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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의 禪詩(선시) (31)~(40)

by 산산바다 2022. 11. 8.

산과바다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 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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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禪詩 (31)~(40)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허응당보우(虛應堂普雨, 1509~1565, 조선 중기의 승려)1530(중종 25)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1548년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 주지가 되었고, 1551년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제(禪敎兩宗制)를 부활시켜 승과를 실시했는데 이때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각각 선종과 교종의 승파에 장원으로 뽑혔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로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귀양, 제주목사인 변협(邊恊)에게 피살당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가 있습니다.

 

보우가 활약했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성리학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조광조,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성리학 극성기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대비(文定大妃)의 도움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불교의 제도를 부활하려는 보우를 유자들은 요승’, ‘권승이라며 철저하게 폄하했지만, 보우는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뛰어난 고승이었다.

유가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불교부흥을 위해 매진했던 보우의 삶과 행적은 승려 한 개인이 전체 유림을 대상으로 싸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 보우는 이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선교양종과 승과를 복구하고, 도승제(度僧制)를 부활하는 등의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조선불교의 중흥조. 스님은 일찍이 불학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와 서에 능하여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마하연사, 표훈사 등 금강산 일대에서 20여 년간 수행하다 세상을 나와 호남지역을 유람하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폐불과 법난을 몸소 겪고 양주 회암사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병고를 떨치고 일어날 즈음 당시 봉은사의 명곡조사가 노환으로 물러나게 되자 문정대비는 보우대사를 천거 봉은사에 주석케 하였다. 문정대비의 후원을 얻은 보우대사는 쇠락해가는 조선불교를 중흥하기 위한 근본도량을 봉은사로 하고 이곳에서 중흥불사를 시작하였다.먼저 승려 5000여명 도첩을 주어 승려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선교양종을 부활하였으며, 승과고시를 실시함으로써 불교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 서산*사명과 같은 당대의 고승을 배출할 수 있었다. 스님은 시문에 능하였고, 불교에 있어서는 선과 교에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선교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선(孺佛仙) 삼교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사상은 후학들이 편찬한 허응당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6년 동안의 정진(精進) 끝에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력(法力)을 얻었고, 그밖에도 대장경을 모두 섭렵하는 한편 <주역>도 공부하였다. 당시 그를 지도해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용문사(龍門寺)의 견성암(見性庵)에 있던 지행(智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48(명종 3) 12월 봉은사(奉恩寺) 주지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문정대비로 하여금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 (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능침(陵寢)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에서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은사와 봉선사(奉先寺)에는 방()을 붙여 잡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조선시대 와서 처음 있는 일로서 유생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비화되었다.

 

이때부터 문정대비·보우와 유생들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이후 문정대비로 하여금 선교 (禪敎) 양종을 다시 부활시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게 함으로써 15515월에는 선종과 교종이 다시 부활되었다. 선교 양종을 부활하라는 문정대비의 비망기가 내려진 뒤 6개월 사이에 상소문이 무려 423건이나 되었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것이 75()나 되었다. 그러나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佛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불법을 보호하고 종단을 소생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156547일에 문정대비가 죽고, 대비의 장례를 마친 유생들은 곧바로 보우의 배척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이이(李珥)<논요승보우소 (論妖僧普雨疏)>를 올려 그를 귀양 보낼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보우는 1565612일에서 7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의 죽음이 서울에 알려진 것은 1015일이었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 (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1, <수월도량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 (水月道場空花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1, <권념요록(勸念要錄)>1권 등이 있다.

 

 

 

(31) 西川望希夷子廟有感(서천망희이자묘유감) : 西川에서 希夷子(희이자를 바라보며 感懷가 있어

 

<1>

希夷廟在慶雲陽 ~희이자 경운산 남쪽에 있어

遙望松楸感意長 ~ 멀리 를 바라보니 느낀 생각 오래가네.

大塊不能籠壯節 ~ 큰 땅덩이라도 씩씩한 節槪 덮을 수 없고

百靈無地祕幽光 ~ 神靈으로도 숨은 빛을 감출 땅 없었네.

采薇澗畔雲含濕 ~ 고사리 캐던 개울가엔 구름에 비 머금었고

種藥林間草帶香 ~ 藥草 심던 숲속에는 풀 香氣 띠를 둘렀구나.

何日齋明擔奠藻 ~ 어느 날에 齋戒(재계)한 다음날 祭祀飮食 짊어지고

夜深山月獻椒漿 ~ 밤 깊어 에 달뜨면 제사술 드리겠는가?

 

<2>

生世雖遐阻 ~ 태어난 世代가 비록 멀리 떨어졌다 해도

懷賢道可親 ~ 賢人이 품었던 는 가까이 할 만하네.

溪聲無異舌 ~ 시냇물 소리 다름이 없고

山色有同身 ~ 빛도 같은 몸이어라.

遺跡荒墳古 ~ 남아 있는 자취 황폐한 무덤 오래되었지만

流芳短碣新 ~ 전해온 꽃다운 이름 짧은 碑石에 새롭구나.

神交何待語 ~ 精神交流하는데 어찌 말을 기다리겠는가!

雲影過嶙峋 ~ 구름 그림자 높은 봉우리를 지나가네.

 

<3>

千鍾富貴抽身出 ~ 千鍾富貴에서 몸을 빼내어

萬壑煙霞臥一生 ~ 一萬 골짜기 안개와 놀 속에 一生을 뉘웠네.

敗冢縱隨陵谷變 ~ 무덤 무너짐은 언덕과 골짜기 變化에 따르지만

高標天地竝流名 ~ 높은 人品 天地와 나란히 이름을 해오네.

 

 

 

(32) 書興(서흥) : 흥취를 쓰다

 

曹溪佩印愧多譏 ~ 曹溪宗 벼슬하여 많은 비난받은 일 부끄러워

移住淸平已一期 ~ 淸平으로 옮겨 이미 一 年을 살았네.

萬朶靑松眞益友 ~ 그루 푸른 솔 참으로 유익한 벗이고

數床黃卷正明師 ~ 箱子 누런 바로 밝은 스승이라.

臨深履薄當時我 ~ 깊은 못에 림한 듯 얇은 얼음 밟듯 當時의 나이건만

說白言玄此日誰 ~ 淸淨함을 말하고 玄妙함을 말하는 이날은 누구인가.

八載是非皆幻夢 ~ 八 年間 是是非非 모두가 허깨비 꿈이라.

都忘禪室臥支頤 ~ 모두 잊고 禪室에서 턱 괴고 누웠다.

 

 

 

(33) 仙洞奇遇有感(선동기우유감) : 仙洞에서 奇異한 만남에 느낌이 있어서

 

石門岑寂五雲堆 ~ 石門봉우리 적막한데 五色구름 쌓이고

瑞草珍花滿洞開 ~ 상서로운 풀과 진귀한 꽃 골짜기에 가득 피었네.

金殿玉臺閑日月 ~ 金堂玉臺에서 한가한 歲月 보내고

碧桃丹桂靜風雷 ~ 푸른 복숭아 붉은 桂樹나무엔 바람과 우레 고요하네.

靑牛藥圃眠黃犢 ~ 푸른 소로 기르던 藥草밭엔 누런 송아지 잠자고

白鶴瑤池立紫苔 ~ 白鶴 노닐던 아름다운 연못엔 자주빛 이끼 자랐네.

一局爛柯人不盡 ~ 도끼자루 썩은 한 판의 바둑 사람은 다할 수 없으니

響泉琴處羽衣廻 ~ 울림 샘에 거문고 타는 곳에 神仙이 돌아오셨네.

 

 

 

(34) 禪詩(선시) : 선시

 

佛袖從僧志學年 ~ 소매를 떨치고 스님의 길을 따르기는 十 五歲

禪心無復夢塵緣 ~ 參禪하는 마음에 헛된 俗緣(속연) 다시없다.

只難天賦忠肝盡 ~ 다만 天性忠心 다하기 어려워

祝聖淸香日夜燃 ~ 終日 맑은 피워 임금님 祝願하네.

 

 

 

(35) 禪心詩思爭雄不已(선심시사쟁웅불이) : 의 마음과 의 생각이 英雄을 다툼

 

詩魔禪將兩爭雄 ~ 魔鬼 將軍이 서로 英雄을 다투어

愁殺天君日夜攻 ~ 밤낮으로 攻擊하여 마음을 근심스럽게 하네.

將必遜魔興筆陣 ~ 將軍魔鬼에게 지면 붓의 氣勢가 일고

魔應輸將倒邪鋒 ~ 魔鬼將軍에게 지면 삿된 칼날 꺾이네.

難兄難弟魔情快 ~ 魔鬼氣運이 발랄하니 難兄難弟(난형난제)

無弱無强將氣濃 ~ 將軍氣像旺盛하니 强弱이 없네.

安得二讎俱打了 ~ 어떻게 하면 두 怨讎(원수)를 다 물리쳐

大平家國任從容 ~ 太平한 나라에서 조용하게 지내볼까.

 

* 難兄難弟(난형난제) :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두 사물의 낫고 못함을 분간하기 어려움의 비유.

 

 

 

(36) 睡餘聞鍾卽事(수여문종즉사) : 잠을 자고 난 뒤 소리를 듣고

 

睡餘閑捲箔 ~ 잠을 자고 나서 閑暇로이 발을 걷으니

雨後轉靑山 ~ 비 온 뒤라 은 더욱 푸르구나.

何處雲邊寺 ~ 구름 곁 어디가 절인지?

齋鍾杳靄間 ~ 아득한 안개 속에 들려오는 소리.

 

 

 

(37) 宿上雲庵(숙상운암) : 구름 위 庵子에서 잠들다

 

春山無伴獨尋幽 ~ 친구 없이 홀로 봄 깊숙이 찾으니

挾路桃花杖頭 ~ 길가의 복사꽃 지팡이에 스치네.

一宿上雲疎雨夜 ~ 부슬비 내리는 밤 구름 위 잠을 하니

禪心詩想兩悠悠 ~ 의 마음 생각 아득하구나.

 

 

 

(38) 示光則兩中德(시광칙량중덕) : , 두 스님에게 보이다

 

淸平聞說好 ~ 淸平이 좋다는 말을 듣고

每欲往春州 ~ 每 番 春州로 가고 싶었어라.

未解曹溪印 ~ 曹溪宗 도장(圖章) 끈을 아직 풀지 못하니

空懷映澤秋 ~ 空然히 연못에 비친 가을이 그리워라.

長江通寺下 ~ 은 절 아래로 흐르고

短棹向牛頭 ~ 짧은 노를 저어 牛頭한다.

何日重相話 ~ 어느 날에나 다시 서로 이야기 나누랴?

東風蕨自柔 ~ 봄바람에 고사리 절로 여리게 자라리

淸平有山映池 ~ 淸平山映池가 있다.

 

 

 

(39) 示膚上人(시부상인) : ()스님에게

 

仍風起浪浪生漚 ~ 바람에 물결 일고 물결에 거품 일어

慙愧淸平海上浮 ~ 부끄럽게도 맑고 平平한 바다 위에 떠있다니

今日忽然風浪息 ~ 오늘 홀연히 풍랑 그친

澄明元是一江秋 ~ 맑고 밝은 元來의 온 물의 가을이여.

 

 

 

(40) 示小師法語(시소사법어) : 어린 스님에게 주는 法語

 

比如福德者 ~ 비유컨대 이 있는 사람은

執礫礫變金 ~ 조약돌을 잡아도 조약돌이 으로 하고

貧窮無福兒 ~ 빈궁하여 이 없는 아이는

遇金金變礫 ~ 을 만나도 이 조약돌로 한다.

礫非金金生 ~ 조약돌은 이 아닌데도 이 생기고

金非礫礫現 ~ 은 조약돌이 아니지만 조약돌로 나타난다.

金生是心生 ~ 이 생기는 것도 이 마음에서 생기고

礫現是心現 ~ 조약돌로 나타나는 것도 이 마음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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