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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東坡八首(並敘) 동파팔수(병서)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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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坡八首(並敘) 동파팔수(병서) : 소식(蘇軾)

                     동파에서 지은 8

 

並敘

余至黃州二年日以困匱故人馬正卿哀余乏食為於郡中請故營地數十畝使得躬耕其中

地既久荒為茨棘瓦礫之場而歲又大旱墾辟之勞筋力殆盡

釋耒而嘆乃作是詩自湣其勤庶幾來歲之入以忘其勞焉

 

廢壘無人顧頹垣滿蓬蒿誰能捐筋力歲晚不償勞

獨有孤旅人天窮無所逃端來拾瓦礫歲旱土不膏

崎嶇草棘中欲刮一寸毛喟焉釋耒嘆我廩何時高

 

荒田雖浪莽高庳各有適下隰種秔稌東原蒔棗栗

江南有蜀士桑果已許乞好竹不難栽但恐鞭橫逸

仍須卜佳處規以安我室家童燒枯草走報暗井出

一飽未敢期瓢飲已可必

 

自昔有微泉來從遠嶺背穿城過聚落流惡壯蓬艾

去為柯氏陂十畝魚蝦會歲旱泉亦竭枯萍黏破塊

昨夜南山雲雨到一犁外泫然尋故瀆知我理荒薈

泥芹有宿根一寸嗟獨在雪芽何時動春鳩行可膾

(蜀人貴芹芽膾雜鳩肉作之)

 

種稻清明前樂事我能數毛空暗春澤針水聞好語

(蜀人以細雨為雨毛稻初生時農夫相語稻針出矣)

分秧及初夏漸喜風葉舉月明看露上一一珠垂縷

秋來霜穗重顛倒相撐拄但聞畦隴間蚱蜢如風雨

(蜀中稻熟時蚱蜢群飛田間如小蝗狀而不害稻)

新舂便入甑玉粒照筐筥我久食官倉紅腐等泥土

行當知此味口腹吾已許

 

良農惜地力幸此十年荒桑柘未及成一麥庶可望

投種未逾月覆塊已蒼蒼農夫告我言勿使苗葉昌

君欲富餅餌要須縱牛羊再拜謝苦言得飽不敢忘

 

種棗期可剝種松期可斫事在十年外吾計亦已愨

十年何足道千載如風雹舊聞李衡奴此策疑可學

我有同舍郎官居在灊嶽(李公擇也)遺我三寸甘照座光卓犖

百栽倘可致當及春冰渥想見竹籬間青黃垂屋角

 

潘子久不調沽酒江南村郭生本將種賣藥西市垣

古生亦好事恐是押牙孫家有十畝竹無時客叩門

我窮交舊絕三子獨見存從我於東坡勞餉同一餐

可憐杜拾遺事與朱阮論吾師卜子夏四海皆弟昆

馬生本窮士從我二十年日夜望我貴求分買山錢

我今反累生借耕輟茲田刮毛龜背上何時得成氈

可憐馬生癡至今誇我賢眾笑終不悔施一當獲千

 

 

 

並敘 서문

余至黃州二年日以困匱故人馬正卿哀余乏食為於郡中請故營地數十畝使得躬耕其中

地既久荒為茨棘瓦礫之場而歲又大旱墾辟之勞筋力殆盡

釋耒而嘆乃作是詩自湣其勤庶幾來歲之入以忘其勞焉

내가 황주에 온 지 2년 되었을 때 가난한 나날을 보냈다. 친구 마정경(馬正卿)이 내가 궁핍함을 불쌍히 여기고 군()에 가서 옛 농경지 수십 묘(: 1=100)를 부탁하여 거기서 나 자신이 농사를 짓도록 해 주었다.

땅은 오래도록 벼려 두어서 가시로 뒤덮이고 기와 자갈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큰 가뭄까지 들어 벽지를 개간하느라 애를 썼더니 근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다.

쟁기를 내려놓고 탄식하다가 이 시를 지어 그토록 고생하는 나 자신을 가엾이 여기며 그다음 해에는 그런 수고로움이 잊어지기를 바랐다.

 

 

其一

廢壘無人顧(폐루무인고) : 황폐해진 군루는 돌아 보는이 없고

頹垣滿蓬蒿(퇴원만봉호) : 무너진 담장에는 잡초만 무성하네.`

誰能捐筋力(수능연근력) : 그 누가 이런 땅에 힘을 쓰려했겠는가?

歲晩不償勞(세만불상노) : 해 저물어 아무런 보상 없을 것인데

獨有孤旅人(독유고여인) : 오로지 세상 떠도는 한 사람만이

天窮無所逃(천궁무소도) : 하늘 다해 도망조차 갈 수 없는 곳에서

端來拾瓦礫(단래습와력) : 부서진 기와 조각 주워내보지만

歲旱土不膏(세한토불고) : 가뭄 들어 마른 땅 기름기가 없네.

崎嶇草棘中(기구초극중) : 뾰족한 가시덤불 넝쿨 속에서

欲刮一寸毛(욕괄일촌모) : 한치쯤 자란 새싹을 김매주려다가

喟焉釋耒嘆(위언석뢰탄) : 농기구 내려놓고 탄식하듯 말하네.

我廩何時高(아름하시고) : 내 창고에 언제쯤 곡식들 들어찰까?

 

 

* () : 고대에 군중(軍中)에서 수비용으로 만든 장벽(=보루(堡壘), 영루(營壘), 대루(對壘))

* 頹垣(퇴원) : 무너진 울타리

*蓬蒿(봉호) : 민망초. . 초야. 재야.

* 瓦礫(와력) : 깨진 기와 조각 또는 기와와 자갈이라는 뜻으로 하찮은 것을 비유.

* 崎嶇(기구) : 산이 가파르고 험하다. (삶이) 순조롭지 못하고 온갖 고초를 겪다.

* 草棘(초극) : 잡초가 무성한 모양. 황량하고 궁벽 진 곳.

* 釋耒(석뢰) : 농구기를 내려놓다.

 

* 원풍(元豐) 3(1080), 소식(蘇軾)이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 이때 그의 녹봉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부양해야 할 식구는 더 늘어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식은 매월 45백 전()30개로 나눠 끈으로 꿰어서 시렁에 올려두고 매일 아침 그날 쓸 한 꾸러미를 아내에게 주었다. 만일 하루에 쓸 돈에서 남은 게 있으면 그 돈을 따로 별도의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술을 사 오게 해서 마셨다.

 

이때 양주(揚州)에 있던 소식의 오랜 벗 마정경(馬正卿)이 와서 소식의 어려운 살림을 보고 매우 마음 아파하였다. 그는 지난날 함께 공부했던 황주 태수 서군유(徐君猷)에게 임얼정(臨臬亭) 밑에 있는 옛 군병 주둔지 수십 무()를 소식이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부탁하였고 서군유는 쾌히 승낙하였다. 소식이 이에 크게 감격하여 마정경에게 동파팔수(東坡八首)의 여덟 번째 시를 지어 그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소식은 개간해서 쓸 수 있는 땅이 생긴 것을 매우기뻐 하였는데,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이 황주성 동쪽의 언덕에 있는 땅이라 당대(唐代)의 대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꾼 동파(東坡)’를 닮은 때문이었다. 백거이는소식이 매우 높이 우러른 시인이었으므로 농사짓는 땅을 동파(東坡)라 하고 자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하였다. 또 동파 위에 집을 짓고 그이름을 설당(雪堂)’이라 하였는데, 친히 동파설당(東坡雪堂)’이라고 적은 편액을 걸어 두기도 했다. 송대(宋代)의 홍매(洪邁)용재삼필(容齋三筆), 동파모낙천(東坡慕樂天)에서 詳考其意, 蓋專慕白樂天而然(그뜻을 상세히 고찰해 보면 유난히 백락천을 우러른바 있어 그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其二

荒田雖浪莽(황전수랑망) : 버려진 밭에 비록 잡초가 무성해도

高庳各有適(고비각유적) : 높은 곳과 낮은 곳 각각의 쓸모 있네.

下濕種秔稌(하습종갱도) : 낮은 땅 습지에는 메벼와 찰벼 심고

東原蒔棗栗(동원시조율) : 동쪽에 있는 언덕에는 대추와 밤 심었네.

江南有蜀士(강남유촉사) : 촉에서 난 선비가 강남땅에 살게 되어

桑果已許乞(상과이허걸) : 뽕나무 열매 이미 받기로 했네.

好竹不難栽(호죽불난재) : 좋은 대나무 옮겨심기도 어렵지 않았으나

但恐鞭橫逸(단공편횡일) : 뿌리가 함부로 뻗을 것이 걱정이네

仍須蔔佳處(잉수복가처) : 다른 일 제쳐두고 좋은 곳을 찾아

規以安我室(규이안아실) : 편안히 지낼 집 지어야겠네

家童燒枯草(가동소고초) : 일하는 아이는 마른풀을 태우다가

走報暗井出(주보암정출) : 달려와서 감춰진 우물을 찾았다 하네.

一飽未敢期(일포미감기) : 배불리 먹을 날은 기약할 수 없으나

瓢飮已可必(표음이가필) : 한 바가지 마실 일은 장담해도 되겠네.

 

 

* 浪莽(낭망) : 광대한 모양. 도잠(陶潛)귀원전거歸園田居4수 중에 久去山澤遊, 浪莽林野娛(산천 떠나 오랫동안 떠돌다가/숲과 들 돌아 보며 마냥 즐거웠네).”라고 했는데 하맹춘(何孟春)浪莽에 주를 달아 浪莽, 廣大貌(낭망은 광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秔稌(갱도) : 메벼와 찰벼

* 下濕(하습) : 지대가 낮고 습한 곳

* 棗栗(조율) : 대추와 밤

* 桑果(상과) : 오디. 다화과의 일종이며 짧은 꽃대에 많은 꽃이 한 덩어리로 엉겨 피고, 거기에 그대로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열어 얼핏 한 개의 열매처럼 보이는 열매로 파인애플도 이에 속한다.

* () : 대나무의 뿌리

* 橫逸(횡일) : 옆으로 뻗다. 비뚤다. 굽다. 제멋대로 놂.

* () : 점치다. ‘으로 읽었다.

 

 

其三

自昔有微泉(자석유미천) : 이곳에 그 옛날 작은 샘이 있었는데

來從遠嶺背(래종원영배) : 먼 산 뒤에서 발원하여 흘러왔다네.

穿城過聚落(천성과취락) : 물길은 성채와 마을을 지나면서

流惡壯蓬艾(유악장봉애) : 더러워져 잡초들 싹 틔우고 키웠다네.

去爲柯氏陂(거위가씨파) : 그물은 흘러가 가씨피(柯氏陂)가 되었는데

十畝魚蝦會(십무어하회) : 십무 정도 되는 곳에 고기들이 살았네.

歲旱泉亦竭(세한천역갈) : 어느 해 가물어 샘물 또한 마르고

枯萍粘破塊(고평점파괴) : 부평초 메말라 갈라진 땅에 달라붙었네.

昨夜南山雲(작야남산운) : 어젯밤 남산에서 구름 일더니

雨到一犁外(우도일리외) : 밭 갈기 딱 좋은 비가 내렸네.

泫然尋故瀆(현연심고독) : 물은 흘러 옛 도랑 찾아보았지만

知我理荒薈(지아리황회) : 내가 정리한 잡초들만 있는 것을 알았네.

泥芹有宿根(이근유숙근) : 진흙 속에 미나리 묵은 뿌리 있어

一寸嗟獨在(일촌차독재) : 한치 길이로 혼자서 살아있었네.

雪芽何時動(설아하시동) : 어느 때나 백설 같은 새싹으로 자라서

春鳩行可膾(춘구행가회) : 봄 비둘기 살과 함께 회로 먹을까?

 

 

* 蓬艾(봉애) : . 봉초(蓬草)와 애초(艾草) 이 둘은 모두 잡초를 가리킨다.

* 柯氏陂(가씨피) : 산으로 읽는 자료도 있으나 거위(去爲)와 어하회(魚蝦會)로 미루어 여기서는 방죽으로 읽었다. 산으로 읽은 자료에서는 난가산(爛柯山)이라고 하여 저쟝성(浙江省) 구주(衢州) 부근일 것으로 보았다.

* 魚蝦(어하) : 물고기와 새우. 어류를 가리킴.

* 破塊(파괴) : 메말라서 트고 터진 토지를 가리킨다.

* () : 밭의 단위. 15(1=9,699평방미터, 294()).

* 일리우(一犁雨)는 밭갈이하는데 적당하게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 泫然(현연) : (물이나 눈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

* () : 도랑

* 宿根(숙근) : 2년생 혹은 다년생 초본식물의 뿌리를 말하는데 잎과 줄기가 마른 뒤에도 뿌리는 계속 살아있다가 다음 해 봄에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뿌리를 가리킨다.

* 春鳩行可膾(춘구행가회) : () 지방에서 사람들이 새싹 돋은 미나리를 회로 즐겨 먹었는데, 때로는 비둘기 고기와 섞어 회를 만들었다.

 

 

其四

種稻淸明前(종도청명전) : 청명절 전에는 벼를 심어야 해서

樂事我能數(낙사아능수) : 좋은 날 날마다 손꼽아 헤어 보네.

毛空暗春澤(모공암춘택) : 어두운 봄날 하늘에서 습지에 비가 내려

針水聞好語(침수문호어) : 물 위에 비 내리는 소리 듣기도 좋네.

分秧及初夏(분앙급초하) : 초여름 올 때까지 모내기하고

漸喜風葉舉(점희풍엽거) : 바람에 날리는 잎새 흐뭇하게 바라보네.

月明看露上(월명간로상) : 달 밝은 밤 이슬이 내리는 것을 보면

一一珠垂縷(일일주수루) : 방울방울 구슬이고 비단실 같네.

秋來霜穗重(추래상수중) : 가을 되어 곡식 익어 무거워지면

顚倒相撐拄(전도상탱주) : 고개 숙여 서로가 버티고 있네.

但聞畦隴間(단문휴농간) : 논둑과 고랑에서 들려 오는 건

蚱蜢如風雨(책맹여풍우) : 폭풍 같은 메뚜기 떼 소리뿐이네.

新春便入甑(신춘변입증) : 이른 봄에는 시루속으로 들어가는데

玉粒照筐筥(옥립조광거) : 알곡들 광주리 안에서 옥처럼 빛이 나네.

我久食官倉(아구식관창) : 지난 몇 해 관청에서 주는 쌀을 먹었는데

紅腐等泥土(홍부등니토) : 붉게 썩어 흙덩이와 다를 것이 없었네.

行當知此味(행당지차미) : 마땅히 이 맛을 알아야 할 터

口腹吾已許(구복오이허) : 입과 배 길들 것을 허락하였네.

 

 

* 毛空(모공)이하두구절 : ()에서는 사람들이 이슬비를 우모(雨毛)라고 하고, 벼의 싹이 틀 때 사람들이 서로 도침(稻針)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 分秧(분앙) : 모심기

* 霜穗(상수) : 가을철에 익은 곡식

* 撐拄(탱주) : 지탱하다. 지지하다. 유지하다.

* 蚱蜢(책맹) : 메뚜기

* 新春(신춘) : 이른 봄.

* 玉粒(옥립) : . .

* 筐筥(광거) : 네모지게 만든 대바구니와 둥글게 만든 대바구니

* 官倉(관창) : 관부의 창고. 관청 창고에 세금으로 걷어 쌓아 둔 식량. 고대에 흉년 등이 들었을 때 관청에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풀던 식량

* 紅腐(홍부) : 묵은쌀. 색이 붉어 부패한 것 같은 쌀.

* 泥土(니토) : ()

 

 

其五

良農惜地力(양농석지력) : 좋은 농부는 땅의 힘을 아끼는지라

幸此十年荒(행차십년황) : 십여 년 땅 묵은 걸 다행으로 여기네.

桑柘未及成(상자미급성) : 뽕나무는 아직 다 자라지 못했지만

一麥庶可望(일맥서가망) : 밀 한가지 수확은 기대할만하네.

投種未逾月(투종미유월) : 씨뿌린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覆塊已蒼蒼(복괴이창창) : 새싹 푸른빛깔이 흙덩이를 덮었네.

農夫告我言(농부고아언) : 나이 지긋한 농부가 내게 와서 하는 말

勿使苗葉昌(물사묘엽창) : 새싹 잎이 번창하게 하지 말라네.

君欲富餠餌(군욕부병이) : 내가 만약 국수와 만두 많이 먹고싶거든

要須縱牛羊(요수종우양) : 소와 양을 밭에다 풀어놓으라네

再拜謝苦言(재배사고언) : 다시 한번 절하며 고마워한 그 충고

得飽不敢忘(득포불감망) : 배불러도 어찌 감히 잊을 수 있으리

 

 

* 桑柘(상자) : 뽕나무와 산뽕나무. 농사와 양잠을 함께 이르는 말이기도 함.

* 蒼蒼(창창) : 무성하고 많은 모양

 

 

其六

種棗期可剝(종조기가박) : 대추를 심을 때는 딸 것을 기대하고

種松期可斫(종송기가작) : 소나무를 심을 때는 벨 것을 바라서네.

事在十年外(사재십년외) : 일이란 건 십 년 너머 있는 것이라

吾計亦已慤(오계역이각) : 내 헤아림에도 역시나 성실함이 있네.

十年何足道(십년하족도) : 십년을 어떻게 만족하다 하겠는가?

千載如風雹(천재여풍박) : 천년 세월도 바람이나 우박 같은데

舊聞李衡奴(구문이형노) : 옛날에 들었던 이형의 귤나무 이야기

此策疑可學(차책의가학) : 그런 것도 헤아려 보면 배울 것이 있네.

我有同舍郞(아유동사랑) : 나는 이제 농투성이와 다를 것이 없고

官居在灊嶽(관거재첨악) : 관사는 남악으로도 부르는 첨악에 있네.

遺我三寸甘(유아삼촌감) : 누가 내게 세치 짜리 귤을 보내줬는데

照座光卓犖(조좌광탁락) : 그 빛깔이 매우 탁월하였네.

百栽倘可致(백재당가치) : 백 개라도 심자면 못할 것 없겠지만

當及春冰渥(당급춘빙악) : 봄 되어 얼음이 녹은 뒤라야 할 것이네.

想見竹籬間(상견죽리간) : 생각날 때마다 대울타리 사이 보면

靑黃垂屋角(청황수옥각) : 푸르고 노란빛 처마 끝에 늘어뜨렸네.

 

 

* 風雹(풍박) : 바람과 우박. 돌발성이 강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 李衡奴(이형노) : 감귤.

* 舍郞(사랑) : 농가의 자제. 시골 사람.

* 官居(관거) : 관사. 관리들이 사는집.

* 灊嶽(첨악) : 첨산(灊山), 즉 천주산(天柱山)을 말한다. 고대에는 남악(南岳)으로 불렸다.

* 卓犖(탁락) : 탁월하다. 돌출하다.

* 屋角(옥각) : 지붕의 모서리. 용마루 끝.

 

 

其七

潘子久不調(반자구부조) : 반병은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해서

沽酒江南村(고주강남촌) : 강남 쪽 마을에서 술을 팔았고

郭生本將種(곽생본장종) : 곽구는 본래 장수의 집안인데

賣藥西市垣(매약서시원) : 서쪽 시장 담장에서 약을 팔았고

古生亦好事(고생역호사) : 고경도도 일벌리기 하도 좋아해서

恐是押牙孫(공시압아손) : 혹시나 의협 압아(押牙)의 자손인가 했었네.

家有十畝竹(가유십무죽) : 집 안에 십무 정도 대밭 있어서

無時客叩門(무시객고문) : 때도 없이 객들이 와 문을 두드려

我窮交舊絶(아궁교구절) : 빈궁한 살림에 오랜 교유 다 잘라내고

三子獨見存(삼자독현존) : 지금은 반, , 고 세 사람만 남았는데

從我於東坡(종아어동파) : 나를 따라 동쪽 언덕의 밭으로 나가

勞餉同一餐(노향동일찬) : 일 하다가 참 나오면 함께 밥을 먹네.

可憐杜拾遺(가련두습유) : 가련하다 두습유

事與朱阮論(사여주원론) : 주원과 일을 논의하다니

吾師蔔子夏(오사복자하) :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자하(子夏)

四海皆弟昆(사해개제곤) : 사해가 모두 형제였거늘

 

 

* 潘子(반자) : 반병(潘丙), 자는 언명(彦明)이고 시인인 반대림(潘大臨)의 숙부인데, 소식이 황주에 있을 때 교류하였다.

* 郭生(곽생) : 소식이 황주에서 교류했던 곽구(郭遘)를 가리킨다. 만가(輓歌) 짓기를 좋아하였다. 두사람은 함께 약으로 쓸 수 있는 초목을 연구하였다. 당시 황주는 한약 재료인 창출(蒼朮)의 생산지였는데 사람들이 그 용도와 효능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단지 연기를 피워 모기를 쫓는 데만 사용하였다.

* 古生(고생) : 고경도(古耕道), 음률에 능통하였다. 반병과 곽구와 고경도 세 사람은 소식이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도움을 준 바가 큰 사람들이었다.

* 不調(부조) : 승진하지 못하다(=未得升遷).

* 沽酒(고주) : 술을 팔다.

* 押牙(압아) : 고압아(古押牙). 당대(唐代)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로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함으로써 사람들의 칭송 받았다. 설조(薛調)무쌍전無雙傳에도 나온다. 이후 사람들이 의협을 부르는 말로 사용하였다.

* 見存(현존) : 현존하다.

* 杜拾遺(두습유) : 두보가 한때 좌습유(左拾遺)를 역임했다.

* 朱阮(주원) : 끝내 뜻을 알아낼 수 없어서 글자로만 읽었다.

* 蔔子夏(복자하) : 복상(卜商)(B.C. 507~B.C. 420). 자는 자하(子夏), 공자의 제자로 십철(十哲) 중 한 사람이다. 춘추시대에 교육가로서 이룬바가 크다. 문학에 능하였다. 후인들이 성을 떼고 자로만 불렀다. ‘은 같다.

* 弟昆(제곤) : 형제(=제곤弟晜)

 

 

其八

馬生本窮士(마생본궁사) : 마정경은 본래 가난한 선비로

從我二十年(종아이십년) : 스무 해 동안 나를 따랐네.

日夜望我貴(일야망아귀) : 밤낮으로 내가 귀히 되기바랐고

求分買山錢(구분매산전) : 나를 도와준 것이 산()도 살만했는데

我今反累生(아금반누생) : 나는 지금 도리어 어렵게 살면서

借耕輟茲田(차경철자전) : 묵어버린 땅 빌려 농사짓고 있으니

刮毛龜背上(괄모구배상) : 거북의 등에서 털을 깎아서

何時得成氈(하시득성전) : 그 언제 융단을 만들 수 있을까?

可憐馬生癡(가련마생치) : 가련타 마정경 바보 같은 사람

至今誇我賢(지금과아현) : 지금까지 내 어짊 자랑하고 있네.

衆笑終不悔(중소종불회) : 사람들 비웃어도 후회하지 않으니

施一當獲千(시일당획천) : 하나를 베풀어 천을 얻을 사람이네.

 

 

* 馬生(마생) : 마정경(馬正卿). 소식의 오랜 벗이다. 그가 소식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보고 지난날 함께 공부한 황주 태수 서군유(徐君猷)에게 부탁하여 과거의 군영이던 황무지 수십 무()를 소식이 개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 刮毛龜背(괄모구배) : 거북등의 털을 깎다. 일을 이루기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원풍(元豐) 3(1080), 소식(蘇軾)이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 이때 그의 녹봉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부양해야 할 식구는 더 늘어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식은 매월 45백전()30개로 나눠 끈으로 꿰어서 시렁에 올려두고 매일 아침 그날 쓸 한 꾸러미를 아내에게 주었다. 만일 하루에 쓸 돈에서 남은 게 있으면 그 돈을 따로 별도의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술을 사 오게 해서 마셨다.

 

이때 양주(揚州)에 있던 소식의 오랜 벗 마정경(馬正卿)이 와서 소식의 어려운 살림을 보고 매우 마음 아파하였다. 그는 지난날 함께 공부했던 황주태수 서군유(徐君猷)에게 임얼정(臨臬亭) 밑에 있는 옛 군병 주둔지 수십 무()를 소식이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부탁하였고 서군유는 쾌히 승낙하였다. 소식이 이에 크게 감격하여 마정경에게 동파팔수(東坡八首)의 여덟 번째 시()를 지어 그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소식은 개간해서 쓸 수 있는 땅이 생긴 것을 매우 기뻐하였는데,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이 황주성 동쪽의 언덕에 있는 땅이라 당대(唐代)의 대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꾼 동파(東坡)’를 닮은 때문이었다. 백거이는 소식이 매우 높이 우러른 시인 이었으므로 농사짓는 땅을 동파(東坡)라 하고자 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하였다. 또 동파 위에 집을 짓고 그 이름을 설당(雪堂)’이라 하였는데, 친히 동파설당(東坡雪堂)’이라고 적은 편액을 걸어 두기도 했다. 송대(宋代)의 홍매(洪邁)용재삼필容齋三筆, 동파모낙천東坡慕樂天에서 詳考其意,蓋專慕白樂天而然(그 뜻을 상세히 고찰해 보면 유난히 백락천을 우러른 바 있어 그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和蘇長公東坡八首(화소장공동파팔수) : (茶山) 정약용(丁若鏞)

소동파(東坡八首)의 시에 화답한다.

 

東坡黃州로 폄적(貶謫)된 지 2년이 되는 1081년에 東坡八首를 썼다. 724년이 지난 1805년 조선의 (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동파팔수(東坡八首)에 화운한 和蘇長公東坡八首를 썼다.

 

余雅好治圃流落以來益以無事久有想願顧地窄力詘迄今未就然心勿忘也隣人有治小圃者時往而觀亦復怡然其性好可知已昔馬正卿請地予長公使得躬稼厥有八篇之詩世卑義巽不可冀遇悵然有述以昭其志

 

海壖少嘉蔬美者稱茼蒿魚鰕俯可拾誰任犂灌勞

少小謀園圃計違命難逃南來欲還願庶以易雉膏

顧乏一棱田何由取地毛蕭條馬正卿悵望仁聲高

 

古來治圃人亦如釣取適利細雖恥言勝種梨與栗

盤殽與羹材兼可塞隣乞卓犖蘇雲卿千載稱隱逸

所至宜食力豈必在家室久欲買數畦呰窳計未出

今年粥書來此願差可必

 

美芹可以獻由來齊炙背蘘荷復治癖不勞施鍼艾

土產貴藷芋求者此湊會南地故酥軟不待雨破塊

鄰人小區畫在我柴門外畦畛縱違法頗能向蕃薈

時復曳杖臨性好嗟有在淸齋苟得味誰人羨𦙫膾

 

海菜雖種種腥鹵不足數山蔬信香美龍肉竟虛語

吾唯愛畦種山林此豪擧萵嫩不點斑菘肥不牽縷

芥臺雖崔嵬勁幹自能拄去蛀須光風挑甲宜微雨

心芽旣擢玉褪葉斯充筥耿耿慕玆樂不能諼鄕土

因知種瓜者自足配巢許

 

邑里人煙稠寸土何曾荒漫漫稻與麥靑黃遞入望

鄕俗不餐杞長條至老蒼投種密如粟菁菔且不昌

生憎豆葉羹衆嗜如淫羊如逢借圃人至惠誠難忘

 

稌黍皮須剝芧栗殼須斲唯蔬食通身物性嗟純慤

未甚憂澇旱兼非畏霜雹樊遲信高弟爲圃要早學

菜部多脫落我笑張景岳曩欲居金谷屢回淩确犖

只爲際嘉運倖望雷雨渥今秋得買圃縛屋依山角

 

憶在長鬐縣被驅抵荒村村居頗疏豁曠然恢籬垣

主人老業圃力役分兒孫培壅解敦本糞土不出門

苞蔥與辣茄芳烈四時存蝤蛑大如罌糝滋得甘餐

如今鎖城府農事那可論平生咬菜志逝將遺後昆

 

行休不自卜自玆知幾年我無蘇和仲屋頭三十錢

端居慮生理上策唯菜田豪家厭淳母窖者甘旄氈

所爭在飢飽粱肉非遽賢不願悰愷倫無悳食萬千

 

余雅好治圃流落以來益以無事久有想願顧地窄力詘迄今未就然心勿忘也隣人有治小圃者時往而觀亦復怡然其性好可知已昔馬正卿請地予長公使得躬稼厥有八篇之詩世卑義巽不可冀遇悵然有述以昭其志

내가 평소에 채소밭 가꾸기를 좋아했는데, 유락한 이후에는 더욱 일이 없어 그러한 생각을 두어 온 지가 오래지만 땅이 좁고 힘이 모자라 지금까지 이루지 못하였으나 마음으로는 잊지 못하고 있다. 이웃에 작은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이 있어서 때때로 가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니, 내 본성이 좋아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옛날 송나라의 마정경(馬正卿)이 땅을 청해서 소동파에게 주어 몸소 가꾸게 하여 동파가 8편의 시를 지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의가 낮아졌으니 이러한 일을 바라서야 되겠는가.

슬픈 마음으로 글을 지어 그러한 뜻을 밝혔다.

 

其一

海壖少嘉蔬(해연소가소) : 바닷가 땅이라 좋은 채소 드물고

美者稱茼蒿(미자칭동호) : 좋은 것이라 해도 쑥갓이 고작이라.

魚鰕俯可拾(어하부가습) : 물고기와 새우가 몸만 굽히면 잡히니

誰任犂灌勞(수임리관로) : 누가 쟁기 끌고 물주는 수고하랴.

少小謀園圃(소소모원포) : 어려서부터 과수 채소를 키우려던 생각은

計違命難逃(계위명난도) : 계획은 멀어졌으나 본성은 피하기 어려워,

南來欲還願(남래욕환원) : 남녘으로 오니 도로 하고 싶어졌으니

庶以易雉膏(서이역치고) : 맛난 찬거리 쉽게 얻겠다 싶었지만.

顧乏一棱田(고핍일릉전) : 그러나 비탈진 밭뙈기도 하나 없으니

何由取地毛(하유취지모) : 무슨 수로 땅에서 나는 걸 얻으랴.

蕭條馬正卿(소조마정경) : 슬프게도 마정경을

悵望仁聲高(창망인성고) : 그 어진 명성을 쓸쓸히 기리네.

 

其二

古來治圃人(고래치포인) : 예로부터 채소밭 가꾸는 사람들은

亦如釣取適(역여조취적) : 강태공처럼 유유자적하는 뜻이 있었지.

利細雖恥言(이세수치언) : 이문은 적어 말하기 부끄러워도

勝種梨與栗(승종이여율) : 배나무 밤나무 심는 것보다 낫다네.

盤殽與羹材(반효여갱재) : 찬거리와 국거리에다

兼可塞隣乞(겸가새린걸) : 겸하여 이웃집에도 나눠 줄 수 있네.

卓犖蘇雲卿(탁락소운경) : 남보다 뛰어났던 소운경(蘇雲卿)

千載稱隱逸(천재칭은일) : 그의 은둔을 천년 지나도 칭송하네.

所至宜食力(소지의식력) : 가는 곳마다 내 힘으로 생활하면 되지

豈必在家室(기필재가실) : 어찌 꼭 가족이 있어야만 하겠는가?

久欲買數畦(구욕매수휴) : 오래전부터 몇 마지기 사려고 했건만

呰窳計未出(자유계미출) : 모자라고 물러서 계산을 내지 못했는데

今年粥書來(금년죽서래) : 올해는 책이라도 팔아서

此願差可必(차원차가필) : 이 소원 꼭 좀 이뤄볼까.

 

* 소운경(蘇雲卿) : ()나라 때 사람. 초막을 치고 독신으로 살면서 갈포(褐布) 옷에 짚신을 일 년 내내 착용하고 채소 심고 짚신 삼아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소년 시절 장준(張浚)과 가까운 친구였는데 후에 장준이 재상이 되어 서신과 함께 많은 금폐(金幣)를 실어 보냈으나 받지 않고 그곳을 떠나버려 그 후 종적을 감추었음.

 

 

其三

美芹可以獻(미근가이헌) : 맛 좋은 미나리 임금님께 바칠 만하다고

由來齊炙背(유래제자배) : 예부터 등짝 지지는 햇살도 그랬지.

蘘荷復治癖(양하복치벽) : 양하(蘘荷)로 고질병 치료하면

不勞施鍼艾(불로시침애) : 수고롭게 침뜸하지 않아도 되지.

土產貴藷芋(토산귀저우) : 특산물로 귀한 고구마가 있어,

求者此湊會(구자차주회) : 찾는 자들 여기로 모여들지.

南地故酥軟(남지고소연) : 남녘땅 토질이 부드러워,

不待雨破塊(부대우파괴) : 비 오지 않아도 흙덩이 부서지네.

鄰人小區畫(린인소구화) : 이웃 사람 작은 채마밭이,

在我柴門外(재아시문외) : 내 사립문 밖에 있는데,

畦畛縱違法(휴진종위법) : 고랑 탄 것이 법식에 어긋나도,

頗能向蕃薈(파능향번회) : 자못 무성하게 자랐다네.

時復曳杖臨(시복예장림) : 때때로 지팡이 끌고 가보면,

性好嗟有在(성호차유재) : 내 좋아하는 일 정말 거기에 있네.

淸齋苟得味(청재구득미) : 채식에 맛들이면,

誰人羨𦙫膾(수인선𦙫) : 지진고기 생고기 누가 부러워하랴?

 

* 由來齊炙背(유래제적배) : 어느 농부가 등에 내리쪼이는 햇빛이 따스하고 또 미나리가 그리도 맛이 있어 그것들을 임금께 바쳤으면 좋겠다고 한 자가 있었다는 것임.

 

 

其四

海菜雖種種(해채수종종) : 해초 비록 가지가지나

腥鹵不足數(성로부족수) : 비릿하고 거칠어 쳐줄 것 없고

山蔬信香美(산소신향미) : 산나물 참으로 향기롭고 맛있지만

龍肉竟虛語(용육경허어) : 용고기는 결국은 헛말이지.

吾唯愛畦種(오유애휴종) : 내가 오직 좋아하는 것은 밭에 심은 것

山林此豪擧(산림차호거) : 산림에 사는 맛은 이런 호방함이네.

萵嫩不點斑(와눈부점반) : 상추는 연해야 흠이 없고

菘肥不牽縷(숭비불견루) : 배추는 기름져야 질기지 않다네.

芥臺雖崔嵬(개대수최외) : 겨자대는 높고 위태해도

勁幹自能拄(경간자능주) : 줄기 굳세어 스스로 버틴다네.

去蛀須光風(거주수광풍) : 나무좀 없애려면 햇빛과 바람쐐야 하고

挑甲宜微雨(도갑의미우) : 새싹이 돋을 때는 가랑비가 좋지.

心芽旣擢玉(심아기탁옥) : 속눈이 또 옥을 터뜨리면

褪葉斯充筥(퇴엽사충거) : 갓 잎은 따서 금방 광주리 채우지.

耿耿慕玆樂(경경모자락) : 이런 즐거움이 항상 그리워

不能諼鄕土(불능훤향토) : 향토를 잊지 못하네.

因知種瓜者(인지종과자) : 그래서 알겠네. 외를 심은 사람들이

自足配巢許(자족배소허) : 소보허유와 짝하며 자족하는 이유를

 

 

其五

邑里人煙稠(읍리인연조) : 읍에 마을에 인구가 그리 조밀한데

寸土何曾荒(촌토하증황) : 한 치의 땅인들 묵혔겠는가.

漫漫稻與麥(만만도여맥) : 벼와 보리 끝없이 이어져

靑黃遞入望(청황체입망) : 푸른색 누런색 교대로 시야에 들어오네.

鄕俗不餐杞(향속불찬기) : 마을 풍속이 구기자를 먹지 않으니

長條至老蒼(장조지노창) : 긴 가지가 늘어져 울창하네.

投種密如粟(투종밀여속) : 곡식처럼 씨를 너무 촘촘히 뿌려,

菁菔且不昌(청복차불창) : 무는 잘 자라지 못했네.

生憎豆葉羹(생증두엽갱) : 콩잎 국은 나는 싫은데,

衆嗜如淫羊(중기여음양) : 사람들은 음양곽처럼 좋아하네.

如逢借圃人(여봉차포인) : 채소밭 빌려주는 사람을 만나면

至惠誠難忘(지혜성난망) : 지극한 은혜 참으로 잊지 못하리.

 

 

其六

稌黍皮須剝(도서피수박) : 벼와 기장은 반드시 찧어야 하고

芧栗殼須斲(서율각수착) : 도토리와 밤도 껍질을 깎아야 하지만,

唯蔬食通身(유소식통신) : 오직 채소만은 통째로 먹으니

物性嗟純慤(물성차순각) : 그 성질이 참으로 순박하네.

未甚憂澇旱(미심우로한) : 장마 가뭄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兼非畏霜雹(겸비외상박) : 서리와 우박도 그리 두렵지 않네.

樊遲信高弟(번지신고제) : 번지는 참으로 훌륭한 제자였네.

爲圃要早學(위포요조학) : 채소 가꾸는 법 일찌감치 배우려 했으니

菜部多脫落(채부다탈락) : 책에서 채소 종류를 그렇게 빠뜨리다니

我笑張景岳(아소장경악) : 나는 장경악(책 지은이)을 보고 웃네.

曩欲居金谷(낭욕거금곡) : 지난날 서울에서 살려고

屢回淩确犖(누회릉학락) : 몇 번이나 자갈밭에 갔다 돌아온 것은

只爲際嘉運(지위제가운) : 다만 행여 좋은 운을 만나면

倖望雷雨渥(행망뇌우악) : 님의 사랑 받기 위해서였지.

今秋得買圃(금추득매포) : 올가을에 채소밭 사면

縛屋依山角(박옥의산각) : 산모퉁이에 집도 얽으리라.

 

* 번지(樊遲)는 공자의 제자로 공자에게 채소밭 가꾸는 것에 대해 물었다.

 

 

其七

憶在長鬐縣(억재장기현) : 장기현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네.

被驅抵荒村(피구저황촌) : 쫓겨 간 황량한 촌이었지만

村居頗疏豁(촌거파소활) : 마을이 자못 트이고 넓어서

曠然恢籬垣(광연회리원) : 훤하여 울타리도 담장도 널찍했네.

主人老業圃(주인노업포) : 주인 노인은 채소를 업으로 삼아

力役分兒孫(역역분아손) : 아이 손자까지 역할을 분담시켰네.

培壅解敦本(배옹해돈본) : 이랑이 뿌리를 두텁게 함을 알았고

糞土不出門(분토불출문) : 거름은 문밖으로 새 나가지 않았네.

苞蔥與辣茄(포총여랄가) : 무성한 매운 파며 가지

芳烈四時存(방렬사시존) : 향기로움이 사철 가득했네.

蝤蛑大如罌(추모대여앵) : 꽃게는 크기가 병만 해서

糝滋得甘餐(삼자득감찬) : 자작하게 죽 끓이면 달게 먹었네.

如今鎖城府(여금쇄성부) : 지금처럼 성으로 둘러싸여 서야

農事那可論(농사나가론) : 농사를 어찌 논하겠나?

平生咬菜志(평생교채지) : 평생 채소 먹으며 살려는 뜻은

逝將遺後昆(서장유후곤) : 떠난 뒤 후손에게 남겨야 하나.

 

 

其八

行休不自卜(행휴불자복) : 갈지 머물지 내가 정하지 못하니

自玆知幾年(자자지기년) : 여기에 몇 년이나 있을 것인지?

我無蘇和仲(아무소화중) : 나는 소동파처럼

屋頭三十錢(옥두삼십전) : 집 머리에 30전짜리 산도 없으나

端居慮生理(단거려생리) : 단정히 앉아 살길을 생각하니

上策唯菜田(상책유채전) : 상책은 오직 채소밭뿐이네.

豪家厭淳母(호가염순모) : 부잣집은 팔진미도 질리나

窖者甘旄氈(교자감모전) : 움에 갇힌 자는 털방석도 달게 먹었네.

所爭在飢飽(소쟁재기포) : 문제는 배가 고프냐 부르냐일 뿐

粱肉非遽賢(량육비거현) : 흰밥에 고기라고 무조건 맛나진 않네.

不願悰愷倫(불원종개륜) : 바라지 않지. 종개(悰愷)의 무리처럼

無悳食萬千(무덕식만천) : 덕 없이 천금 만금 누리는 것은

 

* 窖者甘旄氈(교자감모전) : 한나라 때 소무가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서 움에 갇혔을 때,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아서, 마침 하늘에서 눈이 내리자 소무는 누워서 눈과 털방석의 털을 씹어 삼켰다고 한다.

* 悰愷(종개) : ()의 두종(杜悰)과 진()의 왕개(王愷)를 가리킴.

 

 

和蘇長公東坡八首는  (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씀

東坡黃州로 폄적(貶謫)된 지 2년이 되는 1081년에 東坡八首를 썼다. 724년이 지난 1805년 조선의 (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동파팔수(東坡八首)에 화운한 和蘇長公東坡八首를 썼다. 2편에는 時空을 초월하여 유배객의 궁핍한 삶과 애잔한 꿈을 노래한 비애가 공존하고 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東坡처럼 채소 농사를 짓고 싶었다. 그러나 다산은 康津에 유배된 지 5년이 되었으나, 세상이 비루해지고 의리가 퇴색하여, 동파에게 황무지를 빌려 농사를 짓도록 주선한 馬正卿(마정경)(소식의 친구 馬夢得을 가리킴)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여 和蘇長公東坡八首를 지었다. 동파와 다산은 다 같이 유배 생활 했지만 귀양지에서의 삶은 큰 차이가 있었다. 다산은 이 시에서 채소 농사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리고 채소를 가꿀 수 없는 아픔과 궁핍한 삶을 형상화하였다. 귀양지에서 채마밭을 가꾸는 것은 좋은 소일(消日)거리이자 유배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기에, 다산은 오매불망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다산은 이 시에서 평생에 채소 먹고 싶은 뜻을 후손에게 유언으로 남겨야 하느냐고 한탄하였다. 이는 유배의 처절한 아픔을 우회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동파가 유적지 황주의 동쪽 언덕(東坡)을 취하여 호를 東坡라 하였듯이, 다산도 萬德寺 서쪽의 茶山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에 이름[茶山]을 취하여 호를 茶山으로 하였다. 이 하나만을 보더라도 다산은 동파를 혹호(酷好)한 것을 알 수 있다.

 

 

* 東坡(동파) : 소식(蘇軾)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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