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부설(浮雪)거사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7.

산과바다

부설거사와 물병 설화

오도송(悟道頌) 모음 HOME

 

 

 

                  부설(浮雪)거사 (7세기경 신라 선덕여왕 시절) 오도송(悟道頌)

 

 

共把寂空雙去法(공파적공쌍거법) : 공적(空寂)의 오묘한 법 함께 잡고서

同棲雲鶴一間菴(동서운학일간암) : 구름 속에 암자 하나 짓고 사노라.

已和不二歸無二(이화불이귀무이) : 불이(不二)에 화하여 무이(無二)로 돌아갔거늘

誰問前三輿後三(수문전삼여후삼) : 뉘라서 전후 삼삼 물어오는가

閑看靜中花艶艶(한간정중화염염) : 고운 꽃 바라보며 한가로이 졸고

任聆窓外鳥喃喃(임령창외조남남) : 창밖에 재잘거리는 새소리도 때로 듣는구나.

能今直入如來地(능금직입여래지) : 곧바로 여래지에 들어간다면

何用區區久歷參(하용구구구력참) : 구구히 오래도록 닦아 무엇하리

 

 

* 남남(喃喃): 혀를 빨리 돌려 알아들을 수 없게 재잘거림 이나 재잘거리는 소리.

 

* 삼국시대 신라의 부설거사로 널리 알려진 승려 생몰연대는 미상

우리나라 대표적인 거사(居士)로 성은 진씨(陳氏),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

경상북도 경주 출신.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으며,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불국사에서 원정(圓淨)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지었다는 계룡산 등운암, 변산 월명암, 김제 망해사, 문경 사패산 묘적암이 있다.

 

* 부설 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속명은 진 광세였다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하였으며 아이들끼리 놀 때 에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웠다뿐만 아니라 스님을 보면 반가워하고 살생하는 것을 보면 슬퍼하더니 홀연 불국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부설(浮雪)이라 하였다.

 

부설은 도반(道伴)인 영희(靈熙), 영조(靈照)스님과 함께 묘적암을 짓고 수행하고 있었다그 뒤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 중 두릉(杜陵현 전북 김제군)에 당도하여 불심이 깊은 구무원(仇無寃)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무원의 딸인 묘화는 날 때부터 벙어리였으나 부설을 보고 말문이 열렸다.  또한 그의 법문을 듣고부터 사모하게 되어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면 죽겠다며 매달리니 부설의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더구나 수행자의 파계시킴을 괴로워하던 딸의 아버지마저 애원하니 거절하였던 부설은 모든 것을 인연으로 생각하고 묘화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자비 방편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실망하며 떠나는 두 도반을 보내며 부설은 새로운 각오를 하였다묘화와 혼례를 치른 부설은 아들 등운과 딸 월명을 낳고 살다가 남매가 성장하자 아이들을 부인에게 맡기고홀로 초막에서 수도에만 전념하더니 확연 대오하였다.

 

어느 날 옛 도반인 영희영조스님이 찾아와 거사를 측은하게 바라보자부설은 세 개의 병에 물을 가득히 넣어 줄에 매달아 놓고 병을 깨뜨리되 물이 쏟아지지 않는 것으로 서로의 공부를 시험해보자고 하였다영희영조스님이 병을 치자 병이 깨어지며 물도 쏟아졌으나 부설이 병을 치자 병은 깨어졌으나 물은 병 모양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참된 법신은 생사가 없이 여여(如如)하다.” 부설은 두 스님에게 설법하였다.

 

目無所見無分別(목무소견무분별) : 눈으로 보는 것 없으니 분별이 없고

耳聽無聲絶是非(이청무성절시비) : 귀로 소리 없음을 들으니 시비가 끊어졌네.

分別是非都放下(분별시비도방하) : 분별과 시비를 놓아 버리고

但看心彿自歸依(단간심불자귀의) : 다만 마음 부처를 보고 스스로 귀의할지다.

 

게송을 마치고는 좌탈(座脫)하였다영희영조스님이 다비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에 모시고 부도를 세웠다이후 등운월명도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묘화부인은 가산을 정리하여 부설사를 세우고 110세까지 살다가 앉아서 입적하였다.

 

부설거사 일가족의 깨달음은 성불에 있어서 승속(僧俗)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마치 연꽃이 흙탕물에 있으나 물들지 않는 이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설거사와 물병 설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묘화부인(妙花婦人)은 어느덧 일남(一男) 일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등운(登雲)이요, 딸은 월명(月明)이었다. 남매가 성장하자 거사(居士)는 병()이 있다는 거짓 핑계로 서해(西海) 백강변(白江邊)에 초가집을 지으니 이 곳이 망해사(望海寺)이다. 부설은 이 곳에서 석가세존이 6년동안 한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불경을 외웠음과 달마대사(達磨大師)9년동안이나 벽을 바라보고 앉아 참선했음을 본받아 심공을 잠수하던 중 어느 날 옛날 친우(親友)인 영희(靈熙), 영조(靈照) 두 대사(大師)가 참례를 마치고 두능 (杜陵=지금의 만경) 해안에 자리잡은 망해사를 찾아와 희롱적인 태도를 보이자 부설(浮雪)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3인의 공부의 서투름과 의숙함을 시험하여 보자"면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은 낙수병(諾水添) 3개를 처마에 높이 매어 달고 세 사람이 지팡이로 일시에 때리자고 하니 두 대사(영희, 영조)가 이에 응락하고 낙수병을 때리니 두 개의 병은 깨어지면서 물이 쏟아져 버렸다. 그러나, 부설거사가 때린 병은 깨어졌으나 물은 처마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또 부설거사와 결혼한 구묘화(仇妙花)는 환하게 밝은 대낮에 바람과 구름으로 조화를 부려 때 아닌 비와 눈을 내리게 하였고, 그 비 한 방울이나 눈 한 조각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신통한 도술을 보였다고 한다.

 

* 부설(浮雪)거사 열반송(涅槃頌)

 

 

 

 

산과바다 이계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