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潁大夫廟(潁考叔也, 廟在汝州潁橋) 영대부묘(영고숙야묘, 재여주영교) : 소식(蘇軾)
영대부의 사당(영고숙이고, 묘는 여주 영교에 있음)
人情難強回,天性可微感。世人爭曲直,苦語費搖撼。
大夫言何柔,暴主意自慘。荒祠旁孤冢,古隧有殘坎。
千年惟茅焦,世亦貴其膽。不解此微言,脫衣徒勇敢。
人情難强回(인정난강회) : 인정이란 억지로 돌려놓기 어렵고
天性可微感(천성가미감) : 천성이란 은연중에 감동을 줄 수 있네.
世人爭曲直(세인쟁곡직) : 세상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다투면서도
苦語費摇撼(고어비요감) : 듣기 싫은 말을 하며 상대방을 흔들지만
大夫言何柔(대부언하유) : 대부의 말씀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暴主意自慘(폭주의자참) : 폭군의 마음을 스스로 참혹하게 하였네.
荒祠傍孤冢(황사방고총) : 황량한 사당은 외로운 무덤 옆에 있고
古隧有殘坎(고수유잔감) : 오래된 굴엔 아직도 구덩이가 남아 있네.
千年惟茅焦(천년유모초) : 천년 세월에 오로지 모초 한 사람만은
世亦貴其膽(세역귀기담) : 세인들도 그 담력을 귀하게 여기네.
不解此微言(불해차미언) : 그는 이 미언의 묘미를 알지는 못해서
脫衣徒勇敢(탈의도용감) : 옷을 벗고 간언하는 용감함만 보였다네.
* 영고숙(潁考叔)(?~기원전 713년) : 영고숙은 영곡의 봉인으로 백성들을 사랑해 濚水의 물을 논에 대주는 공사를 해 백성들이 대단히 기뻐했다고 전해 진다.
기원전 722년, 영고숙은 정 장공의 어머니 무강과 황천에서 만나겠다고 선언했을 때 영고숙이 찾아와 올빼미 고기를 바치면서 그것의 부당함을 깨우쳤다. 정 장공이 계책을 물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기 위해서 영고숙은 지하 토굴을 파서 거기에 물이 흐르게 장치를 해 거기를 황천이라고 칭하고 만나 화해하라고 하여, 정 장공이 그대로 실천했다. 그리하여 그 일로 정 장공은 영고숙을 신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713년, 5월 갑신일 정 장공이 허나라를 정벌할 원수를 뽑을 때 영고숙과 공손알이 서로 다투었는데, 정 장공은 그를 뽑았다고 한다. 이에 공손알은 그것에 한을 품었다. 가을 7월 제희공과 만나 허나라를 쳤다. 무진일 허나라의 도성을 칠 때 공손알이 몰래 활을 영고숙에게 겨누어 쏘아 영고숙은 그것에 맞아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 모초간효(茅焦諫孝)
- 죽음을 무릅쓰고 진왕에게 효를 간한 모초(茅焦) -
진나라의 대부 진충(陳忠)이 태후의 일로 진왕에게 간하다가 죽었으나 그의 뒤를 이어 계속 간하는 신하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진왕은 간하러 오는 자들은 미처 말도 꺼내기도 전에 모두 죽여 그들의 시신을 대궐 문 밖에 전시하도록 했다. 진충 이후로 간하러 왔다가 죽은 사람들은 모두 27명에 달해 그들의 시신은 마치 작은 산을 이루었다. 그때 제왕과 조왕이 동시에 조현을 올리기 위해 진나라에 들어왔다. 진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함양궁 안에 잔치를 열고 같이 술을 즐겼다. 그러나 대궐 문밖에 산처럼 높이 쌓여 있는 시신을 본 두 나라의 왕들은 의아하여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두 나라 왕들은 그것들은 모두가 태후의 일을 간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시체라는 사실을 알자 탄식을 금하지 못하며 마음속으로 진왕의 불효를 욕했다.
그때 제나라의 창주(滄州)1) 출신의 모초(茅焦)라는 사람이 진나라에 놀러 와서 여사에 묵다가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에게서 우연히 진왕의 난폭한 행동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모초가 듣고 의분에 싸여 말했다.
「아들 된 자가 그 어미를 가두니 이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초(茅焦)가 여사의 주인에게 달려가 끓는 물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며 말했다.
「내가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한 후에 내일 새벽에 대궐을 찾아가 진왕을 뵙고 간하여 태후가 풀려 날 수 있도록 하겠소!」
방을 같이 쓰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나라의 신하들이 간하다가 벌써 27명이나 죽임을 당했소. 그들은 모두 평소에 진왕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을 모두 물리치고 다짜고짜로 전부 죽이고 말았소! 그런데 그대와 같은 일개 평민이야 오죽하겠소?」
「간한 사람이 27명에서 그쳤기 때문에 진왕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음이요. 만약 간한 사람이 27명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 줄을 이었더라면 어찌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모초가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다음 날 새벽이 되어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다섯 번이 울리자 여사의 주인을 깨운 모초(茅焦)는 밥을 달라고 해서 배불리 먹은 후에 대궐을 향해 길을 나섰다. 여사의 주인은 모초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렸으나, 그는 손길을 단호히 뿌리치고 궁궐을 향해 걸어갔다. 방을 같이 쓰던 사람들은 모초(茅焦)가 틀림없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의 행낭을 풀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품들을 나누어 가졌다.
이윽고 궁궐의 대궐 문밖에 당도한 모초(茅焦)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던 시체 위에 엎드려 큰 소리로 외쳤다.
「소인은 제나라에서 온 과객 모초라는 사람입니다. 원컨 대, 대왕께 올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는 진왕의 명을 받은 내시가 와서 모초(茅焦)에게 물었다.
「손님께서는 무슨 일로 대왕께 간언을 올리려고 하십니까? 혹시 태후의 일과 관련된 일이 아닙니까?」
「바로 그 일로 해서 찾아왔습니다.」
내시가 달려와 진왕에게 고했다.
「제나라에서 온 객이 과연 태후의 일로 간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합니다.」
「너는 다시 나가서 궐 밖에 쌓인 시체들이 어째서 생겼는지를 그에게 알려주어라!」
진왕이 보낸 내시가 궐 밖으로 나가서 모초(茅焦)에게 말했다.
「그대는 저기 죽은 사람의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대는 죽음이 두렵지도 않소?」
「나는 하늘에 별이 28수가 있어 땅에 참된 사람을 내려보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죽은 사람은 이미 27명이라고 했지만 아직 한 사람의 자리가 남아 있으니 내가 진왕에게 간하여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옛날 성현들이라 할지라도 죽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내시가 돌아와 진왕에게 모초의 말을 전했다. 진왕이 대노하며 말했다.
「어떤 미친놈이 나의 명을 범하려고 하는가?」
진왕은 즉시 좌우의 측근에게 명을 내렸다.
「궁중의 뜰에 가마솥을 걸고 불을 떼어 물을 끓여라! 내가 그놈을 마땅히 삶아 죽이리라! 어찌 내가 그의 시신을 대궐 문밖에 쌓아 나머지 28수를 채울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없겠는가?」
진왕은 칼을 빼어 땅에 짚고 의자에 앉아 눈썹을 치켜세우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가 입에서 침을 튀기면서 계속해서 호통을 치며 말했다.
「빨리 미친놈을 끌고 와서 가마 솥 안에 끓는 물에 삶아 죽이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시가 모초를 부르기 위해 달려 나갔다. 모초(茅焦)는 일부러 총총걸음으로 시간을 끌며 천천히 걸었다. 내시가 뒤에서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자 모초(茅焦)가 말했다.
「왕을 알현하는 순간 바로 죽게 될 텐데 내가 잠시 걸음을 천천히 걷는다 해서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내시가 듣고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 모초를 부축했다. 모초(茅焦)가 이윽고 진왕이 앉아 있는 전당의 계단 밑에 당도하여 절을 올린 후에 다시 땅에 엎드려 말을 했다.
「소인은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되고, 나라를 보존하려고 하는 자는 망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음입니다.2) 대저 인간의 생사 문제와 나라의 존망에 대한 계책은 밝은 임금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일진대, 대왕께서는 한번 자세히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진왕이 안색을 조금 누그러뜨리더니 물었다.
「그대가 생사존망(生死存亡)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니 한번 말해보라!」
「무릇 충신이란 아첨하는 말을 올리지 않으며 밝은 임금은 도리에 어긋나는 패륜의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임금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에도 그 신하가 간언을 올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짓는 일이며, 신하가 충언을 올림에도 그 임금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임금이 그 신하에게 죄를 짓게 되는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하늘의 도리에 벗어나는 패륜의 일을 행하시고도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런 대왕께 귀를 거슬릴 충언을 소인이 드리고 싶으나, 대왕께서는 한사코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참으로 이후의 진나라 장래가 걱정됩니다.」
진왕의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들어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안색이 더욱 온화해지며 물었다.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 내가 한 번 들어보겠노라!」
「대왕께서는 지금 천하의 일을 도모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
「지금 천하가 진나라를 우러러 받드는 일은 단지 진나라의 위세를 두려워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대왕께서 천하의 패주로 받들어지고 있는 이유는 진나라의 조정에 충신열사들이 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왕께서는 태후께서 사랑하고 있던 의부를 거열형에 처했으니 그것은 곧 인자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태후가 낳은 두 동생을 부대 자루에 넣어 때려죽였으니 그것은 곧 형제간에 우애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합니다. 또한 그 생모를 역양궁으로 옮겨 유폐시켰으니 곧 불효를 말합니다. 또한 충간을 올리는 충신들을 도륙하여 궐 밖의 대문에 그 시신을 늘어놓았으니 걸주(桀紂)의 정치를 본받고 있음을 말합니다. 대저 천하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 소행은 이와 같이 패륜에 폭정을 행하고 있으니 어찌 천하가 대왕에게 복종하겠습니까? 옛날에 순임금은 그 어미가 비록 어리석고 모질었지만, 자식된 도리를 다해 결국은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제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이 용봉(龍逢)을 죽이고 은나라의 주왕이 비간(比干)을 죽이자 천하가 모두 반하여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늘 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죽은 후에 다시는 28명의 뒤를 따라 충간을 올리는 사람이 없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 사이에 원망과 비방하는 소리가 비등하게 됨에도 충신과 모신들은 입을 꾹 다물어 충간하는 신하들이 끊어져서 진나라가 안팎으로 인심을 잃게 되고 이어서 천하의 제후들은 진나라에 반기를 들 것입니다. 이제 진나라가 바야흐로 제업을 성취하려는 마당에 대왕의 대에 이르러 무너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신은 이제 대왕께 하고 싶은 말을 다 올렸으니 청컨대, 가마솥에 삶아 죽이시기 바랍니다.」
모초(茅焦)가 땅위에서 일어나더니 즉시 옷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된 상태로 가마솥을 향해 뛰어갔다. 진왕이 황급히 전당에서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 왼손으로는 모초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좌우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빨리 가마솥을 치우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대왕께서 이미 간언을 올리지 못하도록 방을 걸어 놓으셨는데, 간언을 올린 자를 팽살(烹殺)하지 않는다면 신하들에게 신의를 잃게 되실 것입니다.」
진왕이 즉지 명을 내려 방문을 떼어 내고 다시 내시에게 명하여 옷을 가져와 모초에게 입혀주라고 했다. 진왕은 모초를 끌고 전당으로 올라가 자리를 권하며 사죄의 말을 했다.
「전에 나에게 간언을 올린 자들은 단지 나의 잘못만 나열했고 선생과 같이 생사존망에 대한 계책은 언급하지 않았소. 하늘이 선생을 시켜 과인의 길을 밝혀 주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소?」
「대왕께서 이미 신의 말을 들으시기로 하셨다면 한시라도 빨리 어가를 준비하여 역양궁으로 나가시어 태후를 맞아들이시고 대궐 문밖에 늘어놓으신 시신들은 모두가 충성스러운 신하들이니 거두어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진왕이 즉시 관리들을 불러 27구의 시신을 거두어 각각 관곽(棺槨)에 안치하여 용수산(龍首山) 자락에 같이 묻고 묘역의 이름을 <회충묘(會忠墓)>라고 지었다. 이어서 좌우에게 명하여 어가를 준비시킨 진왕은 태후를 맞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 모초(茅焦)로 하여금 마부로 삼아 어가를 몰게 하여 옹성을 향해 출발했다. 남병(南屏) 선생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시를 한 수 지어 노래했다.
二十七人尸累累(이십칠인시누누) 이십칠 구의 시신이 작은 산을 이루었음에도
解衣趨鑊有茅焦(해의추확유모초) 모초는 옷을 벗고 끓는 가마솥을 향해 뛰어 들었다.
命中不死終須活(명중불사종수활)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살아 날 운명이었으니
落得忠名万古標(낙득충명한고표) 천고에 빛나는 충신들의 지표가 되었도다.
이윽고 어가를 타고 옹성의 역양궁에 당도한 진왕은 먼저 사자를 보내 자기가 왔음을 알리게 하고, 자기는 어가에서 내려 무릎걸음으로 걸어 태후가 있는 곳에 가서 상면하고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통곡했다. 태후도 역시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진왕은 모초(茅焦)를 불러 태후에게 인사를 시키며 말했다.
「이 사람은 나의 영고숙(穎考叔)입니다. 」
곧이어 날이 저물어 밤이 되자 진왕은 역양궁에 거처를 마련하여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진왕은 태후를 어가에 태우고 수천 대의 수레와 수만 명에 달하는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함양을 향해 출발했다. 진왕과 태후가 탄 어가를 앞뒤에서 호위하는 천군만마의 모습이 마치 구름과 같이 장관을 이루었다. 진나라 백성들 중 지나가는 행차를 보고 진왕이야말로 효자라고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행렬이 함양에 당도하자 감천궁으로 들어가 잔치를 마련하여 술을 내와 모자가 즐겨 술을 마셨다. 태후는 다시 별도로 모초를 위해 연회를 마련하여 친히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감사의 말을 했다.
「우리 모자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음은 모두 선생의 노력 때문이오.」
진왕은 모초(茅焦)를 태부로 삼고 상경의 작위를 내렸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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