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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백파긍선(白坡亙璇)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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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긍선(白坡亙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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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파긍선(白坡亙璇오도송(悟道頌) (1767 1852)

 

 

오각(吾覺 : 나의 본모습)

頭髼鬆兮眼卓朔(두봉송혜안탁삭) : 머리카락은 더부룩하고 눈은 툭 불거진

此其老僧眞面目(차기노승진면목) : 그 모습이 늙은이의 진면목일세.

上柱天之下柱地(상주천지하주지) : 위로 하늘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선 그것을

佛祖元來覓不得(불조원래멱불득) : 부처님도 조사(祖師)님도 원래 찾을 길 없구나.

呵呵呵呵是甚(가가가가시심마) : 우습도다. 그것이 무엇일까?

南北東西唯是我(남북동서유시아) : 남북동서에 오직 나 혼자이로다.

 

 

선사는 용문암에서 5년간 수선결사를 마치고 고향의 인근 고을인 장성 백양산 운문암으로 돌아와 쇠잔한 불교계에 새로운 전력을 하게 되었다.

선승(禪僧). 전주(全州) 이씨. 법호는 백파(白坡)이며, 긍선은 법명이다. 전라도 무장(茂長) 출생.

조선 말기의 승려(1767~1852). 속성은 이(李). 법명은 긍선(亙璇). 백파는 법호이다. 설파(雪坡)와 설봉(雪峯)의 문하에서 불도를 닦아 많은 학인을 가르쳤다. 저서에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선문수경(禪門手鏡)≫ 따위가 있다.

 

1767(정종 10)선운사(禪雲寺)시헌(詩憲)의 제자가 되었고, 연곡(蓮谷)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21세 때 상언(尙彦)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평안북도 초산의 용문암(龍門庵)에서 수행하다가 오도(悟道)하였으며, 지리산영원암(靈源庵)으로 가서 상언에게 인가를 받고 1년 동안 상언 밑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영구산 구암사(龜巖寺)에서 회정(懷淨)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26세 때 백양산 운문암(雲門庵)에서 개당(開堂)하여 대중 100여 명에게 선강(禪講)한 뒤 20여 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811불법의 진실한 뜻이 문자에 있지 않고 도를 깨닫는 데 있는데도 스스로 법에 어긋난 말만을 늘어놓았다.”고 하면서 참회한 뒤, 초산 용문동으로 들어가서 5년 동안 수선결사운동(修禪結社運動)을 전개하였다. 그 뒤 다시 청도(淸道) 운문사에서 선법을 현양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사람들이 호남선백(湖南禪伯)이라고 불렀다.

이 때 선의 지침서인 선문수경 禪門手鏡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당시 선사들 사이에서 일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1830(순조 30) 구암사로 돌아와 선강법회를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1840년부터 화엄사(華嚴寺)의 선사영당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좌선하다가 4월에 입적하였다. 그 때의 나이는 85, 법랍은 73세였다.

다비 후에 제자들이 구암사에 탑을 세우고 영정을 화장사(華藏寺)에 봉안하였으며, 1858년 김정희(金正喜)가 찬한 비를 선운사에 세웠다. 법계는 휴정(休靜)4대파 가운데 하나인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며, 화엄사상과 선을 겸수하는 가풍을 지닌 지안(志安)의 문손으로 법맥은 휴정­언기(彦機의심(義諶설제(雪霽지안­체정(體淨상언(尙彦회정­긍선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유형(有炯한성(翰醒정관(正觀) 등이 있다. 그는 율과 화엄과 선의 정수를 모두 갖춘 거장이었으며, 평소에 교유가 깊었던 김정희는 초상화를 그린 후 그를 해동의 달마(達磨)’라고 격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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