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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仙 李白 詩

국가행2수(鞠歌行二首) – 이백(李白)

by 산산바다 2020. 11. 4.

산과바다

 

李白 詩(이백 시) HOME

 

 

 

             국가행2수(鞠歌行二首) 이백(李白)

             곤궁한 처지를 노래하며

 

其一

玉不自言如桃李(옥부자언여도리) : 옥돌이 복숭아 자두나무처럼 말없으니

魚目笑之卞和耻(어목소지변화치) : 물고기 눈깔 모양도 변화씨(卞和氏) 치욕 비웃네.

楚國青蠅何太多(초국청승하태다) : 나라에 퍼런 쉬파리 어찌 그리 많은가

連城白璧遭讒毀(연성백벽조참훼) : 여러 성과 바꿀 和氏璧 모함당하네

荆山長號泣血人(형산장호읍혈인) : 荆山에서 오래 목 놓아 울며 피눈물 흘린 사람

忠臣死爲刖足鬼(충신사위월족귀) : 충신으로 죽어 발 잘린 귀신 되었네.

聽曲知寧戚(청곡지녕척) : 슬픈 곡조 듣고 寧戚 마음 알아차린 것은

夷吾因小妻(이오인소처) : 管仲夷吾寧戚 아내에게 들었기 때문이네.

秦穆五羊皮(진목오양피) : 秦穆公 양가죽 다섯 장으로

買死百里奚(매사백리해) : 죽을 목숨 백리해 샀다네.

 

*史記卷一百零九李將軍列傳第四十九太史公曰傳曰:「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從。」其李將軍之謂也余睹李將軍悛悛如鄙人口不能道辭及死之日天下知與不知皆為盡哀彼其忠實心誠信於士大夫也諺曰桃李不言下自成蹊」。此言雖小可以諭大也

史記/李將軍列傳太史公이 말하길, 전하는 말에,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명령해도 행하지 않는다.”하였다. 이는 李廣 장군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내가 본 李廣장군은 시골뜨기처럼 공손하고 무던하여(老實厚道), 말솜씨는 능통하지 못했다. 죽음에 이른 날, 천하에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가 애통함을 다하였다. 그 충실한 마음은 사대부에게 진실로 신뢰를 받지 않는가? 옛말에복숭아나무 자두나무는 말하지 않아도, 아래로 스스로 작은 길이 생긴다.”하였다. 이말은 비록 작을지라도, 큰 것에도 비유할 수 있다.

*詩經/青蠅營營青蠅止於樊豈弟君子無信讒言

詩經/青蠅에 앵앵거리던 퍼런 쉬파리, 울타리에서 쉬네. 의젓한 군자여, 모함하는 말 믿지 말게.

*藺相如나라에서 上卿을 지낸 사람이다. 趙惠文王(??~BC266) 秦昭王(BC324~BC251) 和氏璧15개의 성[連城]과 바꾸자 하였으나 지켜냈고, 廉頗將軍猜忌를 피하며 슬기롭게 이겨내 그와 刎頸之交를 맺었다.

*韓非子/說林上楚人和氏得玉璞楚山中奉而獻之厲王厲王使玉人相之玉人曰石也王以和為誑刖其左足及厲王薨武王即位和又奉其璞而獻之武王武王使玉人相之又曰石也王又以和為誑刖其右足武王薨文王即位和乃抱其璞而哭於楚山之下三日三夜淚盡而繼之以血王聞之使人問其故天下之刖者多矣子奚哭之悲也和曰吾非悲刖也悲夫寶玉而題之以石貞士而名之以誑此吾所以悲也王乃使玉人理其璞而得寶焉遂命曰和氏之璧

韓非子(??~B.C.233)의 어록韓非子/和氏나라사람 卞和氏(?~?)나라 산에서 다듬지 않은 옥돌을 얻어, 周厲王姬胡(?~BC828)에게 바쳤다. 周厲王이 옥을 감정 하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감정했다. 옥 감정인이 말하길, “돌입니다.”하니 임금은 和氏가 기만하였다고 하여, 그의 왼발을 잘랐다. 周厲王이죽고, 周武王姬發(BC1087~BC1043)이 즉위하였다. 和氏는그옥돌을 받들어 周武王에게 바쳤다. 周武王은 옥을 감정하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감정했다. 옥 감정인이 또 말하길, “돌입니다.”하니 임금은 또 和氏가 기만하였다고 하여, 그의 오른발을 잘랐다. 周武王이 죽고, 周文王姬昌(BC1152~BC1056)이 즉위하였다. 和氏 이에 그 옥돌을 품에 안고 楚山아래서, 사흘밤낮 통곡하였는데, 눈물이 다하고 피눈물로 이어졌다. 周文王이 그것을 듣고, 사람을 시켜 이유를 물으며, 말하길, “세상에 발 잘린 사람들 많은데, 너는 어찌 그리 슬피우느냐?”하니, 和氏가 대답하길, “발 잘린 것이 슬픈게 아닙니다, 슬픈 것은 보물 옥을 돌이라 말하고, 곧은 선비를 사기꾼이라 하니, 이것 때문에 내가 슬퍼합니다.” 임금이 이에 옥 감정인을 시켜 옥돌을 다듬게 하여 보물을 얻어, 마침내 명하길, “和氏의 구슬이라하였다.

* 춘추전국시대 나라 甯戚(=甯武子)은 가난하게 살다 나라로 와서, 齊桓公을 만나려 남의 노비가 되어, 동문 밖에서 소뿔 두드리며 슬픈 노래를 부르다, 관중이 그의 아내의 도움으로 벼슬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등용하여, 齊桓公(=小白, BC685~BC643)에게 발탁되어 재상에 올랐다.

* 荆山湖北省 북쪽과 河南省 閿鄕縣에 걸쳐있는 산인데 이로써 荊州라 불리고 荊門市가있다.

* 五羖大夫百里奚 : 나라 출신 百里奚나라에서 잡혀있을 때 秦穆公(BC682~BC621)五羖羊皮(양가죽다섯장)을 보내 그를 나라로 사들였다. 나이 일흔의 百里奚蹇叔(건숙)을 추천하고 由餘 등과 함께 穆公을 도왔다

 

 

洗拂青雲上(세불청운상) : 치욕 씻어 떨치고 청운에 오른 이들

當時賤如泥(당시천여니) : 그때는 진흙 같이 비천했네.

朝歌鼓刀叟(조가고도수) : 朝歌에서 칼 두드리던 백정 늙은이 呂尙

虎變磻谿中(호변반계중) : 磻溪에서 아름답게 변하였네.

一舉釣六合(일거조륙합) : 한 번에 온 세상을 낚아

遂荒營丘東(수황영구동) : 마침내 營丘 동쪽 차지했네.

平生渭水曲(평생위수곡) : 한평생 渭水 굽이에 있다고

誰識此老翁(수식차로옹) : 누가 이런 늙은이 알아줄까.

奈何今之人(내하금지인) : 어찌 그런가? 요즘사람들

雙目送飛鴻(쌍목송비홍) : 한 눈 팔며 날아가는 기러기만보네.

 

 

* 朝歌河南省 新鄕市 淇縣으로 殷墟에 해당한다. 朝歌의 백정 늙은이 呂尙棘津을떠나 팔십에 서쪽으로와 渭水 강변에서 낚시질하였다. (李白梁甫吟에서 朝歌屠叟辭棘津八十西來釣渭濱)이라 하였다. 呂尚渭川磻溪에서 낚시질하였다.

* 姜太公나라 山東省 昌樂縣 동남쪽 營丘에 봉해졌다.

 

 

其二

麗莫似漢宮妃(여막사한궁비) : 아름답기야 나라 궁비 王昭君 만한이 없고

謙莫似黃家女(겸막사황가녀) : 겸허하기야 나라 黃公 딸들 만한이들 없네.

黃女持謙齒髮高(황녀지겸치발고) : 黃公 딸들 겸손 지키다가 나이 만 들고

漢妃恃麗天庭去(한비시려천정거) : 나라 궁비 아름다움 만 믿다가 제왕궁전 떠났네.

人生容德不自保(인생용덕부자보) : 살아가는데 얼굴과 미덕 스스로 지킬 수 없고

聖人安用推天道(성인안용추천도) : 성인인들 어찌 하늘 도리 밀어낼까.

君不見(군불견) : 그대 모르는가?

蔡澤嵌枯詭怪之形狀(채택감고궤괴지형상) : 蔡澤 움푹하고 깡마른 이상한 외모지만

大言直取秦丞相(대언직취진승상) : 큰 언변으로 곧바로 나라 재상에 올랐네.

又不見(우불견) : 또 모르는가?

田千秋才智不出人(전천추재지불출인) : 田千秋 재능과 지혜 남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一朝富貴如有神(일조부귀여유신) : 하루아침에 신들린 듯 부귀해 졌네.

二侯行事在方冊(이후행사재방책) : 이 두 재상 행적 책속에 남아있는데

泣麟老人終困厄(읍린로인종곤액) : 기린에 눈물 흘린 늙은이 孔子 끝내 곤궁하였네.

夜光抱恨良歎悲(야광포한량탄비) : 夜光璧 안고도 한스럽게 어진 선비 탄식하고 슬퍼하니

日月逝矣吾何之(일월서의오하지) : 세월 가는데 나는 어디로 가나.

 

 

* 尹文子/大道上齊有黃公好謙卑有二女皆國色以其美也常謙辭毀之以為醜惡醜惡之名遠布年過而一國無聘者衛有鰥夫時冒娶之果國色然後曰:「黃公好謙故毀其子不姝美。」

나라의 尹文(BC360~BC280)이 지은尹文子나라에 黃公 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겸손하고 낮추기를 좋아했다. 딸 둘을 두었는데, 모두가 경국지색이었다. 아름다웠지만, 늘 겸손하게 말하여 아름다움을 훼손하여, 추악하다 하게 되었다. 추악하다는 이름이 널리 퍼져, 과년하여도 나라에서 청혼하는 자가 없었다. 나라에 홀아비가 있어, 개의치 않고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과연 경국지색이어서, 나중에 말하길, “黃公은 겸손을 좋아해, 그 딸들을 예쁘고 아름답지 않다고 험담하였다.”

* 齒髮은 자신의 나이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 史記卷七十九范睢蔡澤列傳第十九蔡澤燕人也游學干諸侯小大甚眾不遇而從唐舉相:「吾聞先生相李兌百日之內持國秉』,有之乎?」:「有之。」:「若臣者何如?」唐舉孰視而笑曰:「先生曷鼻巨肩魋顏蹙齃膝攣吾聞聖人不相殆先生乎?」蔡澤知唐舉戲之乃曰:「富貴吾所自有吾所不知者壽也願聞之。」唐舉曰:「先生之壽從今以往者四十三歲。」蔡澤笑謝而去謂其御者曰:「吾持粱刺齒肥躍馬疾驅懷黃金之印結紫綬於要揖讓人主之前食肉富貴四十三年足矣。」去之趙見逐之韓遇奪釜鬲於涂聞應侯任鄭安平王稽皆負重罪於秦應侯內慚蔡澤乃西入秦

史記/蔡澤列傳나라 觀相家唐擧가 빤히 보다가 웃으며 말하길, “선생은 코가 납작하고, 어깨는 높이 솟고,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콧대는 주저앉고, 다리는 오그라들었다. 성인은 관상과는 상관없다 들었는데, 아마 선생을 두고 하는 말 아닌지요?”

* 蔡澤(?~?)나라 유세객으로, 나라 사람 范睢(?~BC255)秦昭王(BC324~BC251) 52(BC 271) 재상이 되고 그가 추천한 인물들이 죄를 짓자, 蔡澤나라로 들어가 뒤를 范睢에게 사퇴를 권하고, 范睢秦昭王에게 추천하여 客卿이 된 뒤, 范睢의 뒤를 이어 나라 재상이 되었다.

* 田千秋(=車千秋, ?~BC77)漢武帝劉徹(BC156~BC87)에게 태자의 원통한 사정을 알려 재상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匈奴單于가 이를 비웃었다.

* 孔子家語/卷四/辯物叔孫氏之車士曰子鉏商采薪於大野獲麟折其前左足載以歸叔孫以為不祥棄之於郭外使人告孔子:「有麏而角者何也?」孔子徃觀之:「麟也胡為來哉胡為來哉?」反袂拭面涕泣沾衿

나라 王肅(195~256)이 엮은 孔子의 언행 및 孔子와 문인과의 논의를 수록한 孔子家語哀公(BC494~BC468) 14(BC480) 前漢儒生으로 나라 博士가 되었고, 한나라의 적합한 예절과 의례를 만들었다 叔孫氏(叔孫通=稷嗣君, ??~BC194)의 수레지기인 나라 사람子 鉏商(?~?), 큰 들에서 땔감을 모으다, 기린을 붙잡았는데, 그 왼쪽 앞다리가 부러져, 수레에 싣고 돌아왔는데, 叔孫이 상서롭지 못하다하여, 교외에다 버렸다. 사람을 시켜 孔子에게 알리며 말하길, “노루 같은데 뿔이 있는 것으로, 무엇인지요?”하니, 孔子가 가서 보고는, 말하길, “기린이다. 어찌 왔을꼬? 어찌 왔을꼬?”하고는, 소매를 뒤집어 얼굴을 닦고, 눈물 흘리며 우니 앞자락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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