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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의 禪詩(선시) (81)~(88)

by 산산바다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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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禪詩 (81)~(88)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허응당보우(虛應堂普雨, 1509~1565, 조선 중기의 승려)1530(중종 25)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1548년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고, 1551년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제(禪敎兩宗制)를 부활시켜 승과를 실시했는데 이때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각각 선종과 교종의 승파에 장원으로 뽑혔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로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귀양, 제주목사인 변협(邊恊)에게 피살당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가 있습니다.

 

보우가 활약했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성리학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조광조,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성리학 극성기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대비(文定大妃)의 도움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불교의 제도를 부활하려는 보우를 유자들은 요승’, ‘권승이라며 철저하게 폄하했지만, 보우는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뛰어난 고승이었다.

유가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불교부흥을 위해 매진했던 보우의 삶과 행적은 승려 한 개인이 전체 유림을 대상으로 싸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 보우는 이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선교양종과 승과를 복구하고, 도승제(度僧制)를 부활하는 등의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조선불교의 중흥조. 스님은 일찍이 불학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와 서에 능하여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마하연사, 표훈사 등 금강산 일대에서 20여 년간 수행하다 세상을 나와 호남지역을 유람하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폐불과 법난을 몸소 겪고 양주 회암사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병고를 떨치고 일어날 즈음 당시 봉은사의 명곡조사가 노환으로 물러나게 되자 문정대비는 보우대사를 천거 봉은사에 주석케 하였다. 문정대비의 후원을 얻은 보우대사는 쇠락해가는 조선불교를 중흥하기 위한 근본도량을 봉은사로 하고 이곳에서 중흥불사를 시작하였다.먼저 승려 5000여명 도첩을 주어 승려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선교양종을 부활하였으며, 승과고시를 실시함으로써 불교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 서산*사명과 같은 당대의 고승을 배출할 수 있었다. 스님은 시문에 능하였고, 불교에 있어서는 선과 교에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선교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선(孺佛仙) 삼교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사상은 후학들이 편찬한 허응당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6년 동안의 정진(精進) 끝에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력(法力)을 얻었고, 그밖에도 대장경을 모두 섭렵하는 한편 <주역>도 공부하였다. 당시 그를 지도해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용문사(龍門寺)의 견성암(見性庵)에 있던 지행(智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48(명종 3) 12월 봉은사(奉恩寺) 주지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문정대비로 하여금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 (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능침(陵寢)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에서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은사와 봉선사(奉先寺)에는 방()을 붙여 잡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조선시대 와서 처음 있는 일로서 유생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비화되었다.

 

이때부터 문정대비·보우와 유생들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이후 문정대비로 하여금 선교 (禪敎) 양종을 다시 부활시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게 함으로써 15515월에는 선종과 교종이 다시 부활되었다. 선교 양종을 부활하라는 문정대비의 비망기가 내려진 뒤 6개월 사이에 상소문이 무려 423건이나 되었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것이 75()나 되었다. 그러나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佛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불법을 보호하고 종단을 소생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156547일에 문정대비가 죽고, 대비의 장례를 마친 유생들은 곧바로 보우의 배척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이이(李珥)<논요승보우소 (論妖僧普雨疏)>를 올려 그를 귀양 보낼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보우는 1565612일에서 7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의 죽음이 서울에 알려진 것은 1015일이었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 (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1, <수월도량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 (水月道場空花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1, <권념요록(勸念要錄)>1권 등이 있다.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15~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81) 淸平八詠 7. 仙洞尋幽 : 仙洞 그윽한 곳을 찾다

 

仙境知何處 ~ 神仙境界 어느 곳인지 아는가.

林間曳杖尋 ~ 숲 사이로 지팡이 끌고 찾아가네.

苔封松逕滑 ~ 이끼 덮인 솔밭 길 부드럽고

花積洞門深 ~ 꽃 쌓인 골짜기 이 깊구나.

雲暝山常潤 ~ 구름 어두워 산은 恒常 젖어 있고

峯回谷自陰 ~ 봉우리 감도는 골짜기 절로 그늘지네.

感看鐫四字 ~ 새겨진 4感激하여 보며

忘却去來今 ~ 只今 오고 가고를 잊어버렸네.

 

 

 

(82) 淸平八詠 8. 息菴觀靜 : 식암(息菴)에서 고요함을 보다

 

庵在仙區奧 ~庵子神仙 區域의 깊은 곳에 있어

軒臨古澗圍 ~ 처마는 오래된 시냇물이 에워쌌구나.

山花紅錦障 ~ 에 핀 꽃은 붉은 비단 병풍

岩桂碧羅幃 ~ 바위틈 계수나무는 푸른 비단 휘장(揮帳)

隣遠僧來少 ~ 이웃 멀어 찾아오는 스님 적고

雲深俗到稀 ~ 구름 깊어 사람 오는 일도 드므네.

寥寥無事坐 ~ 寂寞하게 일없이 앉아서

觀靜露天機 ~ 고요히 보니 천기(天機)가 드러나는구나.

 

* 천기(天機) : 모든 조화를 꾸미는 하늘의 기밀

 

 

 

(83) 秋樓述懷(추루술회) : 가을 樓閣에서 述懷하다

 

每向虛樓坐省躬 ~ 每日 亭子 向하고 앉아 내 몸을 살피나니

日來秋興起無窮 ~ 해가 뜨니 가을 興趣 끝없이 일어나네.

露凝黃菊花含玉 ~ 맺힌 이슬 菊花을 머금고

楓雜靑松碧鬪紅 ~ 단풍나무는 푸른 솔에 섞여 푸른빛이 붉은 빛과 다투네.

風勁自隤新罅栗 ~ 바람이 굳세어지니 저절로 새 밤이 벌어지고

霜寒多寂舊鳴蟲 ~ 서리 차가워지니 더욱 쓸쓸하고 지난 벌레 우는구나.

只堪獨許伊消息 ~ 다만 혼자만이 저 소리를 감당(堪當)하나니

雜與師資暗洩通 ~ 雜與이 스님에게 몰래 말해주려네.

 

* 述懷하다 :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다

 

 

 

(84) 行上人雪中來見病僧以偈贈別(행상인설중래견병승이게증별) : 行上人이 눈 속에 든 나를 찾아왔기에 偈頌을 지어 離別하며 주다

 

<1>

淸平誰訪病衰顔 ~ 淸平山까지 누가 들고 老衰한 얼굴 보러 訪問하겠나?

萬疊靑山獨閉關 ~ 첩첩 靑山닫아걸고 홀로 지냈네.

多謝上人多古意 ~ 스님에게 더욱 感謝하니 옛 생각 자꾸 떠오르는데

脚耕深雪苦來還 ~ 깊게 쌓인 눈길 발을 끌며 苦生스레 돌아가시네.

 

<2>

歸來泉石是吾家 ~ 泉石으로 돌아오니 이곳이 내 집이며

佛殿天壇興自加 ~ 佛殿天壇感興이 절로 보태지네.

一拍一歌人不識 ~ 番 拍手치며 한 노래함을 사람은 알길 없기에

澗邊空獨望峯叉 ~ 여울가에 우두커니 교차(交叉)한 봉우리를 바라보네.

 

 

 

(85) 慧宗兩禪客 聞余有採薪之憂 來訪淸平之三聖殿 眞毘耶當日事也 聊吟一偈 以示病懷 :: . 두 스님이 내가 들었다는 消息을 듣고 淸平三聖殿으로 찾아왔다. 참으로 옛날 비야성(毘耶城)으로 維摩居士를 찾아간 舍利佛의 일에 該當한다. 이에 잠시 한 首 偈頌을 읊어 懷抱를 보이다

 

十載山中友 ~ 十 年 山中 벗이니

其忘懶拙翁 ~ 게으르고 壅拙한 늙은이라 잊겠는가.

千峯來問病 ~ 千 個 봉우리로 와서 問病하고

萬壑出還宗 ~ 一萬 골짜기 나와서 宗門으로 돌아가니

師利當年事 ~ 舍利佛 當年의 일이며

維摩昔日風 ~ 維摩居士 옛날의 風貌로다.

淸平古鏡裏 ~ 淸平山 옛 거울 속에서

今見未曾空 ~ 일찍이 비어있지 않았음을 只今 보았네.

 

 

 

(86) 還仙洞 到琴松臺 見菊花滿開 桂子半落 :: 仙洞으로 돌아와 琴松臺에 이르러 菊花는 활짝 피고 桂樹나무 열매가 쯤 떨어졌음을 보고서

 

補陀山在嶺東隈 ~ 嶺東 보타산(補陀山) 모퉁이에 있다가

禮罷徐吟半月廻 ~ 禮佛 마치고 천천히 노래하며 달포 만에 돌아왔네.

澗道掃稀堆赤葉 ~ 개울 길 쓰는 일 드물어 붉은 잎 쌓였고

琴臺坐久滿靑苔 ~ 琴松臺에 오래 앉아 있으니 푸른 이끼 가득하네.

雲中桂子落無落 ~ 구름 속 桂樹나무 열매 떨어졌는가, 떨어지지 않았는가.

岩畔菊花開未開 ~ 바위 가 菊花는 피었는가, 피지 않았는가.

壼裏乾坤猶若此 ~ 호중천(壺中天)도 아마도 이와 같으리니

人間甲子轉生哀 ~ 人間 世上 歲月에 슬픔이 생겨나네.

 

* 호중천(壺中天) : 別天地 別世界 仙境 등으로 쓰이는 말

 

 

 

(87) 喜晴(희청) : 날이 개어 기뻐서

 

積雨朝來霽 ~ 장마 비 아침 무렵 개었기에

開窓興有餘 ~ 窓門 열었더니 興趣 가득하네.

蟬聲高咽咽 ~ 매미소린 매엠맴 높아만 가고

雲影淡疎疎 ~ 구름 그림자 연하게 성글었구나.

見日忻開籠 ~ 해를 보곤 흔쾌(欣快)히 장롱문(藏籠門) 열고

隨陽喜曬書 ~ 햇볕 따라 기쁘게 을 말리는데

隣僧來亦問 ~ 이웃 스님이 찾아와서 물으시길

晴後樂何如 ~ 날 개이니 즐거움 어떠냐네.

 

 

 

(88) 臨終偈(임종게) : 임종게

 

幻人來入幻人鄕 ~ 허깨비 사람이 나와서 허깨비 고을에 들어

五十餘年作戱狂 ~ 五十 如 年을 미치광이 노릇을 했다네.

弄盡人間榮辱事 ~ 人間榮辱을 다 겪고 나서는

脫僧傀儡上蒼蒼 ~ 중의 탈을 벗고 푸른 하늘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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