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성철스님 오도송(性徹 悟道頌) (1912~1993)
出家詩
彌天大業紅爐雪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跨海雄基赫日路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誰人甘死片時夢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 가랴
超然獨步萬古眞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悟道頌 (29세)
黃河西流崑崙頂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日月無光大地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 도다
遽然一笑回首立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靑山依舊白雪中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涅槃頌 (1993)
生平欺狂男女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一輪吐紅掛碧山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종정 취임시 법어(1981)
卍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示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이 사방에 두루 비추니
고요한 상태는 사라지며 없어지는 것은 둘이 아니며,
보이는 온갖 세상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요
들리는 소리는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소리인지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여기에 모인 법우님들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性徹스님 (성철)
성철스님(性徹: 1912~1993)은 대한민국의 승려이다.. 속명(俗名)은 이영주(李英柱)이고 아호는 퇴옹(退翁)이다. 대한민국의 선종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典型)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승려이다. 경상남도 산청에서 출생했다.
스님의 집안은 대대로 부농이었다. 비록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 이후라 시절인연이 암울했다고는 하지만 스님은 어린 시절을 비교적 유족하게 보낼 수 있었으며, 장남으로서 부모님은 물론이요 집안의 기대와 귀염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다. 스님은 천성이 명민하고 상호가 수특(秀特)하여 더욱 총애를 받으셨다. 3세에 글자를 알고 읽기 시작했고, 5세에는 김시습처럼 글을 짓고 시를 지을 만큼 자질이 뛰어났으며, 이미 열살 무렵에 사서삼경 등 유서를 읽고 모든 경서를 독파하였으니 인근에서는 신동이 났다 하여 소문이 자자하였는가 하면 더 가르칠 선생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청소년기에 이르자 그 명민한 두뇌는 더 이상 낡은 세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당시 물밀 듯이 들어오던 신학문과 철학과 종교 등 여러 학문에 대해 지나칠 만큼 열정을 가지고 독서와 관심을 쏟았으나 그 모두가 참다운 진리의 문에 들어가는 길이 아님을 자각하고 그중 「장자」를 읽고 소요유(逍遙遊)하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지나가던 노승으로부터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받아 읽고 이제까지 찾아 헤매던 구도의 길이 거기에 있음을 발견하니, 홀연히 심안이 밝아짐을 느껴 거듭 읽고 그 깊은 뜻을 밝히게 되었다. 그 한권의 책이 불교의 전적을 대하게 되는계기가 된 것이다. 그후 스님은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 구도의 길은 수행정진에 있음을 알고 거사(居士)의 몸으로 양식을 짊어지고 덕산 대원사 탑전에 들어가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하였고, 그 후 제방선원에서 안거하는 등 그 수도 정진의 구도열이 이미 승려 이상의 진척을 보였다. 이에 주위의 많은 스님들이 출가를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스스로 출가를 결심하고, 모든 세속적인 인연을 끊고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출가시(出家詩)를 승문(僧門)에 들었다.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 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그리고 용맹정진으로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서 하동산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해인사에서 수계 득도하였다. 이로부터 10년간 천하제방(諸方)선원에 안거하면서 용맹정진을 단행하였는데, 음식은 언제나 생식(生食)과 현미밥과 담식(淡食)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의복은 24세에 만든 누더기를 일 생 깁고 또 기워 입으셨다. 금강산의 마하연선원,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의 내원선원, 통도사 백련선원 등 모든 선원에서 안거를 할 때마다 스님의 철저한 정진력에 누구나 감복하였고, 그밖에 고성 안정 토굴의 정진이나 파계사 성전암 에서의 용맹정진은 승가 내에서 그 본보기가 되었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끊기 위해 토굴 주위에 가시철망을 쳤던 이야기며, 신도들이나 친지가 수행을 방해할까봐 사람들이 오는 길목 쪽으로 돌을 굴렸다는 극단적인 이야기 등에서 스님 의 수행 정진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부단한 수행중, 29세가 되던 해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정진을 하던 때였다. 스님은 확연하게 일대사(一大事)인연을 了達하시고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셨다.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섰네. 黃河西流崑崙頂 日月無光大地沈 遽然一笑回首立 靑山依舊白雲中 오도를 하신 후에도 스님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수행자의 삶 그대로 견지하셨다. 스님의 삶의 태도는 너무나 엄격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나이 일흔이 되실 때까지도 손수 양말을 기워 신었으며 한 겨울이라도 땔감의 양을 결코 지나치게 하는 일은 한번도 없으셨다. 평생을 바루 하나 옷 한벌의 전형적인 수도자의 삶을 보이셨다.
교리를 대상으로 한 성철의 견해는 저서인 선문정로(1981)에 잘 노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으로 여겨온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반대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했다. 그 후 현재까지 대한민국 불교 철학계의 돈 · 점 논쟁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성철은 지행합일(知行合一) 단계의 지(知)만이 진정한 지(知)이고 지눌의 돈오점수는 실제(實際)이고 세부까지 포함한 현실을 좇지 않는 직접 지각하거나 체험할 수 없는 관념과 표상(表象)에 경도(傾倒)되어 실증성이 희박(稀薄)하게 조직된 이론에 근거한 지(知)일 뿐 참 지(知)가 아니라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러나 지눌과 성철은 가르침의 대상이 달랐으므로 시비(是非)를 가리기가 어렵다. 지눌은 일반인에게 불교 교의를 풀어서 밝혔고 성철은 수행하는 승려에게 설법하였다.
중국 대륙에서 임제종(臨濟宗)을 개종(開宗)한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선종의 내밀(內密)한 특징인 소위 도교에서 영향 받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교시(敎示)하려는 취지(趣旨)로 한 설법(說法)인,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중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고측(古則)을 성철이 원용(援用)하여 인상(印象)을 남기면서 일반인에게도 유명해졌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話頭)는 최초에 미망(迷妄)하는 단계는 수도(修道)하기 이전 평범한 일상계(日常界)이나 수도를 이용해 득도(得道)하면 체험하는 평범한 일상을 완벽히 초월한 세계는 일상에서 하는 착각(錯覺)이 적멸(寂滅)한 상태이나 진정하게 득도하려면 거기서 진일보(進一步)해 평범한 세계로 회귀하여야 한다. 화광동진을 이용해 다시 돌아온 그 세계는 외양상으로는 최초처럼 속(俗)되고 평범한 단계와 같으나 내면 상으로는 처음과는 차원이 판이(判異)하다. 이는 나선형(螺旋形) 성격을 띤 회귀를 뜻한다. 이로 보아 임제(臨濟)의 후예(後裔)인 선사(禪師) 유신(惟信)이 설법한 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공안(公案)은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 사상을 그대로 해설한 교시(敎示)이다. 재언하면, 수도자(修道者)가 작고 대수롭지 않게 득도(得道)했을 때는 물이 산으로, 산은 물인 듯 혼란(混亂) 스럽지만, 득도하는 규모가 확대되면 물은 물로, 산은 산으로 보게 된다. 외부 세계나 자연을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관망(觀望)하는 태도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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