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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중국조사(中國祖師) 法脈 系譜

제 48조 원오 극근(圓悟克勤)

by 산산바다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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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 극근(圓悟克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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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8 원오 극근(圓悟克勤) (1063 ~ 1135)

 

 

속성 낙(). 자 무착(無着). 불과선사(佛果禪師)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펑저우[彭州] 충닝현[崇寧縣] 출생.

임제종(臨濟宗)의 제5(第五祖) 법연(法演)의 제자가 되어 법()을 계승하였다. 그 후 임제종 양지파(楊枝派)에 속하여 휘종(徽宗)과 고종(高宗)의 칙명에 따라 천녕만수선사(天寧萬壽禪寺) ·금산신유사(金山新遊寺) ·운거산진여원(雲居山眞如院) 등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다. 협산(夾山)의 벽암(碧巖)에서 운문종(雲門宗)의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저술한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주석을 더하고, 수시(垂示) ·착어(着語) ·평창(評唱)을 추가하여 벽암록(碧巖錄)(10)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예로부터 선문(禪門) 1의 책으로 평가되며, 종파의 구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20)이 있다.

 

중국 송나라의 승려로 임제종 양지파(楊枝派)에 소속되어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다. 예로부터 선문(禪門) 1의 책으로 평가되는 벽암록(碧巖錄)은 그의 저서이다.

 

 

전법게

참 나에는 본래에 맘이랄 것 없으며

참마음엔 역시나 나랄 것 없으나

이러-히 참답게 참마음에 일체되면

나를 나라 한들 어찌 거듭된 나겠는가?

 

오조법연 스님이 원오극근 스님에게 한 사원의 주지를 맡을 때 반드시 삼가야 할 것으로서 일러준 것이 이 법연사계.

 

스승의 이러한 사전 경책에 의지해 원오 스님은 총림의 주지직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수많은 명안종사(明眼宗師)를 길러내었다. 또한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라는 천하의 명저 벽암록(碧巖錄)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

 

원오 극근[圓悟克勤:1063-1135] 임제종의 중흥조 오조법연의 사법제자.양기파 적손으로 법명이 불과[佛果]이고, 혜근불감[惠勤佛鑒], 청원불안[淸遠佛眼]과 함께 오조법연 문하의 삼불[三佛]로 꼽힌다.

 

오조법연(五祖法演)스님의 제자들이 함께 수행을 하였으나 오랫동안 깨친 바가 없어 '오조가 일부로 그르쳐 놓았다'고 생각하고 불손한 말을 하고 화를 내면서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이 말했다.

 

오조: "너희들이 이곳을 떠나 절강성(浙江省)을 헤메다가 한 차례 열병을 앓고         비로소 나를 생각하고 돌아 올 것이다."

 

그 후 원오스님은 금산사(金山寺)에 도착하여 열병으로 고생하다 평소에 터득한 수행으로 병을 이겨보려고 하였지만 한 구절도 힘이 되지 못하자 오조스님의 말씀을 되새겨보고 오조산으로 돌아왔다

스님은 크게 기뻐하면서

"네가 다시 돌아왔느냐"

하고는 곧 선당(禪堂)에 들어가서 시자소임을 보게 하였다.

 

그 후 우연히 진제형(陳提刑)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조스님을 찾아뵙고 도를 물었는데, 이야기 끝에 오조스님이 소염시(小艶詩)를 말하였다.

 

頻呼小玉元無事 : 소옥아 자주 부르지만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祗要檀郞認得聲 : 군에게 제 목소리를 알리려는 것일 뿐!

 

제형은 연신 ', ' 하였고 오조스님은 자세히 참구해 보라고 하였다.

때마침 원오스님이 밖에서 돌아와 곁에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원오: "스님께서 '소염시'를 인용하여 말씀하시는데 제형이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까?"

오조: "그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지."

원오: "그가 그 소리를 들었다면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습니까?"

오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 '뜰 앞에 잣나무니라'

         이 말이 맞는가?"

 

원오스님은 이 말에 갑자기 느낀 바 있어 방문을 나서니 닭이 홰를 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크게 깨치고는 다시 방장실에 들어가 자기가 깨달은 바를 말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불조의 큰일이란 하열한 근기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너의 기쁨을 도왔구나.

그리고는 다시 산중의 노스님들에게 "나의 시자가 도를 깨달았다."고 널리 알렸다.

 

원오 극근은 그 후 장상영[張商英]의 초청으로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에 주석하고 그의 간청으로 설두중현[雪竇重顯]의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을 붙여 선종 제일의 공안집[公案集]이며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인 벽암록[碧巖錄]을 편찬하여 선종 송고문학[頌古文學]의 금자탑을 이룬다.

 

위의 소염시는 당나라 현종의 애첩 양귀비와 안록산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양귀비가 안록산과 눈이 맞아 자주 밀회를 즐겻는데 밀회를 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몸종인 소옥의 이름을 크게 불려 밖에 있는 안록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언어 밖에서 다른 뜻이 있다'는 의미를 찾아 선가에서는 빈번하게 인용하여 깊고 오묘한 선의를 언어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활용 하고 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 '뜰앞의 잣나무니라.' 이 말이 맞는가?

혹시라도 노파심에 부탁하노니 옛사람을 부정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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