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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禪師들의 禪詩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의 禪詩(선시) (31)~(40)

by 산산바다 2022. 11. 4.

산과바다

圓鑑國師(원감국사) 碑(비)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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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선시 

 

 

 

                圓鑑國師, 圓鑑沖止(원감국사, 원감충지) (1226~1292)禪詩 (31)~(40)

 

 

圓鑑國師, 圓鑑沖止, 釋圓鑑(원감국사, 원감충지, 석원감) (1226~1292. 高麗 . 俗名 魏元凱. 本貫 長興. 諡號(시호) 圓鑑國師. 定安 <現在長興人. 처음 法名法桓. 沖紙. 自稱 號宓庵이라 함)

 

*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沖止(12261292)

고려시대 선승(禪僧). 수성사(修禪社) 6(). 성은 위(). 속명은 원개 (元凱). 본래의 법명은 법환(法桓), 뒤의 법명은 충지. 자호는 복암(宓庵). 전 라남도 장흥출신. 아버지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호소(號紹)이며, 어머니 는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송자옥(宋子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선림(禪林) 에 나아가 득도하기를 원하였지만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관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圓悟國師)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비구계를 받은지 오래지 않아 남쪽의 여러 지방을 순력하였 는데, 이는 항상 도를 얻고자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닌 <화엄경> 속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본받고자 함이었다.

1266(원종 7) 여름에 원오국사의 교유(敎諭)와 조지(朝旨)로 인하여 부득이 경상남도 김해군의 감로사(甘露寺) 의 주지가 되었다. 1269년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다시 3년 후에는 감 로사를 떠나 승주군의 수선사로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보조국사(普 照國師)로부터 시작된 수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선 ()보다는 교()에 치중하였다.

128311월에는 대중을 거느리고 조계산을 출발하여 원오국사가 선원사에서 수선(修繕)하여 수선사로 옮기던 거란본대 장경을 도중에 맞이하여 나누어 지고 왔고, <단본대장경경찬소(丹本大藏經慶 讚疏)>와 시를 지었다. 1284년 수선사를 떠나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으 로 옮겨 선정을 닦고 있던 중 12862월에 원오국사가 그를 수선사의 사주 (社主)로 추천하는 장문(狀聞)을 왕에게 올리고 입적하였다. 장문을 받은 충 렬왕은 원외시랑(員外侍郞) 김호담(金浩淡)을 시켜 그로 하여금 616일에 개당(開堂)하게 함에 따라 수선사의 제6세가 되었다.

불교의 삼장(三藏)에 이 해가 깊었을 뿐 아니라 사림(詞林)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과 시는 당대의 유림에서도 추앙을 받았다. 도를 닦음에 있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오 조(五祖) 홍인(弘忍)에게서 법을 인가받은 파강이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부 끄러워하였지만, 수선사 제1세였던 지눌의 순수선시대와는 달리 유학사상과 상교(相交)하는 선풍(禪風)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유사(儒士)들처럼 천 명을 믿고 운명에 안주하는 유선조화(儒禪調和)의 사상조류를 보였고, 상제상 천(上帝上天)의 신앙을 통하여 유도이교(儒道二敎)를 불교속에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념무사(無念無事)를 으뜸으로 삼았고, 지관(止觀)의 수행문 중 지()를 중시하였으며,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여 지눌의 종 풍(宗風)을 계승하였다.

1292110일 삭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문인 (門人)들에게 "생사(生死)가 있는 것은 인생의 일이다. 나는 마땅히 가리니 너희는 잘 있거라."는 말을 남겼다. 정오가 지나자 분향하고 축원을 올린 뒤 선상(禪床)에 앉아 '설본무설(說本無說)'이라 설하고, 문인들이 청하는 바에 따라 "돌아보니 세상살이 67년인데, 오늘 아침 모든 일을 마쳤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탄연하여 평탄하고, 노두가 분명하니 어찌 길을 잃으랴. 손에는 겨우 하나의 대지팡이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피로하지 않을 것이 또 한 기뻐라(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未曾失 手中裳有一枝 且喜途中脚不倦)."라는 게송(偈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랍 39세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1권이 남아 있으며, <동문선>에도 시와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원감국사(圓鑑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보명(寶明)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31) 率衆採蕨迴示同梵(솔중채궐회시동범) : 大衆과 함께 고사리를 캐러갔다가 돌아와 함께 있는 僧侶들에게 보이다

 

提籃曉出碧崔嵬 ~ 새벽녘 바구니 들고 푸른 에 나가서

林下閑挑野菜來 ~ 숲 아래서 閑暇로이 들나물 뜯어 온다.

欲識箇中無限意 ~ 이 가운데 無限한 뜻 그대 알고 싶은가

白雲時與暮禽迴 ~ 흰 구름 때때로 저녁 새 함께 돌아온다.

 

 

 

(32) 睡起(수기) : 잠자다 깨다

 

秋梢凄凉日色薄 ~ 凄凉한 가을 나뭇가지에 햇볕이 엷은데

山容索寞霜華淸 ~ 山 姿態 쓸쓸하나 서리꽃 맑기도 하여라.

閉門坐睡便成夢 ~ 닫으니 앉은 채 졸리더니 꿈에 들었는데

驚起林鴉三兩聲 ~ 두세 마디 숲 속 까마귀 소리에 놀라 일어난다.

 

 

 

(33) 示人(시인) : 사람들에게 보이다

 

浮生正似隙中駒 ~ 人生 참으로 쏜살 같이 지나가니

得喪悲歡何足數 ~ 얻고 잃음 슬픔 기쁨 어이 히 헤아리랴.

君看貴賤與賢愚 ~ 그대 보라 貴賤賢愚를 가리지 않고

畢竟同成一丘土 ~ 마침내는 똑같이 무덤 흙이 되는 것을.

 

 

 

(34) 試新筆次信手書一偈贈侍者(시신필차신수서일게증시자) : 새 붓을 試驗하면서 손 가는 대로 偈頌을 한 써서 侍者에게 주다

 

擎茶日遣滋吾渴 ~ 날마다 를 날라 나의 渴症을 풀어주고

過飯時敎療我飢 ~ 때마다 밥을 주어 나의 배고픔 덜어주네.

若謂山僧無指示 ~ 萬若에 내게서 가르침이 없다 하면

知君辜負老婆慈 ~ 알겠네, 노파의 慈悲心 그대 저버렸음을

 

 

 

(35) 侍者求偈善以贈之(시자구게선이증지) : 侍者偈頌하여 奇特하게 여겨 지어주다

 

吾常呼汝汝斯應 ~ 내가 너를 부르면 너는 對答하였고

汝或訊吾吾輒酬 ~ 네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곧 해주었지.

莫道此間無佛法 ~ 이 가운데 부처의 眞理 없다고 말하지 말라

從來不隔一絲頭 ~ 元來 그곳에는 間髮(간발)間隔(간격)도 없는 것을.

 

 

 

(36) 夜大雪都不覺知曉起望城中有作(야대설도불각지효기망성중유작) : 밤에 큰 눈 내린 줄 모르고 새벽에 일어나 안에서 짓다

 

但認更深月照來 ~ 밤 깊어 달빛 비추는 것으로만 알아

不知庭院雪成堆 ~ 정원에 눈 쌓인 줄 알지 못했었다.

平明起向城中望 ~ 새벽에 일어나 안을 바라보니

萬樹梅花一夜開 ~ 나무마다 梅花꽃 하룻밤에 다 피었구나.

 

 

 

(37) 夜坐(야좌) 1 : 밤에 앉아

 

松韻溪聲夜送凉 ~ 소나무와 개울물 소리가 밤에 서늘함 보내와

更深月彩滿虛堂 ~ 밤이 깊어감에 달빛이 빈 집에 가득 차는구나.

想應此樂世無有 ~ 생각해보면, 應當 이런 즐거움 世上에 없으니

安得題封貢我皇 ~ 어떻게 로 지어 우리 임금님께 바치리오.

 

 

 

(38) 夜坐(야좌) 2 : 밤에 앉아

 

松篁接影籠高閣 ~ 소나무와 대나무 숲 그림자 높은 樓閣 둘러싸고

榴橘交柯幕小庭 ~ 柚子나무와 나무 가지 서로 얽혀 작은 뜰을 막았다.

自有淸風來几席 ~ 절로 맑은 바람 있어 冊床으로 불어와

更邀明月入窓欞 ~ 다시 밝은 달을 맞아 窓門으로 들어오는구나.

 

 

 

(39) 與南原倅趙酬唱詩(여남원졸조수창시) : 남원의 조 태수가 방문하여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사례하다

 

再捷龍門第一人 ~ 두 번이나 科擧一等으로 合格하여

便將忠孝奉君 ~ 문득 앞으로는 忠孝君親을 받들었네.

親欲窮出世人間事 ~ 出世를 다하고자 함은 人間의 일이니

來作鷄峯社裏賓 ~ 鷄峯社(계봉사) 속의 손님이나 되어 오게나.

 

 

 

(40) 嶺南艱苦壯(영남간고장) : 嶺南苦生하는 壯丁

 

有臂皆遭縛 ~ 팔 있는 는 모두 묶였으니

無爾不受鞭 ~ 어느 등줄기엔들 채찍을 맞지 않았으랴.

尋常迎送慣 ~ 나라 官吏를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慣例이고

日夜轉輸連 ~ 밤낮으로 물자 운송 이어질세

牛馬無完脊 ~ 소와 말은 등뼈가 穩全(온전)하지 못하고

人民鮮息肩 ~ 人民들은 어깨 쉴 겨를 거의 없네.

妻孥啼僻地 ~ 妻子는 땅에 주저앉아 울어 대고

父母哭號天 ~ 父母痛哭은 하늘에 사무치네.

自分幽明隔 ~ 生死가 갈라지는 걸 뻔히 알거니

那期性命全 ~ 어찌 목숨이 穩全하기를 바라겠나.

孑遺唯老幼 ~ 남은 이는 오직 늙은이와 어린애 뿐

强活尙焦煎 ~ 억지로 살자니 오히려 애타는구나.

邑邑半逃戶 ~ 고을마다 逃亡친 집들이고

村村皆廢田 ~ 마을마다 밭은 다 荒廢해졌네.

誰家非索爾 ~ 뉘 집이라 쓸쓸하지 않을 것이며

何處不騷然 ~ 어느 곳이라 시끄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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