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祭歐陽文忠公文(제구양문충공문) : 소식(蘇軾)
구양수(歐陽脩)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에게 올린 제문(祭文)
嗚呼哀哉,公之生於世,六十有六年。
民有父母,國有蓍龜,斯文有傳,學者有師,君子有所恃而不恐,小人有所畏而不為。
譬如大川喬嶽,不見其運動,而功利之及於物者,蓋不可以數計而周知。
今公之沒也,赤子無所仰芘,朝廷無所稽疑,斯文化為異端,而學者至於用夷。
君子以為無為為善,而小人沛然自以為得時。
譬如深淵大澤,龍亡而虎逝,則變怪雜出,舞鰍鱔而號狐貍。
아! 슬픕니다. 선생께서 세상에 태어난 지 66년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부모 같은 관리였으며, 나라에는 시귀(蓍龜)와 같이 의심스러운 일을 해결해주었고, 유학의 도가 전수되었으며, 배우는 자들은 스승이 있었으며, 군자들은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소인들은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나쁜 짓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선생은 큰 내와 높은 산과 같아 그 움직임을 볼 수 없으나, 사물에 미치는 공덕과 이익을 숫자로 계산하여 다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선생이 별세함에 백성들은 비호 해줄 사람이 없고, 조정은 의심스러운 것을 상의할 곳이 없으며, 유학(儒學)의 도가 변하여 이단(異端)이 되고, 학자들은 소수민족의 법도를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군자들은 선행을 이끌어 줄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소인들은 거침없이 스스로 때를 만났다고 여김니다.
마치 깊은 산과 큰 못에 용이 없어지고 범이 떠나가면 변괴가 갖가지로 생겨나서 미꾸라지와 드렁허리가 춤을 추고 여우와 너구리가 울부짖는 것과 같습니다.
* 蓍龜(시귀) : 점대(蓍草)와 귀갑(龜甲). 점을 칠 때 쓰는 가새풀과 거북이 등껍질. 복서(卜筮).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귀갑(龜甲)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복(卜)이라 하고, 시초(蓍草)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서(筮)라 한다(龜爲卜,策爲筮)”라고 하였다.
* 斯文(사문) : 유학(儒學)의 도(道).
* 譬如(비여) : 예를 들다. 가령.
* 喬嶽(교악) : 높은 산.
* 赤子(적자) : 백성. 갓난아기.
* 仰芘(앙비) : 비호하다.
* 稽疑(계의) : 의문을 상의하다.
* 沛然(패연) : 왕성하다. 성대하다.
* 鰌鱓(추선) : 鰌(추)는 미꾸라지이고 鱓(선)은 드렁허리(민물의 물고기)
* 狐貍(호리) : 狐(호)는 여우이고 狸(리)는 살쾡이. 소인배를 비유한다.
昔其未用也,天下以為病;而其既用也,則又以為遲;及其釋位而去也,莫不冀其復用;至其請老而歸也,莫不惆悵失望;而猶庶幾於萬一者,幸公之未衰。
孰謂公無復有意於斯世也,奄一去而莫予追。
豈厭世混濁,潔身而逝乎?將民之無祿,而天莫之遺?
昔我先君,懷寶遁世,非公則莫能致。
而不肖無狀,因緣出入,受教於門下者,十有六年於茲。
聞公之喪,義當匍匐往救,而懷祿不去,愧古人以忸怩。
緘詞千里,以寓一哀而已矣。蓋上以為天下慟,而下以哭其私。
嗚呼哀哉!
옛날에 선생이 아직 등용되기 전에는 천하가 이것을 잘못된 일이라 여겼고, 등용되고 난 후에는 또 늦은 일이라고 여겼으며, 벼슬을 버리고 떠날 때는 다시 등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고, 늙어 벼슬을 물러날 것을 청하고 돌아감에 이르러는 슬퍼하며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만에 하나 바라는 것은 다행히 선생이 노쇠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선생이 이 세상에 더 이상 뜻이 없어서 갑자기 떠나가 버리시어, 우리들이 따라갈 수 없게 될 줄을 그 누가 생각하였겠습니까?
세상의 혼탁함을 싫어하여 몸을 깨끗이 하려고 떠나가신 것 아닙니까?
아니면 우리 백성들이 복이 없어서 하늘이 선생을 남겨놓지 않은 것입니까?
옛날 저의 아버지께서 재능을 품고서도 은둔하고 계실 때,선생이 아니셨다면 불러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못나고 보잘것없는 저도 이 인연으로 출입하여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지 지금까지 16년이 되었습니다.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의당 기여서라도 조문하여야 할 것인데, 벼슬에 매여 가지 못하고 있으니, 옛 분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제문을 천 리 먼 길에 봉함하여 슬픈 마음 부칠 뿐입니다.
위로는 천하를 위하여 애통하고 아래로는 저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곡합니다.
아! 슬픕니다!
* 其旣用也(기기용야) : 등용되고 난 후. 구양수(歐陽脩)가 인종(仁宗) 가우(嘉祐) 6년(1062)에 참지정사(參知政事)로 등용되었다.
* 及其釋位而去也(급기석위이거야) : 벼슬을 버리고 떠날 때. 구양수가 영종(英宗) 치평(治平) 4년(1067)에 재상의 지위에서 파직되었다.
* 至其請老而歸也(지기청로이귀야) : 구양수가 신종(神宗) 희녕(熙寧) 4년(1071)에 늙었음을 이유로 황제의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 惆悵(추창) : 슬퍼하는 모양
* 庶幾(서기) : ~를 바라다.
* 奄(엄) : 갑자기
* 將(장) : 아니면.
* 非公則莫能致(비공즉막능치) : 소식의 아버지 소순(蘇洵)이 일찍이 구양수에게 인정받아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임용되었다.
* 不肖無狀(불초무상) : 無狀(무상)은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不肖와 같은 뜻인데, 不肖함을 지극히 표현할 적에 이처럼 연결하여 사용한다.
* 匍匐(포복) : 손과 발을 모두 움직여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으로 급히 달려감을 비유한다.
* 忸怩(뉵니) : 부끄럽다. 떳떳하지 못하다.
* 寓(우) : 부치다. 보내다.
<祭歐陽文忠公文(제구양문충공문)>은 소식이 희녕(熙寧) 5년(1072) 구양수(歐陽脩)를 애도하기 위해 지은 제문(祭文)이다. 구양수(歐陽脩)는 자(字)가 영숙(永叔)이고 자호(自號)가 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영수로 꼽히며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구양수는 소식(蘇軾)의 아버지인 소순(蘇洵)을 조정에 추천했었으며, 소식이 급제한 가우(嘉祐) 2년(1056)의 과거에서 과거시험 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다. 이를 인연으로 소식(蘇軾)은 평생 구양수(歐陽脩)를 스승으로 섬겼다.
<祭歐陽文忠公文(제구양문충공문)>은 왕안석이 지은 같은 제목의 제문도 널리 알려져 있다.
★ 歐陽脩(구양수:1007~1072) : 송나라의 정치가이며 문인으로, 字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자호(自號)가 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송나라 때 시와 글씨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에는 <구양문충공집> 등이 있다.
★ 소식(蘇軾,1037~1101) :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사천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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