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喚惺志安(환성지안) (1664~1729)의 禪詩 (1)~(12)
● 喚惺志安(환성지안) (1664~1729. 法號 喚惺. 法名 志安. 字 三諾. 俗姓 鄭氏, 江原道 春川 出生)
환성 지안 스님은 배불숭유(排佛崇儒)하던 조선조의 숙종 때 수많은 대중들을 교화한 선지식이다.
스님의 성씨는 정(鄭)씨로서 강원도 춘천에서 조선조 현종 5년(1664)에 태어났다.
1725년 전라도 김제의 금산사에서 연 화엄대법회에 대중이 1천4백여 명이 모이는 등 영향이 크자 유생들의 모함으로 1729년 제주도에 유배되어 제주도에서 7일 만에 입적하였다.
환성스님은 15세에 미지산(彌智山)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여 머리를 깎았다. 미지산은 경기도 양평에 있고 지금은 용문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지산이라 불린 것은 ‘고승대덕들의 덕풍지광(德風智光)이 미만(彌滿)해 있다’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고도 하나, 오히려 그 보다는 순우리말로 용을 ‘미리’·‘미지’·‘미르’라 불렀던 것과 연관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덕풍지광’과 ‘용’ 두 가지 다 환성지안 스님을 연상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이미지이다.
환성 지안 스님은 쌍봉정원(雙峰 淨源)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은 뒤 17세 되던 해에 월담(月潭)스님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월담은 한눈에 환성의 됨됨이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의발(衣鉢)을 환성에게 전해준다.
헌헌장부(軒軒丈夫)로 성장한 환성스님은 용모부터 특이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27세 되던 해에 스님은 모운진언(慕雲震言)대사가 금산(金山: 금릉)의 직지사(直指寺)에서 법회를 개설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간다.
모운진언(광해14, 1622∼숙종29, 1703)스님은 벽암(碧岩)스님의 제자로 당시 화엄학의 대종장(大宗匠)으로 이름을 떨치던 인물이었다.
모운스님은 환성스님이 찾아와 법담을 나누자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단박에 알아보고 비록 자신보다 20여년 연하(年下)의 선지식이었지만 그를 공경해마지 않으며 강석(講席)을 물려주고 자신은 홀연히 직지사를 떠났다 한다.
이때부터 환성 지안스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날 모운스님의 강석을 이어받은 환성스님의 법문을 들은 수백 명의 대중들은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듯 거침없는 그의 설법에 크게 감화되어 막혔던 의문이 시원하게 뚫리고, 이 때문에 그 뒤로 환성스님의 회상(會上)으로 많은 승려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금산사에서의 화엄법회 영향으로 제주도로 귀양 와서 입적한 것이다. 즉 1725년 전라도 김제 금산사에서 화엄대법회를 열었는데, 환성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운집한 대중이 무려 1400여명에 이르자 유생들의 그를 심각히 경계하고 모략을 일삼았다.
결국 1729년 마침내 화엄대법회의 일로 인하여 모함이 들어가서 지리산에 주석하던 중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얼마 후 풀려났으나 다시 제주도로 유배가 7일만인 1729년(영조5년) 7월7일에 제주도 어시오름 아래에서 부좌입적(趺坐入寂)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스님의 세수는 66세 법랍51세였다. 일설에는 입적할 때 한라산이 울고 바다가 끓어오르기를 삼일 동안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평화통일 불사리탑사에 환성지안스님을 기리는 순교비가 서있다. 스님의 부도는 해남 대흥사에 있다.
출처 : (제주불교신문)
(1) 偈頌(게송) : 게송
西來密旨孰能和 ~ 西쪽으로부터 온 隱密한 뜻 뉘라서 능히 和答하랴
處處分明物物齊 ~ 곳곳마다 분명하고 만물은 들어났네.
小院春深人醉臥 ~ 뜰에는 봄이 짙어서 사람은 취하여 누웠는데
滿山挑李子規啼 ~ 온산에는 복숭아 자두 꽃이요 두견이 울부짖네.
(2) 登伽倻山(등가야산) : 가야산에 올라
孤雲陳迹碧苔籠 ~ 고운(孤雲)의 묵은 자취 이끼 속에 묻히었고
獨把衰毛倚老松 ~ 나 홀로 흰머리로 老松에 기대섰다.
欲盡未看奇特處 ~ 보지 못한 奇特한 곳 모두 보고자.
又携甁錫上高峰 ~ 물병과 지팡이로 높은 峰에 또 오른다.
* 고운(孤雲) : 崔致遠의 號
崔致遠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857년(헌안왕 1)에 태어났고 사망일은 미상이다.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합격한 뒤 관직생활을 하며 「토황소격문」 등 명문을 써서 문명을 떨쳤다. 29세에 귀국하여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리는 등 의욕적으로 시정개혁과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진골귀족들의 배척을 받고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스러져가는 신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유교·불교·노장사상을 넘나드는 복합적 사상을 담은 많은 글을 남겼다.
* 병석(甁錫) ~: 물병과 지팡이
(3) 示道英師(시도영사) : 道英스님에게
水逢深處淨 ~ 깊은 곳에 이르면 물은 맑아지듯
心到靜時奇 ~ 고요한 때 마음은 참으로 기이(奇異)하다.
何事長途走 ~ 무슨 까닭에 먼 길을 달려
區區轉背馳 ~ 허겁지겁 더더욱 멀어지려는가.
* 기이하다(奇異) : 보통과는 다르게 유별나고 이상하다
(4) 示學徒(시학도) : 學徒(학생)에게 보이다
坐石學堅水學淸 ~ 돌에 앉아 단단함을 배우고 물에서 맑음을 배워
對松思直月思明 ~ 소나무를 보면 곧음을 생각하고 달을 보면 밝음을 생각하지.
無言萬像皆師友 ~ 말없는 모든 것이 모두가 스승이고 벗인데
唯獨山林主伴成 ~ 오직 山과 숲이 主人이 되고 손님이 되네.
(5) 心燈(심등) : 마음의 등불
歷劫傳之無盡燈 ~ 歷劫토록 전해오는 다함이 없는 燈불
不曾挑剔鎭長明 ~ 일찍이 심지를 돋우지 않아도 永遠토록 밝다네.
任他雨灑兼風亂 ~ 비 뿌리고 바람 몰아쳐도
漏屋虛窓影自淸 ~ 허물어진 빈 窓에 그림자마저 스스로 맑구나.
(6) 悟道頌(오도송) : 오도송
<鶴羽心(鶴의 깃털에서 깨달은 마음)>
靑鸞毿尾落雲中 ~ 푸른 난새의 긴 꼬리가 구름 속에서 떨어져
五月炎天做雪風 ~ 五月의 불꽃 하늘에 눈바람을 지어낸다.
一揮何啻欺煩署 ~ 한 番 휘두르면 어찌 煩惱와 執着을 속일 뿐이겠는가
拂盡山僧名利功 ~ 山僧의 이름과 功을 모두 떨어 버리네.
(7) 偶吟(우음) : 우연히 읊다
盡日惺惺坐 ~ 온終日 또렷이 앉아 있으니
乾坤一眼中 ~ 하늘 땅 모두가 한 눈 속이라.
有朋來草室 ~ 벗들이 草室을 찾아드니
明月與淸風 ~ 밝은 달 그리고 깨끗한 바람 인다.
(8) 幽居(유거) : 그윽한 곳에 살면서
底事無心臥水西 ~ 어찌하여 무심히 누워 있는데 물은 서쪽으로 흐르는가?
只緣忘世愛幽棲 ~ 다만 세상 인연을 잊고 그윽한 곳에 사는 것을 사랑할 뿐
茶爐爲客開深竈 ~ 茶 火爐는 손님을 위해 깊은 아궁이를 열었는데
藥圃諱人隔小溪 ~ 약초밭이 사람을 꺼려 작은 계곡 건너에 있네.
(9) 幽吟(유음) : 유유하게 살며 읊음
盡日忘機坐 ~ 온終日 無心히 앉아만 있으니
春來不識春 ~ 봄이 와도 봄 온 줄 알지 못하네.
鳥嫌僧入定 ~ 山僧의 입정(入定)을 새는 싫어해
窓外喚山人 ~ 窓밖에서 山僧을 부르고 있네.
* 입정(入定) : 선정(禪定)에 드는 것. 마음을 한 경계에 정하고 고요히 생각함.
* 선정(禪定) : 俗情을 끊고 마음을 가라앉혀 三昧境에 이름
(10) 題草堂(제초당) : 초당에서
斗屋宜吾拙 ~ 못난 나에게는 오두막이 適格인데
支頤到夕陰 ~ 턱을 고이고 있자니 해가 저무네.
杜鵑啼白晝 ~ 대낮에 杜鵑새 소리를 듣고 보니
方覺卜居深 ~ 사는 이곳이 참으로 깊은 곳일세.
(11) 春吟(춘음) : 봄을 읊다
意譯
緤杖尋幽逕 ~ 마음의 고삐 잡아 마음자리 즉각 깨달아
徘徊獨賞春 ~ 깨달음의 世界를 홀로 즐기며 기리네.
歸來香滿袖 ~ 돌아 올 때 가득한 깨달음의 香氣여
胡蝶遠隨人 ~ 物我一體의 境地에 到達함이여.
直譯
지팡이 고삐 잡고 그윽한 길 따라
홀로 배회하며 봄을 맞아 기리네.
돌아 올 때 소매 가득 찬 꽃의 향기에
나비가 멀리서 따라오고 있네.
(12) 呼韻(호운) : 운을 부르기에
壁破南通北 ~ 壁은 무너져 내려 휑하니 뚫려 있고
叔躪眼近天 ~ 처마도 성글어 하늘이 잘 보이네.
莫謂荒凉苦 ~ 싸늘하고 춥다고 말하지 말라
仰風得月先 ~ 바람과 달이 먼저 알고 찾아오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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