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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 詩 ***/詩仙 李白 詩

앵무주(鸚鵡洲) - 이백(李白)

by 산산바다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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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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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주(鸚鵡洲) - 이백(李白)

              앵무주

 

鸚鵡來過吳江水(앵무래과오강수) : 앵무새가 날아와 오강의 물을 지나니

江上洲傳鸚鵡名(강상주전앵무명) : 강 위의 모래섬을 앵무주라 이름 전하네.

鸚鵡西飛隴山去(앵무서비롱산거) : 앵무새는 서쪽을 날아 농산으로 갔지만

芳洲之樹何青青(방주지수하청청) : 무성한 모래섬의 수목은 어찌 이리도 푸른가!

煙開蘭葉香風暖(연개란엽향풍난) : 연기 걷히자 따뜻한 바람에 난초잎 향기 풍겨오고

岸夾桃花錦浪生(안협도화금랑생) : 강 언덕의 복사꽃에 비단 물결 일렁인다.

遷客此時徒極目(천객차시도극목) : 떠도는 나그네 부질없이 먼 곳만 바라보는데

長洲孤月向誰明(장주고월향수명) : 긴 모래섬에 외로운 달은 누구를 향하여 밝은가

 

 

* 鸚鵡洲(앵무주) :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한양현(漢陽縣) 서남쪽의 장강(長江) 안에 있는 섬으로 지금의 앵무주는 송나라 이전의 옛 땅이 아니며, 예형이 지은 앵무부에서 이름을 얻었고 예형이 죽은 다음 장례를 지낸 곳이다. <아래 글 앵무주참조>

* 吳江(오강): 무창 일대를 지나는 장강(長江). 삼국시대에 오나라에 속하여 오강이라 한다.

* 隴山(농산): 산시(陕西)성 룽()현 북서쪽에 있는 산.

* 芳洲(방주) : 향초가 무성한 강의 섬. 여기서는 앵무주를 말함.

* 錦浪(금랑) : 봄바람이 불어 복사꽃을 날려 강에 떨어지니 물결이 비단과 같다는 뜻.

* 遷客(천객) : 귀양살이하는 사람. 이백(李白) 자신을 말한다.

* 極目(극목): 시력을 먼 데까지 다함.

* 長洲(장주) : 앵무주를 말한다.

 

* 이 시는 당 숙종(肅宗) 상원(上元) 원년(760) 봄 이백이 사면되어 강하(江夏)로 돌아가면서 지은 시로 앵무주의 봄 풍경을 보며 앵무부(鸚鵡賦)를 지은 예형(禰衡)을 자신에 빗대어 지은 시이다. 예형(禰衡)은 중국 후한(後漢) 말의 인물로, 자는 정평(正平)이며, 조조(曹操)와 유표(劉表), 황조(黃祖)를 능멸하다 황조에게 그의 나이 26세에 처형되었다.

후일 소동파는 악주지주인 주수창에게 보내는 시 만강홍에서 서생 예형은 무슨 일로 다투었는지 그것만 두고 웃을 일이 아니라오.' 하고 그대도 이백과 같이 <등금릉봉황대> 시를 지어 최호의 황학루 시에는 晴川歷歷漢陽樹 (청천력력한양수), 芳草萋萋鸚鵡洲 (방초처처앵무주). 한양 땅 나무는 맑은 내에 뚜렷하고 앵무섬에 방초는 무성하구나.”라는 표현이 있다.

登黃鶴樓(등황학루) - 崔顥(최호)

 

훗날 이백이 황학루에 와서 이 시를 보고 명시라 하여 이 보다 더 좋은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하여 붓을 꺽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학루 옆에 각필정(擱筆亭)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황학루에 시 한수를 남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찾아 앵무주(鸚鵡洲)라는 시한수를 짓고 붓을 씻었다는 세필지(洗筆池)가 남아있다.

 

또한, 이백이 야랑(夜郞)으로 유배 가던 중 방환(放還)의 명을 받고 돌아올 때 강하(江夏)에서 남릉현령(南陵縣令) 위빙(韋冰)을 만나 지은江夏贈韋南陵冰(강하증위남릉빙)시에 내 우선 그대를 위하여 황학루를 때려 부술 것이니 그대 또한 나를 위하여 앵무주를 뒤집어 엎으라. 적벽에서 자웅을 겨루던 일 꿈결 같으니 우선 가무하며 이별의 근심을 풀어보세나.[我且爲君搥碎黃鶴樓 君亦爲吾倒却鸚鵡洲 赤壁爭雄如夢裏 且須歌舞寬離憂]’ 라는 구가 있다.

예형(禰衡)과 앵무주(鸚鵡洲): 예형(禰衡, 173~ 198)은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정평(正平)이며 청주(靑州) 평원군(平原郡) 반현(般縣) 사람이다. 조조(曹操)와 유표(劉表), 황조(黃祖)를 능멸하다 황조에게 그의 나이 26세에 처형되었다.

후한(後漢)禰衡(예형)은 자가 정평(正平)이니 재주가 있어 기개를 숭상하며 강하고 오만하였다. 공융(孔融), 양수(楊修)와 친하였는데, 공융이 조조(曹操)에게 천거하자 조조는 기뻐하여 문지기에게 명하여 손님이 오면 곧 통지하게 하였다. 예형이 마침내 큰 영문(營門)에 앉아서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크게 꾸짖으니, 관리가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였으나 조조는 예형은 유자(孺子)이니 내가 그를 죽이는 것은 참새와 쥐를 죽이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 사람은 평소에 헛된 명성이 있으니, 그를 죽이면 원근에서 장차 나더러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유표(劉表)에게 보내었다. 예형이 다시 오만하고 업신여기자 유표는 그를 용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강릉태수인 황조(黃祖)에게 보내니, 이때 나이가 26세였다. 황조의 장자인 사()가 손님들을 크게 모아 잔치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앵무를 올리자, 사는 술잔을 들고 예형에게 이르기를 선생이 시를 지어서 아름다운 손님들을 즐겁게 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예형이 붓을 잡고 글을 지었는데 점획을 하나도 더하지 않았다. 뒤에 또 예형이 말을 불손하게 하여 황조를 꾸짖자, 황조가 죽여서 사주(四洲)에 장례하니 후인들이 이로 인하여 이곳을 앵무주라 이름 하였다.

 

황학루(黃鶴樓)와 앵무주(鸚鵡洲) : 중국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요 양자강과 그 지류인 한수(漢水)가 만나는 곳에 武漢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무한삼진(武漢三鎭; 武昌 漢口 漢陽)으로 불리던 군사요충이면서 삼대명루(三大名樓) 중의 하나라는 황학루(黃鶴樓)가 있는 명승지이다. 황학루는 원래 3층 누각이던 것을 근래에 중건하면서 51m 높이의 5층 누각이 되었다고 한다.

먼 옛날 한 여인이 경치 좋은 이곳에서 주점을 열었단다. 한 노인이 돈도 없이 여러 달 술을 마셨고 후덕한 주모는 말없이 잘 대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귤껍질을 가지고 벽에 누런 학을 그려놓고 떠났다. 그 후로 술자리가 벌어질 때마다 벽에 그려진 학이 춤을 추어서 손님이 모여들었다.

10년이 지나 큰돈을 벌은 후에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피리를 불며 자기가 그렸던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노인은 자안(子安)이라는 신선이었다고 전한다. 큰돈을 번 여인은 신선을 기려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황학정이라 했다는데 이러한 고사와 경치가 어우러져 많은 시인들을 불렀고 그 중에서도 최호의 황학루라는 시가 단연 백미라고 한다.

 

 

앵무주(黃鶴樓) 최호(崔顥)

 

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고

此地空餘黃鶴樓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냇가에는 한양의 나무그늘 무성하고

春草萋萋鸚鵡洲 앵무주 모래톱에는 봄풀들만 우거졌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무는데 고향이 어디던가

煙波江上使人愁 강 위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 시인은 옛일을 회고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냐고 향수에 젖은 나그네의 시름을 들어내고 있다. 그 후에 이백이 이곳에 들러 최호의 시를 보고는 천하명시라고 격찬하고 이보다 더 좋은 시는 지을 수 없다 하여 붓을 꺾었단다. 그래서 황학루의 최호시비(崔顥詩碑) 옆에는 이백이 붓을 꺾었다는 각필정(擱筆亭)이 서 있고, 그래도 그 유명한 황학루에 시 한수 남기지 못한 것이 서운했던지 후일 다시 와서 앵무주라는 시 한 수를 읊고 붓을 씻었다하여 세필지(洗筆池)라는 연못이 있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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