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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漢詩

한국한시 無題(權擘 권벽) 외

by 산산바다 2006. 12. 13.

산과바다

 

 

       無題 무제

 

                                                          權 擘 권 벽

 

 

 

 花開因雨落因風 화개인우락인풍 

꽃은 비로 인하여 피어나고 바람으로 인하여 지나니

 

 春去秋來在此中 춘거추래재차중  봄이 가고 가을 이 오는 것이 모두 이 가운데 있네.

 

 昨夜有風兼有雨 작야유풍겸유우  어제 저녁에는 바람 불고 비도 함께 내렸는데

 

 梨花滿發杏花空 리화만발행화공  

배꽃은 가득 피어나고 살구꽃은 모두 졌네.

 

 

 

 

 

 

 
 

夜宴 야연  밤 연회

                                                           權溥 권부

 

 露色銀河月色團 로색은하월색단 이슬 빛 은하수에는 달은 둥근데

 

 酒盈金盞却天寒 주영금잔각천한 잔에 가득 술을 부어도 도리어 날씨는 차네.

 

 紫泉一曲人如玉 자천일곡인여옥 한 곡조 노래에 여인은 옥같이 아름답고

 

 紅燭花殘夜未  홍촉화잔야미란 촛불은 다 타는데 밤은 아직 깊지 않네.

 

 

 

 

 

情人 정인

權 用正 권용정

 

 風停雲歇海靑休 풍정운헐해청휴  바람도 멈추고 구름도 쉬며, 송골매도 쉬어 넘는

 

 天半高峰嶺上頭 천반고봉령상두 하늘 한복판 높은 봉우리 고갯마루로다

 

 若道情人那邊在 약도정인나변재  만약 님이 그곳에 있다고 말하면

 

 我行應不少遲留 아행응불소지유 나는 응당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가리라.

 

 

 

 

東萊溫泉 동래온천

                                                      權踶(권제)

 

病餘湯井固堪珍 병여탕정고감진 병이 든 몸에 온천이 효험이 뛰어나다하여

 

舊染除時覺日新 구염제시각일신 목욕하니 병이 나아 마음도 새롭네.

 

若向孔門誰學去 약향공문수학거  만약 공자에게 가르침을 구하게 되면

 

情懷髣髴浴沂春 정회방불욕기춘 기수(沂水)에서 목욕한 증점(曾點)을 배우리라.

 

參考事項- 浴沂春(욕기춘) ; 기수(沂水)에 가서 따뜻한 봄날 목욕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의 고사(故事)에서 인용함.  지원되지 않는 글자 "방불"자는 방 자는 머리털 드리울 표 + 方 불 자는 머리털 드리울 표 + 弗 임.

 

 

 

 

 

過松江墓有感 과송강묘유감 송강의 묘소를 지나면서

                                                                          權필 권필

 

 

 空山木落雨蕭蕭 공산목락우소소 공산에 나뭇잎 지고 빗줄기만 쓸쓸히 내리는데

 

 相國風流此寂寥 상국풍류차적요 재상의 풍류도 이처럼 적막히 묻혀있네.

 

 惆悵一杯難更進 추창일배난갱진  애달프다 한잔 술 다시 권할 길 없으니

 

 昔年歌曲卽今朝 석년가곡즉금조 지난날의 노래를 들을 길이 없어라.

 

 參考事項- 歌曲(가곡) ;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  송강의 무덤을 지나며 지은 것으로 송강의 풍류적인 멋을 흠모하는 시.

 

 

 

 

 

 

 

 

 

途中 도중  길 가는 중에

 

 

 

 日入投孤店 일입투고점  해가 저물어 외딴 집에 들어 머무는데

 

 山深不掩扉 산심불엄비  산이 깊어 사립문도 닫지 않네.

 

 鷄鳴問前路 계명문전로  새벽 닭 울음에 갈 길을 물어보니

 

 黃葉向人飛 황엽향인비  머리 위로 단풍잎이 떨어지네.

 

 

 

參考事項- 不掩扉(불엄비) ; 사립문을 닫지 않음.

 

 

 

 

 

 

權? 권필 1569 ~ 1612

 

본관(本貫) 안동(安東).자(字) 여장(汝章). 호(號) 석주(石洲).

 

정철(鄭澈)의 문인(文人). 과거에 뜻이 없어 시주(詩酒)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다가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강화부(江華府)에 갔을 때 많은 유생들이 몰려오자 이들을 모아 가르쳤고, 이정구(李廷龜)가 대문장가(大文章家)로 알려진 명나라 사신(使臣) 고천준(顧天俊)을 접반하게 되어 문사(文士)를 엄선할 때 야인으로서 이에 뽑혀 문명을 떨쳤다. 이에 앞서 임진왜란 때는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였고, 광해군 초에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이 교제하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광해군 비(妃)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柳希奮) 등 척족(戚族)들의 방종을 궁류시(宮柳詩)로써 비방하자, 광해군이 대로(大怒)하여 시(詩)의 출처를 찾던 중,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옥(獄)에 연루된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의 시가 발견되어 친국(親鞫) 받은 뒤 유배되었다.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주는 술을 폭음하고 이튿날 죽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으며, 광주(光州) 운암사(雲巖祠)에 배향되었다. 《석주집(石洲集)》과 한문소설 《주생전》이 현전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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