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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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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金山寺) 국보(國寶)와 보물(寶物)

by 산산바다 2024. 12. 20.

산과바다

 금산사(金山寺) 국보(國寶)와 보물(寶物)을 관람하다.

 2024. 12. 18. 관람하며 담음

 금산사에는 국보 미륵전 1개와 보물 10개 그리고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미륵전 국보 제62

노주 보물 제22

석련대 보물 제23

혜덕왕사탑비(慧德王師塔碑) 보물 제24

오층석탑 보물 제25

방등계단 보물 제26 위의 부처 사리탑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

당간지주 보물 제28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보물 제29

대장전 보물 제827

금산사 석등 보물 제828

 

 

 

 

미륵전 국보 제62

김제 금산사 미륵전은 전체 높이가 18.9m나 되는 한국 사찰 중에서는 유일한 3층 법당으로 미륵장륙삼존불을 모신 전각이다. '용화전', '산호전', '장륙전'이라고 불리는 미륵전은 통일신라 경덕왕 23(764)에 진표율사가 거대 미륵불을 만든 후, 혜공왕 2(766)에 연못을 참숯으로 메우고 세웠다. 그러나 전각이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인조 13(1635) 수문대사가 재건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층과 2층은 각각 정면 5,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 측면 2칸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들어 장중하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겹처마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각층 마다 지붕 네 모서리 끝에는 활주(처마를 받치는 기둥)를 세워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미륵전의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 3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노주 보물 제22

노주는 돌로 만든 좌대 위에 보주 형태의 돌기둥이 놓여 있어 명칭을 '노주'라 하였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금산사는 600년대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776)에 진표율사가 다시 고쳐 세우면서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고려 전기인 935년에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노주는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대장각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데, 그 이름을 노주(露柱)라고는 하였으나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꼭대기에 놓인 꽃봉오리 모양의 조각만 없으면 불상을 얹는 사각형의 대좌(臺座)처럼 보인다.

땅 위에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아래·중간·위받침돌을 순서대로 얹어놓았다. 아래받침돌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둘로 나눈 뒤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아래 받침돌 윗면과 위 받침돌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중간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대칭되게 연꽃잎을 새겼는데, 아래 받침돌의 연꽃잎이 넓고 짧은 반면 위 받침돌의 연꽃잎은 좁고 길쭉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석탑과 같은 머리 장식이 남아 있는데, 둥근 받침 부분과 보주(寶珠: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가늘고 긴 사잇기둥이 연결하는 형식이다.

절이 창건된 때가 통일신라시대라고는 하지만, 당간지주 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노주도 받침돌에 새겨진 조각의 양식이나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련대 보물 제23

석련대란 불상을 모시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를 말한다. 김제 금산사 석련대는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의 화려한 양식을 띄고 있어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되며, 그 규모나 조형미로 볼 때 우리나라 동일 목적, 동일 형태의 작품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제 금산사 석련대(金堤 金山寺 石蓮臺)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석조 연화 대좌이다대한민국의 보물 23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67미터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10세기 무렵 만들어진 듯하며, 지대석은 남아 있지 않고, 하대석은 측면이 10각형으로 각면마다 인사를 새겼다. 8면은 서화형(瑞花形), 2면은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연화대 형식으로 조각한 불상의 좌대로 무려 높이가 1.52m, 둘레가 10m에 달하는 거대한 연화대이다. 연화대 전체가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나 여러 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상, , 하 대의 삼단 형식을 정연히 갖추고 있다. 하대석의 측면은 10각형이며 8개 면에는 안상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화를 조각하였으며 2개 면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복련판을 각 면에 따라 10판을 돌려 홍려하게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조각과 장식 이외에도 중대, 상대, 등에는 안상과 화운, 연판문 등을 장식적 외장법으로 조각하였다. 상대석 윗면 중앙부분에는 두 개의 방형 구멍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좌대가 석불 입상을 세우는데 이용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좌대의 조각 수법이 통일신라시대의 양식과 유사하나 무질서한 안상의 배치와 연판내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高麗時代) 초기, 대략 10세기경의 석조물로 추정하고 있다.

 

 

 

 

금산사 혜덕왕사탑비(金堤金山寺慧德王師塔碑) 보물 제24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석비. 보물 제24. 높이 2.77m, 너비 1.49m, 두께 17cm, 글자 크기 약 2cm. 19631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탑신은 대리석으로, 귀부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고려 중기의 승려인 혜덕왕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비이다.

현재 비의 머릿돌은 없어졌으며, 비의 받침돌에는 머리가 작고 몸통이 크게 표현된 거북을 조각했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받침돌에 비해 커 보이는 듯하며, 주위에 덩굴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의 이름을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해동금석원 海東金石苑에서는 이오가 짓고 정윤이 쓰고 음기를 채유탄이 쓴 것으로 추정 하고있다.

비문에는 혜덕의 생애·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씨는 지름이 약 2cm 정도 되는 구양순법의 해서체로 썼다. 비문을 통해 혜덕이 입적한 지 15년 뒤인 1111(예종 6)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번지 금산사에 소장되어 있다.

 

 

 

 

오층석탑 보물 제25

오층석탑은 고려 경종 4(979)부터 성종 원년(982)에 걸쳐 세워다. 원래 9층 석탑이었으나, 현재는 5층만 남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탑. 보물 제25. 높이 7.2m. 이 탑은 금산사 경내의 뒷편 송대라는 언덕에 있는데 불사리가 봉안된 사리계단(戒壇) 남쪽에 있다.

이러한 탑과 계단의 배치방식은 경기도 개성시 근교 불일사에서도 볼 수 있고,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앞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 과도 유사한 것으로 사리 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놓인 5층의 방형 석탑이다. 갑석과 그 위에 얹힌 1단의 괴임은 판석을 여러 개 짜맞춘 형식이며 탑신부 1층까지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옥개석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 추녀 밑이 넓어졌는데, 중앙에서 모서리를 향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점이 특이하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넓고 경사는 급한 편이다. 탑 전체를 볼 때 2층 이상부터 체감비율이 적은 편이나 1층 옥개가 넓어 안정감을 준다. 상륜부는 5층 옥개석 위의 노반에 갑석형이 넓게 얹혀 있고 신부(身部)에 우주까지 새겨져 있어 6층으로 보기 쉽다. 복발·보륜·보주가 얹혀 있는 상륜부의 모습은 라마 탑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특이하다.

기본적으로 신라 석탑의 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이 작아지고, 상하층 기단의 갑석 위에 판석을 삽입하여 굄으로 삼은 점, 옥개석 추녀 밑선이 곡선으로 된 점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과 관련된 전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늦은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 탑을 1971년 해체·복원할 때 사리구와 묵서의 탑지가 발견되어 1492(성종 23)에 중창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방등계단 보물 제26 부처 사리탑

사각형 석조 제단인 방등계단(方等戒壇)과 석종형 부도가 있다. '방등(方等)''사방으로 평등하다'는 뜻이다.

금산사 경내 가장 높은 곳인 송대(松臺)에 오층석탑과 나란히 위치한 계단(戒壇)이다. 매우 넓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사각형의 돌이 놓이고, 그 위에 석종(石鐘)형의 탑이 세워졌다.

계단(戒壇)이란, ()를 수여하는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방등(方等)은 위·아래 사방으로 평등하다는 뜻으로 방등계단은 스님과 재가 신자를 가리지 않고 대심(大心)을 가진 이는 누구나 수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계단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불상과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 기단 네 면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돌기둥이 남아 돌난간이 있었던 자리임을 추측하게 한다. 난간의 네 귀퉁이마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석종형의 탑신을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 네 귀에는 사자머리를 새기고 중앙에는 석종 주변으로 연꽃무늬를 둘렀다. 석종의 꼭대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방등계단은 조각 수법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중창하고 해마다 단을 열어 법시法施를 널리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어 방등계단의 원형은 진표율사까지 올라간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방등계단의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수계단을 중앙에 마련하고, 그 주위에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이러한 예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와 개성의 불일사(佛日寺) 등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킴은 불교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결국 금산사는 미륵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을 조화롭게 겸비하였다는 신앙적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탑. 보물 제27. 높이 218cm. 현재 대적광전 앞 왼쪽에 있으나 원래는 금산사에 속했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 탑은 탑신과 상륜부 일부가 없어져서 원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평면이 6각형인 이 탑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다각형 석탑의 한 예로서 중요하며 부분적인 장식조각이 섬세하여 공예적 성격이 강한 특수한 탑이다. 기단부는 6각형의 화강석을 3단으로 쌓고 측면에 각각 사자를 양각했다.

그 윗부분부터 점판암으로 되어 있는데 맨 밑에 복련과 앙련을 각각 조각한 석재가 2매 놓여 있어 탑신부를 받치는 연화대석으로 보이며 그 사이에는 중석(中石)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탑신부는 옥신이 거의 없어지고 맨 위의 2개 층만 남아 있으며 옥개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상층부의 옥신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모각하고 각 면에는 둥근 테두리[圓圈] 안에 좌불(坐佛)을 선각했다. 옥개석은 추녀 밑이 수평이며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전각(轉角)에서의 반전이 뚜렷하다. 옥개석 밑면에는 초화와 용 등이 선각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둥근 보주형의 화강석재가 놓여 있다. 탑 전체를 볼 때 옥개석이 이루는 점진적인 체감 비례가 온화하고, 검은색 돌에 섬세한 조각 장식이 어울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이 탑의 층수는 경주 정혜사지13층석탑(淨惠寺址十三層石塔 : 국보 제40)의 형태로 미루어 보아 13층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으며 대체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지주 보물 제28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금산사 경내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높이 3.5m로 양쪽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지주의 기단은 한 층인데, 잘 다듬은 6장의 길쭉한 돌로 바닥을 두고, 그 위를 두 장의 돌을 붙여서 마무리했다.

기단 위로는 당간을 세우는 받침을 지주 사이에 둥근 형태로 조각하였고, 받침 주변에는 괴임을 새겨두었을 뿐 별다른 꾸밈은 없다. 양쪽 지주의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는 반면에, 바깥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세로띠를 돋을새김하였다.

지주의 꼭대기부분은 안쪽 면에서 바깥쪽 면으로 떨어지는 선을 둥글게 깎았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은 각각 지주의 위·중간·아래의 3곳에 뚫었다. 이처럼 구멍을 3곳에 두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적 특징으로,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에서도 볼 수 있다.

기단부와 당간 받침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지주의 면에 새겨진 조각수법이 훌륭하다. 우리나라 당간지주 중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보물 제29

가서 보지 못하고 자료 화면으로 올리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사에 있는 석탑. 보물 제29. 높이 4.5m. 19631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산사 심원암 북쪽 산꼭대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사각형 탑으로, 탑신의 몸돌에는 네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하층 기단은 하대·중석·갑석의 너비가 거의 동일하여 퇴화된 형식을 보이고 있다.

각 몸돌을 덮고 있는 3개의 지붕돌은 넓적하며, 낙수면의 경사를 급하게 처리하였고, 처마의 양끝에서의 들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상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노반만 있고 다른 부분은 없어졌다. 각부의 줄어드는 비율이 적어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며 안정감이 없다. 석재 구성도 규책성이 없고 각 부의 새김 또한 가늘고 흐리게 새겨져 있으나, 깊은 산중에 위치하여 탑의 모습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 이후의 전형적 형태를 따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산 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장전 보물 제827

대장전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중창할 때 세운 건물로 불상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 용도로 추정된다.

대장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좌협시)에 마하가섭존자, 왼쪽(우협시)에 아난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불상 뒤에 목각으로 만든 화염 모양의 광배(光背)가 매우 아름답다.

금산사는금산사사적에 따르면 백제 법왕(600)때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륵전 뜰 가운데 세운 목조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기능은 없어지고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조선 인조 13(1635)에 다시 짓고, 1922년에 지금 있는 위치로 옮겼다. 지붕 위에 남아 있는 조각들은 목조탑이었을 때 흔적이며 건물 안에는 석가모니와 가섭, 아난의 제자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옆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양쪽 칸에는 1, 가운데 칸에는 공포를 2개씩 올렸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자 모양으로 꾸민 우물천장이고 석가모니가 앉아 있는 수미단에는 정교한 장식문을 조각해 놓았다.

전체 건물 구조와 크기가 비교적 간단하고 작지만 큰 관심을 끄는 변형 건물로, 탑 형식의 목조 건축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금산사 석등 보물 제828

석등은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우는 건축물이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9m. 미륵전 건너편의 대장전(大藏殿) 앞뜰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닥돌부터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석등은 단면이 8각으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 간주석(竿柱石), 윗받침돌, 화사석(火舍石), 지붕돌 등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단면이 둥근데, 받침 위에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 8개가 거칠게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8각의 높은 1단 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받침돌인 간주석은 위가 좁고 아래는 넓은 8각의 기둥으로, 각 모서리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처럼 단면이 둥글다. 모서리에 모를 접어서 2개의 골이 나도록 만든 1단의 쇠시리 받침 위에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8개가 조각되었는데, 조형적으로는 아래받침돌의 연꽃 무늬보다는 둔중한 편이다.

불을 켜 놓은 부분인 화사석은 단면 8각으로, 간주석처럼 위는 좁고 아래는 넓다. 4면에는 길고 네모난 화창(火窓)이 뚫려 있는데, 둘레의 가장자리에는 1단의 낮은 테두리를 마련하고서 좌우에 각각 3개씩 쇠못 구멍을 뚫어 문을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8각의 지붕돌은 밑면에 2단 받침을 두었고, 각 전각마다 귀꽃이 장식되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가 놓여 있다.

이 석등은 대체로 백제시대 석등의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의 귀꽃 장식과 세부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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