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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조주선사(趙州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15. 1. 30.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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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선사 오도송(趙州禪師 悟道頌) (778~897 당나라)

 

春有百花秋有月 봄에는 아름다운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이 온천지 비추도다!

夏有凉風冬有雪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불어오고 겨울에는 아름다운 흰 눈이 날리도다!

若無閑事掛心頭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 이라 네!

 

 

조주선사는 20세 무렵에  스승인 남전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의 마음이 도이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조주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에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오도송을 읊조리며 쓸데없는 번뇌 망상을 쉬었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이후 조주는 남전선사가 입적할 때까지 40년 동안 시봉하면서 교수사로서 스승을 대신해 법상에 올라 상당법문도 하게 된다.

 

 

주선사의 사리탑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禪詩偈頌

조주선사(趙州禪師)의 십이시가(十二時歌)

 

雞鳴丑 닭 우는 축시

愁見起來還漏逗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裙子褊衫箇也無  두를 옷 소매옷 하나 없고

袈裟形相些些有  가사는 겨우 모양만 남았네.

褌無腰褲無口     속옷은 허리가 없고 바지도 주둥아리가 없구나.

頭上靑灰三五斗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比望修行利濟人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이되렸더니

誰知變作不喞溜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할 줄을

 

平旦寅 이른 아침 인시

荒村破院實難論 황량한 마을 부서진 절 참으로 형언키 어렵네

解齋粥米全無粒 재공양은 그렇더라도 죽 끓일 쌀 한 톨 없구나.

空對閑窗與隙塵 무심한 창문 가는 먼지만 괜시리 바라보나

唯雀噪勿人親    참새 지저귀는 소리뿐 친한 사람 없구나.

獨坐時聞落葉頻 호젓이 앉아 이따금씩 떨어지는 낙엽소릴 듣는.

誰道出家憎愛斷 누가 말했던가 출가인은 애증을 끊는다고

思量不覺淚沾巾 생각하니 무심결에 눈물이 난다.

 

日出卯 해뜨는 묘시

淸淨卻翻爲煩惱  청정함이 뒤집어 번뇌가 되고

有爲功德被塵幔  애써지은 공덕이 세상 티끌에 덮이나니

無限田地未曾掃  끝없는 전답을 일찍이 쓸어본 바가 없도다.

攢眉多稱心少     눈썹 찌푸릴 일은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없나니

(?)耐東村黑黃老  참기 어려운 건 동쪽 마을의 거무튀튀한 늙은이

供利不曾將得來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放驢喫我堂前草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食時辰 공양 때의 진시

煙火徒勞望四鄰 인근 사방의 밥 짓는 연기를 부질없이 바라본다.

饅頭(?)子前年別 만두와 진떡은 작년에 이별하였는데

今日思量空嚥津 오늘 생각해보니 공연히 군침만이 돈다.

持念少嗟歎頻    생각도 잠깐이고 한탄만이 잦구나.

一百家中無善人 백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은 없고

來者祇道覓茶喫 오는 사람은 그저 마실 차나 찾는데

不得茶(?)去又嗔 차를 마시지 못하면 발끈 화를 내며 간다.

 

禺中巳 오전의 사시

削髮誰知到如此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無端被請作村僧 어쩌다가 청을 받아들여 촌중 되고 보니

屈辱飢悽受欲死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胡張三黑李四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恭敬不曾生些子 공경하는 맘은 조금도 내지 않고

適來忽爾到門頭 아까는 불쑥 문 앞에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唯道借茶兼借紙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는 말 뿐이네.

 

日南午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

茶飯輪還無定度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 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行卻南家到北家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果至北家不推註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네.

苦沙鹽大麥醋    쓴 소금가루와 보리 초장

蜀黍米飯虀萵苣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唯稱供養不等閑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和尙道心須堅固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한다고 말하네.

 

日昳未 해 기우는 미시

者回不踐光陰地 이때에는 양지 그늘 교차하는 땅을 밟지 않기로 한다.

曾聞一飽忘百飢 한번 배부르매 백번 굶주림을 잊는다더니

今日老僧身便是 바로 오늘 이 노승의 몸이 그러하네.

不習禪不論義    도 닦지 않고 경도 논하지 않나니

鋪箇破蓆日裡睡 헤어진 자리 깔고 햇볕 쐬며 낮잠을 잔다.

想料上方兜率天 생각커니 저 하늘의 도솔천이라도

也無如此日炙背 이처럼 등 구워주는 햇볕은 없으리로다.

 

晡時申 해 저무는 신시

也有燒香禮拜人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五箇老婆三箇癭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一雙面子黑皴皴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油麻茶實是珍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金剛不用苦張筋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 없다네.

願我來年蠶麥熟 내 바라건데 누에 올리고 보리 익거든

羅喉羅兒與一文 라훌라(석가의 아들) 아이한테 돈 한 푼 주어 봤으면 하네.

 

日入酉 해지는 유시

除卻荒涼更何守 쓸쓸함 제외하고 달리 무얼 붙들랴

雲水高流定委無 고매한 운수납자의 발길 끊어진지도 오래인데

歷寺沙彌鎭常有 절마다 찾아다니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다.

出格言不到口    단 한마디 말도 격식을 벗어나지 못하니

枉續牟尼子孫後 석가모니를 잘못 잇는 후손이로다.

一條拄杖麤楋藜 한 가닥 굵다란 가시나무 주장자는

不但登山兼打狗 산에 오를 때뿐만 아니라 개도 때린다.

 

黃昏戌 황혼녘 술시

獨坐一間空暗室 컴컴한 빈방에 홀로 앉아서

陽燄燈光永不逢 너울거리는 등불을 본지도 오래 이고

眼前純是金州漆 눈앞은 온통 깜깜한 칠흑 일세

鐘不聞虛度日    종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럭저럭 날만 보내니

唯聞老鼠鬧啾喞 들리는 소리라곤 늙은 쥐 찍찍대는 소리뿐

憑何更得有心情 어디다가 다시 마음을 붙여 볼까나

思量念箇波羅蜜 생각다 못해 바라밀을 한차례 떠올려본다.

 

人定亥 잠자리에 드는 해시

門前明月誰人愛 문 앞의 밝은 달,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向裡唯愁臥去時 집안에서는 오직 잠자러 갈 때가 걱정이러라.

勿箇衣裳著甚蓋 한 벌 옷도 없으니 무얼 덮는담

劉維那趙五戒    법도를 말하는 유가劉家와 계율을 논하는 조가趙家

口頭說善甚奇怪 입으로는 덕담을 하나 정말 이상하도다.

任你山僧囊罄空 내 걸망을 비게 하는 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問著都緣總不會 모든 인연법을 물어보면 전혀 모르네.

 

半夜子 한밤중의 자시

心境何曾得暫止 마음경계 언제 잠시라도 그칠 때있던가

思量天下出家人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似我住持能有幾 나 같은 주지가 몇이나 될까

土榻床破蘆(?)   흙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老楡木枕全無被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게 하나 없구나

尊像不燒安息香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安息國香 사르지 못하고

灰裡唯聞牛糞氣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네.

 

 

 

 

 

趙州從諗(조주종심 778~897 당나라)

 

당나라 때의 임제종(臨濟宗) 승려.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제자로, 법호는 종심(從諗)이고, 속성(俗姓)은 학()씨며, 당나라 청주(靑州) 임치(臨淄) 사람이다. 일설에는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이라고도 한다. 어린 나이에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 일설에는 靑州龍興院)에서 출가했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전에 지양(池陽)에 가서 남전보원을 참알(參謁)하니 남전이 큰 그릇으로 여겼다.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에 가서 수계(受戒)하고, 얼마 뒤 남전에게 돌아와 20년 동안 의지했다. 처음 남전을 찾았을 때 남전이 어느 곳에서 왔는가?”라고 물으니, 조주가 서상원(瑞象院)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남전이 다시 그러면 서상을 보았는가?” 물었는데, 조주가 서상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님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남전이 너는 유주(有主) 사미냐? 무주(無主) 사미냐?”라고 묻자 조주는 유주 사미입니다.”라 했고, 남전이 주가 어디 있느냐?”고 하니 조주는 동짓달이 매우 춥사온데 건강은 만복(萬福)하십니까?”라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 후 황벽(黃檗)과 보수(寶壽), 염관(鹽官), 협산(夾山), 오대(五臺) 등 여러 대덕(大德)들을 찾아뵈었다. 여든 살 때 사람들이 조주(趙州)성 동쪽 관음원(觀音院)으로 모셔 거처했는데, 40여 년 동안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일찍이 북지(北地)에 머물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시키고 항상 삼조승찬(三祖僧璨)신심명(信心銘)을 마음에 새겼고, 현언(玄言)이 천하에 유행하여 문답이나 시중(示衆) 등을 통해 남긴 공안들, 예컨대 구자불성(狗子佛性)이나 지도무난(至道無難) 등은 널리 회자되었다.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입적했는데, 세수(世壽) 120세였다.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 저서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3권이 있다.

 

 

 

조주록(趙州錄)에 나오는 끽다거(喫茶去)’ 이야기다.

師問新到 曾到此間陵 曰 曾到 師曰 喫茶去 又問僧 僧曰 不曾到 師曰 喫茶去 後院主問曰 爲甚陵曾到也云喫茶去 不曾到也云喫茶去師召院主 主應諾 師曰 喫茶去

진리를 묻는 구도자에게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는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라고 말했다.

선사는 다른 납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은 와 본 적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그러자 그 선문답을 들은 원주(院主)가 이를 의아해하며 선사께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와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권하고, 와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차를 권하신 겁니까?” 그러자 선사는 원주를 불렀고, 그가 답을 하니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원주, 그대도 차 한 잔 들게나.(喫茶去)”

 

 

조주선사 사찰 백림선사(중국)

 

趙州禪師無字公案 喫茶去.....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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