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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聖 杜甫 詩

풍질주중복침서회(風疾舟中伏枕書懷)/(風疾舟中伏枕書懷三十六韻奉呈湖南親友)

by 산산바다 2020. 12. 31.

산과바다

저녁노을과 함께 두보는 황홀하게 임종의 시를 남기며 떨어 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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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질주중복침서회(風疾舟中伏枕書懷)/(風疾舟中伏枕書懷三十六韻奉呈湖南親友) - 두보(杜甫)

       병들어 배안에 엎드려 감회를 써서 호남 벗에게 바친다.

      * 병으로 배에 엎드려 시를 쓴 두보의 임종(臨終)

 

 

軒轅休製律(헌원휴제률) : 황제 헌원씨 음악 만들지 말고

虞舜罷彈琴(우순파탄금) : 순임금과 유후씨도 거문고 타지 말았어야지

尙錯雄鳴管(상착웅명관) : 관의 장웅도 봉황의 울음도 어그러졌으니

猶傷半死心(유상반사심) : 여전히 상심하여 반사의 마음조차 없도다.

聖賢名古邈(성현명고막) : 성현의 명성도 아득한 옛 일

羇旅病年侵(기려병년침) : 떠도는 나그네에게 병은 해마다 닥치는구나.

舟泊常依震(주박상의진) : 작은 배를 매어 항상 동북방에 의지하고

湖平早見參(호평조견삼) : 호수가 넓고 평평하여 일찍 참성을 본다.

如聞馬融笛(여문마융적) : 마치 마융이 객지에서 피리소리 듣는 듯하고

若倚仲宣襟(야의중선금) : 왕찬이 타향세서 누에 올라 옷깃을 펼친 듯하다

故國悲寒望(고국비한망) : 고향을 생각하며 추위에 바라보니 슬프기만 하고

羣雲慘歲陰(군운참세음) : 뭉게구름에는 세모의 참람한 기운이 서렸도다.

水鄕霾白屋(수향매백옥) : 강남의 고을이라 흰 집이 자욱하고

楓岸疊靑岑(풍안첩청잠) : 단풍나무 언덕에는 푸른 봉우리 모여 있도다.

鬱鬱冬炎瘴(울울동염장) : 겨울에도 무더운 병으로 답답하기만 하고

濛濛雨滯淫(몽몽우체음) : 지루한 장맛비에 어둑어둑하다오.

鼓迎非祭鬼(고영비제귀) : 북을 치며 맞는 것은 귀신에 제사함이 아니요

彈落似鴞禽(탄낙사효금) : 쏘아서 떨어지는 것은 올빼미 같은 새라네.

興盡纔無悶(흥진재무민) : 흥이 다하니 겨우 답답한 마음 가진다오.

愁來遽不禁(수내거부금) : 시름이 오면 참을 수 없고

生涯相汩沒(생애상율몰) : 평생을 서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운데

時物正蕭森(시물정소삼) : 시절의 물상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오.

疑惑樽中弩(의혹준중노) : 술잔 속 활 그림자 의심스러워하며

淹留冠上簪(엄류관상잠) : 갓 위의 비녀 처지로 머물러 있다오.

牽裾驚魏帝(견거경위제) : 옷깃을 당기며 위나라 임금 놀라게 한 일도

投閣爲劉歆(투각위류흠) : 유음의 아들 일로 알아 던져지기도 하였다.

狂走終奚適(광주종해적) : 미친 사람처럼 떠돌아 끝내는 어디로 가리오.

微才謝所欽(미재사소흠) : 하찮은 재주러 흠모하는 사람을 뿌리치니

吾安藜不糝(오안려부삼) : 나는 명아 주국에 쌀 섞지 않은 밥도 만족하다오.

汝貴玉爲琛(여귀옥위침) : 그대들은 옥보다 귀한 보배들이니

烏几重重縛(오궤중중박) : 다 망가져서 칭칭 동여맨 책상에 기대어서

鶉衣寸寸針(순의촌촌침) : 메추리처럼 달아 놓은 것 같이 꿰매었도다.

哀傷同庾信(애상동유신) : 애처롭고 쓰라림은 유신과 같고

述作異陳琳(술작리진림) : 글을 지음에는 진림보다는 못했도다.

十暑岷山葛(십서민산갈) : 촉 지방 민산에 칡옷으로 10년 여름을 보내고

三霜楚戶砧(삼상초호침) : 초 지방에서는 가을 다듬이 소리를 3년을 보냈도다.

叨陪錦帳坐(도배금장좌) : 외람되게도 비단 장막에 앉아 모시는 낭관이 되어

久放白頭吟(구방백두음) : 오랫동안 늙은 나이로 시를 뜻대로 옮기었소.

反樸時難遇(반박시난우) : 순박한 시절로 돌아가는 시간 만나기 어려워도

忘機陸易沈(망기륙역침) : 기회를 노리는 마음 잊어버리면 뭍에 살 듯 쉬워라

應家數粒食(응가삭립식) : 응당 가족들 몇 술 잡을 더 먹으나

得近四知金(득근사지금) : 하늘과 땅과 그대와 내가 아는 돈을 얻었도다.

春草封歸恨(춘초봉귀한) : 봄풀은 푸르러 고향에 가고자 하는 한은 더하고

源花費獨尋(원화비독심) : 무릉도원 홀로 찾고자 하는 마음을 생긴다오.

轉蓬憂悄悄(전봉우초초) : 쑥이 바람에 구르듯 근심이 심해지고

行藥病涔涔(항약병잠잠) : 약을 써도 병은 여전히 심하기만 하도다.

瘞夭追潘岳(예요추반악) : 반악처럼 요절한 자식을 길 가에 묻고

持危覓鄧林(지위멱등림) : 위태한 몸을 버티고자 지팡이를 찾는다오.

蹉跎翻學步(차타번학보) : 엉덩방아 찧으면서도 한단의 걸음을 흉내 내고

感激在知音(감격재지음) : 참된 친구 있음에 감격스럽도다.

卻假蘇張舌(각가소장설) : 그러면서도 소진과 장의처럼 말을 잘하여

高誇周宋鐔(고과주송심) : 주송의 칼자루로 크게 자부 했었다오.

納流迷浩汗(납류미호한) : 모든 물 받아들여 호수 되어 아득하고

峻趾得嶔崟(준지득금음) : 높은 터전은 우람한 산과 같은 곳에서 얻었고

城府開淸旭(성부개청욱) : 해맑은 아침 햇볕이 쪼이는 곳에 감영이 있도다.

松筠起碧潯(송균기벽심) : 소나무와 대나무는 푸른 물가에서 생겨나고

披顔爭倩倩(피안쟁천천) : 낯을 활짝 펴서 다투어 웃으며 맞아들인다.

逸足競駸駸(일족경침침) : 빠른 말은 좋은 다리로 앞을 다투고

朗鑒存愚直(낭감존우직) : 밝은 눈으로 우직한 자를 위로해준다

皇天實照臨(황천실조림) : 하늘은 진실하게 비춰주고 있고

公孫仍恃險(공손잉시험) : 공손술 같은 자가 험함을 믿고서 날뛰고

侯景未生擒(후경미생금) : 후경과 같은 자를 아직 사로잡지 못하고 있도다.

書信中原闊(서신중원활) : 중원에서는 소식이 아득하고

干戈北斗深(간과배두심) : 전쟁 중이라 은 임금 계신 장안은 아득하도다.

畏人千里井(외인천리정) : 천리 밖에서 남을 두려워하고

問俗九州箴(문속구주잠) : 천하의 잠언에 실린 풍속을 묻고 있소

戰血流依舊(전혈류의구) : 전쟁에서 흘리는 피는 옛날과 같고

軍聲動至今(군성동지금) : 군사들의 함성소리는 지금까지 울려온다오.

葛洪尸定解(갈홍시정해) : 갈홍처럼 시체가 변하여 신선이 되지 못해도

許靖力難任(허정력난임) : 허정처럼 식구들을 맡기도 어렵다오.

家事丹砂訣(가사단사결) : 집안 살림과 신선되는 단사의 비결도

無成涕作霖(무성체작림) : 이루지 못하니 눈물이 흘러 비가 되었다오.

 

 

* 병으로 배에 엎드려 시를 쓴 두보의 임종(臨終)

 

서울에 봉선으로 가면서 읊은 5백자 자경부봉선현영회오수(自京赴奉先縣詠懷五首)/(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라는 제한의 5백자에 이르는 서사시를 읽고 두보의 마음속을 일부나마 이해하게 된다.

천재성을 타고난 그의 학문으로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의지를 펴기 위해 현실정치에 참여하려 했으나 혼탁한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현실 참여의 정도(正道)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두보의 명시들은 숱한 시련과 좌절을 겪고 난 뒤의 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두보가 위대한 시인이 된 것은 그가 늦게 시에 뜻을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위대한 시인이란 감수성을 예민하고 풍부하게 만들 문학적 체험을 거친 후에야 탄생하는 법이다. 의지나 열정만 앞선다면 오히려 감수성이 말살되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의 말년을 대부분 가족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피난 다니던 두보는 닷새를 굶고 누군가 보내온 고기와 술을 허기진 식욕으로 먹어치우고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동정호반의 쪽배 위에서 고통의 생애를 마쳤다.

죽을 때 그는 심한 복통과 관절염으로 일어서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한 처참한 지경에서 조차 누운 채로 자신의 최후의 시

"풍질주중복침서회삼십육운봉증호남친우(風疾舟中伏枕書懷三十六韻奉呈湖南親友)/병들어 배에 엎드려 감회를 써서 호남 벗에게 바친다."를 썼다. 그의 나이 59세이었다.

 

그를 시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그의 문학적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민중을 향한 전인적 사랑과 성실했던 삶의 태도, 그리고 고통을 견디는 그 우직함이 위대한 시성으로 후세에 거듭하여 칭송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근세 조선시대에는 사회지도층이 두보의 시를 선비정신을 고취시키는 교본으로 삼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권장하였다. 그의 시는 현대 중국의 교과서에도 올려놓고 신세대가 본받아야 할 인본 인애 사상을 고취시고 있다.

* 두보는 생의 대부분을 고난으로 살았고 그랬기에 그의 시에는 아픔을 담은 것들이 많다. "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라는 시는 두보가 굶어 죽은 어린 아들을 묻고 깊은 슬픔에 빠져 쓴 것으로 두보 삶의 아픔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며 그가 쓴 사회시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어느 해 늦가을, 두보는 봉선으로 가족을 만나러 갔다. 늦은 밤에 길을 나섰기에 바람이 매우 차가웠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사립문을 연 그를 반기는 건 아내의 울음소리였다.

어린 아들이 굶어 죽는 기막힌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부인은 통곡했고 두보의 늙은 얼굴에도 가슴 속 치받쳐 올라온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지만 두보는 단지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논밭을 잃은 농민이나 전쟁터로 끌려가는 사병 보다 더 할 수 없다

고 한다.두보의 마음은 늘 낮은 곳에 있었다. 가진 사람보다는 갖지 못한 사람에게 힘센 사람보다는 힘없는 사람에게, 화려하고 빛나는 것보다는 초라하고 어두운 곳에 있었다. 병거항(兵車行)이란 시는 토번 정벌을 이유로 국력을 소모하고 백성들이 부역에 동원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두보가 본 것은 군대의 위용이 아니라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었다.

끌려가고 보내는 이들의 가슴 아픈 이별 모습으로 시작하고 있다. 두보의 시선은 끌려가고 보내는 이들의 가슴 아픈 이별의 모습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의 더 큰 모습인 사회로 나가고 있다.

영토 확장의 욕심을 그치지 않고, 큰 영토를 가졌음에도 더 많은 영토를 가지려고 하는 황제의 욕망을 비판하면서 고통 받는 백성의 원성을 대신하여 군사동원의 패악과 민생을 강탈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대목은 현대에 재해석하여 보아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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