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동해유용부(東海有勇婦) - 이백(李白)
동해(東海)에 용감한 아낙이 있어
梁山感杞妻(양산감기처) : 양나라 산이 기식의 처에 감동되어
慟哭爲之傾(통곡위지경) : 그녀가 통곡하니 산이 기울어지게 되었단다.
金石忽暫開(금석홀잠개) : 쇠와 돌도 갑자기 잠시라도 열리었으니
都由激深情(도유격심정) : 모두가 깊은 정에 감격한 때문이었으리라.
東海有勇婦(동해유용부) : 동해에 용감한 부인 있는데
何慚蘇子卿(하참소자경) : 어찌 소자경에게 견준들 부끄러우랴.
學劍越處子(학검월처자) : 월처자에게 검술을 배워서
超然若流星(초연야류성) : 초연히 나는 것이 흐르는 별 같았다.
損軀報夫仇(손구보부구) : 자신의 몸을 버려 남편의 원수를 갚아
萬死不顧生(만사부고생) : 만 번을 죽인데도 삶을 돌아보지 않았도다.
* 梁山 : 山東省 濟寧梁 山縣 또는 그곳 산 이름
* 《列女傳》梁之妻無子,內外皆無五屬之親。既無所歸,乃就其夫之尸於城下而哭之,內諴動人,道路過者莫不為之揮涕,十日,而城為之崩。
* 前漢 劉向(BC77~BC6)이 지은 《列女傳》에 齊나라 莊公呂光(BC553~BC548)의 대부인 杞梁(=杞殖)의 아내는 자식이 없었고, 내외간 모두 다섯 가지 상복을 입을 친척도 없었다. 이미 돌아갈 곳도 없어, 성 아래서 대부의 시신을 두고 통곡하니, 안으로부터 정성에 사람들이 감동하여, 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 중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열흘이 지나자, 성이 무너져 내렸다. (崩城之痛)
白刃耀素雪(백인요소설) : 흰 칼이 눈처럼 번쩍이니
蒼天感精誠(창천감정성) : 푸른 하늘도 그 정성에 감동하였도다.
十步兩躩躍(십보량곽약) : 열 걸음을 두 번에 뛰어 건너며
三呼一交兵(삼호일교병) : 세 번 호흡에 한 번 적병과 상대한다.
斬首掉國門(참수도국문) : 머리 베어 나라의 문에 걸어 흔들리게 하고
蹴踏五藏行(축답오장항) : 그들의 오장을 짓밟으며 다녔단다.
豁此伉儷憤(활차항려분) : 이처럼 낭군의 분함을 시원하게 갚았도다.
粲然大義明(찬연대의명) : 찬연하게도 대의가 밝혀지고
北海李使君(배해리사군) : 북해 태수 이옹은
飛章奏天庭(비장주천정) : 급한 글을 임금에게 올렸도다.
舍罪警風俗(사죄경풍속) : 죄를 용서받고 풍속을 놀라게 하여
流芳播滄瀛(류방파창영) : 동해 바다까지 꽃다운 이름 날렸도다.
名在列女籍(명재렬녀적) : 그 이름 열녀적에 올라있어
竹帛已光榮(죽백이광영) : 역사에 이미 영광스럽도다.
淳于免詔獄(순우면조옥) : 순우의가 옥살이를 면하였으니
漢主爲緹縈(한주위제영) : 한나라 임금이 제영을 위해서였다.
津妾一棹歌(진첩일도가) : 조나라 뱃사공의 딸의 한 노래가
脫父于嚴刑(탈부우엄형) : 아버지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였도다.
十子若不肖(십자야부초) : 열 명의 아들이라도 불초하다면
不如一女英(부여일녀영) : 한 용감한 딸만 못하리라.
* 流芳百世 : 명성 대대로 전하다
* 淳于意(BC215~??)는 西漢시대 명의로 사형을 받게 되자 그의 딸 緹縈이 西漢文帝 劉恒(BC202~BC157)에게 글을 올려 관비가 되어 아버지 죄를 대속하겠다고 하여 감형 받게 하였다. (緹縈救父)
* 《列女傳/趙津女娟》趙津女娟者,趙河津吏之女,趙簡子之夫人也。初簡子南擊楚,與津吏期,簡子至,津吏醉臥,不能渡,簡子怒,欲殺之,
춘추시대 晉나라 趙簡子(??~BC475)는 正卿을 지냈는데 楚나라 공격하여 강을 건너려는데 나루터 담당자가 술에 취해 건널 수 없게 되자 그를 죽이려하였는데, 그 딸 娟이 노를 저어며 趙簡子를 위해 노래불러 아버지 죄를 사면 받게 했다.
豫讓斬空衣(예양참공의) : 예양은 헛되이 옷만 베었지만
有心竟無成(유심경무성) : 마음속에 있는 일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要離殺慶忌(요리살경기) : 요리가 경기를 죽이려 하였지만
壯夫所素輕(장부소소경) : 장부들이 평소에 경멸하던 방업이었다.
妻子亦何辜(처자역하고) : 아내와 자식이 또한 무슨 죄가 이었는가.
焚之買虛聲(분지매허성) : 그들을 불에 태우고 헛된 명성만 산 것일 뿐.
豈如東海婦(개여동해부) : 어찌 동해의 부인만 하리오.
事立獨揚名(사립독양명) : 일을 이루고 홀로 그 이름을 날렸도다.
* 豫讓(예양) : 춘추시대 晉나라 豫讓은 智伯의 신하였는데 그가 趙襄子에게 잡혀 죽자 원수를 갚으려 하다 여러 번 실패하다 죽게 되자 趙襄子에게 빈 옷이라도 달라하여 찔러 보고자 결의 하였다.
* 예양(豫讓)은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은 의인으로 원수마저 도 감동시켰다
*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면 예양(豫讓)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긴 일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은 예양을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 예양은 그들을 떠나 지백(智伯)이란 자를 섬기게 됐다. 지백은 진나라 육경의 한 명으로 세력이 강성하고 교만한 성품이었으나 예양은 극진히 예우했다.
그런 지백이 범씨와 중항씨를 제거하고 조양자(趙襄子)를 공격했는데,오히려 한나라 · 위나라와 연합한 조양자에게 패해 땅은 셋으로 공중분해되고 후손까지 끊어졌다. 이 정도로 분이 풀리지 않은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쓰며 설움을 분풀이했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예양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아 영혼이 부끄럽지 않게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산속으로 달아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를 저질러 죄수의 몸으로 궁궐로 들어가 화장실의 벽 바르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수를 품고 있다가 조양자를 찔러 죽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양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을 암살하려는 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막을 알아보니 바로 예양이 몸에 비수를 품고 자신을 죽일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었다. 그를 붙잡아오게 해 문초하자 예양은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랬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자 조양자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자 천하의 현인이라며 풀어주었다.
예양은 얼마 뒤 몸에 옻칠을 한 문둥이로 분장하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까지 바꾸어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한 채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했다.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어느 날 예양이 오랜 친구를 찾아가니 그 친구만은 예양을 알아보고는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조양자의 신하가 된다면 분명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정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텐데 왜 이런 추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느냐"고 충고했다. 그러나 예양은 친구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조양자가 측근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외출해 다리를 건너려 할 때 말이 갑자기 놀랐다. 그러자 본능적으로 예양이란 자가 다리 밑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아랫사람들을 시켜 찾도록 하니 숨어 있던 예양이 나타났다.
조양자는 예양을 호되게 꾸짖으며 "왜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다가 지백에게 몸을 맡기고,지백이 그들을 멸망시킬 때는 가만히 있더니 죽은 지백을 위해 이토록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예양은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했으므로 나도 그에 맞게 처신했다. 그러나 지백은 나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예우했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조양자는 예양의 진심을 알았으니 더 이상 용서해주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병사들에게 그를 포위하게 했다.
그러자 예양은 자신이 지난번 암살하려 했을 때 용서해준 일에 감사하면서 조양자의 옷이라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조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크게 감탄하고는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베어버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그가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던 그의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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