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바다
선사의 선시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의 禪詩 (11)~(20)
● 虛應堂普雨(허응당보우) (1509~1565. 法號 虛應堂 · 懶庵. 奉恩寺 住持)
허응당보우(虛應堂普雨, 1509~1565, 조선 중기의 승려)는 1530년(중종 25) 16세에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1548년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 주지가 되었고, 1551년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제(禪敎兩宗制)를 부활시켜 승과를 실시했는데 이때 서산(西山)과 사명(四溟)이 각각 선종과 교종의 승파에 장원으로 뽑혔으며,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로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귀양, 제주목사인 변협(邊恊)에게 피살당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이 있으며 양주 회암사지에 그의 부도도 추정되는 무명의 부도가 있습니다.
보우가 활약했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성리학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조광조, 이황, 이이와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성리학 극성기에 명종의 모후인 문정대비(文定大妃)의 도움으로 오래전에 폐지된 불교의 제도를 부활하려는 보우를 유자들은 ‘요승’, ‘권승’이라며 철저하게 폄하했지만, 보우는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뛰어난 고승이었다.
유가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불교부흥을 위해 매진했던 보우의 삶과 행적은 승려 한 개인이 전체 유림을 대상으로 싸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 보우는 이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지만, 선교양종과 승과를 복구하고, 도승제(度僧制)를 부활하는 등의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조선불교의 중흥조. 스님은 일찍이 불학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와 서에 능하여 사대부들과 교류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마하연사, 표훈사 등 금강산 일대에서 20여 년간 수행하다 세상을 나와 호남지역을 유람하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폐불과 법난을 몸소 겪고 양주 회암사로 돌아와 몸져누웠다. 병고를 떨치고 일어날 즈음 당시 봉은사의 명곡조사가 노환으로 물러나게 되자 문정대비는 보우대사를 천거 봉은사에 주석케 하였다. 문정대비의 후원을 얻은 보우대사는 쇠락해가는 조선불교를 중흥하기 위한 근본도량을 봉은사로 하고 이곳에서 중흥불사를 시작하였다.먼저 승려 5000여명 도첩을 주어 승려의 신분을 보장하였고, 선교양종을 부활하였으며, 승과고시를 실시함으로써 불교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 서산*사명과 같은 당대의 고승을 배출할 수 있었다. 스님은 시문에 능하였고, 불교에 있어서는 선과 교에 탁월한 식견을 갖추어「선교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유불선(孺佛仙) 삼교에도 두루 통달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사상은 후학들이 편찬한 허응당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6년 동안의 정진(精進) 끝에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법력(法力)을 얻었고, 그밖에도 대장경을 모두 섭렵하는 한편 <주역>도 공부하였다. 당시 그를 지도해준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문헌을 종합해보면, 경기도 용문사(龍門寺)의 견성암(見性庵)에 있던 지행(智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48년(명종 3) 12월 봉은사(奉恩寺) 주지에 취임하여 제일 먼저 문정대비로 하여금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 (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능침(陵寢)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에서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은사와 봉선사(奉先寺)에는 방(榜)을 붙여 잡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하였다. 이러한 일은 조선시대 와서 처음 있는 일로서 유생들의 심한 반발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비화되었다.
이때부터 문정대비·보우와 유생들 사이에는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이후 문정대비로 하여금 선교 (禪敎) 양종을 다시 부활시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게 함으로써 1551년 5월에는 선종과 교종이 다시 부활되었다. 선교 양종을 부활하라는 문정대비의 비망기가 내려진 뒤 6개월 사이에 상소문이 무려 423건이나 되었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것이 75계(啓)나 되었다. 그러나 보우는 "지금 내가 없으면 후세에 불법(佛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불법을 보호하고 종단을 소생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1565년 4월 7일에 문정대비가 죽고, 대비의 장례를 마친 유생들은 곧바로 보우의 배척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이이(李珥)가 <논요승보우소 (論妖僧普雨疏)>를 올려 그를 귀양 보낼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보우는 1565년 6월 12일에서 7월 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의 죽음이 서울에 알려진 것은 10월 15일이었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 (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저서로는 <허응당집(虛應堂集)>3권과 <나암잡저(懶庵雜著)>1권, <수월도량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 (水月道場空花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1권, <권념요록(勸念要錄)>1권 등이 있다.
(11) 洛山雜咏(낙산잡영) : 낙산에서 잡영
草坐同黃犢 ~ 송아지와 함께 풀밭에 앉고
沙行共白鷗 ~ 갈매기와 더불어 모래밭을 거닌다.
海天詩思遠 ~ 바다나 하늘에 詩思는 아득한데
日暮獨歸舟 ~ 해 저문 날에 외로운 배 돌아온다.
(12) 南池卽事(남지즉사) : 南池에서 바로 짓다
瀲艶方塘赭木疎 ~ 찰랑찰랑 고운 못에 붉은 나무 듬성하고
一筇無日不徐徐 ~ 지팡이 짚고 천천히 거닐지 않은 날이 없었네.
山容倒揷波心靜 ~ 山이 거꾸로 들어와도 물결은 고요하고
雲影平沈鏡面虛 ~ 구름 그림자 가라앉아도 거울 水面 비었구나.
岩畔桂香碁展後 ~ 바위가 桂樹 향기 바둑판 펼친 뒤 퍼지고
鶴邊松籟睡醒初 ~ 鶴이 깃든 솔바람소리 낮잠을 깨우는구나.
樵童莫遣須臾翫 ~ 나무꾼 아이야 잠간도 완상(翫賞)하며 보내지 마라
歸去人間宅半墟 ~ 人間世界 돌아가면 집 절반은 비웠으리라.
(13) 登望高峰(등망고봉) : 望高峰에 올라
獨上金剛最上峰 ~ 金剛山 最上峰을 나 혼자 올라
俯看天地意彌濃 ~ 天池를 굽어보니 뜻이 더욱 넓어진다.
秋深澗展琉璃碧 ~ 가을이 깊어 시내는 파란 琉璃 펼치고
霜重山披錦繡紅 ~ 서리가 짙어 산들은 붉은 緋緞 입었다.
石逕遙橫黃葉底 ~ 돌길은 落葉 밑으로 멀리 누워 있고
茅庵微露白雲中 ~ 庵子는 구름 속에 아스라이 보인다.
留連竟夕忘回步 ~ 저물도록 오래 놀다 돌아가기 잊었는데
髣髴穿林出暮鐘 ~ 저녁 鐘소리는 숲을 뚫고 隱隱히 들려온다.
(14) 登悟道山(등오도산) : 悟道山에 올라
以道名山意欲看 ~ 산 이름이 道라 하여 살펴보려는 마음에
杖藜終日苦躋攀 ~ 하루 終日 지팡이 짚고 힘겹게 올랐다.
行行忽見山眞面 ~ 오르는 길에 문득 山의 眞面目을 보니
雲自高飛水自湲 ~ 구름은 제 스스로 높이 날고 물 또한 스스로 흐르는도다.
(15) 明雄二友(명웅이우) : 明, 雄 두 벗에게
緬惟太白諸禪友 ~ 아득히 생각나는 太白山 여러 禪房의 벗들
近歲參尋道幾多 ~ 요사이 얼마나 많이들 道에 參尋(참심)했는가?
流水光陰侵老崇 ~ 흐르는 물과 같은 歲月은 늙음이 찾아오는 災殃이며
浮雲名譽損禪魔 ~ 뜬구름 같은 명예는 禪定을 방해하는 魔物(마물)이라네.
茶爐茗熟懷同飮 ~ 茶爐에 茶 끓으면 함께 마시고 싶고
書幌詩成憶共 ~ 글씨 쓰는 揮帳에 詩 쓰면 함께 읊조리고
君旣與吾情不淺 ~ 그대들과 나의 情이 얕지 아니하니
秋風連袂訪如何 ~ 가을바람 불거들랑 소매(袂몌)이어 함께 찾아옴이 어떤가?
(16) 夢破餘不勝自幸快詠一律以示心知(몽파여불승자행쾌영일률이시심지) : 꿈을 깨고 나서 스스로 幸福함을 이기지 못해 詩 한 首를 읊어 마음에 터득한 것을 보인다.
欲窮斯道掩禪扃 ~ 이 道理를 궁리하느라 禪房 門빗장을 걸었더니
一貫千殊妙忽明 ~ 萬法을 하나로 꿰는 묘한 道理가 忽然히 밝아지네.
無相可名崔鄭朴 ~ 모습이 없어 崔氏, 鄭氏, 朴氏라고 이름 붙일 수 없고
有神能體馬牛鯨 ~ 神靈함이 있어 능히 말과 소와 고래의 몸통이 된다.
冬寒夏熱天呼吸 ~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우니 하늘의 들숨과 날숨이요
葉落花開地死生 ~ 落葉 지고 꽃이 피니 땅의 나고 죽음이로다.
萬像森羅都自己 ~ 森羅萬像이 모두 다 自己인데
何須出戶謾馳行 ~ 어찌 구태여 집을 나서 부질없이 바쁘게 다니리오.
(17) 聞世之人 以余病退仙洞退 更築臺壇 晦養餘生 稱知行藏 善隱現云 卽述二偈. :: 世上 사람이 내가 病으로 仙洞에 물러나 다시 臺壇을 쌓고 숨어서 남은 生을 養生한다는 消息을 듣고, 行할 때와 감출 때를 알아서 훌륭히 숨고 드러낼 줄 안다고 稱讚한다고 하기에 곧 두 首의 偈頌을 지었다.
其一
行藏非我孰知源 ~ 行하고 감춤은 내가 아니면 누가 根源을 알겠는가?
隱現唯天道又存 ~ 숨고 나타남은 오직 하늘에 있으니 道는 또한 保存하네.
選佛兩場曾奉詔 ~ 選佛(禪科擧)하는 두 科場에서 일찍이 詔書(조서)를 받들었고
度僧千指亦承恩 ~ 度牒(도첩)을 스님 千 名에게 주었으니 또한 임금님 恩慧로다.
還携甁錫來仙洞 ~ 물병과 錫杖(석장) 지니고 仙洞에 와서
却築臺壇閉石門 ~ 臺壇(대단)을 쌓아 石門을 굳게 닫았더니
從此虛名喧衆耳 ~ 이로부터 헛된 이름 뭇 사람의 귀 시끄럽게 하였고
謾敎山野說風旛 ~ 부질없이 山과 들에서 風旛(풍번)을 說明하게 하였네.
其二
惟道本屢遷 ~ 道란 本來 자주 옮겨지니
吾何違自然 ~ 내 어찌 自然을 어기겠는가?
江行深則厲 ~ 江을 건넘에 깊으면 허리까지 옷을 치켜 올리고
溪渡淺還褰 ~ 여울 건넘에 얕으면 옷자락 걷어 올리네.
舜日橋山寺 ~ 舜임금 해가 뜨는 橋山의 절
堯風仙洞天 ~ 堯임금 바람 부는 仙洞의 하늘
孤筇無適莫 ~ 외로운 지팡이 더없이 알맞은 곳 없으니
來去任隨緣 ~ 오고 감을 因緣에 맡길 뿐이네.
(18) 泊三雷津 望淸平山(박삼뢰진 망청평산) : 三雷津에 碇泊하고 靑平山을 바라보다
浮天翠黛是淸平 ~ 하늘에 뜬 검푸른 눈썹 같은 것이 淸平山이고
指點遠知眞面目 ~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멀리서도 眞面目을 알겠구나.
爲報舟師添一篙 ~ 뱃사공에게 삿대질 한번 더하기를 알려주니
莫敎來夜寒江宿 ~ 오늘밤 차가운 江에서 자지 않으려함이라네.
(19) 別寶上人(별보상인) : 벗과 이별하며
波飜人事儘難知 ~ 물결 따라 흘러가는 사람일 알 수 없으니
莫謾重來豫作期 ~ 다시 온다고 부질없는 約束은 하지 맙시다.
物豈與天先有約 ~ 萬物과 하늘 간에 어찌 先約이 있겠소만
春風無樹不生枝 ~ 봄바람에 움 트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으리오.
* 朝鮮 建國 이래 탄압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佛敎를 中興시킨 이가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스님이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文定王后가 죽자 스님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맞아 죽었다. 이 시는 우배지로 떠나기 직전 쓴 것으로 보인다. 인간 세상의 일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니 다시 돌아온다는 約束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전반부에서 말하고 있다. 스님은 자신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별을 슬퍼하는 상대방에게 한 가닥 여운을 남기고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머지않아 봄이 올테고 봄바람이 불면 나무마다 가지에 움이 튼다며 달랜다. 더불어 피폐된 佛敎도 언젠가는 다시 소생할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20) 別宗中禪友(별종중선우) : 宗中 禪友와 이별하며
別逢逢別意悠悠 ~ 헤어졌다 만나고 만났다 헤어지니 생각 끝없어
欲說幽懷恐結愁 ~ 속마음 말하려 해도 시름 될까 두렵네.
昨夜已開千佛眼 ~ 어젯밤 이미 千 佛의 눈 열렸으니
却廻烟棹上春州 ~ 배 되돌려 春州(春川)로 올라가네.
산과바다 이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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