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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백운선사(白雲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1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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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선사 오도송(白雲禪師 悟道頌) (1298~1374)

 

무일화(無一花)

一念不生全體現(일념불생전체현)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가 나타나려니

此體如何得喩齊(차체여하득유제) 이 본체를 어떻게 말 할 수 있으리요.

透水月華虛可見(투수월화허가견) 물 속 달빛은 허공에서도 볼 수 있으나

無心鑑象照常空(무심감상조상공) 무심의 거울은 비추어도 항상 허공이로다.

 

거산(居山)

洞中流水如藍染(동중류수여람염) 골짜기 흐르는 물은 쪽물인 것 같고

門外靑山盡不成(문외청산진불성) 문밖의 청산은 자연 그대로이다.

山色水聲全體露(산색수성전체로) 산색 물소리에 전체가 드러났으니

箇中誰是悟無生(개중수시오무생) 그 속에서 무생無生의 깨달음을 얻었노라.

* 無生-모든 법의 실상은 생멸(生滅)이 없는 것

山靑靑水綠綠(산청청수록록) 산은 푸르고 물은 초록색인데

鳥喃喃花족족(조남남화족족) 새는 지저귀고 꽃은 우거져 있네.

盡是無絃琴上曲(진시무현금상곡) 이 모두가 무현금의 곡조이거니

碧眼胡僧看不足(벽안호승간불족) 벽안의 호승(達磨)도 원만히 보지 못했네.

 

선관(禪觀)

黃面瞿曇不良久(황면구담불량구) 금빛 얼굴의 부처님은 유구한 세월도 없나니

室中維摩亦不默(실중유마역불묵) 방장실의 유마도 침묵하지 않도다.

恰似吹毛新發硏(흡사취모신발연) 선의 본바탕은 새로이 연마한 취모리(번개같이 빠른) 검과도 같으니

外道天魔處不得(외도천마처불득) 외도와 천마(天魔)도 넘보지 못하네.

 

 

白雲禪師 (백운선사 1298~1374)

 

고려 충렬왕 24(1298)에 전북 고부에서 출생한 선사의 법명은 경한(景閑), 법호는 백운(白雲)이다. 충정왕 3(1351)에 중국 호주 가무산 천호암으로 가서 선종의 거장이신 석옥청공 선사와 지공 선사에게 법을 구하였다. 석옥에게 법을 구한 지 1년만에 깨달음의 큰 전기를 맞이하였다. 선사는 무심무념(無心無念)의 참뜻을 깊이 인지하였다.

곧 내 마음에 맺혔던 의심은 얼음처럼 풀리고 무심무념의 위없는 참뜻을 깊이 믿게 되었다고 표현하였다. 이에 스승 석옥은 선사에게 인가를 하였다.

3월에 고려로 귀국하여 성각사에 주석하여 용맹정진하였다. 정진을 하던 계사년(1353) 정월 17일 오시(午時)에 단좌를 하고 입정에 들어 있는데 문득 영가 대사의 증도가(證道歌) 가운데 망상을 버리려 하지도 말고, 진실을 구하려 하지도 말라, 무명(無明)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요 환화(幻化)의 공신(空身)이 곧 법신이다는 어구에 이르러 그 뜻을 깊이 담연(湛然)하였을 때, 무심이 되어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전과 후가 아주 끊어져 조금도 의지할 곳이 없어 명연(冥然)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선사께서 확연대오했다.

선사의 깨침은 무념무심(無念無心)의 진종(眞宗)이다. 선관(禪觀)은 무심일도(無心一道)로서 이뤄졌으며, 무심무상(無心無上)의 선관(禪觀)이다. 선관의 가르침은 밝은 해도 밤에는 비추지 못하는 것이며 밝은 거울도 뒤에는 비추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진실을 찾고 또 찾아도 본체는 없는 것이며, 허망을 궁구해도 자취조차 없는 것이다.

 

선사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무심을 관하셨다. 마음에 뜻을 두게 되면 여러 가지의 법이 생기는 것이며, 마음이 멸()하면 여러 가지의 법도 멸하는 것이다. 마음을 끊어서 무심이 되지 않으면 간화선에 있어서 화두도 본래의 뜻보다 오히려 또 다른 집착을 일으키는 장애가 된다고 하셨다. 경계만 잊으려 하지 말고 마음을 멸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끊으면 경계가 저절로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무심의 적조(寂照)로서 깨달음의 진종이 된다고 가르치셨다. 선사께서는 공민왕 3(1374)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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