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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柳寬順)열사 기념관에 다시 가보다

by 산산바다 2012. 3. 11.

산과바다


유관순(柳寬順)열사 기념관에 다시 가보다

12. 3. 10.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252에 위치


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1902~1920). 18세 때 이화 학당 고등과 1학년생으로 있던 중 삼일 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뒤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시위를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기념관과 추모각을 둘러보고 유관순열사 초혼묘와 봉화탑에 가보려고 추모각 뒤에 있는 매봉산에 올라본다.

 

오르는 돌계단 양 옆에는 유관순을 기리는 추모 시비들이 군데군데 설치해 놓았군요.

 

 

 

 

 

 

 

 

 

 

매봉산 중턱에 유관순열사 초혼묘가 보인다.

 

매봉산 정상에 유관순열사 봉화지까지 올라본다.

 

 

 

 

봉화지에서 아우네 장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만세소리가 지금도 들리는듯 애국정신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념관을 나선다.

 

 

유관순(1904∼1920)

3.1 독립 운동 때의 순국 소녀.

충남 천원군 목천면에서 태어나 1918년 미국인 여자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 학당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되자 만세 시위를 지도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인 지령 마을로 돌아와서는 천안,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면서 만세 운동을 협의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1919년 음력 3월 1일(4월 2일) 아오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의견을 모았다.2월 그믐날 밤 각 마을로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어둠을 뚫고 지령산 매봉에 올라가 타오르는 횃불을 높이 쳐들었다.

드디어 음력 3월 1일 정오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앞장서서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만세 소리에 놀란 일본 경찰들이 만세 군중을 무자비하게 죽이자 군중들의 분노는 더욱 끓어올라 천안은 온통 독립 만세 소리와 군중의 물결로 뒤덮였다.

결국 그녀는 일본 경찰에 잡히고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들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집마저 불태워졌다. 공주 검사국으로 옮겨져 그 곳에서 영명학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 온 오빠 유관옥을 만났다. 그리고 3년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여 서울로 다시 옮겨졌다. 서울 법정에서는 재판 중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 모독죄가 가산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듬해 감격의 3월 1일을 맞자 다시 옥중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다가 그 해 가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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