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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虔州八境圖八首(幷引) 건주팔경도팔수(병인)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26.

산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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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虔州八境圖八首(幷引) 건주팔경도팔수(병인) : 소식(蘇軾)

                건주팔경도를 읊은 시와 그 서문

 

幷引

南康八境圖太守孔君之所作也君旣作石城卽其城上樓觀臺榭之所見而作是圖也東望七閩南望五嶺覽群山之參差俯章貢之奔流雲煙出沒草木蕃麗邑屋相望雞犬之聲相聞觀此圖也可以茫然而思粲然而笑嘅然而嘆矣蘇子曰此南康之一境也何從而八乎所自觀之者異也且子不見夫日乎其旦如盤其中如珠其夕如破璧此豈三日也哉苟知夫境之爲八也則凡寒暑朝夕雨暘晦冥之異坐作行立哀樂喜怒之變接於吾目而感於吾心者有不可勝數者矣豈特八乎如知夫八之出乎一也則夫四海之外詼詭譎怪,《禹貢之所書鄒衍之所談相如之所賦雖至千萬未有不一者也後之君子必將有感於斯焉乃作詩八章題之圖上

 

坐看奔湍繞石樓使君高會百無憂三犀竊鄙秦太守八詠聊同沈隱侯

濤頭寂寞打城還章貢臺前暮靄寒倦客登臨無限思孤雲落日是長安

白鵲樓前翠作堆縈雲嶺路若爲開故人應在千山外不寄梅花遠信來

朱樓深處日微明皂蓋歸時酒半醒薄暮漁樵人去盡碧溪靑嶂繞螺亭

使君那暇日參禪一望叢林一悵然成佛莫敎靈運後著鞭從使祖生先

卻從塵外望塵中無限樓臺煙雨濛山水照人迷向背只尋孤塔認西東

煙雲縹緲鬱孤臺積翠浮空雨半開想見之罘觀海市絳宮明滅是蓬萊

回峰亂嶂鬱參差雲外高人世得知誰向空山弄明月山中木客解吟詩

 

 

幷引(병인)

南康八境圖, 太守孔君之所作也, 君旣作石城, 卽其城上樓觀臺榭之所見而作是圖也.

<남강팔경도>란 그림은 건주태수 공종한이 그린 것인데, 석성을 쌓은 뒤에 성 위에 세운 성루와 누대에서 본 경관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東望七閩, 西望五嶺, 覽群山之參差, 俯章貢之奔流, 雲煙出沒, 草木蕃麗, 邑屋相望, 鷄犬之聲相聞. 觀此圖也, 可以茫然而思, 粲然而笑, 嘅然而嘆矣.

동쪽으로는 평지가 드문 복건의 산들을 바라볼 수 있고, 서쪽으로는 광동을 사이에 두고 뻗어 있는 오령을 바라볼 수 있는데, 높이와 길이가 가지런하지 않은 들쭉날쭉한 산들이 손에 잡힐 듯 늘어서 있고, 급하게 흐르는 장강(章江)과 공강(貢江)을 굽어보면

운무가 출몰하고 초목이 번성하며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을들이 가깝게 이어져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처럼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생생한 묘사에 웃음이 나오면서 실제로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나도 몰래 탄식하게 된다.

 

蘇子曰: 此南康之一境也, 何從而八乎? 所自觀之者異也. 且子不見夫日乎, 其旦如盤, 其中如珠, 其夕如破璧, 此豈三日也哉.

나 소식이 하고 싶은 말은 이 그림에 묘사된 것은 남강이란 한 곳인데 왜 이라고 했을까하는 것이다. 이 팔경도를 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해를 본 적이 없는가? 아침에는 쟁반처럼 크고, 낮에는 진주처럼 작으며, 저물녘에는 눈이나 산에 가려 깨진 옥구슬처럼 보이는 것을 과연 세 개의 해라고 할 수 있을까?

 

苟知夫境之爲八也, 則凡寒暑, 朝夕, 雨暘, 晦冥之異, 坐作, 行立, 哀樂, 喜怒之變, 接於吾目而感於吾心者, 有不可勝數者矣, 豈特八乎.

만약 이 그림의 경관을 이라고 한 것을 알고 싶은 것이라면

겨울 해와 여름 해, 아침과 저녁, 비 오는 날과 개인 날, 구름이 두껍게 드리워 어두운 날, 또 앉아서 보는 풍경과 걸으면서 보는 변화하는 풍경과 꼼짝 않고 서서 보는 풍경, 슬플 때와 즐거울 때, 기쁠 때와 화날 때 눈에 비친 경색이 달라지고 마음에 느껴지는 것들도 달라져 그 변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인데 어떻게 이라고 특정할 수 있겠는가!

 

如知夫八之出乎一也, 則夫四海之外, 詼詭譎怪, 禹貢之所書, 鄒衍之所談, 相如之所賦, 雖知千萬未有不一者也. 後之君子, 必將有感於斯焉, 乃作詩八章, 題之圖上.

여덟 개의 경관이 실은 하나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생각을 세상 끝까지 넓혀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하고 괴이한 일들이 있고, 상서(尙書)우공(禹貢)에 기록된 고대의 지리, 춘추 시대 추연이 말한 구주의 장대한 지리관, 한나라 사마상여가 상림부(上林賦)에서 노래한 지리와 관계 된 아름다운 시부가 있다.

이들 문장이나 시에 남아 있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면 그 수가 천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훗날의 군자들이 이 그림을 보고 반드시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 시 여덟 수를 지어 그림 위에 남긴다.

 

 

其一

坐看奔湍遶石樓 : 석루를 휘감고 달리는 물을 앉아서 보며

使君高會百無憂 : 태수의 멋진 연회엔 아무런 근심도 없겠네

三犀竊鄙秦太守 : 진나라 태수의 세 마리 무소를 우습게 여기고

八詠聊同沈隱侯 : 시를 지어 심은후의 팔영시 같기를 바라네.

 

 

其二

濤頭寂寞打城還 : 성을 치고는 돌아오는 파도는 적막하고

章貢臺前暮靄寒 : 장공대 앞에는 저녁노을이 싸늘하네.

倦客登臨無限思 : 지친 길손은 올라오며 보면 끝없는 생각

孤雲落日是長安 : 저녁놀 조각구름 뜬 곳이 바로 장안일세

 

 

其三

白鵲樓前翠作堆 : 백작루 앞에는 수목들이 푸른 빛으로 무성하고

縈雲嶺路若爲開 : 산을 휘감은 구름은 길만 조금 열어 두었네.

故人應在千山外 : 오래된 벗님들이 천산만수 밖에 있어

不寄梅花遠信來 : 매화 활짝 핀 계절에도 소식 한번 없네.

 

 

其四

朱樓深處日微明 : 붉은 누대 깊은 곳의 희미한 햇빛이 들고

皂蓋歸時酒半醒 : 조개루에서 돌아올 땐 술이 반쯤 깨었네.

薄暮漁樵人去盡 : 땅거미 내려 어부와 나무꾼이 모두 다 돌아가

碧溪靑嶂遶螺亭 : 푸른 시냇물과 푸른 산이 나정을 에워싸고 도는구나

 

 

其五

使君那暇日參禪 : 사또님이 날마다 참선할 틈이 어디 있으리오

一望叢林一悵然 : 선원을 한번 바라보고 한번은 슬픔에 빠졌겠네.

成佛寞敎靈運後 : 성불하는 일은 사령운이 뒤지게 하지 말고

著鞭從使祖先生 : 채찍을 휘두르는 일은 조씨가 앞서게 하네.

 

 

其六

却從塵外望塵中 : 물러나 진외정에서 먼지 속을 바라보니

無限樓臺烟雨濛 : 수없이 많은 누대가 안개비로 덮여있네.

山水照人迷向背 : 산수가 뻔히 쳐다뵈는 곳 어디인지 알 수 없어

只尋孤塔認西東 : 외로운 탑을 찾아 동서의 방향을 인식하네.

 

 

其七

雲烟縹緲鬱孤臺 : 울고대에 구름과 안개가 옥색으로 아득하더니

積翠浮空雨半開 : 푸르름이 허공에 뜨고 비가 반쯤은 개였네.

想見之罘觀海市 : 지부산에서 신기루를 상상하며 보는데

絳宮明滅是蓬萊 : 붉은 궁전이 명멸하는 저기가 바로 봉래렸다.

 

* 명멸(明滅) :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함. 먼 데 있는 것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함. 나타났다 사라졌다 함. 밝을 명. 멸망할 멸

 

 

其八

回峰亂嶂鬱參差 : 들쑥날쑥 주위를 에워싼 울창한 산봉우리들

雲外高人世得知 : 구름 밖의 고상한 사람을 세상이 알 수 있을까

誰向空山弄明月 : 그 누가 빈 산에서 밝은 달을 벗 삼아 놀까?

山中木客解吟詩 : 시를 잘 읊는다는 산속의 목객 이겠지

 

 

後序

紹聖元年(1094), 蘇東坡貶官嶺南路經贛州時, 曾親臨八境臺,

소성 원년(1094)에 소동파가 영남으로 유배되어 공주를 지나갈 때 친히 팔경대로 가서

 

在遍覽贛州的旎風光之後, 深感原詩未能道其萬一, 遂補作後續一篇.

공주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두루 돌아본 뒤에 원시에서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후속으로 한 편을 보태 썼다.

 

八境圖後序

南康江水, 歲歲壞城, 孔君宗翰爲守, 始作石城, 至今賴之.

남강의 강물은 해마다 성 안의 길과 집을 무너뜨렸는데, 공종한이 태수로 있을 때 비로소 석성을 쌓아 지금까지 치수를 맡겨놓고 있다.

 

軾爲膠西守, 孔君實見代, 臨行出八境圖求文與詩, 以遺南康人, 使刻諸石.

내가 산동에 있는 교서(밀주密州)의 태수가 되었을 때, 공종한이 실물을 보여주는 대신 나 있는 곳으로 팔경도를 갖고 나와 보여주면서 시를 지어 친필로 써주면 남강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 바위에 새기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其後十七年, 軾南遷過郡, 得遍覽所謂八境者, 則前詩未能道出其萬一也.

그로부터 십칠 년 뒤, 내가 남쪽으로 좌천되어 건주를 지나가게 되었을 때, 팔경을 모두 돌아본 뒤에 전에 지었던 시가 아름다운 경승의 만분의 일도 말하지 못한 것을 알았다.

 

南康士大夫相與請於軾曰: 詩文昔嘗刻石, 或持而去, 今亡矣, 願復書而刻之.

남강의 사대부들이 내게 이런 요청을 했다.

전에 지어 써주신 시문을 바위에 새긴 것은 누군가 가져가 버려 지금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써주신 글을 새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時孔君已沒, 不忍違其請. 紹元年八月十九日眉山蘇軾書.

그때는 공종한도 이미 세상을 떠나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성 원년(1094) 팔월 열아흐렛날 미산 사람 소식 쓰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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