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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의 禪詩(선시) (21)~(30)

by 산산바다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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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禪詩 (21)~(30)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허응당보우(虛應堂普雨, 1509~1565, 조선 중기의 승려)1530(중종 25)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1548년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 주지가 되었고, 1551년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제(禪敎兩宗制)를 부활시켜 승과를 실시했는데 이때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각각 선종과 교종의 승파에 장원으로 뽑혔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로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귀양, 제주목사인 변협(邊恊)에게 피살당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가 있습니다.

 

보우가 활약했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성리학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조광조,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성리학 극성기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대비(文定大妃)의 도움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불교의 제도를 부활하려는 보우를 유자들은 요승’, ‘권승이라며 철저하게 폄하했지만, 보우는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뛰어난 고승이었다.

유가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불교부흥을 위해 매진했던 보우의 삶과 행적은 승려 한 개인이 전체 유림을 대상으로 싸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 보우는 이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선교양종과 승과를 복구하고, 도승제(度僧制)를 부활하는 등의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조선불교의 중흥조. 스님은 일찍이 불학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와 서에 능하여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마하연사, 표훈사 등 금강산 일대에서 20여 년간 수행하다 세상을 나와 호남지역을 유람하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폐불과 법난을 몸소 겪고 양주 회암사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병고를 떨치고 일어날 즈음 당시 봉은사의 명곡조사가 노환으로 물러나게 되자 문정대비는 보우대사를 천거 봉은사에 주석케 하였다. 문정대비의 후원을 얻은 보우대사는 쇠락해가는 조선불교를 중흥하기 위한 근본도량을 봉은사로 하고 이곳에서 중흥불사를 시작하였다.먼저 승려 5000여명 도첩을 주어 승려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선교양종을 부활하였으며, 승과고시를 실시함으로써 불교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 서산*사명과 같은 당대의 고승을 배출할 수 있었다. 스님은 시문에 능하였고, 불교에 있어서는 선과 교에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선교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선(孺佛仙) 삼교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사상은 후학들이 편찬한 허응당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6년 동안의 정진(精進) 끝에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력(法力)을 얻었고, 그밖에도 대장경을 모두 섭렵하는 한편 <주역>도 공부하였다. 당시 그를 지도해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용문사(龍門寺)의 견성암(見性庵)에 있던 지행(智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48(명종 3) 12월 봉은사(奉恩寺) 주지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문정대비로 하여금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 (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능침(陵寢)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에서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은사와 봉선사(奉先寺)에는 방()을 붙여 잡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조선시대 와서 처음 있는 일로서 유생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비화되었다.

 

이때부터 문정대비·보우와 유생들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이후 문정대비로 하여금 선교 (禪敎) 양종을 다시 부활시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게 함으로써 15515월에는 선종과 교종이 다시 부활되었다. 선교 양종을 부활하라는 문정대비의 비망기가 내려진 뒤 6개월 사이에 상소문이 무려 423건이나 되었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것이 75()나 되었다. 그러나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佛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불법을 보호하고 종단을 소생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156547일에 문정대비가 죽고, 대비의 장례를 마친 유생들은 곧바로 보우의 배척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이이(李珥)<논요승보우소 (論妖僧普雨疏)>를 올려 그를 귀양 보낼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보우는 1565612일에서 7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의 죽음이 서울에 알려진 것은 1015일이었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 (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1, <수월도량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 (水月道場空花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1, <권념요록(勸念要錄)>1권 등이 있다.

 

 

 

(21) 病裏懷故山(병리회고산) : 病 中에 옛 을 그리워함

 

應世慙非分 ~ 世上에 맞춰 사는 것 나의 分數 아니니

悠悠思萬般 ~ 유유히 가지로 생각해 보네.

每緣衰病睡 ~ 매양 으로 쇠약하여 잠에 빠지어

常夢舊靑山 ~ 옛날 지내던 靑山을 꿈꾸기만 하네.

白髮催禪鬢 ~ 흰 머리는 參禪하는 귀밑머리 재촉하고

紅腰損道顔 ~ 붉은 허리는 닦는 얼굴을 衰弱하게 만드네.

何時肩破衲 ~ 어느 때에 어깨에 헤진 누더기 걸치고

歸去賦雲閑 ~ 돌아가 閑暇롭게 구름을 두고 읊어 볼까?

楓嶽懷歸客 ~ 楓嶽山에 돌아가고픈 나그네

煙霞一懶僧 ~ 안개와 놀 속의 한 게으른 중.

岩松身共瘦 ~ 몸은 바위와 소나무와 함께 여위어 가고

江霧病俱興 ~ 안개와 함께 일어나네.

愛日心方赤 ~ 사랑하는 날에는 마음이 붉어지지만

哀時哭未懲 ~ 슬퍼할 때에는 痛哭이 멈추지 않네.

故山菴下路 ~ 山 菴子 아래로 난 길

奚定卜重登 ~ 다시 한 오르길 期約할 수 있을지.

 

 

 

(22) 奉和應中德軸韻(봉화응중덕축운) : 응중덕이 지은 詩軸(시축)에 삼가 화답하다 

 

說幻寧爲幻 ~ 을 말한다고 어찌 이 되며

言空豈盡空 ~ 을 말한다고 어찌 이 다하겠는가.

非空非幻處 ~ 도 아니요 도 아닌 곳에

花自笑春風 ~ 꽃은 스스로 봄바람에 웃고 있네.

 

* 詩軸(시축) : 시를 적은 두루마리. 詩畵軸의 준말

 

 

 

(23) 師子庵(사자암) : 사자암

 

路邊舊蘭若 ~ 길가의 오랜 암자

惱客每長空 ~ 언제나 비어 나그네 괴롭힌다.

古砌生藤蔓 ~ 옛 섬돌에는 등덩굴이 뻗었고

寒庭長茅叢 ~ 쓸쓸한 뜰에는 풀떨기가 자랐다.

塵侵金佛面 ~ 부처 얼굴에는 티끌이 침로하고

葉滿水槽中 ~ 물통 안에는 나뭇잎이 가득하다.

仰碧嗟噓立 ~ 하늘 우러러 歎息하며 섰나니

千峰夕照紅 ~ 봉우리마다 저녁놀이 붉었다.

 

 

 

(24) 山居雜咏(산거잡영) 15首 中. 7 : 산에 살면서 짓다

 

 

飢向林間收橡栗 ~ 배고프면 숲속에 도토리와 밤을 주워 오고

渴尋巖底汲淸湍 ~ 목마르면 바위 밑에 맑은 물을 길어 온다.

萬鐘九鼎公卿樂 ~ 富貴權勢가 즐겁기도 하겠지만

爭換山僧半日閑 ~ 어찌 山僧閑暇나절과 바꿀 수 있겠는가.

 

* 만종구정(萬鍾九鼎)이란 많은 녹()과 힘 있는 세도(勢道)를 뜻하는 말이다.

 

 

 

(25) 山居雜咏(산거잡영) 15首 中. 14 : 산에 살면서 짓다

 

 

秋山何事最淸奇 ~ 가을 어인 일로 이토록 맑고 奇異하뇨

上樹葡萄爛熟垂 ~ 나무 위의 머루는 잘 익어 드리웠다.

讀罷南華親手摘 ~ 南華經을 다 읽고서 머루를 직접 따서

出林還寺夕陽時 ~ 夕陽 무렵 숲을 나서 山寺로 돌아온다.

 

 

 

(26) 山居雜咏(산거잡영) : 산에 살면서 짓다

 

嫩蕨和雲揖(눈궐화운읍) : 어린 고사리는 구름과 친해 절하고

香蔬得雨肥(향소득우비) : 향기로운 나물은 비를 맞아 자라네.

提籃閑出寺(제람한출사) : 한가롭게 바구니 들고 절을 나서서

採取每療飢(채취매료기) : 고사리랑 나물로 주림을 면한다네.

 

 

(27) 山我兩忘(산아량망) : 산과 나를 잊음이여

 

我山山我理無間 ~ 내가 이고 이 나, 理致는 빈틈이 없으니

孰是山客孰我顔 ~ 누가 이 의 얼굴이며 누가 나의 얼굴인가?

執我異山還着我 ~ 나를 내세워 과 다르다 함은 自己執着에 떨어지고

認山非我未忘山 ~ 이 내가 아니라고 알면 을 잊을 수 없음이리.

直抛能所情多許 ~ 똑바로 온갖 差別의 알음알이 버리면

便得根塵體一般 ~ 一心萬物神妙함을 깨달으리.

滿目峩峩知底物 ~ 눈앞의 높고 높은 봉우리 이 무슨 物件인가

東林春醉浸禪關 ~ 쪽 숲 봄나들이에 흠뻑 해 고요한 三昧에 빠져 드네.

 

 

 

(28) 山中卽事(산중즉사) : 산에서 즉흥적으로 짓다

 

僧房雖本靜 ~ 중의 本來 고요한 것이지만

入夏轉淸虛 ~ 여름이 되니 더욱 맑고 비었네.

愛獨朋從散 ~ 孤獨을 좋아하니 벗들도 흩어지고

嫌喧客任疎 ~ 시끄러움 싫어하니 나그네도 드물다.

蟬聲山雨後 ~ 에 비 오고 나니 매미 소리 들리고

松籟曉風餘 ~ 새벽바람 불고 나니 솔바람 소리 들리네.

永日東窓下 ~ 東窓 아래 긴 하루 동안

無心讀古書 ~ 無心으로 옛 書籍을 읽노라.

 

 

 

(29) 上須彌庵(상수미암) : 수미암에 올라

 

小庵高竝廣寒隣 ~ 작은 庵子 須彌庵이 높이 솟아 廣寒宮과 이웃하고

白髮禪僧獨坐眠 ~ 白髮僧侶가 혼자 앉아 잠이 들었구나.

醉客酣雲迷甲乙 ~ 醉客은 구름에 甲論乙駁 시빗거리 잊고

開花脫葉紀時年 ~ 피는 꽃 지는 잎 때와 해를 엮어간다.

一雙鶴老茶煙外 ~ 달이는 煙氣 속에 한 쌍의 늙어가고

萬疊峯回藥杵邊 ~ 겹겹한 봉우리 절구 쪽으로 굽어든다.

聞說此中仙境在 ~ 이곳에 神仙이 산다 하니

吾師無乃永郞仙 ~ 내 스승 따로 없고 바로 永郞仙이로구나.

 

 

 

(30) 西川對月夜遊回文(서천대월야유회문) : 西川에서 달맞이하며 밤놀이하자고 돌리는 글

 

松亭對月翫川淸 ~ 松亭에서 달을 마주하여 맑은 시냇물 翫賞(완상)하고

坐石忘歸鶴報更 ~ 바위에 앉아 돌아갈 생각 잊었는데 時刻을 알려주네.

峯翠倒溪搖隱隱 ~ 푸른 봉우리 시내에 거꾸로 비쳐 은은히 흔들리니

夜中遊興倍常情 ~ 밤놀이의 興趣 보통 때 마음보다 갑절이라네.

 

* 완상(翫賞) : 일본어 완상(玩賞즐기어 구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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