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四溟惟政(사명유정) (1544~1610)의 禪詩 (11)~(20)
● 四溟惟政(사명유정) (1544~1610. 號 松雲, 四溟堂. 字 離幻. 法名 惟政. 塔號 鐘峰. 密陽 出生. 本貫 豊川. 俗姓 任氏, 俗名 應圭. 諡號 慈通弘濟尊者)
시간정보 | 내용 |
1544년 10월 17일 | 유정 출생 |
1561년 | 유정은 선과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다. |
1573년 | 유정은 김천 직지사 주지로 있으면서 보우(조선)의 문집과 잡저의 간행에 발문을 쓰고 교정을 보았다. |
1574년 | 유정은 서울 봉은사의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향산 보현사 휴정의 문하로 들어갔다. |
1578년 | 유정은 휴정의 문하를 떠나 금강 표훈사 보덕암으로 들어갔다. |
1579년 | 유정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의 발문을 지었다. |
1580년 | 유정은 「부석사 안양루 중창기문(浮石寺安養樓重創記文) 」을 썼다. |
1586년 | 유정은 옥천(沃天)에서 무상(無常)의 법을 깨달았다. |
1589년 | 유정은 1589년에는 오대산 영감난야(靈鑑蘭若)에 머물면서 「월정사 법당의 서까래를 고치고 올린 글(月精寺法堂改椽錄)」을 지어 모금하며 사찰의 중수에 매달렸다. |
1592년 | 유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성 유점사에 있으면서 인근 아홉 고을의 백성들을 구출하였다. |
1593년 | 유정은 평양성 탈환의 혈전과 삼각산 노원평(蘆原坪) 및 우관동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
1594년 4월 13-4월 16일 | 유정과 가토 기요마사의 1차 회담. |
1594년 7월 12일 ~ 7월 16일 | 유정과 가토 기요마사의 2차 회담. |
1594년 12월 23일 | 유정과 가토 기요마사의 3차 회담. |
1595년 | 유정은 조정에「을미상소(乙未上疏)」를 올렸다. |
1597년 3월 18일 | 유정과 가토 기요마사의 4차 회담. |
1604년 8월 | 유정은 탐적사(探賊使)로 쓰시마섬에 파견되었다. |
1604년 12월 | 유정은 교토에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본법사(本法寺)에서 회견했다. |
1605년 4월 | 유정은 일본에 연행된 피로인(被擄人) 1,300여 명(혹은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
1605년 10월 | 유정은 향산 보현사로 가서 휴정의 영탑전에 절하였다. |
1606년 | 유정은 선조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여 삼청동에 초가를 지어 기거하면서 궁궐 공사를 감독하였다 |
1608년 | 유정은 선조가 승하하자 서울로 올라와 배곡하니, 이로 인하여 병히 심해져 합천 해인사로 내려갔다. |
1610년 8월 26일 | 유정은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
(11) 過善竹橋(과선죽교) : 선죽교를 지나며
山川如昨市朝移 ~ 山川은 어제 같은데 世上은 변하고
玉樹歌殘問幾時 ~ 宮中의 소리 들린 지 얼마나 되었는가.
落日孤城春草裏 ~ 봄풀 속 쓸쓸한 성에 해는 지는데
祗今惟有鄭公碑 ~ 지금은 삼가하와 鄭夢周 公의 碑石만이 남았구나.
(12) 過震川(과진천) : 震川을 지나면서
古驛重陽抱劍悲 ~ 옛 역에서 重陽節을 맞아 칼을 안고 슬퍼하노라니
病身唯有月相隨 ~ 病든 몸에 오직 달만이 서로 따르누나.
衡峯燒芋眞吾願 ~ 衡峯(형봉)에서 토란 굽기가 참으로 내 소원인데
官路乘肥豈我宜 ~ 벼슬길과 살찐 말 타기가 어찌 내게 맞으리.
瘴海十年空遠戍 ~ 瘴毒(창독) 바다에 십년토록 헛되이 먼 邊方 지키니
香城何日定歸期 ~ 山으로 돌아갈 날 언제일까.
天淸一雁江東遠 ~ 맑은 하늘 한 마리 기러기 멀리 江 동쪽으로 날아가는데
明滅燈前攬弊衣 ~ 가물거리는 등불 앞에서 헤진 옷 집어 드네.
* 衡峯(형봉)에서 土卵 굽기 : 中國 唐나라 때 李泌이란 사람이 道를 묻기 위해 衡嶽寺(형악사)에 남이 먹고 남은 밥을 먹고 사는 懶殘(나잔)이란 修行者를 찾아 갔다.
그는 마침 土卵을 굽고 있다가 李泌을 보고 宰相 노릇이나 한 십년 하라고 하였다는 故事가 있다.
(13) 過咸陽(과함양) : 함양을 지나며
眼中如昨舊山河 ~ 둘러보니 어제 같은 옛 山河여
蔓草寒煙不見家 ~ 우거진 덩굴 풀, 찬 연기에 집들은 보이지 않네.
立馬早霜城下路 ~ 서리 내린 성 아래 길목에 말을 세우고
凍雲枯木有啼鴉 ~ 차가운 구름 서린 고목에 까마귀가 울고 있네.
(14) 歸鄕(귀향) : 고향으로 돌아옴
十五離家三十四 ~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서른 살에 돌아오니
長川依舊水西來 ~ 긴 내는 옛날과 같은데 냇물은 西에서 흘러온다.
柿橋東岸千條柳 ~ 감나무 다리 東녘 언덕에 우거진 이천그루 버드나무는
强半山僧去後裁 ~ 절반이나 山僧이 간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
(15) 己丑橫罹逆獄(기축횡리역옥) : 己丑年에 엉뚱하게 逆獄에 걸려들다
蛾嵋山頂鹿 ~ 아미산 위의 사슴
擒下就轅門 ~ 사로잡혀 轅門(원문)에 내려왔구나.
解網放還去 ~ 그물을 풀고 달아나니
千山萬樹雲 ~ 온 산에 나무숲과 구름이네.
* 橫罹(횡리) : 뜻밖에 재앙을 당함
* 轅門(원문) : 軍營(군영)이나 營門을 이르던 말
(16) 寄春州刺史(기춘주자사) : 春州 刺史에게
遙望春城雁不來 ~ 봄날 성을 멀리서 바라보니 기러기 날지 않고
幾番風雨暗書灰 ~ 몇 번이나 비바람에 책의 재처럼 바래어졌던가.
只今獨坐舡潭上 ~ 지금은 홀로 앉아 강위의 배를 보며
空憶當時勸酒杯 ~ 당시에 술 권하던 일 공연히 생각해 본다.
(17) 謹奉洛中諸大宰乞渡海詩(근봉락중제대재걸도해시) : 日本으로 使臣을 떠나면서 서울에서 여러 大臣들을 모시고
年來做錯笑餘生 ~ 몇 년 동안 엉뚱한 짓하여 여생이 우습게 되었는데
數月荷衣滯洛城 ~ 數個月이나 修行服 차림으로 서울에 머물렀네.
愁病平分送春恨 ~ 근심하는 내 분수는 봄을 보내는 한이요
歌吟半惱憶山情 ~ 노래하는 괴로움은 山을 생각하는 정이라.
浮杯謾道堪乘海 ~ 盞(잔)하나 띄우고서 감히 바다를 건넌다고 말하고
飛錫初羞誤說兵 ~ 지팡이 날려 兵事를 잘못 말함이 먼저 부끄럽네.
爲國重輕諸老在 ~ 나라를 위하는 온갖 일은 여러 로장들이 있으니
願承珠唾賁東行 ~ 원컨대 아름다운 詩로써 東쪽(日本) 걸음 빛내 주소서.
* 惟政이 壬辰倭亂이 끝난 후인 1604년에 日本으로 使臣을 가서 戰爭捕虜 三千五百 名을 데리고 돌아왔다.
(18) 鹿門長川別門下諸公(록문장천별문하제공) : 鹿門長川에서 門下의 諸公과 離別하다
山到西江路亦分 ~ 山이 西江에 이르니 길 또한 나눠지고
楊花愁殺別離魂 ~ 버들개지는 離別하는 마음을 愁心으로 죽이네.
日斜獨出瞿塘峽 ~ 해는 지는데 혼자 瞿塘峽(구당협)에 나와
回首千峰萬樹雲 ~ 돌아보니 봉우리마다 숲과 구름뿐이로다.
(19) 登香爐峯(등향로봉) : 香爐峯에 오르며
山接白頭天杳杳 ~ 山은 白頭山에 접하고 하늘은 한없이 높고
水連靑海路茫茫 ~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고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大鵬備盡西南闊 ~ 대붕이 날아갈 만큼 西南은 광활하니 갖춰있고
何處山河是帝鄕 ~ 山河의 어디쯤이 곧 天帝의 사는 곳일는지.
(20) 萬瀑洞(만폭동) : 만폭동에서
此是人間白玉京 ~ 이곳은 인간의 白玉京이요
琉璃洞府衆香城 ~ 유리동의 官廳이요 온갖 향기의 城이구나.
飛流萬瀑千峰雪 ~ 날아 흐르는 온갖 瀑布는 온 산봉우리의 눈이라
長嘯一聲天地驚 ~ 길게 한번 소리치니 天地가 놀라는구나.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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