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기상오왕3수(寄上吳王三首)(748年) – 이백(李白)
오왕(吳王)께 부쳐 올리며
其一
淮王愛八公(회왕애팔공) : 淮南王께서 여덟 식객 아끼시어
攜手綠雲中(휴수록운중) : 손잡고 푸른 구름 속으로 가시네요.
小子忝枝葉(소자첨지엽) : 송구 하게도 저는 가지잎사귀이나
亦攀丹桂叢(역반단계총) : 또한 붉은 계수나무 무리잡고 있지요.
謬以詞賦重(류이사부중) : 잘 하지 못하나 詞와 賦 중히 여겨
而將枚馬同(이장매마동) : 枚乘司馬相如와 같아지려하죠.
何日背淮水(하일배회수) : 어느 날이면 회수(淮水) 등지고
東之觀土風(동지관토풍) : 동쪽으로 가서 그곳 풍토 살필까요.
* 唐太宗 李世民(598~649)의 아들 李恪이 吳王에 봉해지고, 李恪의 증손 李祗가 廬江太守로 있을 때 이백이 올린 글이다. 여기서 吳王은 廬江太守 李祗를 말한다.
* 前漢淮南王 劉安(BC179~ BC122)은 漢高祖 劉邦(BC206~BC195)의 손자로 淮南王에 봉해져, 그의 식객 중 蘇非, 李尙, 左吳, 田由, 雷被, 毛被, 伍被, 晉昌 여덟 명을 八公이라 하였다.
其二
坐嘯廬江靜(좌소려강정) : 앉아 휘파람만 불어도 廬江은 고요하니
閑聞進玉觴(한문진옥상) : 한가로이 옥 술잔 올리는 소리나 들으세요.
去時無一物(거시무일물) : 가실 때 물건 하나 없게 하고
東壁挂胡牀(동벽괘호상) : 동쪽 벽에 의자 하나 걸어두세요.
* 《後漢書卷六十六陳王列傳第五十六》時李膺為青州刺史,名有威政,屬城聞風,皆自引去,蕃獨以清績留。郡人周璆,高絜之士。前後郡守招命莫肯至,唯蕃能致焉。字而不名,特為置一榻,去則縣之。
《後漢書/陳王列傳》에, 그때는 리응(李膺)이 青州刺史를 하며, 권위 있는 정사로 이름이 있었고, 속한성들은 소문을 들었고, 모두 자진해서 끌려갔지만, 陳蕃(??~168)은 홀로 깨끗한 치적을 남겼다. 낙안군에는 주구(周璆)라는 사람이 있는데, 고결한 선비였다. 앞뒤 군수들은 불러들이기를 명하였으나 이루지 못했지만, 오직 진번(陳蕃)만이 이루었다. 자를 불렀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특별히 긴 의자 하나를 놓아 두어, 주구가 가고 나면 그것을 매달아두었다.
* 빈객을 恭敬 한다는 뜻으로 의자를 걸어둔다.
其三
英明廬江守(영명려강수) : 뛰어나게 총명하신 여강태수(廬江太守) 님
聲譽廣平籍(성예광평적) : 명성 광평현(廣平縣)에 영예롭네요.
灑掃黃金臺(쇄소황금대) : 燕昭王 물 뿌리고 황금대(黃金臺) 쓸어
招邀青雲客(초요청운객) : 청운 뜻 품은 빈객 불러 맞았죠.
客曾與天通(객증여천통) : 저는 일찍이 하늘과 통해
出入清禁中(출입청금중) : 궁궐 드나들었죠.
襄王憐宋玉(양왕련송옥) : 경양왕송옥(頃襄王宋玉) 사랑하셨으니
願入蘭臺宮(원입란대궁) : 란대궁(蘭臺宮)으로 들기 바라네요.
* 燕昭延郭隗,遂築黃金臺。劇辛方趙至,鄒衍復齊來。(燕昭王郭隗를 불러들여, 마침내黃金臺 축조하니, 劇辛이 趙나라에서 오고, 다시 鄒衍이 齊나라에서 왔다.)
* 宋玉(子淵, BC 290~BC 222): 戰國後期 楚나라 사람으로 屈原의 弟子이며, 頃襄王 때 大夫를 지냈다. 風賦, 高唐賦, 神女賦, 登徒子好色賦, 九辯, 招魂, 對楚王問 등의 賦가 전해진다.
* 蘭臺宮(난대궁)은 楚나라때 것으로 湖北省鍾祥縣 동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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