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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중국조사(中國祖師) 法脈 系譜

제 41조 풍혈 연소(風穴延沼)

by 산산바다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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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1 풍혈 연소(風穴延沼) (896~972)

 

 

속성은 유(), 절강성 항주부 여항현(餘杭縣)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어육과 마늘을 먹지 않았다.

처음에는 유학(儒學)에 힘썼고, 출가하여 천태(天台)의 상관(上觀)을 닦다가, 남원 도옹(南院道癰)에게서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

경청도부 스님에게 풍혈 스님이 찾아가니 경청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동쪽에서 왔습니다.“

"작은 강을 건너온 적이 있는가?“

"큰 배가 홀로 하늘에 떠도니 작은 강은 건널 게 없습니다.“

"경강(鏡江)과 진산(秦山)은 날아가는 새도 넘어갈 수 없는데 길바닥에서 주워들은 허튼말을 지껄이지 말아라.“

"넓은 바다도 전함의 위세에 오히려 겁을 냅니다. 기나긴 강줄기에 돛대 날리며 오호(五湖)를 건널까 합니다.“

이에 경청 스님은 불자를 세우면서 말했다.

"이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모르느냐?“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폈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을 스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점치는 놈은 헛소리를 듣고, 깊이 잠든 놈은 잠꼬대가 심하다.“

"못이 넓으면 산을 감추고 살쾡이는 표범을 항복시킵니다.“

"죄와 허물을 용서할 테니 썩 나가거라.“

"나갈 수만 있다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선사는 그 곳을 떠나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남원 도옹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풍혈이 일찍 그의 회상(會上)에서 채소를 가꾸는 원두(園頭)를 맡아볼 때 도옹이 묻기를,

"남방의 한 방망이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니,

풍혈이 대답하기를,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 방망이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었다.

도옹이 주장자를 비껴들고 하는 말이,

棒下無生忍(봉하무생인) :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은

臨機不見師(임기불견사) : 기틀을 당하여 스승을 보지 않는다.

하는 데서 풍혈은 크게 깨쳤다.

 

그 뒤 여주(汝州) 풍혈사에서 개당하여 임제의 선풍을 떨치니 수많은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어느 날 해제일에 법상에 올라갔는데, 어떤 납자로부터 '해제날 화상의 뜻이 어떠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바로..

불연아호설(不憐鵝護雪)

차희납인빙(且喜臘人氷)

"거위가 눈 덮인 것은 가엾지 않고 겨울을 난 사람이 얼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서 육왕심(育王諶) 선사는 해제날 상당하여 불자(拂子)로 한 번 선상을 치면서 말했다.

"하나로는 열 수 없고, 둘로도 향할 수 없도다.“

 

다시 불자로 두 번 선상을 치면서 말했다.

"수레는 옆으로 밀지 못하고, 이치는 돌려서 판단하지 못한다.“

 

다시 불자로 세 번 선상을 치면서 말했다.

"뉘라서 화씨(和氏)의 옥구슬을 알지 못하랴? 하지만 나는 여의주가 간 곳마다 빛난다고 하리라.“

 

자항박(慈航朴) 선사 역시 이 법문을 듣고 해제날 선상에 올라 말했다.

"풍혈은 가히 기한에 맞추어 닦아 증득했으니 공력을 헛되이 들이지 않았다 하겠지만,

 

방울 물에 얼음이 언다하여도 이 일만은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도다. 무슨 까닭인가?

 

손에 백옥채찍을 들고 여의주를 모두 부수었도다." 라고 하고는 선상을 불자로 때렸던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 아닌게 무엇이냐?“

"현묘한 말씀을 알 길이 없으니 스님께서는 딱 짚어 주십시오.“

"바다 동편 언덕에 집을 지으니 동녘에 뜨는 해 가장 먼저 비치네.“

"유와 무가 모두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춘삼월 꽃길 진탕 노니는데 온 집안 시름 젖어 빗속에 문을 닫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하건 안하건 이미(離微, 얽매임을 떠난 묘한 경계)에 걸리니, 어떻게 하면 건드리지 않고 통할 수 있겠습니까?“

"내 항상 그리웠나니 강남땅에 늦봄이 되면 자고새 지저귀는 곳에 꽃향기 그윽했다네.“

 

여주(汝州)의 풍혈사에서 오랫동안 교화하였으나 한 사람도 깨치는 이가 없었다.

하루는 대성통곡을 하므로 대중들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그가 "임제(臨濟)의 법이 나에게 와서 끊어질 줄 어찌 알았으랴?" 하니,

이때 제자 성념(省念)"저 같은 것도 스님의 법을 이어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자네는 아깝게도 법화경에 걸려있네.“

"법화경만 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러면야 될 수 있다 뿐인가.“

이에 성념은 참선에만 전력하여, 마침내 깨치게 되었다.

 

설함이 없음이 이 진실한 법이니

그 설하는 법이 원래 설함이 없음이라

내가 지금 말 없음을 분부하노니

말하고 말함이 어찌 말이겠는가

 

송나라 태조 개보(太祖開寶) 6년에 78세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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