면
積數無窮已(적수무궁이) : 그 수가 자꾸 늘어 끝이 없으리
寄語陶朱公(기어도주공) : 도주공 그대에게도 한마디 함세
富與君相似(부여군상사) : 내 재산도 그대 것 못지 않다네.
▶ 經紀(경기) : 어떤 포부를 갖고 일을 계획하고 처리함
▶ 陶朱公(도주공) :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범려范蠡(BC536~BC448)를 말한다. 자는 소백少伯이고 치이자피鴟夷子皮 혹은 도주공陶朱公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생 졸 연도는 불확실하다. 역사상 이른 시기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군사 전략가이고 경제학자였다. 출신이 빈한했으나 총명하여 청년기에 이미 위로는 천문에서 아래로는 지리에 이르기까지 배움을 꿰뚫었고 문무겸비의 경륜을 갖췄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도와 오왕吳王을 격파하고 패업을 달성하게 한 후에는 이름과 성을 숨기고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 월나라를 떠나 있던 범려는 월나라에서 함께 일한 대부 문종文種에게 서신을 보냈다. “하늘을 날던 새를 잡고 나면 활은 거둬 감춰지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하던 개는 삶아져 먹히게 됩니다. 월왕은 목이 길고 입이 새의 부리를 닮았으며 매처럼 보고 이리처럼 걷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장차 그대를 해하게 될 것입니다(高鳥已散, 良弓將藏;狡兔已盡, 良犬就烹. 夫越王為人, 長頸鳥喙, 鷹視狼步, 可與共患難而不可共處樂, 子若不去, 將害於子).”애석하게도 문종은 범려가 서신에 적은 대로 따르지 않았고, 그는 결국 월왕의 의심을 사 목숨을 잃었다. 문종과 달리 세상 사는 이치에 밝았던 범려는 패업을 이룬 뒤에 권력의 주변에서 시비가 많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월나라를 떠났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바다로 나아가 제齊나라 땅에 도착한 범려는 그곳에서 경영과 농업과 상업으로 그때마다 큰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금전金錢’이라는 두 글자를 담백하게 여길 줄 아는 인물이었던 그는 세 차례 모두 일군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과 소원한 친척들에게 나눠주었다. 최후로 큰 재산을 모은 범려는 도읍陶邑이란 곳에 거처를 정하고 스스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칭하며 살았다. 그가 큰 부를 이뤘을 때, 노魯나라 사람 의돈猗頓이 그를 찾아와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묻자 범려가 ‘암소 다섯 마리를 기르라’고 알려주었고, 이 말을 듣고 따른 의돈은 십 년 뒤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로 사람들이 천하의 부자를 말할 때 도주陶朱 또는 의돈猗頓이라고 했다. 또 하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이름을 바꿀 때, 자기가 월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것을 생각해서 성을‘도陶(逃)’라 했고,높은 관직에 있을 때 항상 붉은 옷을 입었던 것을 생각해서 이름을‘주(朱)’라고 했으며, 벼슬이 공작에 이르렀으므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억지스럽게 꾸며진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의 상인들이 범려의 상을 세우고 그의 공덕을 기리며 재신財神으로 받들어 모셨다. 한산의 시는 이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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