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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여행이 좋아**/사찰 여행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에 들리다.

by 산산바다 2016. 3. 27.

산과바다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에 들리다.

2016. 3. 24. 담음

覺皇殿 옆 뜰의 홍매가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더해주는군요.

산과바다는 이창근 벗님과 부부 동반하여 천년의 화엄성지 화엄사에 들려보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서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20091221일 사적 제505호로 지정되었다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7(신라 문무왕 17)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 81()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적멸보궁 오르는 계단길인데 전에 올라보았기에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함


* 화엄종에서는 비로자나불을 절대 위의 부처님인 법신불로 보고 노사나불이나 석가모니불은 비로자나불의 분신으로 본다. 이러한 점은 세 부처가 각각 엄연히 구별된다는 법상종이라든지, 삼신불은 구별할 수 없고 대등하며 유파에 따라서 석가모니불을 절대 우위로 보고 다른 불을 석가의 분신불로 보는 천태종, 또는 비로자나불만을 절대적인 부처로 모시는 밀교들과는 구별되는 종파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화엄사는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모신 법당이니 대적광전이나 대명광전이라 해야 옳다. 다른 사찰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불가의 법식의 엄정성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각황전 옆뜰 홍매화의 아름다움에 화엄사 경내를 즐거움에 한바퀴 돌아보고 저녁 때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나와서

화엄사 입구의 마을에 식당이 많아 숙박업소를 정하고 숙소주인이 알려준 맛있는 식당에서 이창근 벗님과 함께한 저녁식사와 반주 한잔은 꿀맛이었답니다. 

내일은 구례산수유꽃축제장에 들려 산수유마을 돌아보자는군요.



* 구례 화엄사(11. 1. 31)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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