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금릉신정(金陵新亭) - 이백(李白)
금릉 신정에서
金陵風景好(금릉풍경호) : 금릉(金陵)땅 경치는 아름다워
豪士集新亭(호사집신정) : 빼어난 선비들 신정(新亭)에 모였네.
擧目山河異(거목산하이) : 눈을 들어 멀리 보니 산하가 고향과 다르니
偏傷周顗情(편상주의정) : 유독 주의(周顗)의 마음 아프게 하였네.
四坐楚囚悲(사좌초수비) : 사방에 둘러앉은 사람들 초(楚)나라 죄수처럼 슬퍼하느냐
不憂社稷傾(불우사직경) : 나라가 기울어짐 걱정하지는 않는구나.
王公何慷慨(왕공하강개) : 왕도(王導)는 그렇게 비분강개 하였으니
千載仰雄名(천재앙웅명) : 천년토록 그 영웅의 이름 우러르네.
* 이 시는 고문진보에는 무명씨로 수록되어 있으나 전당시(全唐詩 卷一百八十五<李白>20) 및 이백시선집에는 이 시가 이백의 작품으로 기록되어있다.
양자강을 넘어온 인사들이 매양 한가로운 날이면 서로 만나서 신정에 나와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였는데, 주의(周顗)가 가운데 앉아 탄식하며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눈을 드니 산하가 다름이 있구나, 하니 모두 서로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직 왕도가 서글피 낯빛을 바꾸어 마땅히 함께 왕실에 힘을 다하여 신주를 수복해야 할 것이니, 어찌 초나라 죄수처럼 서로 마주 보고 울고만 있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거두고 사례하였다.
* 金陵(금릉) : 삼국 시대 당시에는 건업(建業)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오(東吳)의 수도였다. 이후 동진(東晉)의 초대 황제인 원제(元帝)가 서진(西晉)의 마지막 황제인 민제(愍帝) 사마업(司馬業)의 휘(諱)인 '업'과 건업의 '업'의 글자가 같아, 피휘를 위해 313년 건업을 건강(建康)으로 개명하였으며, 이후 동진과 남조(南朝) 시대의 수도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북조 시대에 화남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인구가 100만에 이르러 북조(北朝)의 수도인 낙양(洛陽)에 비견되었다. 후경의 난 당시인 549년에 후경(後景)에 의해 포위되었으며, 1년여 동안의 공성전 동안 많은 사람이 살해되거나 굶어 죽었다. 수나라의 통일 당시에 파괴되었으며, 당나라 당시에 재건되어 이름을 금릉(金陵)으로 고쳤다. 오대 십국 시대에는 강녕(江寧)으로 불렸으며, 남송 당시에는 건강으로 회귀하였다. 명나라 시대에 남경(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이름을 유지하였다.<위키백과>
* 新亭(신정) : 중흥정(中興亭)이라고도 하며,삼국시대 오나라 때 건축 되었으며 옛터가 강소성 남경시 남쪽에 있다.
* 周顗(주의) : 자가 백인이니 산동 사람이었다. 동진 영창 초년에 복야가 되었다.
* 社稷倾(사직경) : 국가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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