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독사술구장(讀史述九章) 第五章 七十二弟子(72제자) – 도연명(陶淵明)
사기를 읽고 나서 지은 시
第五章
七十二弟子(72제자) : <孔子의 72제자>
恂恂舞雩(순순무우) : 공손히 무우(舞雩)에서 수업 받은 공자의 제자들은
莫曰匪賢(막왈비현) : 현자(賢者)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네.
俱映日月(구영일월) : 모두 해와 달처럼 빛났으니
共餐至言(공찬지언) : 함께 지극한 말씀 깨달았다네.
慟由才難(통유재난) : 공자는 인재를 얻기 어려움에 애통해하였고
感為情牽(감위정견) : 마음은 제자들의 정에 이끌렸다네.
回也早夭(회야조요) : 안회(顔回)는 일찍 죽었으나
賜獨長年(사독장년) : 오직 자공(子貢)만은 장수했다네.
* 七十二弟子(72제자) :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공자는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가르쳤는데, 제자가 약 3천명에 육예(六藝)에 통달한 자가 72명이나 되었다.”<사기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라고 하였으며, 사기 열전에서는 “내 제자로서 학업에 힘써 육예(六藝)에 통달한 자는 77명이다.”라고 하였다.<史記 권67. 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
* 恂恂(순순) : 성실한 모양. 공손한 모양.
* 舞雩(무우) : 하늘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명소. 노(魯)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의 산동(山東) 곡부(曲阜)에 있다. <論語 先進 25>에 증석(曾晳)이 공자의 물음에 답하기를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童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 莫曰匪賢(막왈비현) : 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 匪는 非와 같다.
* 映日月(영일월) : 일월과 같이 빛나다. 공자의 제자들의 고상한 품덕을 극찬한 것이다.
* 餐(찬) : 이해하다.
* 至言(지언) : 지극한 도리와 명언(名言).
* 才難(재난) : 인재를 얻기 어렵다.
* 慟由才難(통유재난) : 仲由(중유)의 자는 자로(子路) 또는 계로(季路)이며 변(卞) 사람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 계승 분쟁에 휘말려 괴외(蕢聵)의 난 때 죽었다. 공자는 위나라에 난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말했다. “슬프다, 중유는 죽고 말리라!” 얼마 안 되어 과연 자로의 죽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중유를 제자로 둔 뒤로 세상 사람들의 험담을 듣지 않았다.” <사기 권67. 중니제자열전>
* 感為情牽(감위정견) : 마음은 제자들을 근심하는 것에 이끌렸다.
* 回(회) : 안회(顔回).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자연(子淵)이다. 자를 따서 안연(顏淵)이라고도 부른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그러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빈곤하고 불우하였으나 개의치 않고 성내거나 잘못한 일이 없으므로,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졌다. 그래서 안자(顔子)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안회는 29세에 머리털이 모두 희어졌고 요절하였다. 이때 공자는 큰 소리로 섧게 울며 말하였다. “내가 회를 제자로 삼은 뒤부터는 다른 제자들이 더욱 친숙해졌다.”그 뒤 노애공(魯哀公)이 “제자들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습니다.”<사기 권67.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 賜(사) : 端木賜(단목사). 자공(子貢).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으로 성은 단목(端木)이고, 이름은 사(賜)며, 字가 자공(子貢)이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재아(宰我)와 더불어 언어와 사령(辭令)에 뛰어났다고 한다. 이재가(理財家)로서도 알려져 수천 금(金)의 재산을 모았다. 공문(孔門)의 번영은 그의 경제적 원조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한다. 공자가 죽은 뒤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에 가서 벼슬했으며 제(齊)나라에서 죽었다. 일찍이 제ㆍ오ㆍ진ㆍ월(齊吳晉越) 등 여러 나라에 가서 유세하여 오나라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하게 해 노나라를 구했다. <사기 권67. 중니제자열전>
* 長年(장년) : 장수하다.
독사술구장(讀史述九章)은 동진(東晉)이 멸망(420년)한 직후 남송(南宋) 영초(永初) 원년(420년)에 도연명의 56세 때 지은 시로 도연명(陶淵明)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읽은 감회를 적은 시이다. 이 시의 서문에 “내가 사기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었다(余讀<史記>, 有所感而述之.)”라고 기록하였다.
제5장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의 공자 72제자에 대한 평가이다. 공자세가에는 72명이라고 기록하였으며 중니제자열전에는 공자의 제자는 77명이라고 기술하였다.
도연명은 공자의 제자들이 고상한 인품을 지녔음을 칭송하였으며, 공자가 제자들에 대해 정이 깊었으며 특히 안회(顔回)는 단명했지만 자공(子貢)은 장수하였음을 말하며 두 사람의 차이를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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