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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산에는 꽃이 피네/아름다운 꽃길

5월 꽃을 담으며 진천 농다리에 가보다

by 산산바다 2015. 5. 18.

산과바다

 

진천 농다리

2015. 5. 17. 담음

가끔씩 가보는 곳이지만 냇가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다리를 건너보며 다리건너 농암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봄이 전망이 좋답니다. 초평저수지 산책로와 연결되어 산책하기도 좋더군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마을앞 미호천에 놓인 매우큰 돌다리

요즘에는 동양 最古의 다리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으로 옆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진천 IC에서 가까이 있어 접근하기가 쉽군요.

충북유형문화재 제28호 농다리(19761220일 지정)는 길이 93.6m, 너비 3.6m, 두께 1.2m, 교각 사이 폭이 80인 석교로 고려 때 권신 임연(林衍)이 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공조팝나무가 꽃을 피워 반겨주는군요.

 

농다리 건너 농암정 아래에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아 경치가 좋아보이는군요.

 

 

 

농다리 상류의 징검다리에 어린아이들이 건느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예쁘군요.

 

 

 

 

 

 

 

 

 

 

국수나무

 

 

물가에 때죽나무 꽃사이로 농다리를 건너보는이 들이 멀리 보이는군요.

 

 

 

 

 

때죽나무

 

미나리아재비

 

미선나무의 美扇

 

백선

 

 

 

농다리의 전설

 

이 전설은 이 지방 씨족들 사이에 전해오는 설화이다. 고려 고종 때 권신 임연(林衍, ?~1270)이 놓았다는 전설과 그의 누이가 놓았다는 전설, 두 편이 전한다. 임연이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한 젊은 부인이 세금천을 건너려는 것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임연은 부인의 지극한 효성과 그 정경이 딱해 용마를 타고 달려가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았다 한다. 그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고, 용마에 실었던 돌은 용바위가 되었다.

또 다른 한 편의 내용은 이러하다. 굴티 임 씨에게 남매가 있었다. 둘 다 훌륭한 장사로, 어느 날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연 장군)은 굽 높은 나무깨를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에 갔다 오기로 하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딸이 치마로 돌을 날라 거의 다리를 다 놓았는데 아들은 올 기미도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으로 딸에게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했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와 내기에 이겼고, 화가 난 딸이 치마에 있던 돌을 내던졌다. 딸은 약속대로 죽었고, 딸이 내던진 돌이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박혀 있다.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 나머지 한 칸을 다른 사람이 마저 놓았는데, 딸이 놓은 다리는 지금도 그대로 있지만 다른 사람이 놓은 다리는 장마만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 나라에 큰 변고가 있으면 이 농다리가 며칠씩 운다고 한다.

이 전설은 900년 전 고려 초기 굴티 임씨 임연 장군이 붉은 돌로 음양을 배치해 28칸을 놓은 진천농교에 대해 임씨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은 지역전설로 처음 임연이 효부를 돕기 위해 놓았다는 전설이 이후 장사인 오빠와 누이가 목숨을 걸고 힘내기 시합을 할 때, 어머니가 아들 편을 들어 딸이 죽는다는 <오누이 힘내기 설화>와 결합하여 더욱 흥미를 더해 주고 있다.

이 전설은 효를 백행의 근본으로 숭상했던 전통적인 의식과, 그런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도 감동하여 도움을 줄 것이라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 진천농교(11. 11. 22)

* 꽃을 담으며(13. 8. 5)

* 농다리 건너며 생거진천 사거용인 유래(13. 11. 11)

* 천년을 이어온 농가리(14. 4. 35)

* 진천 종박물관과 농다리1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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