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원효대사(元曉大師) 오도송(悟道頌) (617년 ~ 686년 신라 스님)
心生卽種種法生 심생즉종종법생 마음을 내면 가지가지 법이 일어나고
心滅卽觸骨不二 심멸즉촉골불이 마음을 거두면 해골물도 맑은물도 둘 아니라.
三界有心萬生唯識 삼계유심만생유식 삼계의 근본은 마음이요. 만법이 근본은 의식이로다.
心外無佛胡用別求 심외무불호용별구 마음 밖에 부처가 없으니 어찌 따로 부처를 구하랴.
※ 무덤에서 해골물을 마시고서 아침에 깨어나 화엄경에 나오는 一切唯心造의 이치를 깨닫고 읊은 오도송
靑山疊疊彌陀窟(청산첩첩미타굴)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의 굴이요
滄海茫茫寂滅宮(창해망망적멸궁) 망망한 큰 바다는 적멸의 궁전이로다.
靑山綠水眞我面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明月淸風誰主人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莫謂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물건도 없다 이르지 마라
塵塵刹刹法王身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 런 가!
元曉大師(원효대사, 617년~686년 신라 스님) 원효는 신라의 귀족으로 본명은 설사(薛思)이다.
[출가와 수행]
영취산(靈鷲山)의 낭지(郎智), 흥륜사(興輪寺)의 연기(緣起)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를 닦으니 뛰어난 자질과 총명이 드러났다. 34세 때인 650년(진덕여왕 4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 고승 현장에게 불법을 배우러 가다가 요동 근처에서 고구려 순라군(국경경비대)에게 잡혀 첩자로 오인 받았다가 풀려났다.
661년(문무왕 1년)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당항성 근처의 한 무덤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戒)가 오직 마음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라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한다. 그 뒤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분황사(芬皇寺)에 주석하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저술하다가 화엄경소의 제4 십회향품(十廻向品)에서 절필(絶筆)하다.(삼국유사)
[명상법]
7세기 원효는 3세기 용수가 만든 대승불교의 승려였다. 그러나 12세기 중국 대혜종고가 간화선을 개발한 것이기에, 원효는 전통적인 불교 명상법인 수식관을 익혔을 것이다. 또한, 화랑이었기 때문에 도교의 조식법도 익혔을 것이다. 오늘날 간화선이 지배하는 한국불교에서 원효가 별로 논의대상이 아닌 것은, 명상법이 달라서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 생활]
하루는 마음이 들떠 거리에 나가 노래하기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라고 하니 사람들이 듣고 그 뜻을 몰랐으나, 태종무열왕이 이를 듣고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此師殆欲得 貴婦産賢子之謂 爾國有大賢 利莫大焉)"라며 요석궁의 홀로된 둘째 공주 흔히 요석공주를 짝되게 하니,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을 낳았다.
요석궁에는 과부가 된 무열왕의 둘째 딸이 있었는데, 왕이 궁리(宮吏)에게 명하여 금성시내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는 원효를 찾아 데려가라 했다. 궁리가 명령을 받들어 시내로 나가 원효를 찾자, 그는 이미 남산(南山)에서 내려와 문천교(蚊川橋)를 지나다가 관리를 만났는데, 그가 자발적으로 혹은 관리가 떠밀어서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적셨다. 이후 무열왕은 공주에게 옷을 말리고 쉬게 하도록 명을 내려 원효와 공주를 맺어주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은 설총이 한국 유교의 시조라 하여 '지금(일연이 살던 당시)도 우리나라에서 명경(明經)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이를 전수(傳受)해서 끊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스스로 실계(失戒)한 원효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자칭하면서 속세의 복장을 하고 마을에 나다니다가 우연히 한 광대가 괴상한 박을 가지고 춤과 만담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에서 '무애'를 따라가 박의 이름을 짓고 〈무애가(無碍歌)〉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에 세상 사람 중 염불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그렇게 컸다. 그러나 원효의 춤과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광대들이 생계에 지장있음을 호소하자 그는 이를 그만두었다.
[유교와 경학]
원효는 불교 뿐만 아니라 도가와 유가에도 밝았고, 한비자와 상앙의 법가 사상에도 지식이 많았다. 특정한 스승 없이 영취산의 낭지, 고구려의 보덕, 항사사(현 오어사)의 혜공 등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원효는 당시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34세와 45세 때 의상과 함께 두 번에 걸쳐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다.
두 번째 구법 여행 중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원리를 깨달아 구법행을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원효는 과부였던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고, 불교를 민중화시키고, 분열된 국민정신을 통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죽음]
원효는 당시 전하던 거의 모든 경론(經論)에 대해 주석(註釋)을 하여 100여 종의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것은 20부 22권뿐이다. 이 중 《대승기신론소》 2권, 《금강삼매경론》 3권, 《십문화쟁론》 2권 등은 원효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원효 사상의 핵심인 일미(一味) 화쟁(和諍)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원효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승려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식학(唯識學)이나 불교논리학 등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는 한국의 무속신의 하나로도 숭배되는데, 그 자세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해골의 물을 마신 것을 죽음을 극복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추정한다.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70세 되던 해 음력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사망했다. 뒤에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주었다.
[학문과 사상]
원효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일심사상(一心思想)이다. 원효의 일심사상은 저서인 『금강삼매경론』·『대승기신론소』 등 모든 저술에서 철저하게 천명되고 있다. 인간의 심식(心識)을 깊이 통찰하여 본각(本覺)으로 돌아가는 것, 즉 귀일심원(歸一心源: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설정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원효는 만법귀일(萬法歸一)·만행귀진(萬行歸眞)을 굳게 믿고 사상과 생활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일심이야말로 만물의 주추(主樞)이며, 일심의 세계를 불국토(佛國土) 극락으로 보았고, 이것을 대승·불성(佛性)·열반이라고 불렀다.
둘째,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원효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반야경』·『열반경』·『해심밀경(海深密經)』·『아미타경』 등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섭렵하고 통효(通曉)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납하고 종합 정리하여 자기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불교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원효의 조화사상을 화쟁사상이라고 한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바로 이러한 화쟁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원효의 핵심적인 저술이다. 원효는 여러 이설(異說)을 십문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원효의 통불교적 귀일사상은 한국 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셋째, 무애사상(無碍思想)이다. 원효의 무애사상은 자신의 사생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원효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고 한 그의 말을 보더라도 원효의 무애사상은 짐작된다. 원효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효는 철저한 자유가 중생심(衆生心)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도 철저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으며, 그 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승과 일심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원효의 사상, 특히 화엄사상은 양산 지역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원효 설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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