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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悟道頌

무외선사(無畏禪師) 오도송(悟道頌)

by 산산바다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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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외선사(無畏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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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외선사(無畏禪師오도송(悟道頌) (1792 ~ 1881)

 

 

무위한(無位閑 : 몸도 마음도 없는 것)

松窓土壁溪邊地(송창토벽계변지) : 창밖에 푸른 솔이 보이는 시냇가 초암에

白首緇衣懶一翁(백수치의나일옹) : 흰머리 검은 승복 게으른 늙은이 하나

意到忽然心自樂(의도홀연심자락) : 마침내 한 경지 다다르고 보니 마음 절로 즐거워

朗吟閑步任西東(랑음한보임서동) : 낭랑한 목소리로 경 읊조리며 한가로이 거니네.

 

 

월파공(月破空 : 깨달음의 소리)

卓立庭前栢(탁입정전백) : 우뚝 선 뜰 앞의 잣나무

長靑直聳空(장청직용공) : 창공으로 솟은 늘 푸른 모습

影從千古月(영종천고월) : 천고의 달빛 따라 그림자 드리우고

聲任四時風(성임사시풍) : 사계절 바람 좇아 소리를 낸다.

 

 

선사의 법명은 선영(善影), 자는 무외(無畏), 법호는 영허(映虛), 당호는 역산당(亦 山堂)이다. 속성은 임(林) 씨이며, 아버지는 득원(得元), 어머니는 조(趙) 씨이다. 조 씨는 어느 날 꿈에 불상에서 서광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조선 정조 16년(1792) 3월 23일 한양성 운현현(雲現現:지금의 운현동)에서 선사는 탄생하였다.

12세에 경기도 양주 학림암(鶴林庵) 용운승행(龍雲勝行) 선사 문하에 나아가 삭발염의하였고, 구족계는 성암덕함(聖巖德函) 선사에게 받았다. 그 후 선사는 화악지탁(華岳知濯) 선사에게 수참(修參)하였다. 21세 되던 해 한여름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같은 비가 내렸는데, 3일째 되는 날 벼락치는 소리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하였다.

 

인봉덕준(仁峯德俊) 선사의 법맥을 이은 선사는, 이후 주로 남쪽 지역에서 보내다가 중년이 되어 함경도 안변 석왕사 내원암에 들어가 입적하실 때까지 주석했다. 선사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아 정진에 방해가 되므로 한적한 별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선사에게 학문을 닦고 수참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납자들이 마치 여름 하늘의 구름 같았으며, 의발을 전해 받은 납자는 겨울에 눈 덮힌 산처럼 빼어났다.

선사께서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즉 바른 지혜의 안목을 확립하여 불조(佛祖)의 법등(法燈)을 전하였다. 선사께서 선설(禪說)한 활구(喝句)는 늘 깨어있으며 신령스레 어둡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마음이며, 뭇 신묘함을 머금고 온갖 곳으로 흘러도 결코 변화되지 않는 것, 그것이 성품이다. 이 마음과 성품을 좇아서 쉬지 않고 분별하는 것이 정(情)이라 한다. 성품은 마음의 바탕이고 정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과 성품은 광범위하여 만물에 이르기까지 어디에고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란 마치 창공에 떠 있는 달과 같아서 구름이 걷히면 밝고, 구름이 가득하면 어두운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보통사람들이라고 해서 오염되지도 않고 성인이라고 해서 깨끗하지도 않다. 마치 물과 물결처럼 비록 맑은 물, 흐린 물로 구별되더라도 물의 젖는 속성은 마찬가지다. 비록 그렇지만 이 한 물건은 마치 금강동자(金剛童子)와 같아서 천 번 태어나고 만 번 죽는다 하여도 그 경지가 변함없고 육도사생(六道四生)을 윤회하여도 그 모습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성인이고 그것을 못 깨달으면 보통 사람이다. 선사께서는 그것을 깨달아 가르침을 통해 우리 중생들에게 안락한 저 열반의 세계로 들게 하였다. 선사께서는 마음과 성품과 정(情)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 물건의 불멸하는 진리를 일깨워주었다.

선사께서는 고종 17(1800)년 설봉산 내원암에서 세수 89세 법랍 77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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