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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東坡居士 蘇軾 詩

牛口見月(우구견월) : 소식(蘇軾)

by 산산바다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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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牛口見月(우구견월) : 소식(蘇軾)

                  우구의 물가에서 달을 보며

 

掩窗寂已睡月腳垂孤光披衣起周覽飛露灑我裳山川同一色浩若涉大荒

幽懷耿不寐四顧獨仿徨忽憶丙申年京邑大雨滂蔡河中夜決橫浸國南方

車馬無復見紛紛操栰郎新秋忽已晴九陌尚汪洋龍津觀夜市燈火亦煌煌

新月皎如晝疏星弄寒芒不知京國喧是謂江湖鄉今來牛口渚見月重淒涼

卻思舊遊處滿陌沙塵黃

 

 

掩窗寂已睡(엄창적이수) : 사람들 문 닫고 들어가 깊이 잠든 고요한 밤

月脚垂孤光(월각수고광) : 달빛만 덩그러니 온 세상을 비추네.

披衣起周覽(피의기주람) : 옷 걸치고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니

飛露灑我裳(비로쇄아상) : 날려온 이슬에 옷이 그만 젖어버렸네

山川同一色(산천동일색) : 달빛 비친 산천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어

浩若涉大荒(호야섭대황) : 고요하고 황량하며 아득하게 펼쳐져 있어

幽懷耿不寐(유회경불매) : 마음속에 시름 일어 잠도 들지 못한 채

四顧獨徬徨(사고독방황) : 사방을 돌아보며 혼자서만 방황하네

忽憶丙申年(홀억병신년) : 갑자기 병신년 여름날이 떠올라

京邑大雨滂(경읍대우방) : 도성에 큰비가 내렸을 때를 생각하네

蔡河中夜決(채하중야결) : 한밤중에 채하의 둑이 무너져

橫浸國南方(횡침국남방) : 도성의 남쪽이 물에 잠겨버렸는데

車馬無復見(차마무복견) : 수레와 말들은 볼 수 없었고

紛紛操筏郞(분분조벌랑) : 대나무 뗏목을 모는 사공들만 섞여 있었는데

新秋忽已晴(신추홀이청) : 입추 이후 날이 활짝 개었는데도

九陌尙汪洋(구맥상왕양) : 성 안 길은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네

龍津觀夜市(용진관야시) : 용진교에서 야시장을 바라보면

燈火亦煌煌(등화역황황) : 등불이 옛날처럼 휘황찬란 눈부신데

新月皎如晝(신월교여주) : 교교한 달빛은 대낮처럼 환하고

疏星弄寒茫(소성농한망) : 드문드문 별빛은 달빛을 희롱하네

不知京國暄(부지경국훤) : 도성이 요란한 걸 모르고 있었더니

謂是江湖鄕(위시강호향) : 이곳을 일러 강남의 수향이라 하네

今來牛口渚(금래우구저) : 오늘 이곳 우구의 물가에 와서

見月重凄凉(견월중처량) : 달을 보며 다시금 처량해지네

却思舊遊處(각사구유처) : 지난날 노닐던 곳 생각이 나게

滿陌沙塵黃(만맥사진황) : 길마다 누렇게 흙먼지 쌓여있네

 

 

* 月脚(월각) : 내리비치는 달빛을 가리킨다.

8 周覽(주람) : 두루 살피다. 사마상여(司馬相如)長門賦에서 下蘭臺而周覽兮, 步從容於深宮(난대를 내려와 주변을 돌아보며 말없이 깊은 궁을 배회하였네).’이라고 했다.

* 大荒 :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산해경山海經대황동경大荒東經에서 東海之外, 大荒之中, 有山名曰大言, 日月所出(동해 밖 아주 먼 곳에 대언산이란 곳에서 해와 달이 나온다).’이라고 했다.

* 耿不寐(경불매) : 두 눈이 초롱초롱 잠들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 京邑 : 도성을 가리킨다.

* 大雨霶(대우방) : 비가 억세게 쏟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丙申年은 지화(至和) 가우(嘉祐) 원년 3(1056) 즉 소식(蘇軾)이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과거를 치르러 장안(長安)으로 갔던 해를 가리킨다.

* 蔡河(채하) : 북송의 도성 개봉(開封)의 남서부를 남북으로 흐르던 길지 않은 운하로 전국시대에는 홍구(鴻沟), 서한(西漢) 때는 낭탕거(狼湯渠), 위진(魏晉) 때는 채수(蔡水), 또 후주(後周) 때는 민하(閔河)로 불리다가 북송 건륭(建隆) 원년(960)에 준설을 통해 도성에서 통허진(通許鎭)까지 운하를 개설하였다.

* (): (떼 벌, 뗏목 벌)과 같다.

* 九陌(구맥) : 장안성(長安城) 안에 있는 도로를 가리킨다. 삼보구사三輔舊事에서 長安城中八街九陌(장안성에는 종횡으로 팔가구맥이 있다).’이라고 했다.

* 龍津 : 여기서는 용진교(龍津橋)를 가리킨다. 용문(龍門) 즉 벼슬을 하면서 영달할 수 있는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 京國 : 도성(都城)을 가리킨다.

 

과거 급제 후 고향 미산(眉山)으로 돌아가 모친의 복상(服喪)을 끝낸 동파 형제가

가우(嘉祐) 4(1059) 부친과 함께 배편으로 장강(長江)을 따라 도성으로 가던 도중에

융주(戎州) 의빈(宜賓)의 우구(牛口)에 배를 대고 민가에 묵었을 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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