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구호증징군홍(口號贈徵君鴻) – 이백(李白)
입으로 불러주어 선비 양홍(楊鴻)에게 주며
陶令辭彭澤(도령사팽택) : 陶淵明은 팽택현령(彭澤縣令)자리 내던지고
梁鴻入會稽(양홍입회계) : 梁鴻은 회계패릉산(會稽霸陵山)으로 숨어드네.
我尋高士傳(아심고사전) : 내가 高士傳을 뒤져보니
君與古人齊(군여고인제) : 그대는 옛사람과 나란하더군.
雲臥留丹壑(운와류단학) : 구름에 누워 붉은 골짜기에 머물며
天書降紫泥(천서강자니) : 하늘 신선 글 내려와 자주 빛 진흙으로 봉인되었네.
不知楊伯起(부지양백기) : 양백기(楊伯起)를 잘 알지는 못하나
早晚向關西(조만향관서) : 머지않아 關西孔子楊伯起처럼 될 것이네.
* 此公時被徵 (이분은 당시 조정의 부름을 받았다)는 부제가 있다.
* 徵君(징군) : 초빙된 선비. 朝廷에서 부른 學德이 높은 선비의 尊稱
* 陶令(도령) : 陶淵明(365~427)이 41세 이던 406년 彭澤縣令으로 就任한 후 80여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歸鄕한 후 다시는 관직을 맡지 않았다. 潛歎曰:「我不能為五斗米折腰向鄉里小人」 即日解印綬去職。
陶潛이 개탄하며, “나는 오두미(쌀 닷 말, 현령의 연간 녹봉) 때문에 향리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말하고, 그날로 인수를 풀어 관직을 떠났다.
* 梁鴻(양홍)(=梁伯鸞25??~104??) : 後漢 扶風平陵 사람으로 절개 높은 선비. 80년 전 후에 官吏들의 奢侈와 放蕩을 諷刺한 五噫歌를 지어 체포하려 하자 오나라霸陵山으로 숨었다. 아내 孟光은 擧案齊眉로 유명하다. 擧案相莊/鴻案相莊, 孟光擧案, 齊眉, 孟光荊釵, 荊釵布裙(형차포군, 가시나무 비녀와 베치마. 孟光의 儉素한 옷차림)
* 高士傳(고사전) : 西晉學者皇甫謐(215~282)이 奇人, 隱者의 이야기를 적은 책.
* 紫泥(자니) : 임금 詔書를 武都에서 나는 자줏빛 진흙으로 封했다.
* 楊震(양진)(=楊伯起, 50??~124) : 經典에 밝아 關西孔子楊伯起라 불렸고, 나이 쉰에 荊州茂才로 薦擧되어 荊州刺史, 東萊太守를 지냈다.
續漢書曰.揚震為東萊太守.道經昌邑.初震為荊州.舉茂才王密.密時為昌邑令.謁見.至夜.懷金十斤以遺震.震曰.故人知君.君不知故人何也.密曰.暮夜無知者.震曰.天知神知.子知我知.何謂無知.密愧而出.
<속한서>에 양진이 동래 태수가 되어, 도중에 昌邑을 경유 하였는데, 처음 양진이 荊州茂才가 될 때 무재로 천거한 이가 王密이고, 王密은 당시 昌邑令 이었다. 찾아와 뵙고, 밤이 되자, 금 열 근을 품고 양진에게 건넸다. 양진이, 옛날부터 그대를 알고 있는데, 그대는 옛 친구를 몰라보니 어찌된 일인가 하니, 왕밀이 밤이 저물어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다고 하느냐하자, 왕밀이 부끄러워 나갔다.
산과바다 이계도
'*** 詩 *** > 詩仙 李白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도곡(君道曲) – 이백(李白) (0) | 2020.11.04 |
---|---|
국가행2수(鞠歌行二首) – 이백(李白) (0) | 2020.11.04 |
과팽려호(過彭蠡湖) - 이백(李白) (0) | 2020.11.04 |
고유소사항(古有所思行) - 이백(李白) (0) | 2020.11.04 |
계전추(桂殿秋) - 이백(李白) (0) | 2020.11.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