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의 禪詩 (41)~(50)
●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 俗名은 崔汝信. 兒名 雲鶴.
本貫은 完山<全州>. 字 玄應, 號 淸虛. 法名 休靜. 平南 安州 出生.
壬辰倭亂 때 僧軍을 이끌고 平壤奪還作戰에 參加하여 功을 세웠다.
妙香山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妙香山人 또는 西山大師<別號>로 불린다)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 승첩을 돌려 승군을 조직하고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 활동 사항
서산대사는 1520년(중종 20)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화엄경(華嚴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유마경(維摩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 등을 읽으며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1540년 수계사(授戒師)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각지를 떠돌며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며 물러나 금강산·두륜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다니며 수행하였으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감록(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서산대사를 불렀다. 이에 서산대사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었고,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서산대사는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후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산대사(西山大師)
(41) 登高賞秋(등고상추) : 높이 올라 가을을 玩賞(완상)하다
送眼南天遠 ~ 멀리 南쪽 하늘로 눈길을 보내나니
遙山點點靑 ~ 먼 山이 점점이 푸르구나.
長生應有苦 ~ 긴 人生에 응당 苦痛도 많으련만
誰拜老人星 ~ 누가 老人星을 崇輩한단 말인가.
* 玩賞(완상) : 즐겨 구경하다
* 노인성( Canopus, 老人星) : 장생(長生)의 상징. 장수 노인. 노인성은 남반구 하늘에 있는 용골자리(Carina)에서 가장 밝은 알파별(α Carinae)이다.
(42) 登檀君臺(등단군대) : 단군대에 올라
披雲登老石 ~ 구름을 헤치고 오래된 바위에 올라
遙想古皇王 ~ 먼 옛날 임금들을 생각하네.
山形一翠色 ~ 山은 예나 지금이나 푸른빛인데
人事幾興亡 ~ 人間事 興亡이 몇 번 이었던가?
* 檀君臺(단군대) :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 구월산(九月山)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단군 관련 대(臺).
패엽사(貝葉寺) 앞 높은 봉우리 위에 있다. 이 대상에 똑 바로 선 바위 정면에 ‘檀君臺(단군대)’라 쓴 세 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바위가 크고 이끼가 덮여서 글자의 획이 희미한 것이 연대의 오래됨을 말해주고 있다. 단군대 왼쪽 바위에는 단군의 발자국으로 전하여지는 두 개의 커다란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단군대에서 삼성전 옛터로 오는 노변에는 단군이 활쏘기연습을 하였다는 ‘사궁석(射弓石)’이 있는데 길가에 선 바위 위에 화살이 꽂혀있던 자국이 여러 개 있고 그 앞에는 화살을 뽑느라 무릎팎을 대었던 자리라고 전해오는 커다란 자국이 평면의 바위 위에 남아 있다.
여기서 개천 하나를 건너가서 산곡간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단군이 패엽사 앞 시루봉에서 지금의 성달리로 건너갈 때에 남긴 자국으로 전하여지는 큰 발자국이 바위 위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구월산의 목재를 벌채하여 반출하면서 길을 닦을 때에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구월산에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을 제향하던 사당인 삼성사(三聖祠)가 있는데, 일제가 이 건물을 공매해 없앰으로써 뒤에 건물 일부의 재목을 가지고 작은 건물을 지었다. 이 건물은 유명한 나철(羅喆)선생이 자진한 곳이기도 하다.
(43) 登白雲山(등백운산) : 白雲山에 올라
桂熟香飄月 ~ 계수열매 익은 香氣 달에 나부끼고
松寒影拂雲 ~ 소나무의 찬 그림자 구름에 스치네.
山中奇特事 ~ 山中에 기특한 消息을
不許俗人聞 ~ 世上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없구나.
(44) 登天王嶺(등천왕령) : 天王嶺에 올라
萬壑泉聲處處聞 ~ 골짜기마다 샘물 소리 들려오는데
奇嵒古木勢難分 ~ 奇異한 바위와 오래된 나무들이 뒤엉켜 있구나.
東行明日咸陽道 ~ 來日은 東쪽 咸陽으로 가려는데
回首頭流是白雲 ~ 頭流山 돌아보니 흰 구름에 뒤덮였네.
嚗然放杖天魔走 ~ "쾅" 하고 柱杖子(주장자) 내려놓으니 魔鬼들이 다 달아나고
古路分明脚不差 ~ 옛 길이 分明하니 발걸음 틀림없네.
生死去來爲一貫 ~ 죽고 살고 가고 옴이 하나일 뿐이니
囉囉哩哩哩囉囉 ~ 라라리리 리라라.
(45) 登香爐峯(등향로봉)/發香爐峰(발향로봉) : 香爐峯에 올라
萬國都城如蟻垤 ~ 世上 나라 도성은 개밋둑 같고 (垤. 개밋둑 질)
千家豪傑若醯鷄 ~ 世上 집안 英雄豪傑은 초파리 같다.
一窓明月淸虛枕 ~ 窓 밖 밝은 달 맑고 욕심없는 잠자리
無限松風韻不齊 ~ 끝없는 솔바람 갖은 曲調 아뢰네.
(46) 望高臺(망고대) : 高臺에서 바라보니
獨立高峰頂 ~ 홀로 높은 山봉우리에 오르니
長天鳥去來 ~ 먼 하늘로는 새들이 오가고
望中秋色遠 ~ 보이는 건 아득한 가을 빛
滄海小於杯 ~ 푸른 바다가 잔(盞)보다 작구나.
(47) 夢覺(몽각) : 꿈에서 깨어나
高臥邯鄲枕 ~ 邯鄲(감단)의 베개에 편안히 누워
周流百十城 ~ 數十 數百의 城을 두루 다녔네.
遽然開一夢 ~ 문득 한바탕 꿈을 깨고 보니
殘月半摟明 ~ 樓閣에 걸린 새벽달만 밝았어라.
(48) 夢過李白墓(몽과리백묘) : 꿈에 李太白墓를 들렸었다.
過客悠悠天古恨 ~ 오래토록 천고의 한을 품은 지나는 길손(西山大師)
山靑雲白首空回 ~ 푸른 山에 흰 구름만 虛空을 맴돈다.
當年把酒人何去 ~ 그때 술잔 잡던 이(李太白)는 어디로 갔는지
杳杳長天月自來 ~ 아득한 먼 하늘에 달만 홀로 비춰 온다.
(49) 妙峰(묘봉) : 묘봉
五蘊以爲庵 ~ 五蘊으로 집 삼으니
幾經風與雨 ~ 비바람 수없이 겪어왔으련만
白雲時往來 ~ 흰 구름은 오고 가지만
不識庵中主 ~ 이 집 主人을 알지 못하네.
* 五蘊 : 佛敎에서 人間을 構成하는 다섯 가지 範疇의 要素.
곧 物質的인 것을 意味하는 色, 感覺의 受, 認識 作用의 想, 意志 作用의 行, 心的 作用意識의 識이다.
(50) 朴上舍草堂(박상사초당) : 박상사의 초당
浮雲富貴非留意 ~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 별 관심 없네.
蝸角功名豈染情 ~ 덧없는 이름 내기 어찌 나를 잡으리.
春日快晴春睡足 ~ 화창한 봄날에 늘어지게 잠자면서
臥廳山鳥百般聲 ~ 산새들 온갖 소리 누워서 듣네.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에 내 뜻을 머무르지 않는데
달팽이뿔 같은 명예를 어찌 구하리오.
봄날이 쾌청한데 봄 졸음이 족해
누워서 산새의 온갖 노래 소리를 듣더라.
* 깨고 보니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한바탕 꿈과 같고, 인생이 꿈이거니 부귀영화가 또한 어찌 허망하지 않을 것인가? 달팽이 뿔이 얼마나 적고 협소한가 이렇듯 진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한 순간의 잘나의 일인 것인데 무슨 명예나 권력이 구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표가 될 것인가
안목 있는 선지식은 다만 한바탕 인생의 끔에서, 봄날의 춘몽을 즐기는 것이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와 더블어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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