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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禪師들의 禪詩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의 禪詩(선시) (51)~(60)

by 산산바다 2022. 11. 1.

산과바다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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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의 선시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禪詩 (51)~(60)

 

 

西山大師, 休靜大師, 淸虛休靜 (1520~1604. 俗名崔汝信. 兒名 雲鶴.

本貫完山<全州>. 字 玄應, 淸虛. 法名 休靜. 平南 安州 出生.

壬辰倭亂 僧軍을 이끌고 平壤奪還作戰參加하여 을 세웠다.

妙香山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妙香山人 또는 西山大師<別號>로 불린다)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이다.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 승첩을 돌려 승군을 조직하고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 활동 사항

서산대사는 1520년(중종 20)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을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친구들과 같이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에 기거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화엄경(華嚴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유마경(維摩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 등을 읽으며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1540년 수계사(授戒師) 일선(一禪), 증계사(證戒師) 석희(釋熙)·육공(六空)·각원(覺圓), 전법사(傳法師) 영관을 모시고 계(戒)를 받았다. 그 뒤 영관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각지를 떠돌며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1549년(명종 4)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며 물러나 금강산·두륜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다니며 수행하였으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감록(鄭鑑錄)』의 미신에 의하여 정여립(鄭汝立)이 역모(逆謀)를 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역모에 가담한 요승 무업(無業)이 휴정과 유정(惟政)이 자신과 함께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하였다. 이때 선조는 묘향산으로 사신을 보내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서산대사를 불렀다. 이에 서산대사는 전국에 격문을 돌려서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하였다. 이에 제자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궐기하여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었고, 유정은 금강산에서 1,000여 명의 승군을 모아 평양으로 왔다. 서산대사는 1,500명의 의승을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키고 승군을 통솔하였으며,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후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산대사(西山大師) 

 

 

(51) 訪松間隱士(방송간은사) : 솔밭속의 은사를 찾아가

 

自悅松間屋 ~ 소나무 사이 집이 절로 반갑고

松間亦有臺 ~ 소나무 사이엔 墩臺(돈대)도 있구나.

客來不掃石 ~ 이와도 돌을 쓸지 않음은

惟恐損蒼苔 ~ 다만 靑苔(청태)가 없어질까 두려운 게지.

 

* 靑苔(청태) : 푸른빛의 이끼

 

 

 

(52) 訪謫客(방적객) : 流配 간 사람을 찾아 가서

 

春去山花落 ~ 봄도 가고 속의 꽃도 졌는데

子規勸人歸 ~ 두견새는 그만 돌아가라 勸誘(권유)하네.

天涯幾多客 ~ 하늘 끝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空望白雲飛 ~ 부질없이 흰 구름 나는 것을 지켜보았을까.

 

 

 

(53) 法王峯(법왕봉) : 법왕봉

 

山立碧虛半 ~ 푸른 虛空 가운데로 솟은

白雲能有無 ~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 흰 구름.

仰天一大笑 ~ 하늘을 우러러 크게 한번 웃노라

萬古如須臾 ~ 萬古歲月刹那같으니.

 

 

 

(54) 璧泉禪子(벽천선자) : 벽천선자에게

 

閃電光中坐 ~ 번갯불 속에 앉아서

對人能殺活 ~ 사람을 맞아 죽이고 살리고 하네.

無頭無尾棒 ~ 머리도 꼬리도 없는 방망이로

打破虛空骨 ~ 虛空의 뼈를 쳐서 부수네.

十年呑栗棘 ~ 十 年 동안 밤송이를 머금었으나

猶是野狐精 ~ 아직도 여우 鬼神身世.

若欲敵生死 ~ 生死를 대적하려거든

寒灰爆一聲 ~ 차디찬 재에서 한마디 터뜨려라.

莫要會佛法 ~ 佛法理解하려들지 말고

大臥三條椽 ~ 마룻바닥에 쭉 뻗고 누워라.

道人宜癡鈍 ~ 道人은 바보 같아야 하다는

令我憶南泉 ~ 南泉스님이 생각나는구나.

 

 

 

(55) 別小師(별소사) : 이별

 

臨別怱怱說不盡 ~ 서운함이 앞을 가려 총총히 말 못하고

索然相顧更遲遲 ~ 우두커니 서로 보며 머뭇거렸네.

平林漠漠烟如織 ~ 아득히 푸른 숲에 짙은 안개 서렸는데

鶴影飄飄獨往時 ~ 떠나는 뒷모습이 외로운 일레라.

 

 

 

(56) 蓬菜草堂(봉채초당) : 봉채 초당

 

處處花開遠近迷 ~ 가까운 꽃으로 뒤덮이고

幾多紅雨落前溪 ~ 비바람에 지는 꽃잎 앞내에 휘날린다.

黃庭讀罷一回首 ~ 黃庭經(황정경) 책장 덮고 고개 돌리니

八萬峰頭月欲低 ~ 八萬峰 山마루에 새벽달이 지려하네.

 

 

 

(57) 佛日菴(불일암) : 불일암

 

深院花紅雨 ~ 깊은 禪院 꽃잎은 붉은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長林竹翠烟 ~ 긴 대나무 숲은 푸른 아지랑이 같이 일렁인다.

白雲凝領宿 ~ 봉우리에 모인 구름도 자고 가려는 듯한데

靑鶴伴僧眠 ~ 푸른 친구삼은 스님도 졸고 있다.

 

* 佛日菴(불일암) : 쌍계사((雙磎寺))의 암자로 불일폭포 서쪽에 있다.

 

 

 

(58) 謝鑑禪子來訪(사감선자래방) : 감선자의 내방에 감사하며

 

十年衰病掩柴扉 : 십년 동안의 병고로 사립문을 닫고 지냈더니

水遠山長客到稀 : 물도 멀고 산도 멀어 오는 손님 드물었네.

林下鳥啼如有思 : 숲 아래 우는 새도 그리움이 있는 듯

白雲深處一僧歸 : 흰 구름 깊은 곳에 한 스님이 찾아오셨네.

 

 

 

(59) 謝金信士來訪(사김신사래방) : 金信士의 방문을 感謝하며

 

金公物外客 ~ 金公物慾을 벗어난 사람이라

抱瑟訪山居 ~ 琵琶를 안고서 속 거처로 찾아오셨네.

一曲開心目 ~ 曲調 울리자 마음과 눈이 열리고

江淸月亦虛 ~ 은 맑고 달 또한 텅 비었네.

無限心中事 ~ 무한한 心中의 일들

平生說向誰 ~ 平生 누구를 향하여 말 할까.

陽春彈一曲 ~ 陽春曲 曲調 타니

松月滿窓時 ~ 소나무와 달이 창에 가득하다.

 

* 陽春曲(양춘곡): 전국시대 초()나라의 악곡 명칭으로, 고아(高雅)하여 배우기 어려운 곡조로 알려져 있다.

* 양춘가(陽春歌)-이백(李白)

 

 

 

(60) 謝送瓜(사송과) : 오이를 보내줌을 感謝하며

 

五月新瓜子 ~ 五月에 새로 나온 오이로

田夫慰病僧 ~ 농부가 든 중을 慰勞해주네.

破來一入齒 ~ 쪼개어서 입 속으로 넣었더니

蒼玉骨寒氷 ~ 푸른 조각이 뼈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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