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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는 꽃이 피네
禪詩/禪師들의 禪詩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의 禪詩(선시) (61)~(70)

by 산산바다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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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 (1226~1292)禪詩 (61)~(70)

 

 

圓鑑國師, 圓鑑沖止, 釋圓鑑(원감국사, 원감충지, 석원감) (1226~1292. 高麗 . 俗名 魏元凱. 本貫 長興. 諡號(시호) 圓鑑國師. 定安 <現在長興人. 처음 法名法桓. 沖紙. 自稱 號宓庵이라 함)

 

*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2)

고려시대 선승(禪僧). 수성사(修禪社) 6(). 성은 위(). 속명은 원개 (元凱). 본래의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 자호는 복암(宓庵). 전 라남도 장흥출신.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호소(號紹)이며, 어머니 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선림(禪林) 에 나아가 득도하기를 원하였지만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관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였 는데, 이는 항상 도를 얻고자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닌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1266(원종 7) 여름에 원오국사의 교유(敎諭)와 조지(朝旨)로 인하여 부득이 경상남도 김해군의 감로사(甘露寺) 의 주지가 되었다. 1269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 로사를 떠나 승주군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보조국사(普 照國師)로부터 시작된 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선 ()보다는 교()에 치중하였다.

128311월에는 대중을 거느리고 조계산을 출발하여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 장경을 도중에 맞이하여 나누어 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 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수선사를 떠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 로 옮겨 선정을 닦고 있던 중 12862월에 원오국사가 그를 수선사의 사주 (社主)로 추천하는 장문(狀聞)을 왕에게 올리고 입적하였다. 장문을 받은 충 렬왕은 원외시랑(員外侍郞) 김호담(金浩淡)을 시켜 그로 하여금 616일에 개당(開堂)하게 함에 따라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불교의 삼장(三藏)에 이 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사림(詞林)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과 시는 당대의 유림에서도 추앙을 받았다. 도를 닦음에 있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오 조(五祖) 홍인(弘忍)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파강이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부 끄러워하였지만,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선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사(儒士)들처럼 천 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조화(儒禪調和)의 사상조류를 보였고, 상제상 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도이교(儒道二敎)를 불교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 풍(宗風)을 계승하였다.

1292110일 삭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문인 (門人)들에게 "생사(生死)가 있는 것은 인생의 일이다. 나는 마땅히 가리니 너희는 잘 있거라."는 말을 남겼다. 정오가 지나자 분향하고 축원을 올린 뒤 선상(禪床)에 앉아 '설본무설(說本無說)'이라 설하고, 문인들이 청하는 바에 따라 "돌아보니 세상살이 67년인데, 오늘 아침 모든 일을 마쳤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탄연하여 평탄하고, 노두가 분명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손에는 겨우 하나의 대지팡이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피로하지 않을 것이 또 한 기뻐라(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未曾失 手中裳有一枝 且喜途中脚不倦)."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랍 39세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61) 自靑巖將還鷄峯有作(자청암장환계봉유작) : 靑巖에서 鷄峯으로 돌아가면서 짓다

 

隨處隨綠寄此身 ~ 처소에 따라 因緣에 따라 사는 몸이라

五峰鷄嶺孰疎親 ~ 五峰山이든 鷄嶺山이든 무엇이 좋고 나쁠까.

不妨兩地雲無定 ~ 두 곳을 구름이 오가는 것 가리지 않아

元是乾坤一旅人 ~ 元來 하늘과 땅을 떠도는 나그네 身世.

 

 

 

(62) 自戲(자희) : 스스로를 戱弄

 

予曾少多病 ~ 내 어릴 때부터 이 많았는데

今又到衰年 ~ 이제는 나이까지 많아졌구나.

佛尙慵瞻禮 ~ 禮佛하는 일조차 게으른데

經奚要諷宣 ~ 經典을 어찌 외우겠는가?

逢餐輒飽送 ~ 飮食을 만나면 곧바로 배가 부르도록 먹고

値晩卽橫眠 ~ 저녁이 되면 그대로 드러누워 자버리네.

休問祖師意 ~ 祖師의 뜻을 묻지 말아라.

 

 

 

(63) 作偈示諸德(작게시제덕) : 偈頌을 지어 여러 스님들께 보임

 

千峰突兀攙白雲 ~ 봉우리 뾰족하여 흰 구름을 찌르고

一水潺湲瀉蒼石 ~ 한 줄기 물은 푸른 돌 사이로 흐르네.

自然聞見甚分明 ~ 自然히 듣고 보는 것이 매우 分明해지니

爲報諸人休外覓 ~ 모두들 바깥에서 찾지 마시게.

 

 

 

(64) 作野牛頌示同人(작야우송시동인) : 野牛頌을 지어 同僚에게 보이다

 

野牛天性本難馴 ~ 미련한 소의 天性本來 길들이기 어려워

細草平田自在身 ~ 가는 풀 평평한 넓은 들판에 마음대로 다니는구나.

何意鼻端終有索 ~ 무슨 마음으로 끝내는 끈에 얽혀서

牽來牽去摠由人 ~ 사람이 이끄는 데로 끌러 오고 가는 身世가 되었는가.

 

 

 

(65) 雜詠(잡영) :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하여 읊은 詩歌

 

捲箔引山色 ~ 발을 걷어 빛 끌어들이고

連筒分澗聲 ~ 대나무 홈통 이어 골 물 나눠온다.

終朝少人到 ~ 아침 다하도록 찾는 이 없고

杜宇自呼名 ~ 소쩍새만 "소쩍소쩍' 自己 이름 부르는구나.

 

 

 

(66) 齋餘偶作戲語一篇 寄示印禪伯(재여우작희어일편 기시인선백) : 공양(供良)이 끝나고 偶然히 재미로 지은 印 禪伯에게 드림

 

鷄峯一鉢飯 ~ 鷄足峯의 한 그릇 밥

麤細何辨白 ~ 무엇 하려 좋고 나쁨을 가려 말하리오?

人以麥爲草 ~ 사람들은 보리를 풀이라고 하지만

我以草和麥 ~ 나는 풀을 보리에 섞었다 하네.

鷄峰一㿻羹 ~ 鷄足峯의 한 사발 국

滋味休擬議 ~ 맛이 어떤지 논하지 마오.

人以豉和鹽 ~ 사람들은 된장을 소금에 넣었다고 하지만

我以鹽爲豉 ~ 나는 소금을 된이라 생각한다네.

何殊神鼎諲 ~ 神鼎 禪師와 무엇이 다르랴?

十年無醬食 ~ 十 年 동안 된없이 먹었지.

亦如大愚芝 ~ 또한 大愚 禪師와 같아서

粥飯繼不得 ~ 죽이나 밥을 제대로 잇지 못했네.

單丁與枯淡 ~ 홀로 외롭게 그리고 메마르고 맑게 사니

擧世倫比絶 ~ 世上에 나 같은 사람 없네.

主人處其中 ~ 主人이 그 속에 있으면서

怡然樂不徹 ~ 흐뭇한 마음으로 그 즐거움 그만두지 않네.

賓來問其然 ~ 손님이 와서 그 까닭을 물으나

主人笑不答 ~ 主人은 웃기만 하고 對答하지 않으며

賓却笑主人 ~ 손님이 主人을 도로 비웃으니

趣尙寡所合 ~ 趣向崇尙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야.

蚖哉烏覩龍 ~ 도롱뇽이 어찌 境地를 바라보며

燕雀焉知鵠 ~ 제비와 참새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오?

賓乎爾且去 ~ 손님이여 그만 가보시오.

與爾不同欲 ~ 그대와 함께 하고 싶지 않나니.

爾愛飫珍羞 ~ 그대는 珍羞盛饌을 배불리 먹겠지만

我愛蔬與糲 ~ 나는 나물과 매조미(껍질을 대충 벗긴 쌀)를 좋아하고

爾愛服輕裘 ~ 그대는 가벼운 가죽옷을 좋아하겠지만

我愛布與葛 ~ 나는 베옷과 葛布(갈포)를 좋아한다네.

爾喜事紛華 ~ 그대는 華麗한 일을 기뻐하겠지만

我喜處窮僻 ~ 나는 窮僻한 곳에 있는 것을 기뻐하고

爾喜人所趨 ~ 그대는 사람들이 追從하는 것을 기뻐하겠지만

我喜人所斥 ~ 나는 사람들에게 排斥(배척)당하는 것을 기뻐한다네.

水樂遶我軒 ~ 물의 音樂이 나의 처마를 감싸고

山屛圍我屋 ~ 屛風이 나의 집을 둘러싸며

我有萬株松 ~ 나에게는 그루의 소나무가 있고

我有千竿竹 ~ 나에게는 그루의 대나무가 있다네.

貴不羡王侯 ~ 이나 諸侯같은 귀함도 부러워하지 않고

富不羡金谷 ~ 金谷(금곡)과 같은 도 부러워하지 않나니

偃仰適我適 ~ 즐거이 내게 맞는 것을 좋아하고

於焉樂幽獨 ~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즐기노라.

曾不識張三 ~ 일찍이 張三도 알지 못하는데

安知有李四 ~ 어찌 李四를 알리오.

凡我所自養 ~ 내가 스스로 기르는 것을

何以爾所嗜 ~ 네가 어찌 좋아하겠는가?

賓聞赧而退 ~ 손님은 듣고서 얼굴을 붉히고 물러나

索筆書大略 ~ 붓을 찾아 大略을 적어서

寄示同心友 ~ 마음을 같이하는 벗에게 보여

庶以資一噱 ~ 크게 한 웃을 거리로 삼기를 바라노라.

 

* 神鼎(신정) : 中國 宋나라 때의 스님인 洪諲 禪師法號.

* 大愚(대우) : 中國 宋나라 때의 스님인 守芝 禪師法號.

* 金谷 : 中國 歷史上 最高富者로 일컬어지는 石崇金谷園이란 巨大庭園邸宅을 지었다. 이에 따라 金谷象徵이 되었다.

 

 

 

(67) 絶句(절구) : 절구

 

林茂鳥聲樂 ~ 숲이 茂盛하여 새소리 즐겁고

谷深人事稀 ~ 골짜기 깊어서 사람은 드물구나.

夢廻寒瀑落 ~ 차가운 瀑布 물 떨어지니

目送斷雲飛 ~ 끊겼다 나는 구름에 눈길이 간다.

 

* 絶句(절구) : 오언·칠언 다 같이 기(((() 4수로 이루어진다.

 

 

 

(68) 定惠寺偈(정혜사게) : 정혜사를 노래함

 

雞足峰前古道場 ~ 雞足峰千年道場

今來山翠別生光 ~ 와서 보니 山色別天地로 구나.

廣長自有淸溪舌 ~ 맑은 溪谷 물소리가 부처님 說法인지라

何必喃喃更拳揚 ~ 어찌 다시 說法必要할 손가.

 

 

 

(69) 拙語布懷示表兄之禪老(졸어포회시표형지선로) : 서툰 말로 懷抱를 적어 表兄 老스님께 보임

 

歲月如逝水 ~ 歲月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

刹那不少止 ~ 刹那(찰나)도 멈추지 않네.

若以無常觀 ~ 만약 無常함으로 본다면

朝夕保亦難 ~ 아침저녁조차 保全하기 어려우리라.

縱復免殤夭 ~ 비록 夭折(요절)한다 하더라도

古來七十少 ~ 예부터 일흔까지 사는 적었지.

況我早衰羸 ~ 하물며 나는 일찍부터 衰弱(쇠약)하였으니

七十安可期 ~ 일흔을 어찌 期約할 수 있으리.

儻或登七旬 ~ 或是 일흔까지 산다 해도

前去纔十春 ~ 앞에 남은 것이 겨우 十 年인데

餘齡能幾時 ~ 남은 歲月 얼마나 될 수 있으리?

不卜亦自知 ~ 쳐보지 않아도 스스로 알겠도다.

何苦徇時俗 ~ 世上 사람 하는 대로 따라 하기 얼마나 힘든가?

營營不知足 ~ 끙끙거리면서도 滿足할 줄 모르네.

默坐細思惟 ~ 말없이 앉아 자세히 생각해보면

掩泣難勝悲 ~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지만 슬픔을 이기기 어려워라.

安得好山谷 ~ 어찌하면 좋은 골짜기를 얻어

深棲伴麋鹿 ~ 사슴과 짝하면서 살 수 있을까?

耳畔絶是非 ~ 귀에는 是非따지는 소리 끊어지고

目前無順違 ~ 눈앞에는 잘되고 못되는 일 없으리라.

翛然常獨行 ~ 나 홀로 마음대로 하고 지내면서

放曠終吾生 ~ 후딱 내 을 마치리라.

尋常抱此志 ~ 平素에 이 뜻을 안고서

窹寐曾不二 ~ 자나 깨나 마음 바뀐 적 없네.

天明心下燭 ~ 하늘이 내 마음의 촛불을 밝혀 주리니

寧不從我欲 ~ 어찌 나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리오?

憂來書寸情 ~ 걱정이 되어 조그만 생각을 적어

持以示吾兄 ~ 우리 께 보여드리오.

 

 

 

(70) 重九日對花有感(중구일대화유감) : 重陽節에 꽃을 보고 느낌이 있어

 

干戈帀地起 ~ 온 땅엔 창과 방패

四海皆煙塵 ~ 바다엔 海霧와 먼지.

烝民困煎熬 ~ 百姓이 괴로워하니

觸目吁可哀 ~ 보이는 것 다 슬픔이라.

悒悒度晨暝 ~ 아침저녁 근심 걱정

那知佳節來 ~ 좋은 季節 오는 줄도 몰랐네.

珍重東籬菊 ~ 珍重쪽 울 菊花

殷勤及時開 ~ 때가 되니 꽃 피웠네.

金葩競媚嫵 ~ 빛 꽃이 다투어 아리따와

似欲慰我懷 ~ 나의 懷抱慰安해 주는 듯.

强起到花下 ~ 억지로 일어나 꽃 아래에 이르러

遶叢久徘徊 ~ 꽃떨기를 둘러싸고 한참 동안 徘徊하네.

龍山落帽客 ~ 菊花를 보며 잔치를 벌이던 孟嘉

白骨成塵埃 ~ 白骨이 티끌이 되었을 것이며

彭澤嗜酒翁 ~ 菊花酒를 좋아했던 陶淵明

一往不復廻 ~ 가고는 돌아오지 않네.

無人肯見賞 ~ 보고 즐길 사람 없어

花開亦悠哉 ~ 꽃이 피어도 愁心이네.

弔古復傷今 ~ 예나 只今이나 슬픈 일 連續이니

幽懷難自裁 ~ 깊은 걱정 어떻게 하기 어렵구나.

 

* 重陽節 : 陰曆 九月 九日 이때 菊花가 한창 피는 철이다.

* 孟嘉(맹가) : 中國 晋나라 때 사람.

* 陶淵明 : 中國 晋나라 때 사람. 菊花를 사랑하고 菊花酒를 즐겨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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