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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의 禪詩(선시) (11)~(20)

by 산산바다 2022. 11. 1.

산과바다

西山大師(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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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禪詩 (11)~(20)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 俗名崔汝信. 兒名 雲鶴.

本貫完山<全州>. 字 玄應, 淸虛. 法名 休靜. 平南 安州 出生.

壬辰倭亂 僧軍을 이끌고 平壤奪還作戰參加하여 을 세웠다.

妙香山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妙香山人 또는 西山大師<別號>로 불린다)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 승첩을 돌려 승군을 조직하고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 활동 사항

서산대사는 1520년(중종 20)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화엄경(華嚴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유마경(維摩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 등을 읽으며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1540년 수계사(授戒師)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각지를 떠돌며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며 물러나 금강산·두륜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다니며 수행하였으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감록(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서산대사를 불렀다. 이에 서산대사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었고,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서산대사는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후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산대사(西山大師) 

 

 

(11) 過古寺(과고사) : 옛 절을 지나며

 

花落僧長閉 ~ 꽃 지는 옛 절 은 오래 닫혔고

春尋客不歸 ~ 봄을 따라온 나그네 돌아 갈 줄 모른다.

風搖巢鶴影 ~ 바람은 둥우리의 학그림자를 흔들고

雲濕坐禪依 ~ 구름은 좌선하는 수행자의 옷깃을 적신다.

 

 

 

(12) 過古戰場(과고전장) : 戰爭터를 지나며

 

山雪河氷裡 ~ 눈 쌓인 얼음에 잠긴 물에는

當年飮馬人 ~ 말에 물 먹이던 그때 사람들의 屍體

黃沙餘白骨 ~ 황토의 사막에 白骨은 남았는데

腥草自靑春 ~ 비린내 나는 풀만은 어찌 한창이뇨.

 

山雪河氷裡(산설하빙리) : 산속의 눈 밑에 얼음 덮인 강물 속에

當年飮馬人(당년음마인) : 당시 말에게 물 먹이던 사람들 누워 있고

黃沙餘白骨(황사여백골) : 누런 모래 속에 백골로 남아 있건만

腥草自靑春(성초자청춘) : 피비린내 풀에도 푸른 봄은 절로 오네.

 

 

 

(13) 過法光寺(과법광사) : 法光寺를 지나며

 

風雨天間屋 ~ 하늘 사이 절에는 비바람이요

苔塵萬佛金 ~ 金佛의 몸은 먼지와 이끼가 덮였구나.

定知禪客淚 ~ 진정 알겠구나. 선객의 눈물이

到此不應禁 ~ 슬픔을 금치 못한 理由였음을.

 

 

 

(14) 過鳳城聞午鷄(과봉성문오계) : 鳳城을 지나다가 한낮의 닭 울음소리를 듣고

 

髮白非心白 ~ 머리는 희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故人曾洩漏 ~ 聖人들이 일찍이 말했었다.

今廳一聲鷄 ~ 이제 닭 우는 소리 듣고서

丈夫能事畢 ~ 장부의 할 일을 마쳤구나.

忽得自家底 ~ 내 집 소식 알고 나니

頭頭只此爾 ~ 모든 일에 의심 없어졌다.

千萬金寶藏 ~ 천만 경전의 이른 말씀

元是一空紙 ~ 쓸데없는 빈 종이장 일세.

 

 

 

(15) 過扶餘(과부여) : 부여를 지나며

 

往事皆陳迹 ~ 지나간 일이란 모두 陳腐(진부)한 자취일 뿐임을

山川尙不迷 ~ 山川은 이를 잘 알고 있지.

衣冠晨月上 ~ 衣冠 위로는 새벽달 떠오르고

花草野禽啼 ~ 花草엔 들새가 지저귀누나.

 

 

 

(16) 過尹上舍舊宅(과윤상사구댁) : 尹 上舍의 옛집을 지나며

 

歌舞今寥落 ~ 노래와 춤은 이제 조용해지고

松風獨有臺 ~ 솔바람에 누대만 홀로 남았네.

鳥啼人不見 ~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새들만 지저귀고

怪石眠蒼苔 ~ 기암괴석엔 푸른 이끼가 졸고 있구나.

 

 

 

(17) 過邸舍聞琴(과저사문금) : 거문고 소리 들리는 酒幕집 지나며

 

白雪亂織手 ~ () 날리듯 고운 손 어지러이 움직이니

曲終情未終 ~ 가락은 끝났으나 은 남았네.

秋江開鏡色 ~ 가을 은 거울 빛을 열어서

畵出數靑峯 ~ 푸른 봉우리 몇 개를 그려내누나.

 

 

 

(18) 過湖寺(과호사) : 호수가의 절을 지나며

 

天門一長嘯 ~ 하늘 一長 휘파람 일고

江上白雲飛 ~ 위론 흰 구름이 날아 내린다.

暮鍾穿竹露 ~ 저물녘 소리는 댓잎에 맺힌 이슬을 꿰뚫고

山月隨僧歸 ~ 위에 뜬 달은 나를 따라 돌아간다.

 

 

 

(19) 關東行(관동행) : 關東의 노래

 

歲月如流水 ~ 歲月은 흐르는 물과 같고

興亡若去鴻 ~ 興亡은 날아가는 기러기와 같구나.

高吟天地外 ~ 天地 바깥에서 높이 읊조리니

山海動胸中 ~ 산과 바다가 가슴 속에 일렁인다.

 

 

 

(20) 曲池(곡지) : 굽은 못

 

淸澤一面虛 ~ 맑은 못 비워둔 한 면에

山影生明鏡 ~ 산 그림자 명경에 드리운다.

觀鳥又觀魚 ~ 새를 보고 또 고기를 보나니

飛潛亦本性 ~ 날고 잠기는 것은 각자의 본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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