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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佛祖正脈(釋迦如來 咐囑)/중국조사(中國祖師) 法脈 系譜

제 38조 임제 의현(臨濟義玄)

by 산산바다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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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의현(臨濟義玄)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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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8 임제 의현(臨濟義玄) (850~867)

 

 

당대(唐代) 남악하(南岳下), 임제종(臨濟宗) 개조(開祖), 하남성(河南省) 조주(曹州) 남화(南華) 출신(出身)으로 성은 형()씨이다. 어려서는 재주 있다고 말을 듣더니 커서는 효자라 칭찬을 받았다.

불교를 좋아해 출가(出家)하여, 수구(受具)하고는 제방(諸方)의 고승(高僧)에게 배우고 삼장(三藏)을 공부하는 가운데 율()과 화엄(華嚴)을 연구하였다. 나중에 불교의 진수를 찾고자 유방(遊方)하여 황벽 희운(黃檗 希運)에게 참예하여 비범한 기틀을 인정받고 선지(禪旨)를 참구(參究)하다가 오경(悟境)에 이르러 황벽의 지시로 고안 대우(高安 大愚, 불상, 歸宗 智常의 제자)에 참예하고(大愚 三拳), 황벽(黃檗)에게 돌아왔다.

임제(臨濟)가 황벽(黃檗)의 문하(門下)에서 피나는 정진(精進)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고향(故鄕)으로 돌아가게 되자, 황벽(黃檗)은 자기 스승이었던 백장(百丈)이 물려준 법()의 징표(徵表)인 선판(禪板 : 좌선(坐禪)을 하다가 피곤할 때 몸을 의지(依支)하는 작은 판()) 등 좌선 도구(坐禪 道具)를 물려주었지만, 인가(認可)의 증명서(證明書)라 할 수 있는 그것들을 임제(臨濟)는 모두 불태워 버릴 정도로 기성(旣成)의 가치(價値)와 권위(權威)를 전면적(全面的)으로 부정(否定)했으며 어떤 형식화(形式化)되고 고정적(固定的)인 실체(實體)도 인정(認定)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듯 임제(臨濟)의 불교(佛敎)는 참 인간(人間)의 구현(具顯)이었기에 임제(臨濟) 이전(以前)에는 이 문제(問題)를 다분히 관념적(觀念的)으로 다루었지만 임제(臨濟)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人間)의 본성(本性)은 자성(自性)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다시 견성(見性)이라는 두 글자로 압축(壓縮)되었다.

50세 무렵인 당() 대중(大中) 8(854), 자신(自身)의 사숙(私塾)인 보화 선사(普化 禪師)가 주지(住持)로 있던 작은 절에 와서 무위진인(無位眞人)의 행화 도량(行化 道場)으로 석장(錫杖)을 내렸는데, 보화(普化)는 눈 푸른 납자(衲子)인 임제(臨濟)의 수행력(修行力)을 높이 평가(評價)하여 자신(自身)은 뒤로 물러난 채, 임제(臨濟)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앞장서 나갔고, 이리하여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인 선봉(禪鋒)으로 학인(學人)들을 깨우쳐주는 할방(喝棒)의 가풍(家風)이 열려 당시 참학(參學)하러 온 사부대중(四部大衆)은 구름같았다고한다.

() 함통(咸通) 원년(元年 : 860), 장군(將軍)이자 태위(太尉)인 묵군화(墨君和) 거사(居士)가 자기가 살던 집을 보시(布施)하여 절로 만들고 임제(臨濟)란 편액(扁額)을 달았던 데서 연유(緣由)한 임제원(臨濟院)으로 옮겨와 교화(敎化)를 펴던 임제(臨濟)867410일 입적(入寂)하였는데, 선방(禪房)에서 정진(精進)하던 그 모습 그대로 의연(依然)히 앉은 채 열반(涅槃)에 들어 옷매무새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스승()의 전신(全身)으로 대명부(大名府) 서쪽에 탑을 세우니, 시호는 혜조(慧照)선사, 탑호는 징령(澄靈)이라 하다.

문하(門下) 상족(上足)으로 삼성혜연(三聖慧然), 흥화존장(興化存奬), 관계지한(灌谿志閑), 유주담공(幽州譚空), 보수소(寶壽沼), 위부대각(魏府大覺) 22인이 있다. 삼성은 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을 편록(編錄)하였다.

임제는 견성(見性)을 향한 수행 방편(修行 方便)에 대한 해설서(解說書)인 임제록(臨濟錄)이란 명저(名著)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그의 선풍(禪風)은 대자유(大自由)와 활발발지(活潑潑地)의 살활자재(殺活自在)로운 가풍이며, 선문대종장(禪門大宗匠)의 면목을 약여(躍如)하게 전하고 있다. 그의 법계(法系)는 송대(宋代)에 크게 흥()하더니 청대(淸代)에는 일대주류(一代主流)를 형성하였다.

그의 법어(法語) 방편(方便)에 삼현삼요(三玄三要), 임제사갈(臨濟四喝), 사요간(四料揀) 등이 있다.

한국 불교(韓國 佛敎)에도 깊은 영향(影響)을 끼쳐 독특(獨特)한 임제법통(臨濟法統)을 낳기도 하였다.

행적(行蹟) : 임제스님이 선()에 뜻을 두고 황벽(黃檗)선사 회상을 찾아가서 3년 동안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에 전력(全力)을 다 쏟았다. 그 회상에 몇 백 명 대중이 모여 수행생활을 했지만, 임제 스님과 같이 신심(信心)과 용맹(勇猛)으로 일거일동에 화두(話頭)와 씨름하는 그러한 좋은 기틀을 가진 사람이 둘도 없었을 만큼 빈틈없이 정진하였다. 당시에 입승(立繩)을 보던 목주(睦州)스님이 임제 스님을 쭉 지켜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기고, 하루는 조실(祖室)이신 황벽선사를 찾아가서 그러한 말씀을 드렸다. 우리 회중(會中)에 장차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될 만한 인물이 있으니 조실 스님께서 자비로 제접(提接)하여 주십시오.

내가 벌써 알고 있네. 황벽선사께서는 이미 큰 법기(法器)가 하나 와서 진실하게 공부해 나가고 있는 것을 간파(看破)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 그 수좌(首座)를 보낼 터이니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

목주 스님은 황벽 선사께 이렇게 청을 드려놓고, 임제스님을 찾아가서 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구(參究)하여 왔으니 이제는 조실스님께 가서 한번 여쭈어 보게. 하니, 임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여쭈어야 합니까?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게.

임제 스님은 목주 스님이 시키는 대로 조실 방에 찾아가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서 여쭈었다.

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선사께서는 주장자(柱杖子)로 이십 방()을 후려 갈기셨다. 임제 스님이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 실에서 쉬고 있으니, 목주 스님이 찾아왔다.

갔던가? ,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여쭈었다가 방망이만 흠씬 맞아 전신이 다 부서진 것 같습니다.

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 번 큰 신심(信心)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 이 경책에 힘입어 다음날, 임제스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조실 방에 들어갔다.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이렇게 여쭈니,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이십 방()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목주 스님은 간병 실에 누워 있는 임제 스님을 찾아와 사정얘기를 듣고 나서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이 법은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아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기도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니, 밤새 조리를 잘 하고 다시 용기와 신심을 가다듬어 내일 조실 스님을 찾아가게.

그 다음날도 임제 스님은 조실 방에 들어갔다가 역시 종전과 같이 혹독한 방망이만 이십 방() 맞고 물러나오게 되었다.

임제스님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주 스님에게 말했다. 저는 아마도 이곳에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는 것은 좋으나 조실 스님께 하직 인사나 올리고 가게. 갈 곳을 일러주실 것이네.

임제 스님이 떠날 채비를 다 해놓고서 황벽 선사께 가서 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 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이 지중하여 미혹(迷惑)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고는 하직인사를 올렸다.

어디로 가려는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안(高安)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 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그리하여 임제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고안 대우 선사 처소를 향해 수백 리 길을 걸어가는데, 걸음걸음이 의심이었다.

무슨 의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났는가 하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3번 다 이십 방()씩 육십 방을 내리셨을까?

그대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다.

팔만사천모공에 온통 그 의심뿐이었던 것이다.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一念)을 지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구하는 한 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다.

참학인(參學人)들이 10,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

임제 스님이 여러 달을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고안에 당도하여 대우(大愚)선사를 참예하였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황벽 선사 회상에서 지내다가 옵니다.

황벽 선사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던가?

제가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3번이나 여쭈었다가, 3번 다 몽둥이만 흠씬 맞았습니다. 대체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대우 선사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황벽 선사께서 그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치셨는데, 그대는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순간, 웃는 그 소리에 임제스님은 홀연히 진리의 눈을 떴다. 그토록 의심하던 황벽 육십 방()의 낙처(落處)를 알았던 것이다.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구나!

임제 스님이 불쑥 이렇게 말하자, 대우 선사께서 임제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다그치셨다. 이 철없는 오줌싸개야! 네가 무슨 도리를 알았기에, 조금 전에는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니 이제 와서는 황벽의 불법이 별 것 아니라고 하느냐? 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우 선사의 옆구리를 3번 쥐어박으니, 대우 선사께서 잡았던 멱살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한편, 정성본(鄭性本) 교수(敎授)는 자신의 저서(著書) ()의 역사(歷史)와 사상(思想, 1994)을 통해 임제(臨濟)의 아따, 겨우 황벽(黃檗)의 진리(眞理)라는 게 그거야. 별게 아니군. 이란 표현(表現)이 잘못된 해석(解釋)이라고 단정(斷定)하고, 원어(原語)인 원래 황벽불법 무다자(元來 黃檗佛法 無多子)에서 무다자(無多子)는 간단명료(簡單明瞭)한 진실성(眞實性)을 표현(表現)한 당시(當時)의 속어(俗語)이기 때문에 그 올바른 해석(解釋)은 아아! 황벽(黃檗)의 진리(眞理)가 이렇게 단적(端的)일 줄이야! 라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니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네.

임제 스님이 다시 황벽 선사께 돌아와, 여러 해 동안 모시면서 탁마(琢磨)하여 대종사(大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 문중에서는 납자(衲子)가 종사(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면, 스승으로부터 법을 부촉(付囑)받고 분가(分家)하여서 다른 곳에 회상을 연다. 이때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부촉하는 표시로 주장자(柱杖子)나 불자(拂子)를 부치는데, 이 주장자와 불자는 모든 부처님의 살림의 정안(正眼)인 것이다.

하루는 임제스님이 하직인사를 올리니, 황벽 선사께서 시자를 불러 이르셨다. 주장자와 불자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임제 스님이 즉시 응수(應酬)하기를, 시자야, () 가져오너라. 하였다.

이렇듯 기틀을 쓰는 데 있어서 돌불(石火)보다도 빠르고 번개보다도 빨랐다.

 

是是非非都不關 :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 상관하지 말고

山山水水任自閑 : 산이면 산물이면 물 스스로에 맏기라.

莫間西天安養國 : 서쪽에만 극락세계 있다고 하지 말라

白雲斷處有靑山 : 흰 구름 걷히면 푸른 산이 있는 것을.

 

 

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 모두가 진리로다.

 

행록(行錄)-35. 임제스님이 열반하실 때

 

師臨遷化時 據坐云, 吾滅後 不得滅却吾正法眼藏 三聖出云, 爭敢滅却和尙正法眼藏 師云, 已後有人問? 向他道什? 三聖便喝 師云, 誰知吾正法眼藏向這? 驢邊滅却 言訖 端然示寂

 

임제스님이 열반하실 때 자리에 앉으셔서 말씀하였다.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나의 정법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삼성스님이 나와서 사뢰었다.

어찌 감히 큰스님의 정법안장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후에 누가 그대에게 물으면 무어라고 말해 주겠느냐?”

 

삼성스님이 !”을 하므로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 먼 나귀한테서 없어질 줄 누가 알겠는가?”

말을 마치시고 단정하게 앉으신 채 열반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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