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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신행선사(神行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15. 1. 18.

산과바다

신행선사비 탁본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斷俗寺址)에 있던 신라시대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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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선사 오도송(神行禪師 悟道頌) (704~779)

 

心燈(심등)

微言宴應(미언연응) 부처님의 미묘한 말씀 그윽이 통하는 것이나

卽心無心(즉심무심) 마음은 항상 즉해 있으면서도 본래 없는 것이다.

 

 

 

神行禪師 (신행선사 704~779)

 

선사의 속성은 김 씨, 법명은 신행(神行 : 이명은 信行)이다. 경북 경주에서 아버지 상근(常勤:왕족으로서 급간(級干:17등급의 관리))의 아들로 성덕왕 3(704)에 태어났다. 또한 선대의 고승인 안홍 대사(安弘大師)가 선사의 종증조부이기도 하다.

선사는 부친의 영향으로 유학을 수학, 벼슬의 길로 가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30(성덕왕 32)에 선()을 쌓고 마음을 닦는 곳으로 마음이 정해졌다. 그 해 선사는 운정 율사(運精律師)를 은사로 불문에 들었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던 선사에게 운정 율사는 청도 호거산에 주석하고 계신 법랑 선사(法朗禪師)를 찾아 법을 구할 것을 청한다. 이에 선사는 운정 율사 문하에서의 2년간의 공부를 접고 법랑선사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용맹정진 3년이 되는 어느 날 법랑선사는 선사에게 물었다. 우주의 법칙은 무엇인고?” 이에 선사의 마음에 등불이 켜졌다.

선사의 깨침은 작은 티끌도 어그러뜨리지 않고 팔만경전을 다 통달하였으며, 한치도 펴지 않고도 두루 백억(百億)의 불토(佛土)에 상승(上乘)되었다.

깨침의 자성은 항상 바다 깊은 곳과 같이 진공(眞空)의 그윽한 향적(香積 : 향발지반(香鉢之飯), 향적세계(香積世界)의 뜻으로 즉 향반(香飯)으로 누구나 그 밥의 향기만 맡으면 곧 삼매를 증득한다는 뜻)은 선천(禪天)하였다.

스승께서 입적하자 선사는 그의 깨침에서 말했듯이 수많은 중생들에게 삶이란 바람 앞의 촛불이며, 죽음이란 물거품인 것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야 해탈 할 수 있다고 중생들을 교화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경의 가르침과 관법을 숭상하였으므로 선사의 무위임운(無爲任運:參禪)에 모이지 아니하였으며 선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아니했다.

선사는 뜻을 펼 수 없기에 오로지 불법을 천의불석(天衣拂石 : 반석의 넓이와 높이가 각 4O리 되는 큰 바위를 천인이 100년마다 한번씩 지나가면서 가벼운 옷자락으로 스쳐 이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동안의 긴 세월을 말한다)하기 위하여 푸른 물결을 타고 중원 땅을 밟았다.

지공 선사(志空禪師) 회상에 나아가 법을 구하였다. 3년 만에 지공께서 비로소 마음을 열어 현주(玄珠 : 심인(心印)을 전(), 즉 인가를 해주었다는 뜻)하였다. 지공은 선사에게 천간빈집에 지혜의 등불을 밝힐 수 있도록 하였으며, 선의 하수(河水)에 선정(禪定)의 물을 모이게 하여 삼매의 밝은 등을 전하였다.

선사의 깨침은 삼달(三達:천안통(天眼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을 말함)로서 후에 도의 선사(道儀禪師)가 서당(西堂)에게서 법을 전수 받고 선의 씨앗을 이 땅에 뿌릴 수 있도록 메마른 대지에 물을 뿌려 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신라에 돌아온 선사는 수많은 대중을 제접 하였는데, 초발심자에게는 마음을 살피라는 한마디 말로 가르치고, 불법의 진리에 깊이 수행한 사람에게는 법()의 문()을 열어 보여주었다.

선사의 가르침은 많은 중생들의 마음에 법()의 물을 대고, 마음 밭에 도()의 싹을 길러서 길이 애욕의 진흙 속에서 벗어나와 다함께 열반(涅槃)의 언덕에 올라가자고 가르쳤다.

선사의 몸은 땅처럼 오래가고 혜명(慧命)은 하늘처럼 길기를 바랬는데, 76세 혜공왕 15(779)에 남악(南岳:지리산) 단속사에서 해와 달과 별이 그 빛을 잃었고, 땅이 흔들려서 만물이 이로 인해 시들었으며, 샘물이 마르더니 마침내 선사께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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