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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의 禪詩(선시) (71)~(80)

by 산산바다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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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禪詩 (71)~(80)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허응당보우(虛應堂普雨, 1509~1565, 조선 중기의 승려)1530(중종 25)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1548년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고, 1551년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제(禪敎兩宗制)를 부활시켜 승과를 실시했는데 이때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각각 선종과 교종의 승파에 장원으로 뽑혔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로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귀양, 제주목사인 변협(邊恊)에게 피살당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가 있습니다.

 

보우가 활약했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성리학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조광조,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성리학 극성기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대비(文定大妃)의 도움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불교의 제도를 부활하려는 보우를 유자들은 요승’, ‘권승이라며 철저하게 폄하했지만, 보우는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뛰어난 고승이었다.

유가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불교부흥을 위해 매진했던 보우의 삶과 행적은 승려 한 개인이 전체 유림을 대상으로 싸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 보우는 이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선교양종과 승과를 복구하고, 도승제(度僧制)를 부활하는 등의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조선불교의 중흥조. 스님은 일찍이 불학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와 서에 능하여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마하연사, 표훈사 등 금강산 일대에서 20여 년간 수행하다 세상을 나와 호남지역을 유람하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폐불과 법난을 몸소 겪고 양주 회암사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병고를 떨치고 일어날 즈음 당시 봉은사의 명곡조사가 노환으로 물러나게 되자 문정대비는 보우대사를 천거 봉은사에 주석케 하였다. 문정대비의 후원을 얻은 보우대사는 쇠락해가는 조선불교를 중흥하기 위한 근본도량을 봉은사로 하고 이곳에서 중흥불사를 시작하였다.먼저 승려 5000여명 도첩을 주어 승려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선교양종을 부활하였으며, 승과고시를 실시함으로써 불교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 서산*사명과 같은 당대의 고승을 배출할 수 있었다. 스님은 시문에 능하였고, 불교에 있어서는 선과 교에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선교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선(孺佛仙) 삼교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사상은 후학들이 편찬한 허응당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6년 동안의 정진(精進) 끝에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력(法力)을 얻었고, 그밖에도 대장경을 모두 섭렵하는 한편 <주역>도 공부하였다. 당시 그를 지도해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용문사(龍門寺)의 견성암(見性庵)에 있던 지행(智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48(명종 3) 12월 봉은사(奉恩寺) 주지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문정대비로 하여금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 (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능침(陵寢)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에서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은사와 봉선사(奉先寺)에는 방()을 붙여 잡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조선시대 와서 처음 있는 일로서 유생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비화되었다.

 

이때부터 문정대비·보우와 유생들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이후 문정대비로 하여금 선교 (禪敎) 양종을 다시 부활시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게 함으로써 15515월에는 선종과 교종이 다시 부활되었다. 선교 양종을 부활하라는 문정대비의 비망기가 내려진 뒤 6개월 사이에 상소문이 무려 423건이나 되었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것이 75()나 되었다. 그러나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佛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불법을 보호하고 종단을 소생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156547일에 문정대비가 죽고, 대비의 장례를 마친 유생들은 곧바로 보우의 배척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이이(李珥)<논요승보우소 (論妖僧普雨疏)>를 올려 그를 귀양 보낼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보우는 1565612일에서 7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의 죽음이 서울에 알려진 것은 1015일이었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 (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1, <수월도량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 (水月道場空花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1, <권념요록(勸念要錄)>1권 등이 있다.

 

 

 

(71) 淸平述懷(청평술회) 2 : 청평산에서 마음에 품은 생각

 

移住淸平古梵宮 ~ 淸平山 옛 절에 옮기어 머무니

八年宗事夢俱空 ~ 八 年間 宗門일이 꿈처럼 모두 空虛하네.

已無自作三祗業 ~ 이미 스스로 지은 三阿僧祇劫業은 없고

只有天生一片忠 ~ 다만 한조각 하늘이 준 만이 있네.

每爇芙蓉香馥郁 ~ 매양 芙蓉香 사르면 香氣 물씬하여

常呼聖上壽高崇 ~ 恒常 임금님 壽命 높고 높으시라 불렀네.

此非苦被吾形役 ~ 이는 내 몸을 괴롭히는 勞役이 아니라

焚點禪林是古風 ~ 사르고 불 밝히는 禪林의 옛 風習이라.

 

 

 

(72) 淸平入院後書示大衆(청평입원후서시대중) : 淸平山 절집에 들어가 大衆에게 써서 보이다

 

非才那敢賦行藏 ~ 주 없으며 어찌 나고 듦을 로 짓겠는가?

對衆聊書此日容 ~ 大衆해 오늘 모습을 써서 보일뿐이라.

奉旨忝隨天上使 ~ 임금님 뜻 받들고 使臣을 따라와

到山欣見鶴邊松 ~ 에 이르러 소나무가 을 기쁘게 보았네.

亭攀檀樹吟新句 ~ 박달나무에 依支亭子에서 를 읊조리고

碑掃苔文讀舊蹤 ~ 碑石에 이끼 씻어내고 옛 자취를 읽었노라.

試問山僧知我否 ~ 試驗삼아 山僧에게 나를 아는가 모르는가?’를 묻노니

白雲飛處數靑峯 ~ 흰 구름 나는 곳에 몇 의 푸른 봉우리.

 

 

 

(73) 秋樓述懷(추루술회) : 가을의 樓閣에서 懷抱를 적다

 

每向虛樓坐省躬 ~ 매양 빈 樓閣에 앉아 스스로를 省察하노니

日來秋興起無窮 ~ 나날이 가을 興趣가 일어 無限하구나.

露凝黃菊花含玉 ~ 이슬 맺힌 黃菊을 머금었고

楓雜靑松碧鬪紅 ~ 丹楓과 소나무는 푸름과 붉음을 서로 다투네.

風勁自隤新罅栗 ~ 드센 바람 잦아드니 밤송이 벌기 始作하고

霜寒多寂舊鳴蟲 ~ 서리 차가와지니 울어대던 벌레 소리 조용하구나.

只堪獨許伊消息 ~ 나만이 이 消息을 받아들이나니

難與師資暗洩通 ~ 스승 弟子 사이에서도 하기가 어렵도다.

 

 

 

(74) 淸平雜詠(청평잡영) : 淸平寺에서 읊다

 

* 청평사(淸平寺) : 강원도 춘천시 청평산에 있는 절. 이 시의 작자인 허응당은 과거 제도 중에 승과를 두어 불교계의 행정을 담당하는 승려를 선발하고, 승려에게 신분증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가 공인하는 승려를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등의 불교 진흥책을 펴다가 잠시 청평사 주지로 있은 다음 다시 서울의 봉은사 주지로 옮겼다.

 

<1>

淸平山上淸平寺 ~ 淸平山 위의 淸平寺

殿古僧殘情可哀 ~ 집도 낡고 스님도 줄어 애처롭구나.

雲中孤塔沒靑草 ~ 구름 속의 외로운 은 푸른 풀에 묻히었고

松下兩碑生綠苔 ~ 소나무 아래 두 碑石엔 푸른 이끼 생겨났네.

 

當時眞樂問何在 ~ 當時의 참 즐거움 어디에 있는지?

此日淸風吹面來 ~ 오늘은 맑은 바람 얼굴에 불어오네.

獨立天壇望復望 ~ 천단(天壇)에 홀로 서서보고 또 보니

一輪明月上崔嵬 ~ 둥그렇게 밝은 달이 우뚝한 봉우리에 솟네.

 

* 천단(天壇) :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 이것은 원래 도교적 성격의 장치인데, 조선시대에 도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불교나 민속과 습합된 상태로 존재하였다.

<2>

獨坐金文誦兩篇 ~ 홀로 앉아 두 經典 외우고 있으니

夜深山月照床邊 ~ 밤 깊은 달이 寢床 곁을 비추네.

蝶夢自消雙眼碧 ~ 잠은 절로 달아나고 두 눈이 푸르니

客情非動一心圓 ~ 들뜬 感情은 움직이지 않고 한 마음이 圓滿하네.

 

王喬駕鶴神猶淺 ~ 왕교(王喬)을 탔다지만 精神이 오히려 얕고

禦寇乘風道亦顚 ~ 바람을 타고 적을 막았다는 것 또한 가 전도顚倒된 것이라.

爭似懶菴無伎量 ~ 어찌 아무런 能力도 없는 나만 같으랴.

渴泉飢粟臥雲眠 ~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구름 아래 누워 자네.

 

* 왕교(王喬) :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신선. 흔히 왕자교(王子喬)라 한다. 학을 타고 다녔다 한다.

<3>

獨坐高堂萬首詩 ~ 높은 집에 홀로 앉아 萬 首를 즐기나니

閑吟不覺到朝㬢 ~ 閑暇로이 읊다 보면 어느 사이 아침 햇살 비치네.

燈生煖蕚鍾鳴曉 ~ 불에는 따뜻한 꽃받침이 생기고 은 새벽을 알리는데

雪作寒梅日上時 ~ 해가 솟으면 梅花는 눈에 덮여 차갑네.

淡粥沸鐺香滿竈 ~ 맑은 죽()이 솥에 끓으니 香氣가 부엌에 가득하고

凍烏移樹影翻枝 ~ 추위에 언 까마귀 나무 사이로 그림자 번득인다.

致知格物功成客 ~ 事物理致를 터득(攄得)하여 을 이룬 사람.

雲裏如吾更有誰 ~ 구름 속에 나와 같은 이 또 누가 있을지?

 

<4>

辭宗來舊隱 ~ 글 잘 쓰던 사람이 옛날 隱居地로 와서

無事可驚神 ~ 일 없이 지내니 精神驚異롭구나.

金殿參西佛 ~ 佛殿에선 阿彌陀佛 參拜하고

天壇禮北辰 ~ 天壇에선 北極星禮拜하네.

眼將溪共碧 ~ 눈은 시냇물과 함께 푸르고

道與日俱新 ~ 는 해와 함께 새로워지네.

岩畔和烟臥 ~ 바위 곁 안개 속에 누우니

都緣聖德春 ~ 모두가 거룩한 봄 德分이로다.

 

<5>

林間了無客 ~ 숲 속에 손님이 없어서

幽興獨恢恢 ~ 그윽한 興趣 홀로 아주 크구나.

每浴龍潭水 ~ 매양 龍潭 물에 沐浴하고

常風盤石臺 ~ 恒常 너럭바위 언덕에서 바람 쐬네.

吟松山雨至 ~ 에 비 내리면 소나무 읊조리고

香谷木蓮開 ~ 木蓮 피어나면 골짜기 香氣롭네.

石逕歸來慣 ~ 돌아오는 돌길 익숙하고

芒鞋半綠苔 ~ 짚신엔 이끼가 折半이네.

 

<6>

古寺無隣竝 ~ 옛 절엔 함께 할 이웃이 없고

林間獨賞春 ~ 숲 속에서 홀로 봄을 感賞하네.

花開仙洞霧 ~ 仙洞 안개 속에 꽃은 피고

草軟佛峯烟 ~ 佛峯 안개 속에 풀은 부드럽다.

西澗聞琴盡 ~ 서간(西澗)에서 거문고소리 다하도록 듣다가

南池照影頻 ~ 南池에서 자주 그림자 비추어보네.

年光眞可樂 ~ 四季景致 참으로 즐겁고

幽興自通神 ~ 그윽한 興趣 神과 절로 하네.

* 서간(西澗) : 서쪽 계곡의 시내

 

<7>

飛瀑輕雷動 ~ 날아 떨어지는 瀑布소리는 가벼운 천둥소리

寒松午日陰 ~ 겨울 소나무 한낮에도 그늘지네.

臺中無限味 ~ 언덕 가운데 無限한 맛

都付一高吟 ~ 모두 다 한번 높게 읊조려본다.

 

<8>

恐踏藥苗嫌鹿下 ~ 藥草 싹 밟을까 걱정이라 사슴 내려올까 염려되고

忌渾淸澗掃蝦蟆 ~ 맑은 시내 흐려질까 싫어 두꺼비 쫓아내네.

蒼苔小逕無人到 ~ 파란 이끼 낀 작은 길에 찾아오는 이 없어

轉覺淸平與世賖 ~ 淸平山 世上과 멀리 있음을 점차 깨닫네.

 

<9>

五更雲淨月色冷 ~ 五 更에 구름 맑고 달빛 차가우면

一杖雙屨登天壇 ~ 지팡이 짚고 짚신으로 天壇에 오르네.

禮象三三祝復祝 ~ 三拜 禮를 거듭하여 祈願하고 또 祝願하니

不知空翠沾衣冠 ~ 山中 푸른빛이 衣冠을 적시는 줄 몰랐네.

 

<10>

自住淸平樂自多 ~ 淸平에 머무른 뒤 즐거움 절로 많아

終年無譽亦無呵 ~ 해 다가도록 稱讚도 없고 꾸지람도 없네.

有時閑向西川畔 ~ 때로 閑暇로이 西川가로 하여

快脫雲衫掛碧蘿 ~ 五色 적삼(赤衫) 훌훌 벗어 푸른 송라(松蘿)에 거네.

 

<11>

自憐盤石白玲瓏 ~ 하얗고 玲瓏한 너럭바위 절로 가련(可憐)한데

下有淸潭如鑑空 ~ 아래에 맑은 못 거울같이 비어 있어

齋餘曳杖獨遊賞 ~ 공양(供養) 후에 지팡이 끌고 홀로 노닐며 感賞하니

古逕落花深自紅 - 옛 길에 지는 꽃 스스로 몹시도 붉어라.

 

<12>

淸平何事好 ~ 淸平에서 무슨 일이 좋은가?

最好遠京城 ~ 서울에서 먼 것이 가장 좋다네.

嶺有雲舒卷 ~ 고개에 구름은 퍼졌다 걷혔다 해도

門無客送迎 ~ 에는 보내고 맞아주는 길손은 없네.

神凝消蟻夢 ~ 精神 모으니 개미의 꿈도 사라지고

心靜聽鸞笙 ~ 마음 고요히 봉황(鳳凰)피리 소리 듣는다.

此是忘機處 ~ 이곳이 바로 世上일 잊는 곳

虛堂月自盈 ~ 빈 집엔 달빛만 절로 가득하구나.

 

<13>

仙洞深深瑞日長 ~ 仙洞은 깊고 깊어 좋은 날씨 길고

梨花數樹濕雲香 ~ 배꽃 몇 그루 구름에 젖어 香氣롭네.

子規似識幽人意 ~ 杜鵑새 숨어사는 사람 마음을 아는 듯

叫過繁枝雪滿場 ~ 울며 번화한 가지 지나자 배꽃 마당 가득하네.

 

<14>

幸住希夷古道場 ~ 다행히 희이자(希夷子) 옛 도량에 머무니

風泉崖谷稱吾望 ~ 바람과 샘이 벼랑과 골짜기 나의 바램대로라네.

藥畦忌客開深壑 ~ 藥草밭 손님을 꺼려 깊은 골짜기에 열어놓고

花卉憐蜂種夕陽 ~ 벌을 가여워하여 꽃을 夕陽에 심었네.

蘿月照心資慧力 ~ 송라(松蘿) 사이 달빛 마음을 비추어 智慧의 힘 바탕이 되고

松風吹面動詩腸 ~ 솔바람 얼굴에 불어와 를 짓고 싶은 마음 흔드네.

何知造物虛靈境 ~ 어찌 알았겠는가, 造物主虛靈境界

巧引疎慵直洞房 ~ 게으른 이 사람 곧장 洞房으로 巧妙히 끌어들일 줄.

 

* 이자현(李資玄, 1061~1125) :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 학자, 문인이다. 본관은 인주(仁州), 자는 진정(眞靖),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이며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 희이자(希夷子) 이자현. 도덕경 제14장의 그것을 보려 하면 보이지 않으므로 라 하고, 그것을 들으려 하면 들리지 않으므로 라 하며, 그것을 붙들려 하면 얻지 못하므로 라 한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그의 호부터가 심상치 않다.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배우기로는, 노력하고 애쓰면 못 이룰 것이 없다. 그러나 희이자라는 호는 그러한 노력 자체가 곧 그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호는 뭇 세간의 거대한 흐름을 뒤집는 크나큰 뜻을 품고 있다. 보려 한즉 그르치고 들으려 한즉 그르치고 얻으려 한즉 그르친다. 희이자는 애쓰기를 그치고 쉬라고 가르친다. 그는 한 암자를 두고 식암(息庵)이라 명명했다.

 

<15>

天能敎我入杉蘿 ~ 하늘이 나를 나무 송라(松蘿) 덩굴로 끌어들여서

泉石榮華與世賖 ~ 泉石의 영화로 세상과 멀어지게 하였네.

深碧坐臨西澗水 ~ 깊고 푸른 西澗 물가에 앉고

淺紅行見後山花 ~ 옅은 粉紅빛 뒷산의 꽃 걸으며 보네.

茶爐備火收松子 ~ 화롯불 준비하러 솔방울 모으고

丹竈添羞采蕨芽 ~ 부엌에 반찬 보태려 고사리 싹 따네.

更有十分堪畫處 ~ 다시 그림 그리기에 딱 좋은 곳 있으니

南峯舒卷紫烟霞 ~ 남쪽 산봉우리 자주빛 노을이 펴고 걷히네.

 

<16>

性癖耽泉石 ~ 性品泉石을 지나치게 탐닉(耽溺)하여

築臺西澗涯 ~ 西澗 벼랑에 를 쌓아놓고

高閑常獨臥 ~ 아주 閑暇롭게 항상 홀로 누워서

幽興每自怡 ~ 그윽한 興趣 매번 스스로 기뻐하네.

檀樹風搖處 ~ 박달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곳

松梢月掛時 ~ 소나무 끝에 달이 걸릴 때

洞深誰識此 ~ 골짜기 깊으니 누가 이곳을 알까나?

林下翠禽知 ~ 숲 아래 초록빛 새가 알리라.

 

<17>

眞樂文殊古院西 ~ 眞樂公 文殊院 옛 절 西쪽에

有臺蕭爽景難題 ~ 시원한 가 있어 景致를 그려내기 어렵네.

琴彈香桂風搖葉 ~ 香氣로운 桂樹나무 잎을 바람이 흔들어 거문고소리 내고

玉振淸湍雨打溪 ~ 맑은 여울 비가 후둘기어 소리 震動하네.

磵石白銀誰甲乙 ~ 개울물 흰색 돌은 어느 것이 낫고 못한가.

岩花紅錦鬪高低 ~ 바위틈 고운 붉은 꽃 높고 낮음을 다투네.

鶴邊松月收棋局 ~ 날아 소나무에 달 비추면 바둑판 거두고

隔巚子規枝上啼 ~ 봉우리 사이에 두고 杜鵑새 가지에서 우는구나.

 

 

 

(75) 淸平八詠 1. 盤石送客 : 반석에서 손님을 보냄

 

龍潭雙瀑下 ~ 龍潭雙瀑 아래에有石平如砥 ~ 숫돌같이 平平한 바위가 있어爲送東南客 ~ 四方으로 떠나는 손님 보내기 因遊十二時 ~ 열두 時間 하루를 노니네.春歸花自老 ~ 봄 가면 꽃은 저절로 시들고雲出岫無私 ~ 구름 나와도 봉우리 私心이 없어寂寂誰同己 ~ 寂寂하여 누가 나와 함께 하는가?山禽是子期 ~ 새가 바로 鍾子期라네.

 

 

 

(76) 淸平八詠 2. 龍潭看瀑 : 용담에서 폭포를 보다

 

石上長松下 ~ 바위 위 잘 자란 소나무 아래에披襟坐看川 ~ 옷깃 헤쳐 놓고 앉아서 시냇물 보니天紳垂斷壁 ~ 하늘 띠가 깎아지른 絶壁에 드리웠고玉浪沸深淵 ~ 구슬 물결이 깊은 못에 들끓네.細雨迷春洞 ~ 가는 비가 봄 골짜기에 흩날리는 듯輕雷雜管絃 ~ 가벼운 천둥소리가 樂器소리 뒤섞은 듯賞闌還擧目 ~ 한창 感賞하다가 문득 눈을 드니落照掛西巓 ~ 落照西쪽 산마루에 걸렸구나.

 

 

 

(77) 淸平八詠 3. 南池照影 : 南池에 비치는 그림자

 

扶疎檀樹下 ~ 茂盛한 박달나무 아래에古鏡十分明 ~ 옛 거울 참으로 밝구나.影蹙庬眉皺 ~ 그림자 오그라들면 두터운 눈썹 주름지고波寒道骨淸 ~ 물결 차가우니 道骨 맑구나.池從人旣淨 ~ 못은 사람 따라서 이미 淸淨해졌고心得水還平 ~ 마음은 물을 만나 문득 平安해졌네.誰別根塵界 ~ 누가 六根六塵世界 分別하는가?都忘物我情 ~ 事物과 나의 을 모두 잊었네.

 

 

 

(78) 淸平八詠 4. 西川洗衲 : 西川에서 납의(衲衣)를 씻다

 

齋餘聊散策 ~ 공양 후 잠시 散策하면서

袞袞到溪湄 ~ 그럭저럭 溪谷 물가에 이르니

川霽朝煙歛 ~ 비 개인 시냇물 아침 안개 걷히고

山明午景移 ~ 은 밝아 낮 그늘 옮겨지네.

七斤塵破衲 ~ 먼지에 헤진 일곱 근 僧服

三踏洗無緇 ~ 세 번 밟아 씻으니 검음이 없어지네.

掛曝松梢臥 ~ 소나무 가지에 걸어 말리며 누우니

岩風徹骨吹 ~ 바위에서 부는 바람 뼛속에 스며든다.

 

 

 

(79) 淸平八詠 5. 天壇禮象 : 天壇에서 를 올리다

 

瓊臺金殿後 ~ 구슬 대 金堂 뒤로

齋陟五更初 ~ 五 更 初에 재() 올리려 오르니

皎皎昭靈象 ~ 교교히 神靈스런 聖象 밝고

蒼蒼靜玉虛 ~ 창창한 하늘은 고요하구나.

三三禮不盡 ~ 끝없이 절해도 다하지 못하고

一一頌無餘 ~ 하나하나 讚頌하여 남음이 없네.

應速同桴鼓 ~ 應報 신속함은 북채로 북을 침과 같으니

連芳降國儲 ~ 꽃다운 國脈 이을 世子 誕生하게 하소서.

 

 

 

(80) 淸平八詠 6. 逍遙遣寂 : 逍遙臺에서 적적함을 달래다

 

春深花織地 ~ 봄 깊어지자 꽃이 땅을 놓고

臺訪佛峯腰 ~ 佛峯 허리에 를 찾으니

空碧浮雲卷 ~ 하늘은 파랗게 뜬구름 걷히고

山晴宿霧消 ~ 이 개어 자던 안개 사라지네.

九天遙底處 ~ 九天 저 먼 곳

三島杳難招 ~ 三島 아득해 찾아가기 어려워라.

一遺枯禪寂 ~ 오래된 선적처(禪寂處)에 남으니

悠悠興自饒 ~ 유유한 興趣 저절로 넘쳐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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