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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부용선사(芙蓉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1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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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선사 오도송(芙蓉禪師 悟道頌) (1485~1571)

 

심행처멸(心行處滅) 마음의 작용을 넘은 경지

空費悠悠憶少林(공비유유억소림) 부질없이 소림(중국에 있는 절)만을 생각하다

因循衰到如今(인순쇠빈도여금) 어느덧 구레나룻은 희끗희끗

毘耶昔一無成臭(비야석일무성취) 옛 비야리(毘耶離)의 소리도 냄새도 없고

摩竭當年絶響音(마갈당년절향음) 마가다(摩竭陀)의 음향은 끊어졌어라

能防分別意(사올능방분별의) 말뚝인 양 앉아 있으니 일체분별 사라지고

如癡必禦是非心(여치필어시비심) 바보처럼 지내라노니 시비심 일지 않네

故將忘計飛山外(고장망계비산외) 헛된 생각일랑 산문 밖으로 날려 보내고

終日忘機對碧岑(종일망기대벽잠) 온종일 세사(世事)를 잊고 푸른 산만 마주한다.

* 비야리(毘耶離)부처님 열반 후 불교가 크게 펼쳐진 곳

* 마가다(摩竭陀) 불멸 후 처음으로 불교가 펼쳐진 곳

 

9년 동안 두문불출한 채 용맹정진 하였으며, 일체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참행(參行)하며 와불선(臥不禪)을 확립하였다. 다시 미륵봉 내원암으로 들어가 출입을 끊고 9년 동안 묵언불와(默言不臥)로 생사불수행(生死不修行)을 하였다. 중종 25(1530) 가을 어느 날, 선사께서 무심코 선실 창문을 바라보다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확연대오 하였다. 선사의 깨침은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芙蓉禪師(부용선사 1485~1571)

 

부용 선사는 조선 성종 16(1485)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영관(靈觀), 법자는 은암(隱庵), 법호는 연선(蓮船), 당호는 부용당(芙蓉堂).

8살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낚시를 갔는데, 선사는 망태 속의 물고기를 모두 놓아주었다. 아버지께서 크게 화를 내자 선사는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목숨의 귀중함은 같고 아픔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또 하루는 괴이하게 생긴 한 스님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는 불가에서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요, 세속에서는 살 인물이 아니니 출가를 시키십시오하며 사라졌다. 선사의 나이 13세 되던 해 연산 3(1497) 가을 어느 날, 선사는 공문(空門佛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집을 나서게 되었다.

선사는 발길을 재촉하여 수일 만에 덕이산(德異山 지금의 덕유산)으로 들어가, 홀로 토굴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고행 선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은 지 3년 만에 승려가 되었다. 17세 되던 해 신총법사를 찾아 교학을 탐구했으며, 다시 위봉선사 회상에서 선의 요체를 참구했다. 그 뒤 선사는 덕유산 구천동으로 들어가 손수 토굴을 지었으며, 선당의 이름도 부용당(芙蓉堂몸은 비록 이 세상에 머물지만 생각은 늘 서방정토에 있으므로 그것을 상징하는 연꽃을 의미해서 지었다)이라 지었다.

9년 동안 두문불출한 채 용맹정진하였으며, 일체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참행(參行) 하였으며 와불선(臥不禪)을 확립하였다. 9년의 장좌불와를 마치고는 다시 미륵봉 내원암으로 들어가 출입을 끊고 9년 동안 묵언불와(默言不臥)로 생사불수행(生死不修行)을 하였다. 중종 25(1530) 가을 어느 날, 선사께서 무심코 선실 창문을 바라보다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확연대오하였다. 선사의 깨침은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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